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급적이면 남의 글을 퍼나르기 보다 직접 생산해내려고 하지만 이런 글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할 것 같다. 이 글은 천정환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다. 그의 글은 현재의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87세대의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버무려져 있다. 이러한 리얼리티야 말로 가장 어려운 고백이자 진지한 성찰에 가깝다.

6.10을 넘어 새 6.10으로 가자 

- 6월항쟁세대가 촛불집회에 부쳐[프레시안 6월 3일자] 

뭐가 달라지나요?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대학원생이 문득 나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실질적으로 바꿔낼 수 있나요? 뭐가 달라지나요?"
  
  '88만원 세대'인 24살짜리의 냉철하고도 절망적인 질문은, 우리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담은 것이었다.
  
  과연 그러하다. 장관 고시가 철회되면 혹이라도 전면재협상이 선언되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저 촛불이 꺼지고 다시 사람들은 일상으로 뿔뿔이 돌아갈 것 아닌가? 저 뜨거운 거리의 10대들과 20대들도 차갑고 끔찍한 경쟁의 나락으로 돌아갈 게 아닐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정치적 불복종과 연대의 첫경험을 아련한 기억으로만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촛불은 무엇을 바꾸고 남길까? 이미 너무 여러가지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12.18(대선)과 4.9(총선), 철옹의 아성을 구축한 줄 알았던 보수우익을 청소년들이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너나 쳐 먹어!". 단 3개월만에 한국의 보수우익은 자신의 온알몸을 국민 앞에 폭로당했다. 대중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잘 살겠다'는 욕망이 제도정치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점도 재차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야말로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한 젊은세대를 우리는 얻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명박정부는 이제 국민의 눈치를 좀 더 보는 스타일로 바뀔지 모른다. 대운하도 진짜 중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체제를 떠받치는 불안의 뿌리인 비정규직과 '88만 원' 문제나 이 끔찍한 교육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가고 때문에 서민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결국 양극화는 중단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저항은 새로 출범한 정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이 물려받은, 이전 '개혁정권'이 길고도 오래 잘못 든 길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10년'이 쌓아온 모순을 고쳐내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
  

▲ 촛불집회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봐야할 때다. ⓒ프레시안


  촛불과 실질적 민주주의
  
  질문을 받고, 6월항쟁 세대인 나는 20년 전의 그날들을 떠올렸다. 6월항쟁이 만든 그야말로 실질적인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그때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7-8월 노동자대투쟁과 함께 왔다. 그 대투쟁을 통해서, 노예처럼 감시받고 일상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일하던 노동자도 '인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80년대의 고도성장의 과실도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에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민주노조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연대의 틀이 생겨났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독재타도-호헌철폐'라는 정치적 항쟁을 통해 그렇게 느리게 왔었다.
  
  그리고 목졸림을 당해 지난 20년간 서서히 망가졌다. 노조를 공격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노무현정권은 이명박정권은 정확히 동문선배격이다.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노무현정권은 교육과 부동산문제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오늘날 '88만 원 인간'도 인간이 아니길 강요받는다. 그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노동하고 해고된다. 그래서 그들은 동료인간에 대한 연대의식과 관심도 차단당한다. 초등학생부터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는다. 오로지 경쟁과 약육강식이 학교와 일터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10대와 20대는 사실 기적이다.
  
  예쁜 촛불에 온 눈이 팔려 있는 동안에도, 사회는 '양극'으로 빨리빨리 움직이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공 농성 중이고, 이랜드와 코스콤 노동자도 여전히 거리에 내몰려 있다. '10대의 반란'이 거대한 행진을 촉발했지만, 다시 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든 감옥 속에 구금되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포기될지 몰라도, 촛불과 비정규직 문제는 전혀 무관해보인다.
  
  과연 오늘의 촛불이 우리들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를 담고 있을까? 촛불이 내 식탁과 내 '건강권'을 지키자는 것만이면,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쇠고기 문제에 아무리 많은 새 패러다임이 담겨 있어도 그렇다.
  
  87년 체제의 '아래로부터의' 종언
  
  그러나, 인터넷과 거리에서는 연대가 꽃을 피운다. 또 다행스럽게도(?),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의 구호들이 외쳐진다. 뜬금없이 헌법 제1조까지 외쳐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보수우익은 시위의 배후를 운운하고, 비현실적 정치구호에 대해 지식인들은 비웃음을 보낸다. 하지만, 이 정치구호들이말로 절망을 부르는 경제적 모순과 모순에 가득 찬 정치체제를 한꺼번에 꿰뚫고 있다.
  
