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씨님께서 2003-09-17일에 작성하신 "2003. 9. 3. - 여전히 비, 가을비가 지겹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다들 분주하다. 능길에서의 첫 아침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인 듯 하다. 과음을 하지는 않았는데 아침 자리가 영 편하질 않다. 몸을 방바닥에서 떼어내기가 영 힘들다. 얼굴이 부은걸 보니 어젯밤 코를 많이 곤 모양이다. 흥민 씨는 내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고 변상하란다. 집에 가면 내 베게를 가지고 와야겠다. 불현듯 우리 방으로 들어온 기남씨도 아침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사무실로 왔다.

집기를 들어내고 청소를 하며 다들 신이 났다. 새 공간을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지혜 씨는 가구를 배치할 궁리로 골몰이다. 아침나절에 동향면에 나가서 새로운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흥민 씨는 가용한 돈을 조금 찾아 담배와 과자를 샀다. 내가 제일 큰 형이니까 나를 대표로 하자는 의견이라 그렇게 하고 통장과 도장을 총무를 맡기로 한 용재 씨에게 맡겼다. 오전 동안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깔 은박지와 장판을 기다렸다. 예정대로 지혜 씨와 민종 씨가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국 대신 라면이다. 군대식 식판에 밥을 먹으면서고 낄낄거리는 품이 몹시 즐겁다. 군대에 다시 입대 한 듯하다며 다들 한마디를 보태지만 표정들은 즐겁다. 8명이 둘러앉기에는 부족한 식탁을 가운데 두고 머리를 맞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문득 미래가 궁금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자 박천창 씨가 은박지와 장판을 들고 들어섰다. 은박지를 먼저 깔고 장판을 덮었다. 신속하게 가구를 배치하고 짐을 들여놓았다. 부족한 공간을 이리 저리 구획해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짐을 정리하고 인터넷 선을 정리 하느라 영표 씨가 제일 바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저녁밥을 준비하라고 식사 당번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높다. 힘이 들지만 다들 잘 참아내고 있다. 대충 짐을 정리 할 시점이 되자 저녁 준비가 다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 왔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들끼리 따로 밥을 해 먹기로 해서 우리만 먼저 밥을 먹는다는 것이 미안하기는 해도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할만한 게제가 아니다. 고등어 통조림에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가 제법 먹을만 하다. 후다닥 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와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일기를 쓴다. 그새 8시가 되어간다. 일기를 접고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회의를 하러 가야겠다. 바쁜 하루, 힘들게 일을 했지만 사무공간이 꼴을 갖추니 흐뭇하다.

짐정리가 대충이라도 끝난 것을 축하하기라고 하는 듯 저녁 회의를 마치고 나선 마당에서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별을 만날 수 있었다. 시골에 사는 별은 숫기 없는 아가씨처럼 낮 가림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온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품이 반갑다. 춘천에 사는 별보다 훨씬 선명하고 아름다운 능길의 별은 수줍은 얼굴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마당가에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물고 올려다본 하늘은 별무리가 세를 점점 넓히고 있는 중이었다.

영표 씨와 지혜 씨는 컴퓨터를 정리 하느라 사무실로 갔다.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정리 하겠다는 의지인 듯 하다. 현금은 없지만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는 심사가 들었다. 끝내는 구석에 남아 있는 술통을 찾아내 목을 축이기로 했다. 민종 씨와 용재 씨가 라면을 끓이고 마당에 모여 앉아 잔을 돌렸다.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김미아(박천창 씨 부인) 씨가 모여 있는 우리를 수상히 여긴 듯 잠시 둘러보고 간다.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는 품이 심상치 않다. 찜찜~ 하지만 별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어쩌랴. 하늘에는 별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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