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동작구 노량진에서 학교가 있는 종로구 명륜동까지 가려면 늘 시청과 종로를 지나게 마련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학교를 좀 오래 많이 다니게 되어 그 길을 벌써 십년 동안이나 지나 다닌다. 우여곡절 끝에 청계천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지켜보았고, 시청 앞이 녹색 잔디밭으로 변하는 과정도 지나는 길에 볼 수 있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과 광화문에 모인 몇 백만의 붉은 물결과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모여든 수많은 촛불과 함성, 효선이와 미순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2006년의 WBC 야구 대회와 독일 월드컵의 응원까지 매우 생생하게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민들의 거대한 에너지를 파시즘적 광풍으로 보는 지식인의 편협한 시선에 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늘 자신은 지식인이며 대중은 미련하고 조작된 이데올로기에 휩쓸리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만유파시즘이 국가 권력의 본질을 얼마나 적실하게 설명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과 유리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 채 내놓는 담론의 허약함은 대중의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도 부족한 것들뿐이다.
2008년의 5월은 또 다시 내 몸에 새로운 역사를 새겨 넣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청계천과 여의도에 모인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은 매우 발랄하고 즐거워 보였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유쾌한 열정과 운동으로 순치하는 법을 자생적으로 습득한 21세기형 시민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은 어떠한 지식인도 예상하지 못하고 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들은 암담한 제도 보수 권력에 포획된 대한민국에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운동가들인 셈이다.
혁명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응축된 국민들의 분노의 크기가 국가 권력의 핵심을 직접 타격하는 목소리로 변모하는 과정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이제 ‘2mb’, ‘쥐박이’, ‘미친소’ 등의 은유는 ‘이명박 아웃’과 ‘연행자를 석방하라’와 같은 급진적인 정치 구호가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평화적인 촛불 시위가 가두 투쟁으로 변화하는 현재의 모습에 우려를 표명하는 ‘점잖은 진보 논객’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은 늘 ‘적’의 작전에 긴밀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을 자신의 ‘카운터 파트너’로 인정해주지 않고 ‘룰’을 지키지 않는 현재의 ‘적’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매우 유연하고 부드러운 전회’ 따위는 현실에 없다. ‘적’들은 늘 그러한 취약함을 공략해 들어온다. 온갖 개혁을 가장한 기만적인 슬로건들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주인 없는 청와대는 쇠고기 장관 고시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부터 경찰 병력으로 안전하게 방어되어 있었다. 해가 지기 전부터 모여든 시민들을 가장 먼저 맞은 이들도 바로 도심 한복판을 장악한 수십개 중대 규모의 경찰들이었다.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은 이제 경찰의 강제 연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가 자신이 주동자라 주장하며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주가 고비가 될 듯 하다. 4만을 넘어 5만을 육박한 시위대의 규모가 주말에 어떤 정점을 기록할 지 주목된다. 규모가 중요하다. 규모의 압력은 늘 정권에 치명타를 안겨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허구적인 것만 같은 ‘부드럽고 유연한 변화’도 바로 시민의 규모가 폭발할 때만 유일하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혁명이 오고 있다.

* 사진출처 2008년 5월 30일자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