  국민의 직접행동은 쓰레기 같은 제도정치와 민중의 열망 사이의 참기 힘든 간극을 폭로하며 또한 메워주고 있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거리의 10대와 20대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정치가 '최종 심급'임을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퇴진,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비현실적'ㆍ'초법적'구호들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 그것은 '현실주의'를 넘어서버린 진리의 목소리이다.
  
  소위 지식인들과 진보진영은 87년체제의 종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정권이 바뀌자 다시 개헌론도 솔솔 피어오른다. 그런데 오늘의 촛불은 '위로부터' 논의되어온 '87년체제의 종언'에 관한 논의가 아무 의미 없음을 보여준다.
  
  민중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반영할 정치체제가 아니면 논의는 헛짓이다. 촛불은 위로부터의 체제 재편에 대한 진정한 안티테제이며, 우리가 보듬어 꽃피워야 할 진테제이다. 어찌 18대 국회가, 오합지졸로 패퇴한 야당이 이 진테제를 받아안을 수 있을까?
  
  이미 몸으로 87년식 운동과 통치가 불가능함을 젊은 촛불들은 너무 많이 보여줬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이미 거리에 있다. 2008년의 6월 10일, 우리는 일단 다같이 촛불을 들고 길이 막히는 데까지, 아니 그 너머서까지 끝없이 행진해야 한다. 거기서 대다수 인간을 위한 새로운 체제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혹여 우리는 이번에 쇠고기 문제 이외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 혹 집에 뿔뿔이 돌아가더라도, 마음속의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 5년간 계속 촛불 거리에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군정종식도 혁명도 아닌, 거대한 기만이었던 87년의 6.29가 그래도 헌법과 노동을 바꿔놓았듯이, 이 촛불이 거대한 변화의 초석이기를 바란다.

                                                                                           천정환/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 아직 촛불집회의 등고점을 돌파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파국과 전회가 여전히 모종의 기획으로 남아 있는 이때 이러한 걱정과 당부는 귀에 성기게 들리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천정환의 염려 뒤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희망에 대한 기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지 않다. 그는 촛불집회를 하나의 역사적 결단의 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촛불집회는 거스를 수 없는 올바른 역사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그 역사에 포섭되지 않는 잉여들을 고려할 것을 요구해도 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충분히 단단하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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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0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가시장미 2008-06-0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단단하고 건강하다!

나비80 2008-06-0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가시장미 님/ 광장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을 보면 알지요. 지금 시민들에게는 진지함과 즐거움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권력은 이러한 시민들을 험상궂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네요. 이러다 시민들이 공병에 비싼 휘발유 담아오는 날이 올까봐 염려됩니다.

드팀전 2008-06-0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걱정하고 바라던 글이 이제 나왔군요.이번 주 한겨레21에서도 한홍구 교수는 대충 뭔가 말하는 듯 끝을 내면서도 은근히 '대의제가 멈추어 선 자리' 그리고 그 이후를 넌지시 던졌습니다. 두가지가 남아있습니다. 시위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의 끝은 어떤 그림을 남기게 될까? 이 순간을 레닌같으면 어떤 중대한 지점으로 파악할 수 있었지도 모릅니다.한홍구도 위화도 회군 이래 최대의 회군이었다고 말한 '서울의 봄' 서울역 광장 회군이 그려지는군요.(전 그걸 직접 볼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촛불이 최대치가 되었을때 최대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계속 최대치에서 활활 타오르지는 못하기때문이지요.물론 이명박이 도와준다면야..더 쉽게 타겠으나.

나비80 2008-06-0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촛불 시위 모습에서 87년의 그 자리와 그 장소를 자꾸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기시감은 환상통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낸 진짜 진통입니다. 거대한 기만으로 마무리된 혁명의 역사들을 되돌아 본 뒤 2008년의 촛불 집회의 실질적 결과물을 가늠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정권이 회춘(?)을 시켜줬으니 이번만큼은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겠죠. 파국의 결렬지점들을 결단으로 묶어내는 연대의 힘이 중요합니다. 그 연대가 인터넷에서 거리로 이어졌으니 이제 가정과 학교, 직장으로 틈입되어가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Koni 2008-06-0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아픈 질문입니다. 답을 생각하기 괴로울 정도로요.

