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를 타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이의 하교길 마중을 나간다. 손끝과 얼굴에 닿는 포근한 공기가 내게 강한 에너지를 일순간 주입 시킨다. 날카로움이 사라진 3월의 공기는 나를 강하게 뒤흔든다. 봄의 충동 에너지.뛰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손으로 끌어 내리고 싶었다. 오늘의 주가는. 어제 잡으려다가 살짝 놓친 주식이 오늘 날개를 달았다. 소유하지도 않았으면서 느껴지는 상실감. 그 욕심의 후유증으로 어수선하고 예민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뛰어 나갔다. 느즈막한 시간이었고 바람도 내 가슴팍을 밀어댔지만 가쁜 호흡은 내 몸뚱아리보다 내 머리속을 말끔하게 비워주었다. 운동은 신체보다 정신을 치료해주는 것 같다. 

***  

지구별 여행자     

시련.고비.걸림돌.문제가 없는 시간들은 정말이지 수상한 인생이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그 무언가가 다가온다. 받아들이자. 애달퍼하는 시간은 속성으로 끝내고 그 상실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퍼뜩 깨닫자. 상실보다는,그것을 통해 배운 것에 촛점을 맞추고 다음의 기회에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해 볼 일이다. 

행복의 조건은 내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순간 기억하는 것이란다. 별탈 없는 일상을 그저 심심하다 여겼는데 불행없는 지금이,사건 사고 없는 심심한 오늘이, 바로 행복이라는.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 뿐이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도 기억이 남는다. 별다른 노력없이도 책을 읽는 행위자체로만으로 마음이 다소곳해지고 정돈되는 글들이 가득 담겨 있는 좋은 책이었다. 덕분에 심그렁했던 나의 일상이,박완서 선생님의 글 이후 다시 윤기를 찾아 반짝이게 된 것 같아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정 즈음 날이 풀렸었다. 영상으로 올라간 기온은 휘트니스의 혹사로부터 날 놓여나게 해 주었다. 영상이라고는 하지만 5k지점은 통과해야 장갑을 벗을 수 있는 기온이었다. 입 안으로 가쁘게 들이닥치는 공기는 만만치 않게 날카로웠다. 불구하고 연4일 간을 뛰었는데 날이 지날 수록 목이 깔깔해지기 시작하더니 일 주일만에 난 바튼 기침을 수시로 뱉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일 주일간 푹 쉬어야 했다.  

운동을 끊임없이 할 때는 낮에 꼭 휴식이 필요했었는데,운동을 하면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이번에 운동을 안했던 초반 이틀은 굉장한 잠이 쏟아졌다. 낮이고 밤이고 참 잘 잤다. 침대에 누우면 내 몸이 바닥으로 얇게 펴져 지면으로 흡수되는 듯 압착의 힘을 느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자 휴식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덕분에 그 동안 나의 운동 패턴이 내 몸을 넘어서는 강도였음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운동 재개 첫 날. 오래 쉬어서 더 힘들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정말 놀랍게도 몸은 너무나 가벼웠고 뛰는 발걸음마다 강한 탄력이 느껴졌다. 보폭은 적어도 10cm이상 넓어지고 지면에서 2cm는 높은 곳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발 뒤꿈치에서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시간도 3분이상 단축되었다. 쉬면서 나의 운동 주기가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음을 확실히 깨달았고 휴식의 필요 또한 깨닫는 순간이었다.  

***주말엔 남편과 함께 뛴다. 처음엔 목표 코스 2/3지점에서 그는 하차했었는데,어젠 마지막까지 함께 뛰었다. 의외로 잘 뛰어준 남편에게 무리한 것 아닌가 물었더니,남편은 뛸 수는 있지만 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기 때문에 그날의 일정은 거기서 즉각 끝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힘들어도 최선을 다한 그를 위해 걸어가기로 한 점심 일정을 약간 변경하여 차로 이동했다. 함께 차 오르는 거친숨을 몰아 쉬어준 그와 함께 맛있는 곳에가서 즐거운 점심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들은 DVD에게 떠 넘기고.

                                                                                                                   2011.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2월 중반부터 1월 내내 너무나 추운 날씨로 밖에서 뛰지 못하고 단지내 휘트니스에서 런닝머신 위를 뛰었다. 사람 잡는 기계 런닝 머신.운동은 해야겠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매일 들락 거렸다. 외화 채널이 달리는 고통을 분산시켜 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아더와 미니모이 초입부.   

