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돌 난간 모서리에 한 번 앉아 보질 못하고 셔터만 눌러댄 이 어리석음.

다시 오고 싶단 마음에 앞서, 내려가는 중에도 곧장 되짚어 올라가고픈 아쉬움.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본 인문과 자연.그 조화로움.

 

부석사는 오래 전부터 맘에 품었던 곳이었다. 무량수전이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각 세 채의 기와 지붕이 산과 더불어 사찰을 안듯,호위하듯,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치에서 오는 구조적 아름다움에 마음이 간다. 자연과 하나같음에 감동적이다. 이황 선생이 다녀간 흔적을 읽으며 그 외 수많은 선인들도 이 돌계단을 올랐을까,이 길을 밟았을까 하는 감상에 젖는다. 큰아이에게 설명해주었지만 나와같은 감동은 없는듯 했다.

 

부석사 올라가는 길에 사과 파는 어르신들이 많다. 올라가는 길에 점찍어 두었던 홍옥 한 보따리가 있었는데 내려갈 때 사려고 가보니 누가 모두 거둬갔더라. 아쉽지만 다른 곳에서 한 보따리 사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더 사올걸 욕심이 났다. 소수서원 근처부터 고속도로 입구까지 곳곳에 사과 파는 곳이 많았는데 부석사에서 파는 사과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길 곳곳에 사과나무가 즐비한데 사과나무는 어른 키보다 조금 큰 체구에 빈틈없이 열매를 달고 섰다. 사과가 굉장히 무거운데 가지도 가늘고 키도 작은 사과 나무라니 의외였다. 생산과 소비가 철저히 단절된 데서 오는 생소함이다. 어른인 나조차도 이런 실정인데, 팩에 든 소고기 덩어리를 보면서 소를 떠올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최근 육식의 종말,무탄트 메세지,오래된 미래 등을 읽었더니 뜬금 없다할 생각이 ...

 

우리 가족은 큰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바로 여행을 떠난다. 우리집 아이들은 모두 혼자 공부하는데,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 가족은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다음 여행지를 물색 중이다. 큰아이는 해인사에 가고 싶다고 한다.

 

큰아이의 이번 성적이 급상승했다. 공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다름을 확실히 느꼈기에 결과의 변화를 예측은 했으나 성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할까 여겼다.그래서 결과에 너무 치우쳐 시험 후 학습동기를 잃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현재의 학습태도 상태에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의도적으로 줬다. 등수나 성적은 결과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그런데 다행히 결과도 좋았다. 성적보단 아이의 질적인 도약이 수반되었기에 뿌듯하고 든든하다. 주변 친구들이 거의 학원에 다니는데 큰아이는 방학 동안 나와 한 학기분량의 선행을 하고 학기 중엔 반복하는 시스템으로 밀고 나갔다. 사실 학원에 보내라고 성화 해대는 애들 아빠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결국 세 학기만에,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얻을 수 없는 혼자 공부하는 방법과 자신감의 밑천을 확보한 셈이다. 나도 이렇게 긍지가 생기는데 당사자는 어떠할까. 감사한일이다.

 

누군가는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사교육의 기회를 줘보라고 충고한다.

그 기회가,아이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는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까.

어떤 종류의 기회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의 판단은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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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십일 월의 아침인듯 그 날카로움에 위축되어 지난 주 초반엔 뛰지 못했다.

이제야 구월.이 제자리를 잡은 것 같다.

 

9.00 친정엄마와 작은 동생과 함께 서울에 갔었다.목적이 있었다기 보다 엄마와 딸들이 함께 시간을 나누고파 만들어진 드문 기회였다. 함께 걷고 같은 물건들을 만지고 품평하고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차를 탔다. 여섯 시간이나 함께 있었다.

 

9.00 최치원의 시를 한 수, 아이들에게 읽혔다.작은 아이는 몇 번 읽어 보더니 엄마 마음이 이상해져.한다.어? 마음이 가라앉고 조용해지는 느낌이야. 세상에나 내가 유도한 바를 한큐에 받다니.고마울따름.

