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내용보기
1. 나눔대상 지역 - 관악구 난곡지역 200 세대
- 노원구 상계동 지역 200 세대
- 기타 각 지역의 어려운 이웃 1,000 세대
2. 나눔 물품 쌀 20kg, 김치, 과일, 치약, 비누, 과자, 주방세제 등
외에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
(위로가 되는 편지 또는 손수 뜬 목도리, 장갑... 생활에 요긴한 돈 등... )
1. 활동일 2004년 1월 18일 오전 10시부터
2. 모임장소 (우선)안국동 풍문여고
3. 역할 나눔 보따리 3~4개 정도를 본인의 차량에 싣고 우리의 이웃에게 직접 전달해 주는 일
4. 모집기간 2004년 1월 15일(목)까지
5. 모집인원 차량 소유자 150명, 비 소유자 150명
  ① 차량 + 직접전달 :
주소와 약도를 가지고 직접 전달하시면 됩니다.
  ② 차량만 :
여성이나 노약자 등 보따리를 직접 들고 전달하시기 어려운 경우 요청을 하시면 함께 동승할 활동천사를 연결해 드립니다.
  ③ 몸만 :
난곡이나 상계동 지역에서 아름다운가게 간사와 함께 일을 하거나 차량 소유자와 함께 나눔 보따리를 전달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홀氏님께서 2003-09-05일에 작성하신 "산슈유 벌초의 중노동, 그리고 주말 휴가 계획"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하루종일, 능길마을에 식재한 수백그루의 산수유 나무를 벌초한 중노동의 날.

그러나, 온몸이 뻐근한 중노동이 즐겁습니다.

이제 머리만 지끈대고 뻐근한 노동은 삼가하려 합니다.

문제는 머리가 아닌, 바로 몸에 있었으니까요.

'말뿐이 아닌, 제발 행동 !'.

마을에 내려온 이유입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실로 수년만의 여름휴가를 내려고 합니다.

오래전 소시민으로 위장된 갑충같은 월급쟁이를 집어치우고,

앞으로 아무 일도 안하고, 또는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돈을 벌 요량으로,

인터넷벤처사업 한다고 까불때부터

나의 사전에, 생활에 휴가라는 건 없었지요.

마음가짐과 살림살이가 편해야 휴가는 가능합니다.

휴가지는 진안 능길마을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생활권 일대입니다.

금요일은 안성면 답사.

토요일은 진안읍 및 전주 답사.

일요일은 앞산 등정 및 TV모니터링, 또는 약간의 독서,

그리고 월요일 또는 화요일 서울에 다니러 갔다,

11일이나 12일 다시 마을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춘천에서도 그랬지만,

서울에 있는 시간,

또는 가족, 친지, 지인 등 아는 사람과 같이 하는 시간과 공간은 최소화할 작정이지요.

그럴 때마다, 마음가짐이 흐뜨러지거나 느슨해지는 걸 느끼게 되는 까닭입니다.

만주벌판에서 말달리던 독립군 정도의 생활과 심정을 어느정도는 따라하고자 합니다.

그쯤은 해야,

스스로 인정되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서울이나, 가족을 챙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홍화씨님께서 2003-09-17일에 작성하신 "2003. 9. 3. - 여전히 비, 가을비가 지겹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다들 분주하다. 능길에서의 첫 아침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인 듯 하다. 과음을 하지는 않았는데 아침 자리가 영 편하질 않다. 몸을 방바닥에서 떼어내기가 영 힘들다. 얼굴이 부은걸 보니 어젯밤 코를 많이 곤 모양이다. 흥민 씨는 내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고 변상하란다. 집에 가면 내 베게를 가지고 와야겠다. 불현듯 우리 방으로 들어온 기남씨도 아침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사무실로 왔다.