나비80 2008-06-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촛불 집회는 발랄함과 자유로움이 넘칩니다. 물론 중심과 지휘와 통제가 없어 시위가 산발적으로 흐뜨러지며 규모에 비해 집중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맞습니다. 또 파토스만 넘쳐나는 연설의 현장. 진지한 성찰과 대안이 부재하는 돌발적 시위대의 행동 등. 걱정되는 부분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위 문화가 조장하는 더 커다란 이면을 바라봐야 겠지요. 또 '물대포'와 '강제진압' 이후 야코가 죽은 전경을 포함하여 예비군, 자원봉사자, 영세 좌파진영, 대학생 대오,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을 거대한 휴머니즘으로 이해하는 방식도 좀 더 면밀한 해석을 요구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민들은 스스로 시위를 즐기고있고 새로운 문화를 생산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정치학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와같이 아프고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움직임을 통해 마련되어야겠죠. 누가 만들고 적용하면 그것은 이미 가짜가 되어 버리니까요. 어떤 계몽이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시민은 항상 열심히 달려도 저 뒤쪽에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내가 사는 동작구 노량진에서 학교가 있는 종로구 명륜동까지 가려면 늘 시청과 종로를 지나게 마련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학교를 좀 오래 많이 다니게 되어 그 길을 벌써 십년 동안이나 지나 다닌다. 우여곡절 끝에 청계천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지켜보았고, 시청 앞이 녹색 잔디밭으로 변하는 과정도 지나는 길에 볼 수 있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과 광화문에 모인 몇 백만의 붉은 물결과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모여든 수많은 촛불과 함성, 효선이와 미순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2006년의 WBC 야구 대회와 독일 월드컵의 응원까지 매우 생생하게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민들의 거대한 에너지를 파시즘적 광풍으로 보는 지식인의 편협한 시선에 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늘 자신은 지식인이며 대중은 미련하고 조작된 이데올로기에 휩쓸리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만유파시즘이 국가 권력의 본질을 얼마나 적실하게 설명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과 유리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 채 내놓는 담론의 허약함은 대중의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도 부족한 것들뿐이다. 
  2008년의 5월은 또 다시 내 몸에 새로운 역사를 새겨 넣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청계천과 여의도에 모인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은 매우 발랄하고 즐거워 보였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유쾌한 열정과 운동으로 순치하는 법을 자생적으로 습득한 21세기형 시민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은 어떠한 지식인도 예상하지 못하고 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들은 암담한 제도 보수 권력에 포획된 대한민국에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운동가들인 셈이다.  
  혁명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응축된 국민들의 분노의 크기가 국가 권력의 핵심을 직접 타격하는 목소리로 변모하는 과정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이제 ‘2mb’, ‘쥐박이’, ‘미친소’ 등의 은유는 ‘이명박 아웃’과 ‘연행자를 석방하라’와 같은 급진적인 정치 구호가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평화적인 촛불 시위가 가두 투쟁으로 변화하는 현재의 모습에 우려를 표명하는 ‘점잖은 진보 논객’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은 늘 ‘적’의 작전에 긴밀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을 자신의 ‘카운터 파트너’로 인정해주지 않고 ‘룰’을 지키지 않는 현재의 ‘적’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매우 유연하고 부드러운 전회’ 따위는 현실에 없다. ‘적’들은 늘 그러한 취약함을 공략해 들어온다. 온갖 개혁을 가장한 기만적인 슬로건들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주인 없는 청와대는 쇠고기 장관 고시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부터 경찰 병력으로 안전하게 방어되어 있었다. 해가 지기 전부터 모여든 시민들을 가장 먼저 맞은 이들도 바로 도심 한복판을 장악한 수십개 중대 규모의 경찰들이었다.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은 이제 경찰의 강제 연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가 자신이 주동자라 주장하며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주가 고비가 될 듯 하다. 4만을 넘어 5만을 육박한 시위대의 규모가 주말에 어떤 정점을 기록할 지 주목된다. 규모가 중요하다. 규모의 압력은 늘 정권에 치명타를 안겨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허구적인 것만 같은 ‘부드럽고 유연한 변화’도 바로 시민의 규모가 폭발할 때만 유일하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혁명이 오고 있다.

 



*
사진출처  2008년 5월 30일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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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5-3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기껏해야 3만분의 1이었지만 - 서울에서만 - 저는 10만분의 1이 되고 싶습니다. 100만분의 1이 되고 싶습니다. 그날을 위해.