어거스트 러쉬, 찰리와 초코릿 공장을 통해 눈에 익은 주인공. 프레디 하이모어. 휴 그랜트이 조카라는데... 아더가 미니모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분까지 보다가 멈추었는데,뒷부분이 궁금해 검색해서 주문했다. 두 아이들의 반응은 너무나 굉장했다. 이틀간 적어도 5회 이상 본 것 같다. 셀레니아 공주 목소리가 주변 캐릭터에 비해 좀 뜨는 감이 있었다. 마돈나가 더빙했다.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감독은 뤽 베송. 레옹,제5원소의 감독.의외다. 메이킹 필름도 신기하고 재미나게 훑어 볼 정도로 이 영화는 이번 겨울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의 영상이 되었다.  

 

우연치 않게 이 영화의 주인공도 역시 프레디 하이모어. 1990년생이니까 벌써 21살이다. 큰 아이는 이미 원서로 이 책을 본 상태였다. 미국에 있을 때 영화 제작이 되고 있다고 큰 아이가 말 했었는데,우연히 휘트니스에서 뛰다가 발견하게 되어 바로 주문. 생각보다 짧고 단순했다. 스토리가 책 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편집되었다고 큰아이가 말했다. 누나의 머리카락을 침대에 갈래 갈래 묶어 놓은 장면이 책에 그대로 나온다고 책을 가져와서 보여 준다. 정말 똑같다. 원서의 일러스트가 맘에 든다.

 

 

 

방학이 끝났다. 큰 아이는 방학을 무지 아쉬워 한다. 학교 가는 걸 싫어 했다. 미국에선 개학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는데....개학하면 또 다시 학과 공부에 모든 시간을 쓰게 될테니,맘껏 책 보며 뒹구는 자유는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개학이 싫다. 나도 함께 큰 아이의 공부를 거들어야 할테니.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 중, 부처가 아닌 체 하지 말라는 말씀이 최근의 나를 겨냥하고 있다. 담아 두고 생활하자. 나는 부처였다?? 그러니 부처처럼 살아라. 괜한 일에 성질내고 언성 높이는 것은 부처답지 못했다. 지저분하면 그냥 그런대로 못 본 체하면 될 것을 오늘 아침 그리 까칠하게 굴 건 뭔가.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간섭없이 평화로웠다. 이제 내재화가 필요하다. 어제 죽은 자처럼 오늘을 살자는 말씀도 다시 상기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월 9일  

빨리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재수는 피해야만 했다. 동기부여가 확실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공부했고 내 눈에는 수험이라는 두 글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표가 생기면 안간의 잠재력은 강해진다. 음악은 가까운 미래를 위해 살짝 닫아 둔다는 느낌이라서,악기 연주도 거의 하지 않았다. 즐거움을 미뤄두는 감각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p47
다채롭고 화려한 변화의 인생을 걸어오신 분 같다. 너무나 비범하여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그가 겪은 끊임없는 표면적인 변화들이 시간적 순서로 열거되는 글을 읽자니 명함 뒷면에 약력을 읽는 듯 심심했다. 

 

***12월 15일  

지난 토요일 작은아이의 유치원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학예회같은 연중 행사인 것같았다. 5세,6세,7세 세 반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나와 리코더,영어연극,난타,사물놀이,리듬악기등 각 반에서 각  네가지 아이템씩 발표했다. 큰아이 때도 유치원 학예회를 경험한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별 생각 없이 관람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마디로 좀 거북했다. ..... 변한 건 나다.

각 반 25명 정도의 아이들이 삼열 횡대로 길게 열을 지어 무대에 올라 발표를 한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턱을 한 껏 들어 핏대를 세워 자기 차례에 입을 활짝 벌려 소리를 낸다. 안쓰러웠다. 어두워지는 미소끝을 나 스스로도 느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무표정의 작은 사람들. 긴장해서였을까. 아이들에게 이 발표회는 어떤 의미를 줬을까? 성취감? 즐거웠을까?  

