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님의 <꽃삽>,
내겐 무척이나 애착이 가는 글모음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샘터>에 연재되었던 글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93-95년쯤이었다.

그 무렵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무얼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은 켜켜히 쌓여
스스로에게 호된 질책으로 자학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때늦은 사춘기 같은,
그런 정체성의 혼돈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끝내 난 외부와의 단절이라는 처방을 내리고는
자폐증 환자인냥 고개를 한껏 접고
홀로 고행이라 했다.

친구와 이웃의 부름을 애써 외면하거나 거부하면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냈다.

뚜렷한 방향이 설정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한결 가벼워진 건 확실했다.
정말 오랫만에 이웃을 향해 웃음을 보일 수 있어 기뻤고,
더 이상 웅크릴 필요도 없었다.

그때에 나를 옳곧게 만들어준 것이
<꽃삽>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해인 수녀님을 경외하게 된 것이.
물론 이해인님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난 종교적 색채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해인,
그녀의 글은 수수하고 평온한 아이와 같다.
그녀의 언어는 맑고 잔잔하다.

그런 그녀에게서,
어지럽고 헝클어진 내 마음이 걸러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나보다.

이제서야,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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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해인 수녀님의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 셀러 대열에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 분의 신간은 둘째 치고 근황조차 모르겠네요. 수녀님 스스로 거리를 두고 계시는 건지, 아님 우리들이 외면을 하는 것인지....여하튼 저도 오랫만에 그 분의 글을 꺼내 읽어 볼랍니다~ ㅋ

김여흔 2004-02-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삽> 이후 <사랑할땐 별이되고>,<고운 새는 어디 숨었을까>,<향기로 마을 거는 꽃처럼> 등의 산문집과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사계절의 기도> 등 시집 그리고 영역서, 번역서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또 강의, 독서,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의 기도로 하루 하루 보내고 계신다고 해요.

비로그인 2004-02-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제가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외면했었던 거였군요.....이런~ ^^
알려 주셔서 감사하구요. 수녀님의 산문집 중 한 권을 골라 먼저 읽어 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