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맨
채영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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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처음봐도 이 사람이 나랑 필이 통할지 금새 알아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알아본다. 소설이란 장르도 그렇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칭찬한 소설도 울림이 없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시큰둥해도 나는 울림을 얻을 수 있다. 한 페이지만 읽어도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다. 인문학 책들과 달리 소설은 단숨에 읽지 못하면 결국 읽다가 멈추게 된다. 이런 책들이 너무 많아서 소설을 고를 때 조심하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국민 할머니, 김태원에 버금가는 저질 체력이라 오프서점에서 서서 책을 읽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의무감에서 로렌스 더럴의 마운트 올리브를 끙끙거리다 결국 놔 버렸다. 이런 상황이라 이 책이 더 소중하다. 아쉬운 점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너무 어둡다는 것. 

채영주란 소설가는 금시초문인데 마흔에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 후에 나온 유고집이란다. 살았을 때 발표 안 됐던 <바이올린 맨2>가 실려있다. <바이올린 맨1>이 그래도 희망적이라면 <바이올린 맨2>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끝까지 밀고나가 결국 죽음으로만 악에 맞설 수 밖에 없는 주인공들 이야기다. 악인들은 죄책감 따위는 뭉게버리고 계속 살아남아 또 다른 악의 제물을 찾아 어슬렁거릴거다. 소설 속에서 이런 극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솔직히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채영주란 작가의 소설집과 작품을 검색해서 몇 권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할 때 간결함을 사용하면서도 행간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서사의 힘이 매우 강하다. 단숨에 읽게 쉽게 썼으면서도 쉽지 않은 구성력을 읽어낼 수 있다. <바이올린 맨>의 화자가 열 한 살 짜리 소년인데 소년의 시선 밖일 때도 종종 있지만 이런 단점이 문장을 풀어가는 힘에 의해 모두 덮인다.  

자전 소설이라는 <미끄럼을 타고 온 절망>은 스물 한 살의 대학생이 본 삶의 단면이다. 무전여행 중 지방 룸살롱 웨이터로 잠시 보내는 동안 한 여인에 대한 연모를 통해 계급에 대해 어렴풋하게 인식한다. 삶에 대한 허무의 실체가 계급만은 아니지만 스물 한 살 때만이 느끼는 절망은 아니리라. 오늘처럼 찬란한 볕 속에서 흔들리는 어린 은행잎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문득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 찾아오는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불안. 이 불안은 그 실체를 알 수 있을 거 같으면서도 한 순간에 낯선 것으로 바뀌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삼십 분 후 나는 그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행선지도 알 수 없는 여름 버스의 덜컹거림 속에서 나는 두 팔을 감싸 안고 떨고 있었다. 제발 모든 게 꿈이었기를 빌면서. 새벽의 꿈도, 그녀의 방문도, 내가 그 도시에 잠시 머물렀던 기억도, 모두 우중충한 날의 짧은 꿈이었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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