이미지의 문화사 - 역사는 미술과 어떻게 만나는가, 심산 픽처링 히스토리 1
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 심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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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은 방마다 시계가 있는 것처럼 카메라가 한 집에 여러 대 있는 게 당연하다. 카메라는 지극히 사적인 물건이 돼서 공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식구들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핸드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기본으로 일상 생활 쵤영용, 여행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한 개인이 몇 대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해졌다. 그러나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카메라는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 지금의 월풀 욕조쯤 되는 희소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에 사진관이 많았고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는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출장 사진사들이 있었다. 또 아주 먼 기억 속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도 있었다. 이 사진사들은 사진 배경을 지니고 다녔다. 아무튼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같았다. 머리칼을 정갈하게 단장하고 제일 좋은 옷 까지는 아니어도 막 입는 옷이 아니라 외출복을 꺼내 입고 사진을 찍곤했다.  

카메라가 흔해진 요즘도 마찬가지다. 돌이나 백일 촬영, 아님 기념촬영을 하려면 메이컵을 하고 옷을 맞춰입고 스튜디오로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하는 기본적 의식은 과거나 현재나 변한 게 없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물을 보고 실물보다 더 낫네, 안 낫네 논평을 한다. 즉 우리는 사진이 우리를 그대로 옮겨 놓는다고 믿지 않는 것 같다. 사진은 실물의 복제판일 뿐이지 원본이 될 수 없다는 근본적 믿음을 갖는다. 그리고는 이왕이면 실물보다 낫기를 갈망한다.  

사진이 이러할진대 회화와 같은 이미지에서 리얼리티를 따지는 일이 의미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이 책은 회화나 사진 속에서 리얼리티의 실재와 오류를 짚어가는데 부질없어 보인다. 게다가 역사적 흐름을 이미지에서 찾아내려고 하는데 거대한 비바람 속에서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듯 하다. 사실 그림은 현실과 정반대를 꿈꾸는 인간의 상상력의 결과물일 때가 많다. 피터 브뢰뢰헬이 전쟁 중 민중이 곤궁했지만 속에서 풍요로운 사육제를 묘사한 그림이라든지 윌리엄 터너가 산업혁명 목격자였음에도 그의 그림은 자연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그림을 그대로 받아들여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기 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그림을 읽는 게 더 적절한 순서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림은 원래 역사적 사료로 쓰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진을 찍고 보관하는 심리와 비슷하게 제작되었다. 그림이 역사적 흐름이나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없지 않지만 역사가가 캐내야하는 증거물로는 부적절하다.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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