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님께서 2003-10-05일에 작성하신 "<마을편지 10> 유쾌한 야단법석, 마을 운동회"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마을편지 10> 유쾌한 야단법석, 마을 운동회



10월 첫날, 동향면 면민의 날 겸 면민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동향면 최대, 최고의 잔칫날 인 셈입니다.

체육대회보다는 운동회라 하겠습니다.

운동회가 더 정겹기때문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논, 밭 대신 동향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구름같이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마을 주민 뿐아니라, 외지로 나가사는 아들, 딸, 손자들도 적당히 섞여들었습니다.



으레, 완장찬 공무원, 한표가 아쉬워 이날만은 굽신거리는 정치인, 찬조하고 후원한듯한 기업인, 터주대감 표정을 한 마을 유지 등이 단상이 비좁게 다투어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단하에 초등학생 처럼 조회 대형으로 도열했습니다.

단상 사람들의 축사, 연설, 또는 훈시를 좋은 날이라 오래도록 참아냈습니다.



동향면은 풀씨네가 사는 능금리를 비롯, 대량리, 학선리, 자산리, 신송리, 성산리 등 6개 리, 25개 마을로 이루어졌습니다.

운동회는 이들 6개 리끼리의 대항전 양상입니다.

배구, 게이트볼, 씨름, 줄다리기, 굴렁쇠던지기, 훌라후프, 400미터 이어달리기 등이 동향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나절 내내 겨루어졌습니다.



능금리는 종목마다 거의 2등을 도맡아해, 결국 종합성적에서도 면소재지가 위치한 면의 상업 및 교통 중심지 대량리 다음으로 2등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의 많고 적음이 그대로 등수에 반영되는 양상입니다.

젊은 풀씨네 풀씨들은 어정쩡했습니다.

선수요건, 즉 주민등록을 아직 마을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내년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동회와 자연스런 술판을 빌미삼아 이곳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레 인사하고 교분하려했던 당초의 목적은 반도 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시끌벅적 어수선 했기 때문이지요.

야단법석의 판이었던 것입니다.



석가는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했는데(野壇法席),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는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고,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어 시끌벅적, 어수선하게 되었고, 이런 모습을 빗대 野壇法席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딱, 그 장면이었습니다.



마을 운동회는 몇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벼운 근육통으로 남아있습니다.

참, 유쾌한 야단법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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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0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다리기, 굴렁쇠던지기, 훌라후프....정말 정겹습니다. 마을 운동회의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지네요. ㅋ
아, 야단법석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구요...^^

水巖 2004-03-0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만이 주고 받고 받고 주고 하네요. 옛날에 서울사는 우리들이 시골사는 친구네 집엘 갔는데 마침 동네 운동회를 하더라고요, 이를테면 우리들은 능금리 사는 친구동네를 응원 했고 대량리 사는 어깨들이 우리들을 때리려고 해 우리들 서울놈들 혼쭐났지 뭐에요. 서울에 돌아와서는 매주 일요일닐 을지로6가에 있는 경기여객 버스종점에 나가서 대량리놈들 혼쭐냈죠. ㅋㅋ매주 번갈아가며 나갔더니 소문이 나서 이녀석들 한정거 미리 내려서 헛탕치군 했지뭐에요.
50년년전 얘기래요. ㅎㅎㅎ

김여흔 2004-03-04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도권만 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그 외 지역에선 처녀, 총각을 찾아 볼 수가 없어 많이 아타까운 마음이에요. 시골마을에 가보면 청년회니 부녀회니 노인회 등의 조직이 있죠. 그런데 요즘은 5-60대가 청년회랍니다. 70 이 안되면 경로당도 못가는...^^
그리고 운동회, 제가 몇년 전쯤 학원 시간강사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출강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었죠. 그 중엔 갓스물에 사고를 친 여자 동창의 아이들, 또 저희 옆집 아이들도 있었어요. 전교 학생인원이 30명 밖에 안됐는데, 어느 날 강의를 하러 갔더니만 가을운동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선생님이라고 해봐야 유치원 교사까지 달랑 3명이 다인데, 그 중 남자 선생님이 애들 상주랴, 달리기 시합시키랴, 이래 저래 분주했죠. 그래도 청군, 백군 응원하는 모습은 여느 도시학교 버금간다면 서러울 정도더군요. 그 덕에 이젠 엄마가 돼버린 동창이랑 그네에 앉아 왕년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 기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