나비80 2008-05-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번 댓글에는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지네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사태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그로인한 ‘청소년들의 촛불 시위’, 인터넷 공간에서의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까지. 근대국가 시스템에서도 여전히 최하위 심급에 위치하고 있던 도축장의 살풍경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국가의 훈육과 규율의 직접 대상인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치 운동의 척후가 되어 가장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맥락을 이끌어내게 했다는 사실은 숨겨져 있었던 근대국가의 중요한 비밀들을 일거에 폭로해준다. 
  현재 다중(혹은 대중)들은 종잡을 수 없는 선택과 행위의 정치운동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물론 지금 다중의 대표격으로 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현재 화가 많이 난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다. mb의 우생학 교육정책(영어몰입식교육, 0교시부활, 우열반구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청소년들이 그간 축적된 에너지(인터넷담론형성, 논술교육)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화를 직접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 싸구려 ‘급식’에 가장 먼저 동원될 것이라는 자체적 판단은 자신들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 힘들의 파급은 이제 광화문과 청계천에 모인 머릿수로만 가늠하는 방식을 넘어 중심 권력으로 하여금 어떤 실토를 하게끔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2008년 5월 7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한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 시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것이다.”라는 구태의연한 것 같지만 매우 상징적인 담화를 발표한다. 그간 망각하고 있었던 국가의 사명을 깨달은 것이다. 이 말은 그 전날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가 “광우병이 발생했을 경우 쇠고기 수입을 전면 재협상할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과 겹쳐 우리의 처지를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되어준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의 발언은 근대국가의 숨겨져 있던 ‘생명정치’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수사는 일단 ‘광우병’이라는 살해당할 위험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상례적 위험 상태를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근대 국가 통치의 규준이 그 자신이 취임 당시부터 표방한 ‘경제’가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mb가 말한 ‘경제’라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총체적 삶의 양상과 관계를 나타내는 고대의  ‘오에코노미’가 아니라 물적 교환만을 의미하는 ‘이코노미’에 가깝다.-<푸코의 ‘통치성’을 참고할 것> 다중들에게 학습된 욕망을 불러일으켜 자신들의 가장된 욕망을 역으로 성취하는 천박한 수단으로서의 ‘경제’말이다.)  
  근대 주권 국가는 사실 법률로써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지만 실상은 국민을 ‘죽게 만들고 살도록 내버려 두는’ 권한을 휘두르는 리바이어던인 셈이다. ‘죽게 내버려두고 살게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살해당할 위험이라는 예외 상태를 상례화시켜 지배와 통치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의 국가 시스템. ‘나는 보호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국가의 언명이 실은 국민 모두가 벌거벗은 삶, 즉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이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다) 
  근대국가의 법(인권선언 이후)으로 보호되는 국민의 권리라는 게 사실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범죄로서의 살해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국가가 법으로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쇠고기 파동’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이전까지 숨겨져 왔던 근대국가의 주권권력의 비밀들, 즉 국민들이 모조리 살해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가시화 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의미가 있다. 순차적으로 국가가 관장하던 건강보험을 민영화시키는 작업도 생명정치의 양상을 '자연상태'로 몰고 가려는 심사로 이해할 수 있겠다. 관리와 규율이라는 탈을 쓰고 저질렀던 국가의 폭력을 이제 과감하게 늑대의 폭력으로 노출하려한다. 지금부터 국민들은 국가의 생명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게 아니라 원래 그러했던 상태를 가시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들이 비어져 나와 표면화된 것이다.   
  이때 고병원성 AI의 영향으로 살처분 당하는 가금류의 처지는 두려운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감염된 즉 발병한 생명을 모조리 죽이는 국가의 강력한 통치력과 인간 광우병 환자들의 미래를 연관시켜 떠올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법적 근거와 의사와 과학자, 기술관료의 판단에 의해 살해되는 생명들의 처지는 현재 광우병 논란의 중심에서 의사와 과학자와 기술관료의 언설들에 의지하는 국민들의 모습과 지나치게 닮아있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오래전부터 우리들이 살고 죽을 운명을 관리하고 있었다. 결국 이 같은 모든 예외상태들이 점차 상례화되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벌거벗은 삶들의 모습들을 다중들은 도축장의 살풍경에서 발견한 게 아닐까.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명박 정부를 비꼬는 청소년들과 네티즌의 언설 양상이 여러가지 면에서 징후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mb를 표현하는 말중 가장 대표적인 '2MB'는 사이버세대의 용적 분류방식에 따라 집권권력의 정치력을 폄훼하는 용어로 쓰이는 듯 싶다. 그리고 '쥐박이'라는 말은 생명정치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반인반수의 트랜스 괴물과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땅박이'는 가장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흥미로운데 국가를 영토로 등재하려는 제국주의적 근대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권 권력을 풍자하는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위험요소를 실체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국면들이 우리는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잠재적’이라는 말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 뿐만 아니라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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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5-0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내어 호모사케르를 보관함에 넣긴 했지만, 읽고 소화할 능력이 될지 스스로 의심스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비80 2008-05-0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모사케르> 1장과 2장을 슬기롭게(?) 넘기시면 3장은 그럭저럭 볼 만합니다. 저도 겨우겨우 읽었지만 아감벤의 사유와 통찰력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전호인 2008-05-1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철학적이어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저로서는 난해하긴 하지만 2mb정권이 "골 때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그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국민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바닷물을 다 먹여보게 한 후 짠물여부를 판단하겠다는 2mb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앞날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서재방문하여 좋은 의견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비80 2008-05-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히려 전호인 님의 서재글을 진지하고 재미있게 읽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골 때리는 세상"이라는 명석한 의견은 절대 공감하는 바입니다. ^^
 