  

***12월 17일  

온화한 눈이 내린다. 기분 좋은 눈이다. 아침에 작은 아이 유치원을 데려다 주면서 걸어 나간 주차장 출구는 겨울의 나니아를 향한 입구였다. 상상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신비로운 감동을 선물 받은 기분 좋은,눈오는 오늘이다. 창밖을 자꾸 힐끔거린다. 눈이 얌전하고도 여전하게 내리고 있다. 안심한다. 

 

***12월23일 

자주 들러 요리정보도 얻고 공동 구매에도 심심치 않게 참여하는 블로그가 있다. 문성실님의 블로그인데,오늘 그녀가 좋은 실천을 한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힘든 아이들을 도와 주자는 취지의 모금인데, 모인 성금만큼 문성실님 개인적으로 그 만큼의 성금을 보태어 기부를 한다는 것이다. 맥시멈 천만원. 대단하다. 아무리 유명한 블로거라도 넉넉치 않은 가정주부일텐데 천만원 정도의 기부를 결심하다니. 그래서 더욱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비슷한 규모의 살림을 꾸리면서 기부를 실천한 경우라, 나눔이란 말이 어울리는,누군가의 몇 억보다 가치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주변에 박경철님, 박원순 변호사등 기부하는 이들을 보며,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대화는 커녕,댓글 한 번 달아본 적없는 그녀의 블로그,포스팅으로만 만난 그녀는 서글서글하고 인심 좋은 동네 친구처럼 항상 반갑다.

외국의 기부문화를 부러워하면서 나도 적게나마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많이 했었다. 하지만 모아진 기부금이 엉뚱한 쪽 배만 불리거나,흐지부지 녹아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불신으로 쓸데 없는 짓하지 말자 쪽으로 주저 앉아 있는 편이었다. 투명한 기부가 가능할 수 있는 경로가 생겨 나와같이 마음은 있지만 의심 많은 소심인들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뿌듯함을 ,그런 행복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의 시험이 끝났다. 귀국 후 두 번째 시험이었다. 첫 시험인 중간고사엔, 시험 발표 2주전부터 죽을똥 살똥 아이를 붙잡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시험공부에 올인했다. 물론 평소에도 주말마다 지난 일 주일간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중간점검은 했었다. 결과는 개판이었다. 충격이었다. 마치 내 시험 결과를 마주한 허탈함이었고 분노였다. 학년 평균에 가까운 성적. 결과를 듣는 순간 기운이 싹 빠져 나갔다. 귀국한 아이들이 사회과목같은 경우40점 정도 받는 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미국에선 시험 공부란 걸 한 적이 없었으나 아이는 학교 톱이었다. 아이는 그저 책읽기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책읽기에 한참 흥미를 느껴 역대 AR포인트 최고점을 얻어 학교에 일 년간 아이의 사진이 걸려있는 영애도 얻었다. 역대 최고점에 200점이나 넘는 경이로운 포인트였기에 아이는 물론이고 나도 덩달아 동양인으로서 큰 자긍심을 느꼈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학교 공부와 과외 활동으로 자신이 운영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란 없었다. 아이의 과외 활동이라야 태권도 한 시간. 본인의 거부로 중도 하차하여 8주동안만 다닌 영어학원 정도인데.  

한국은 아이 본인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 뭘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우선, 해 가야 할 일이 산더미였으니까. 그리고 준비물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난 매일 문구점에 다녀와야 했다. 

중간 고사 성적 발표후 전략을 바꿔,매일 학습 내용- 매일 복습 체제로 운영했다. 그래서 더욱 개인 시간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태권도 학원 다녀오고 학교 공부 복습하면 바로 취침 시간이다. 한국 어휘가 생소한 아이에겐 학교 수업 내용 반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복습이란 것이 아이에겐 새로 학습하는 것과 다름 없었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은 '크기'가 뭐야? 라고 묻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또, 내 대신, 전화 걸려온 핸드폰을 가져다 주길래 누구야?하고 물었더니 "발신자야"....할말없이 웃음만 나왔다.

어제 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결과는 아직. 아이의 어휘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한 지금, 결과에 별다른 기대는 없다. 아이에대한 실망도 없을 것이다. 다행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아이 본인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는 범위의 결과 정도... 이번 방학엔 아이가 원하는 형태로 시간을 쓰고,눈 구경 못하고 지나간 세 번의 겨울을 멋지게 만회할 수 있는 하얀 겨울이 되었으면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