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티사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도 오묘해서 난 무슨 물고기 이름인줄 알았다.-.- 메타 픽션이라는 말을 정확히 몰랐는데 이 책 덕분에 메타 픽션에 대한 개념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1장은 흥미롭게 시작한다. 정신 병동일 수도 있는 곳에 마일스 그린이라는 기억상실에 걸린 남자가 치료를 받는다. 그 치료란 게 섹스 치료이다. 상상력 독특해..하면서 읽어가다 2장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당황하게 된다. 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등장 인물이 작가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등장 인물 이름도 등장 인물이 직접 짓는다. 작가의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화를 쫓아가다 보면, 1장의 내용은 까마득하게 잊고 소설의 기원에 대해, 존 파울즈가 그랬던 것처럼, 의문을 갖게 된다.  먼 기억을 꺼내어 왜 포스트모던인가, 하고 새삼스레 질문을 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은 60년 전에 죽었어. 모더니즘이 뭐라고 생각해? 또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만두고라도. 아무리 멍청한 학생도 지금은 소설이 반영의 매체가 아니라 <반성>의 매체라는 걸 알고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진지한 현대 픽션의 주제는 한 가지뿐이야. 즉, 진지한 현대 픽션 쓰기의 어려움. 첫째, 그것은 픽션일 뿐이고, 픽션일 수밖에 없으며, 픽션 이외의 어떤 것도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현실이나 실생활에 관여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건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실이야. 알겠어?" 

즉 사실주의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존 파울즈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포스트모던 역시 반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원본을 복제해서 복제판이 더 유명세를 얻고 원본은 사라지는 것 역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단 그 현실 반영이라는 게 깊이감이 빠진 모방원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 역시 픽션이 아닌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거울이다.  

뭐, 철지난 포스트모던 담론은 이쯤하고.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란 영화가 있다. 소설보다 더 낮선이란 제목쯤 되겠다. 만티사를 읽으면서 이 영화가 내내 떠올랐다. 이 영화와 만티사의 형식이 유사다. 소설 속 등장 인물이 현실에 등장해서 좌충우돌하면서 작가가 결말을 바꾸게 하는 일종의 메타 픽션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구나...대체 저런 걸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종이 다른 거 아닌가, 하는 절망까지 느꼈었다.  

그.런.데. 파울즈의 만티사에서 그 형식을 빌려왔다니...또 모른다. 파울즈 역시 우리가 잘 모르는 고대 어느 작가의 형식을 차용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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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2009-01-16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는 존 파울즈에게^^ 저 역시 메타 픽션의 개념을 알게된 계기였어요.
소설에 대한 님의 생각도 근거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