집기를 들어내고 청소를 하며 다들 신이 났다. 새 공간을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지혜 씨는 가구를 배치할 궁리로 골몰이다. 아침나절에 동향면에 나가서 새로운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흥민 씨는 가용한 돈을 조금 찾아 담배와 과자를 샀다. 내가 제일 큰 형이니까 나를 대표로 하자는 의견이라 그렇게 하고 통장과 도장을 총무를 맡기로 한 용재 씨에게 맡겼다. 오전 동안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깔 은박지와 장판을 기다렸다. 예정대로 지혜 씨와 민종 씨가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국 대신 라면이다. 군대식 식판에 밥을 먹으면서고 낄낄거리는 품이 몹시 즐겁다. 군대에 다시 입대 한 듯하다며 다들 한마디를 보태지만 표정들은 즐겁다. 8명이 둘러앉기에는 부족한 식탁을 가운데 두고 머리를 맞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문득 미래가 궁금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자 박천창 씨가 은박지와 장판을 들고 들어섰다. 은박지를 먼저 깔고 장판을 덮었다. 신속하게 가구를 배치하고 짐을 들여놓았다. 부족한 공간을 이리 저리 구획해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짐을 정리하고 인터넷 선을 정리 하느라 영표 씨가 제일 바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저녁밥을 준비하라고 식사 당번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높다. 힘이 들지만 다들 잘 참아내고 있다. 대충 짐을 정리 할 시점이 되자 저녁 준비가 다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 왔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들끼리 따로 밥을 해 먹기로 해서 우리만 먼저 밥을 먹는다는 것이 미안하기는 해도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할만한 게제가 아니다. 고등어 통조림에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가 제법 먹을만 하다. 후다닥 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와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일기를 쓴다. 그새 8시가 되어간다. 일기를 접고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회의를 하러 가야겠다. 바쁜 하루, 힘들게 일을 했지만 사무공간이 꼴을 갖추니 흐뭇하다.

짐정리가 대충이라도 끝난 것을 축하하기라고 하는 듯 저녁 회의를 마치고 나선 마당에서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별을 만날 수 있었다. 시골에 사는 별은 숫기 없는 아가씨처럼 낮 가림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온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품이 반갑다. 춘천에 사는 별보다 훨씬 선명하고 아름다운 능길의 별은 수줍은 얼굴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마당가에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물고 올려다본 하늘은 별무리가 세를 점점 넓히고 있는 중이었다.

영표 씨와 지혜 씨는 컴퓨터를 정리 하느라 사무실로 갔다.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정리 하겠다는 의지인 듯 하다. 현금은 없지만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는 심사가 들었다. 끝내는 구석에 남아 있는 술통을 찾아내 목을 축이기로 했다. 민종 씨와 용재 씨가 라면을 끓이고 마당에 모여 앉아 잔을 돌렸다.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김미아(박천창 씨 부인) 씨가 모여 있는 우리를 수상히 여긴 듯 잠시 둘러보고 간다.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는 품이 심상치 않다. 찜찜~ 하지만 별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어쩌랴. 하늘에는 별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자씨님께서 2003-09-23일에 작성하신 "가자, 진안으로..."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9/2 가자, 진안으로!!

어젯밤 숙취로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이제 6시다. 속이 쓰려 꿀물을 타서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릴려고 샤워를 했다. 물의 감촉이 너무 차가워 오한이 난다.

마당에 나가보니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이층집 주인아주머니가 잔디밭의 풀들을 뽑고 있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몸이 안 좋아 다시 자리에 누워 본다.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홍순천씨가 와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모두를 깨우시는 소리가 난다. 시간을 물어보니 8시 20분이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다.

밖에는 비가 더 내려오고 짐을 꾸릴려니 마음도 착찹하다.

사무실로 이사짐을 옮긴 8월24일도 비가 많이 왔는데 진안으로 떠나는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린다는 뉴스를 들었다. 9시 이사짐 옮길 차량이 왔다. 비가 와서 짐을 어떻게 싣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화물칸을 비가림 시설을 한 차량이 와서 한시름 덜었다. 먼저 매장 창고에 가서 보관하고 있던 내 짐을 싣고 사무실 짐을 싣으니 화분을 싣을 자리가 모자란다. 화분과 대자리의자는 추후 가져가기로 했다. 내 짐이 5톤 차량의 3/1정도를 차지했다.

