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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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단편 <국수>를 좋아했다. 찾아보니 2014년 1월에 읽은 첫 책이었다. 2016년 끝낸 첫 책은 무려 630페이지에 달하는 그녀의 이 책이다.

항상 장편국산소설 타령을 했다. <대망>처럼은 아닐지언정, 한 배경으로 오래 읽을 수 있는 장편을 원했다. 김숨이 드디어 내 줬구나 기쁜 마음에, 나의 세상 일이 숨차게 돌아가는 이 시즌에 오자마자 비닐벗겨 이 책부터 손에 쥐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읽기 시작만하면 잠이 왔다. 수면제라도 뿌려진듯 잠이 왔다. 누비바느질하는 여자 수덕과 그 두 딸 금택, 화순의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도 오래걸렸다. 시대적 배경이 어느때 즈음인지 갈피를 잡는데도 팔십여 페이지가 걸렸다.

무명, 명주, 모시, 양단, 삼베, 공단 등 들어본 적은 있지만 만져본 적은 없는 직물들과 음식질감, 자연들과의 비교...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나의 평생은 그것들과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바느질과 연관된 어떤 소재도 미천한 나의 경험과는 겹치지 못했다.

물론 경험치 못한 것들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답답하게 600여 페이지를 읽는 것은 손마디에 관절염이 생겨 바느질을 못하게 되는 그녀들의 삶만큼이나 힘든 것이었다. 그녀들의 한땀한땀 바느질만큼, 나의 눈으로 문장을 뜨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눈이 멀겠다 하며...

힘든 일을 극복하고 나면 완수했다는 기쁨이 생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에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누비대에 갇힌 그녀처럼 나도 잠시 갇혀 있었다. 졸다가 읽다가 마구마구 읽어치우다 앞과 뒤가 별로 다르지 않은 반복되는 내러티브에 짜증이 나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마지막을 덮으면서는 이제야 풀려났구나 싶었다.

매력적이었던 그녀의 단편처럼, 이 책을 중편정도로 줄였다면 이렇게 곤역스럽진 않았겠다 싶다. 물론 바느질과 옷감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나보다는 이 책을 수월하게 읽겠지 싶다. 인용한 문구처럼 아름다운 상상을 할 문장도 몇 보았다. 그러나 그녀들의 답답한 삶만을 묘사하기엔 분량이 너무 넘쳤다는 생각이다.

우물집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바람바늘이었고, 햇살은 햇살실이었다. 햇살실에는 명주햇살실과 무명햇살실과 초를 먹여 빳빳해진 명주햇살실이 있었다. 바람바늘의 귀는 누비 바늘의 귀보다 작았다. 동틀 즈음에야 바람바늘의 귀에 명주햇살실이 꿰어졌다.바람바늘이 부드럽게 감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바늘땀이 떠졌다. 파리가 똥 싸듯 바늘땀이 떠졌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할 즈음이면 바람바늘의 귀에는 초를 먹인 명주햇살실이 꿰어졌다. 정오 즈음에는 무명햇살실로 바뀌어 꿰어졌다. - 12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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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장편이네요. 언젠가 읽으실 예정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다 읽으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보물선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보물선 2016-01-02 21:50   좋아요 1 | URL
눈 빠지는줄 알았어요. 안그래도 알러지가려움증에 눈이 너무 안좋은데 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