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님께서 2003-09-28일에 작성하신 "내가 서울에 살 고 싶지 않은, 또는 살 수가 없는 여러가지 이유"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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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추석 이후 2주일 만인 듯 합니다. 갈 때마다 훌쩍 커져 있는듯한 들이를 만나는 게 최우선 목적입니다. 같이 시장에 나가 밥도 사먹고, 동네 산책도 하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학교생활 등 그간의 일상을 묻고 듣습니다.
아내와는 20여년 이상을 별나게 같이 붙어지내, 이젠 굳이 애틋함이나 절심함의 표현은 서로 생략하게 됩니다. 나는 그저 미안함을, 그녀는 그저 무심함을, 간결한 눈빛으로, 겨우 소통하곤 합니다. 그녀는 아마 그간 하고 싶었으나 경제적, 사회적 형편상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해보려나 봅니다. 나도 역시, 경제적, 사회적인 여건상, 마을에 살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내세우기 위한 지적 허영심이나 유희가 목적이 아닌, 스스로의 품성을 채우고 세상사람들과 그 성과를 나눌 수 있는 진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서울에 가면 오래 있지 못합니다. 차가 서울에 가까워지면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만나지 않고, 동네 이외의 곳은 나서지 않고, 냉큼 다시 마을로 내뺴게 됩니다.
내가, 서울에 살고 싶지 않은, 또는 살 수가 없는 여러가지 이유때문입니다.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부터 그 이유는 바로 작동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타인이나 익명의 이름을 하고, 그 관계에 딱 들어맞는 무심한, 심지어 무조건 적대적인 표정을 하고 바쁘게 오갑니다. 왜 그런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리 바쁘게, 대체 어디를 오가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 집니다.
답이야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처없이 떠돌거나 휩쓸려다니는 서울 특별시민인 것입니다. 이들과 서울에서 같이, 특별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전철역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연예신문들이 쓰레기 처럼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온갖 거짓과 사기와 악행이 버무려진 그 찌라시다퉈서 돈주고 사보고 있습니다. 빈 자리 차지하기에만 골몰하는 건장해보이는 중년의 남녀, 싸우듯 웃고 떠드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젊은이들, 지하가 답답해 우는 아이를 때려서라도 달래려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해 보이는 엄마들. 이들과 서울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다리많은 벌레같이 섬찟한 정치건달들이 떼로 모여사는 여의도, 노숙자들이 발목지뢰처럼 널려있는 서울역, 콘트리트벤치에 무채색의 노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파고다공원, 무뇌아와 단세포로 일관되게 성장해온 큰(大) 학생들이, 오로지 놀아나는 신촌, 한때는 복부인이, 얼마전엔 사이비벤처가, 요즘은 사채꾼이 몰려 돈놓고 돈먹는 강남.
이런 마을과 사람들로 이루어진 서울특별시에 나는, 도저히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가족을, 오랜만에, 힘겹게 만나러 가는, 그 서울일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