아내와 짐을 나누다 보니 일부 짐을 버렸는데도 참 많다. 각자 차량에 나누어 진안으로 출발했다.

기남씨와 함께 화물 차량에 동승하여 떠났는데 화물차 기사님과 화물연대 투쟁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았던 화물차 지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도 추워하니까 자기의 옷을 챙겨주기도 하고 차에 히터를 틀어주어 따뜻하게 오게 되었다. 중간에 중부고속도로 오창 휴게소에서 모두 만나 점심을 먹고 모두들 커피 한잔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덕유산 톨게이트를 나와 구불구불한 길로 접어드니 기사는 강원도 정선가는 길처럼 느껴진다고 여기도 굉장한 산골인가 보다고 말한다. 진안 능길마을에 와서 짐을 내리는 중에 함양에 사는 양재혁씨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우리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비가 오는데도 지인들을 보고 싶어 왔다고 한다. 참 고마운 마음 씀씀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성여사님이 차려준 저녁 칼국수까지 먹고 다음을 기약하고 떠났다.

다행히 비도 멈추고 각자의 방을 배정하고 짐을 나누어 방 정리를 하고 이제 첫날 저녁 회의를 했다. 회의를 거의 마칠 즈음 박천창씨가 들어와 능길마을에서 박천창씨가 할려고 하는 일들을 대해 듣고 우리가 할려고 하는 일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나마 일에 대한 희망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산골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담배를 돌려 피우며 맘을 다스렸다. 모두들 보니 피곤한 얼굴이다. 정기석씨는 어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고 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냥 잘 수 없어 자귀나무뿌리를 담근 술을 꺼내어 한 잔씩 돌렸다. 약술이라고 아내가 술병에 “많이 마시면 큰일나요”라고 경고성 글까지 붙여놓았으나 꾼(?)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2시가 넘어 자리를 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조용히 산골의 밤이 깊어만 갔다.

마음만은 편한 상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홍화씨님께서 2003-09-17일에 작성하신 "2003년 9월 2일, 화요일-하루 종일 비가 오다, 착잡하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주)**과의 일을 정리하고 진안으로 옮기는 짐을 싣는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다행히 오전 안에 짐을 정리하고 춘천을 떠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밑반찬과 김치를 챙기러 집엘 들렀다. 걱정스런 얼굴을 하는 아내를 일별하고 하고 지호에게 인사를 했다. 지호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외면하고 손사래만 쳤다. 수연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차에 올랐다.

