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A사에서 빌린 돈을 B사에서 빌려 막고,또 C사 D사. 결국엔 범죄로까지 연결된다. 원금보다 수십배 늘어난 채무액의 무게에 결국은 겁먹고 야반도주하게 만들고,그래도 빚은 악질적으로 들러붙어 가정을 산산히 찢어 놓고,개인파산에까지 이르게 하는 신용카드의 결말. 단순히,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라 말하는 파산자들에게 신용카드의 이면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었다. 결국 쫓기다못해 죽을지경이 되어 자신보다 더 약한 이를 잡아 먹게 만드는 거대한 괴물. 생존의 위협을 느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괴물로 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몸무림에 도덕성 운운할 수 있는가. 그만큼 우리 사회는 떳떳한가. 덫은 숨겨 놓고 먹이만 화려하게 채색한 신용카드의 이중성. 오늘도 내가 수차례 지갑에서 꺼냈던 신용카드의 그림자다.  

자살하기 전에,사람을 죽이기 전에,도망가기 전에 파산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P340

오히려 부지런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도망가다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요.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성실한 사람일수록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가장 나쁜 형태로 끝을 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으로 결박되어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도록 가라 앉는 겁니다.p136

단순 구조로 수평선처럼 반전이나 재구성없이 일직선상에서 졸졸 흘러가는 싱거운 라인을 유지한다. 허나 후반까지 긴장이 유지되는 흡입력이 있으니 이런 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사건의 해결까지 차근 차근 안내하는 친절한 메뉴얼의 느낌을 안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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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9-1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은 비열하고 살짝 구려주시는것도 인생사에서 결정적순간에는 도움이 되더라구요~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주는!

AppleGreen 2010-09-12 08:06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악의적인 파산만 아니라면,재기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제도라는 걸 알았어요.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문헌들 속 짧막한 몇 문장들로 부터 시작된 작가의 상상력. 그 방향은 주로 성을 향하고 있었다.  

처녀보다 곱고 젊은 화랑들이 산천에서 수련하고 동숙하매 그사이에 정분이 깃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천하의 이치라,뉘라서 흉보고 욕하리까....하지만 개중에는 나이가 들아사더 음양의 이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어린 사내의 미태에만 혹하는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게도 영랑의 예가 그러하다.p93 

현재 우린 화랑하면 용맹으로 기억하건만,화랑의 첫 덕목은 무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꼽고,화랑간의 동숙을 각각의 배우자들조차 묵인하는 사회로 그려진다.

하늘이 신의 나라를 특별히 아끼신다는 뜻으로,그리고 그 뜻을 받드는 성스러운 골품의 고귀한 징표로서,신라의 황실에는 거인들이 많았다. p17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았던 것으로 그려지는 춘추. 그가 왕위에 올라 선대 왕들처럼 거인이 되고자 저질렀던 참담함.

외숙 유신공의 조력으로 천신만고 끝에 춘추공은 황제가 되었다. 신의 풍모라 일컬을 만큼 아름답고 용맹한 황제였다. 그러나 그는 수백 년 물려온 황제의 왕관과 용포를 물려받을 수 없었다. 왕관은 어깨에 내려 앉았고 용포은 배냇저고리처럼 몸을 휘감았다. 그의 몸에 맞도록 다시 만들어진 왕관과 용포은 그 자체로 굴욕이었다. p146

왕과 태후가 여러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성대한 교합제를 치루는데,

이날 천제에서 지증제와 연후황후는 그들의 몸을 받친 뱀모양 제단을 와지끈 무너뜨리고도 교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먼지 오르는 잔해 속에서도 한 식경이나 합환을 계속했으니 그들의 땀과 애액이 제단 아래로까지 흘러내려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셨고 그 벽력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합환례가 끝나면 황제와 황후는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특별한 수라상을 받으시었는데 각각 검은 돼지와 흰 돼지를 한 마리씩 드시었다. p20  

허무.맹랑.하기도 하고,그려진 창조의 방향이 그저 재미있다. 내 기억 속엔 나의 아름다운 정원,달의 제단등 친근하고 푸근하게 감기는 문장들로 남아 있던 심윤경 작가,그로부터 받은 이번 글은 그저 쉽게 술술 읽혔던, 다소 엽기적이기도 한 잡지같다. 그의 말대로 서라벌판 썬데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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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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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만하게 접근했다가 다소 움찔했던 초반부.  

무겁고 두껍게 제시되는 근거들은 과연 상대적으로 얄팍했던 결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베이스였던가 의구심도 잠시 들고. 하여튼 나같이 설렁설렁 글을 읽는 독자에겐 매끄럽게 흡수할 수 없었던 독서였다. 아마,독서의 밀도가 높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명성이 주는 기대치가 없었다면 좀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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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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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수 년 전에 읽었었는데 그때 내게 남은 것이라곤 무척 난해하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 다시 읽은 이 책은 난해의 기억을 한 수 깔고 들어 간 덕분에 진정 새로웠다.  

2,3년의 시간이 내 내공에 현격한 수준 변화를 가져왔을 확률은 0%임을 감안한다면 동일한 책에 대한 평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순전히 책을 맞아 들이는 내 관점의 차이인듯 하다. 처음엔 사랑에 관한 소설이란 초점으로 책을 대했기에 스토리의 그 빈약함에 대단히 실망했었다. 또한 모든 사랑의 마디마디를 인식론적으로 정리하려고 덤벼들면서 제시되는 수많은 문헌 자료들이 그의 주장에 신뢰를 주기 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방해하는 돌부리 정도로 여겨져 불편했다.  

다시 만난 이 책은 이미 사랑을 통과한 경험 뒤에서도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비어있던 깡통이었는지 지나치게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내가 내 사랑을 하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그는 그 나름의 시점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내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던 심리들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그것이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오는 환희를 알고 있었다."(p23) 라며 새로운 사랑을 대면할게 되는 순간의 감성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녀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일처럼 계속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p28) 고 사랑의 시작을 인식한다.  

"너 또 길 잃은 고아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 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 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꼈다."(p160)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을 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 들이기 쉽다. 그러나 클로이와 내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해서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을 찾아 냄으로써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p203)  

사전지식이라는 것,사고의 관점이라는 것이 눈을 가리기도 하고 확대경을 주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두 번 읽게 되면서,난 두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볼 수 있고,길어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완벽하게 적용될 깨달음이다. 특히 지금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을 아이들의 잠재력면에서는.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당연한 시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 아이의 일상을 샅샅이 훑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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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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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타협의 여지 없이 자신의 남은 생을 넘겨줄 만큼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것. 그건 부끄러움을 넘는 공포 자체였을까. 그런 공포를 극복하고 스스로 가두었던 자신의 세계에서 그녀는 당당히 걸어나왔건만.      

한나의 손 끝에서 빠져나가는 상대의 손 끝은 한나가 지금까지 버틴 20여년의 수감생활을 아무 망설임 없이 마무리짓게 했다. 대상 없이 자생된 모멸감은 그녀를 차라리 쉬이 자유롭게 했는가. 그에게서 받았다고 느낀 냉소는 그녀를 주저앉힐만 했다. 그녀에게 공감한다. 너무나도 흠뻑.

서정적인 속도로 30여년 긴 순간을 낭비없는 그림으로 연결했으며 압축된 감정을 대신한 행동들은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케이트 윈슬렛 최고의 영화라는 평에 동감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랄프 파인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선 비중이 적지만 오래간만에 그를 만났다. 최근 알았는데 해리포터의 볼트모트가 랄프 파인즈 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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