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 능길이라는 시골마을이었다.

 깊은 주름 가득한 노년의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마을 앞 넓다란 시냇물에
 물고기 노니는 모양이 그대로 비추고,
 너무도 조용하여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곳이었다.

 난 그 곳에 한웅큼의 희망을 품고 갔더랬다.
 내 소망으로,
 우리의, 

 나의 해답을 찾으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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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님께서 2003-09-18일에 작성하신 "무소의 뿔처럼, 민들레 홀씨처럼..."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침부터 마을 뒷산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지형, 지세, 식생 등을 살피면서,

생태적 의식주 삶에 요긴하게 소용될, 풀, 열매, 나무 등을

미리 봐두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주먹밥도 넉넉히 베낭에 챙겨넣고,

길을 막는 가시덤불, 질긴 넝굴, 잔 나무가지 등을

무찌르기 위한 지팡이 겸 작대기도 도중에 마련했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으름덩굴이 지천으로 감겨있는 숲을 만나,

탐스러운 으름열매를 베낭마다 그득하게 채워왔습니다.



여세를 몰아, 오늘 저녁은 닭도리탕으로 특식을 하려 합니다.



도시를 공략하거나,

도시민들과 투쟁하지 않고,

이렇게 마을 뒷산만 노는 것 처럼 돌아다녀도

어찌 먹고 살까 하는 걱정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심이

냉큼 해소됩니다.



이렇게 무소의 뿔 처럼,

민들레 홀씨 처럼,

혼자서, 뚜벅뚜벅, 나아갈 겁니다.



같이 사는 풀씨들과 함께...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 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 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않으며

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의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의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의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부처의 경전 숫타니파아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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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씨님께서 2003-09-20일에 작성하신 "2003. 9. 16. 화요일 - 교육장 청소"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교육장과 사무실을 청소하느라 오전 시간을 보냈다. 집정리가 끝나고 사무실에 오자 그동안 쌓인 먼지가 마음에 걸렸다. 각자 청소 구역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알아서 손이 모자란 곳에 손을 보탰다.

나는 청소기를 들고 사무실 먼지를 거두어 들였다. 청소를 하고나면 늘 기분이 좋다. 손이 간만큼 집기가 깨끗해지고 바닥이 반들반들 웃는 낮으로 나를 쳐다보는 듯 하다. 청소를 마치고 다들 현관에 모여 담배를 물고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마을 앞 도로는 가을빛 속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참으로 조용한 동네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족구를 한 게임. 무릎이 안 좋은 겨자씨의 몸놀림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잘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부족한 점을 가지고도 서로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인 듯 하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는데 나무씨가 불씨를 부르러 왔다. 전화 안받고 족구 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그만둘 수는 없다. 빈 자리를 나무씨가 메우고 게임을 마쳤다. 땀은 조금 흘렸지만 기분이 개운치는 않다. 역시 사람이 문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진리다. 불변의 진리다.

매일 저녁에 하기로 한 회의를 진행했다. 서로에게 씨앗이름을 붙여 부르기로 한 것을 확정하자고 했다. 오랜 토의 끝에 드디어 이름을 정할 수 있었다. 나는 홍화씨, 정기석 씨는 풀씨, 박흥민 씨는 겨자씨, 정기남 씨는 처음에는 오방(오도방정)씨에서 불씨로, 최용재 씨는 나무씨, 김정식 씨는 사과씨, 김민종 씨는 처음에는 볍씨에서 짚씨로, 홍영표 씨는 피씨(PC를 주로 다루므로)로, 하지혜 씨는 처음에는 맘씨에서 올리브씨로 확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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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kimji > 가끔 생각이 나곤 한다_13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이미 범람해버린 강물이
지루하게 제 수위를 회복해가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사랑이 어루만진 부위에
  홍수가 휩쓸고 간 잔해가 남았다.


 3
사랑은 그렇게 왔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기포가 떠오르고
말할 수가 없다.

             채호기, 사랑은






채호기 시인의 『수련』을 읽다보면,
내가 그 여름, 백련 앞에서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싶다.
그리고, 또한,
나는 그 백련 앞에서 맘껏 울지도 못하고, 차마 슬퍼하지도 못했음을.
너무 아름다워 그저 깊은 숨만 자꾸 들이키고 있었음을,
또박또박 기억하게 된다.





::: 20030809, 전남 무안 회산 백련지_OLYMPUS C-700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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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나에게만 존재한다.
단절에서 오는 공허랄까.

이웃과 세상과의 의도적 단절,
가끔 그러면서 나의 정체성을 바로하곤 한다.
그럴때, 내가 흐려지고 탁해질때
TV 오락프로나 영화를 응시하며 즐기는데
오늘 걸려든 것이 Identity 이다.

나는 세상에 인식되는 몇몇에 사전정보를 거부한다. 특히 영화나 책, 음악 등 문화부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누구에게건 그 영화 재미있니,라거나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로인해 필요치 않을 편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판단이 중요하며 그 다음이 다른 이의 평가인 것을..

감동 받고 싶다면,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10점짜리 영화에 90점만큼의 점수를 주고 싶다면 그저 영화제목만 보고 관람하는 것이 요령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또는 일상의 건조함에서 걸려든 이 영화는 오랜 시간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나였던 적이 있었을까, 그게 정말 나였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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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2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음..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음..아..(죄송합니다..버벅대서...)

김여흔 2004-05-2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언니님, 왠지 의미심장한 말씀인 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