자! 이제 출발이다.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비는 더욱 맹렬하게 나리시고 차안에 탄 일행(최용재, 정기석, 하지혜, 나)은 모두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없다. 가슴 속에 만감이 교차하기 때문이리라.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농을 했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조수석에 앉은 기석 씨에게 신나는 음악을 주문했다. 우연치 않게 흐르는 첫 곡은 ‘What a wonder world'다. 굵직한 목소리가 가슴을 때린다. 음악이 흐르자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다. 빗방울은 더욱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모두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듯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 그래!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러 가는거야.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나 영동으로 접어들었다. 오늘 새벽까지 석별의 술잔을 돌린 두 사람(기석, 지혜)은 잠이 들었다. 함께 자리에 있었던 영표 씨가 걱정이 되었다. “운전 괜찮니?” 전화로 확인을 하고야 안심이 된다. 운전은 괜찮은데 기름이 떨어졌단다. 쫄쫄이 굶으면서라도 함께 하자던 약속들이 실감났다. 다들 주머니에 현금은 물론 카드도 없는 듯 하다. 이제부터 굶는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그렇기는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째 급여를 못 받아 식구들은 카드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아내에게 담배 값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조차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사 비용도 없이 덜렁 짐을 싣고 이주를 감행하는 우리가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닌지? 하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뿐이다. 아직 일을 다 정리하지 못해서 같이 이주하지 못하는 정식 씨를 포함해 9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무사히, 잘 적응하고 서로 아름다운 관계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두루두루 전화를 주고받고 시덥지 않은 잡담을 몇 마디 하다가 만나기로 약속한 오창휴게소에 도착했다. 세대로 나누어 두어 시간 전에 출발한 식구들 얼굴이 그새 반갑다. 주머니를 탈탈 뒤져도 점심 값은 없었다. 박흥민 씨 카드로 계산을 하고 눈물 젖은 점심, 황태 해장국을 먹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마음도 착잡하기 그지없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이라도 마시자는 제안을 못들은 척 하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차는 진안으로 향했다. 극도로 긴축하지 않으면 앞날이 어둡다. 진안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반가운 전화 한통이 왔다. 몇 해 전에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재혁이다. “행님요 어디만치 왔소?”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온다고 마중을 오는 중이란다. “얼릉 얼릉 어서 오이소~” 가까운 곳에 지인이 있어 마중 나온다니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드디어 진안. 능길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빗속에 조용히 앉아있다. 환영의 플래카드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고즈넉하다. 이삿짐을 모두 내리고 차가 춘천으로 떠났다. 온 길을 되짚어 가려면 밤이 되어야 가능했기에 서둘러 떠나는 기사 아저씨를 배웅하며 이제는 정말 우리가 능길마을 사람이 되는가 싶다. 사무실로 쓰기로 한 공간은 아직 정리가 안돼 폐교 현관을 대충 치우고 짐을 쌓았다. 각자의 숙소를 배정하고 개인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2·30대가 한방을 쓰고 지혜 씨가 방을 따로, 40대가 또 다른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식당에서 마련해준 칼국수를 먹었다. 재혁 씨 일행을 보내고 회의를 했다. 진안에서의 첫 회의. 다들 지치고 힘들긴 하지만 표정들이 밝다. 식사 당번을 정하고 몇 가지 규칙을 만들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단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이번 주에는 지혜 씨와 민종 씨가 식사 당번을 하기로 했다.

본사에 대한 불만도 몇 가지 토로하고 앞으로 잘 해보자는 다짐을 할 즈음 누군가 문을 노크 했다. 박천창 씨다. 마을 대표로 많은 일을 챙기는 그이가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숙소에 온 것이다. 앞으로 진행 할 몇 가지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동안 우리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잘 해봅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 서로 사랑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사를 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담배 한대씩을 물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비는 어느 정도 멈추고 구름 속에 희부연 달빛이 보인다. 담배를 살 돈도 없어서 겨우 남은 담배 몇 개비를 나누어 들고 길게 연기를 내 뿜었다. 박흥민, 정기석, 최용재, 정기남, 김민종, 홍영표, 하지혜, 아직 오지 않은 김정식, 그리고 나. 어렵고 힘든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리라. 모두 함께 어깨를 걸고 지친 걸음 서로 부추기며 이 길을 가리라. 마주 쥔 두 손에 힘을 주어 서로를 챙겨 주며 끝까지 가리라.

한참을 서성이고 있어도 아직 저녁 8시다. 시골의 밤이라 더 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능길에서는 술을 자제 하자는 약속을 슬그머니 어기고 싶은 마음이 다들 들었던 모양이다. 흥민 씨가 약술이라도 한잔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자귀나무 뿌리로 담근 약술인데 혼자서는 두 달 동안 복용 할 양이란다. 며칠 무리해서 컨디션이 말이 아닌 기석 씨를 제외 하고는 다들 싫지 않은 표정이다. 간단한 안주에 약술을 놓고 둘러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며 밤이 깊어갔다. 두달치 약이 다 떨어질 즈음 12시가 되었다. 이젠 내일을 위해 잠을 자 두어야 하겠다.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능길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