 

9.17 요네하라 마리의 책 3권을 도서관에 구입신청했다. 그녀의 글이 맘에 든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종하는 극악한 미국과 그런 음모가 공공연히 가려지는, 내가 사는 허술한 세계.내가 모르고 지났던 과거의 사실보다 지금 진행중인 은폐가 당연 더욱 두렵다. 내 눈과 귀는 대체 그동안 어느 각도로만 열려 있었던가.부끄럽다.

 

9.25 정조 대왕께서 책내용을 초록하여 두었다가 한가한 때에 수시로 펼쳐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셨다는데,나도 그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핸드폰에 눈을 꽂고 거리를 걷는 이들 곁을 손바닥 두 개만한 수첩을 펴고 걷는다. 문화적 동질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을 보며 좋은 문장을 수첩에 붙잡아 둔다지만 손은 늘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간다. 헌데 길에서 보내는 시간,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시간,미용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은 수첩을 열어보기엔 안성맞춤한 자투리였다. 우연찮게도 그렇게 기습적으로 펼친 문장들이 현재 내가 고민하는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내가 나를 위해 남겨둔 문장이라 여기고 겸허히 받아들인다.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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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 .진중권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사탄이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탄의 존재다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를 추구하고,화폐가 노동의 구체성을 지워버리고,인간이 아니라 자본의 자가 증식을 위해 생산이 행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성이야말로 부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나는 환영,즉 유령이 아닌가

이 사회는 사정없이 균일화 시켜 기어이 맥빠진 평균으로 되돌려 놓는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했다.너를 불러 책을 편찬하고 싶어서 주자소의 벽을 새로 발랐다. 아직 덜 말라 정결하지 못하지만 이달 그믐께 쯤이면 들어와 경연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1800.6.12 정조가 정약용에게 보내 편지다.그러나 정약용은 정조를 생전에 만날 수 없었다.정조는 6.28일 사망했다.

 

당쟁싸움에 아끼는 인재를 멀리 떠나보낸후, 속히 불러들이고 싶은 군주의 안타까움.

아름다운 군신관계다.

보리 뿌리 맥근 맥근 /오동 열매 동실 동실

아침까치 조작 조작 /낮 송아지 오독 오독 등 주고 받으며 서로 마주보고 웃었을.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과 결단력이 있었기에 정조 전후 시기엔 인물들이 유독 많았나 보다.

정약용의 전방위적 학식과 능력도 새로운 사실이거니와 정조와 관련된 다감한 일화들이 내겐 더욱 흥미로웠다.정조는 인재들과 이런 아름다운 관계의 끈을 여럿 갖고 있었듯 싶다.

 

정약용의 아버지는 영조와 대면하여 영조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인연이 있었고,정약용의 어머니는 윤선도의 후손이었으며, 이가환은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천재성을 지닌 벗이었다. 정조 사망후 유배지에 있던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여러 차례 학문을 권고하고 과제도 내주는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지시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당대의 임금과 벗과 다름 없이 지내던 위대한 정약용도 자신의 자식 교육에있어선 나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일까.위안도 되고,내 욕심도 거둬들여 보는 기회도 되었다.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이덕일

숙중34년 1871년에 전국 확대 실시된 대동법은 임란때 이미 유성룡이 작미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실행한 제도이며,양반도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된 호포법도 대원군때가 아니라 유성룡이 이미 임란때 시행한 속오법이다. 가난한 백성들에게만 치우진 세금과 병역의 의무를 지배계급과 공정하게 나누고자 했으나 나라는 망해도 사대부들의 계급적 특권은 침해될 수 없다는 태도 앞에 유성룡의 실각과 동시에 개혁입법은 무효화된다. 그 선두에 임금 선조가 있었다. 임금이 철저히 지배계급의 논리로 백성들을 찍어 눌렀으며 나라의 위기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위한 피신 궁리만으로 전전긍긍하며 전쟁 대응방법을 논의하는 중에도 다음 피신지를 닥달하는 동문서답만 반복한다.이렇게까지 비열한 군주가 있었던가.