2000년대들어 소설은 분화를 더욱 가속화하며 각개의 영토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무지비한 선고와 화려한 영상매체와의 경합 속에 독자들의 이탈이 가속화 되어 문학의 참담한 실패를 성급하게 예단한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한국 소설은 국가와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를 구성하기도 하며 혹은 역사를 등에 업고 현실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내리기도 하는 등 개인과 집단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간을 계속해서 창안해 나가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헐벗은 인간들이 대응이 다채롭고 풍성하다. 때로운 무중력 공간을 부유하는 방식으로, 아니면 극단의 예외상태를 현실과 유비하며, 어느시대보다도 더욱 날선 감각으로 한국의 소설들은 세상과 맞서고 있다.   

1. 김훈 <칼의 노래> <남한산성> <강산무진>

2. 김연수 <꾿빠이 이상>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3. 박민규 <마지막 팬클럽> <핑퐁>

4. 전성태 <매향> <국경을 넘는 일>

5. 배수아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6. 김애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7. 김중혁 <펭귄뉴스>

8. 이기호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최순덕 성령충만기>

9. 정미경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10.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11. 천운영 <바늘>

12. 권지예 <폭소> <꽃게무덤>

13.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14. 김종광 <경찰서여 안녕> <낙서문학사>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15. 한강 <채식주의자>

16. 황석영 <바리데기> <심청 연꽃의 길> 

17. 김영하 <빛의 제국> <퀴즈쇼>

18. 신경숙 <부석사> <리진>

19. 윤대녕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20.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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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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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소장본 - 전2권- 칼의 노래 + 칼의 노래 자료집 : 김훈을 읽다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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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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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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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대문자 역사에 가려져 있던 개인들의 내밀한 욕망이 꿈틀거리며 90년대 소설들은 자리를 잡아갔다. 때로는 치열한 성찰을 통해 기억의 문제를 물고 늘어지기도 했으며 바다 건너 불어온 포스트모더니즘의 풍문에 몸을 맡긴채 낯선 감각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몰두하기도 했다. 대중독자들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포착한 미문의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며 한국 문학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전 시대와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치열한 역사적 고민으로 일관하는 작가도 존재했으며 상처와 욕망의 과장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1. 김소진 <자전거 도둑> <장석조네 사람들> 

2.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외딴방> <깊은 슬픔>

3. 윤대녕 <은어낚시 통신> <천지간> <상춘곡>

4. 공선옥 <피어라 수선화>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5.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 <새의 선물>

6. 공지영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 김영하 <호출>

8. 전경린 <바닷가 마지막 집>

9. 김인숙 <먼길> <우연>

10. 하일지 <경마장 가는길>

11. 장정일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거짓말>

12. 이인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13. 김훈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14.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홀림>

15. 마르시아스 심(심상대) <묵호를 아는가>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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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전집 - 전6권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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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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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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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말을 찾아서 묵호를 아는가 상춘곡
구효서.이순원.윤대녕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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