백성의 조롱을 받는 임금.백성의 추앙을 받는 영웅.치졸한 임금은 영웅들을 시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임금이 아닌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기에 회한 속에서도 싸울 수 있었던 이순신은 그나마 자신을 지지해줬던 유성룡의 실각 연통을 받은 당일 임금의 손에 분명 죽을 것을 예감하고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노량해전에서 북채을 들고 담담히 적의 활을 가슴으로 받았다.

유성룡은 거시적 안목과 해박한 미시적 시각,행정에 박식한 관료이자 군사에 통달한 병법가이고 경제에 해박한 학자였다. 이런 유성룡을 흠집내기 위해 노론계열 역사학자들은 있지도 않았던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창작하였고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이가 유성룡이었다고 기록한다.현대 학생들은 이를 자랑스런 역사적 사실로 교육받고 있다. 역사가 진정 사실의 기록이기는 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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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만으론 버티기 힘들었던 작년 여름방학

금년은 장마도 길었기에 에어컨 도움 적게 받고 그럭저럭 여름 끝자락

 

최근 한 달,그간 달렸던 8k넘어 12k정도 뛰고 있다

월요일엔 힘이 덜든다 

공복유지 12시간정도 밖에 안되서인지 덥기는 해도 힘은 안드는가 보다

그 외의 날엔 정말 기운이 달린다

 

거친 숨,

등골 따라 흐르며 땀이 만드는 마찰.그 감각

턱끝에서 떨어지는 땀의 중력을 난 좋아한다

그 느낌

그 찬라

땀방울만큼 무거운 것 세상에 있을까

무게에서 놓여난 나만큼 가벼운 것이 세상에 있을까.싶다

 

매일 성취감을 맛보며,긍지를 느끼는 방법

12km

단련되고 있는 건 '정신'임을 깨닫는다

고마운 일이다

허락된 아침 시간

 

이지성님 덕에 인문고전에대한 열정이 생겼다

도서관이 확 넓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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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이 책에 나오는 글귀를 연속적으로 마주쳤다.

큰 아이의 학교 교지?메거진?,

보험사에서 보내주는 손바닥만한 책자,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에서.

신기한 인연이다.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절대 안되네.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 수는 없지.

담배를 피우는데 도중에 기도를 해도 되나요?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언제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프레임의 전환으로 유명세를 탄 예시였다.

 

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를 가져온다.

사람들이 만족을 느끼는 최상의 상태는 비교프레임이 적용되지 않은 때이다.

남들과의 비교는 자신의 삶을 고단한 전시적 인생으로 바꿔버린다.

남들과의 횡적인 비교보다는 과거 자신과의 비교 혹은 미래의 자신과의 종적인 비교가

지혜로운 비교이다.

과거의 자신보다 현재의 자신이 얼마나 향상되어 가고 있는지,

자신이 꿈꾸고 있는 미래의 모습에 얼마나 접근해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상의 비교가 남들과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자연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재능과 개성을 발휘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기 보다

남과 비교해서 타인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교의 대상이 남이 아니라 내 안의 재능입니다.

어제보다 나는 잘하고 있는 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점검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됩니다.

 

최고는 최악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최고가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최고만이 최고를 넘어 유일함으로 발전합니다.

BEST ONE은 남과 비교해서 이루어지는 최고지만 

ONLY ONE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 유니크를 추구하는 최고입니다.

 

 

 

같은 의미들이 일 주일 짧은 시기에 내 앞에 겹치기 출연을 했다.

2013을 시작하는 시점에 공교롭게 비슷한 메세지의 강권이라...

경고!?

의미중심의 상위 수준으로 일상을 프레임하고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간과 말고

그래서 감사하며 살아 보리라.

당위적 기대를 버리자.그러려니 좀 억울하다면 소망적 기대정도만 품고 너그러이 살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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