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사태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그로인한 ‘청소년들의 촛불 시위’, 인터넷 공간에서의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까지. 근대국가 시스템에서도 여전히 최하위 심급에 위치하고 있던 도축장의 살풍경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국가의 훈육과 규율의 직접 대상인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치 운동의 척후가 되어 가장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맥락을 이끌어내게 했다는 사실은 숨겨져 있었던 근대국가의 중요한 비밀들을 일거에 폭로해준다.
현재 다중(혹은 대중)들은 종잡을 수 없는 선택과 행위의 정치운동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물론 지금 다중의 대표격으로 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현재 화가 많이 난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다. mb의 우생학 교육정책(영어몰입식교육, 0교시부활, 우열반구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청소년들이 그간 축적된 에너지(인터넷담론형성, 논술교육)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화를 직접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 싸구려 ‘급식’에 가장 먼저 동원될 것이라는 자체적 판단은 자신들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 힘들의 파급은 이제 광화문과 청계천에 모인 머릿수로만 가늠하는 방식을 넘어 중심 권력으로 하여금 어떤 실토를 하게끔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2008년 5월 7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한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 시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것이다.”라는 구태의연한 것 같지만 매우 상징적인 담화를 발표한다. 그간 망각하고 있었던 국가의 사명을 깨달은 것이다. 이 말은 그 전날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가 “광우병이 발생했을 경우 쇠고기 수입을 전면 재협상할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과 겹쳐 우리의 처지를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되어준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의 발언은 근대국가의 숨겨져 있던 ‘생명정치’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수사는 일단 ‘광우병’이라는 살해당할 위험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상례적 위험 상태를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근대 국가 통치의 규준이 그 자신이 취임 당시부터 표방한 ‘경제’가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mb가 말한 ‘경제’라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총체적 삶의 양상과 관계를 나타내는 고대의 ‘오에코노미’가 아니라 물적 교환만을 의미하는 ‘이코노미’에 가깝다.-<푸코의 ‘통치성’을 참고할 것> 다중들에게 학습된 욕망을 불러일으켜 자신들의 가장된 욕망을 역으로 성취하는 천박한 수단으로서의 ‘경제’말이다.)
근대 주권 국가는 사실 법률로써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지만 실상은 국민을 ‘죽게 만들고 살도록 내버려 두는’ 권한을 휘두르는 리바이어던인 셈이다. ‘죽게 내버려두고 살게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살해당할 위험이라는 예외 상태를 상례화시켜 지배와 통치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의 국가 시스템. ‘나는 보호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국가의 언명이 실은 국민 모두가 벌거벗은 삶, 즉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이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다)
근대국가의 법(인권선언 이후)으로 보호되는 국민의 권리라는 게 사실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범죄로서의 살해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국가가 법으로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쇠고기 파동’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이전까지 숨겨져 왔던 근대국가의 주권권력의 비밀들, 즉 국민들이 모조리 살해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가시화 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의미가 있다. 순차적으로 국가가 관장하던 건강보험을 민영화시키는 작업도 생명정치의 양상을 '자연상태'로 몰고 가려는 심사로 이해할 수 있겠다. 관리와 규율이라는 탈을 쓰고 저질렀던 국가의 폭력을 이제 과감하게 늑대의 폭력으로 노출하려한다. 지금부터 국민들은 국가의 생명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게 아니라 원래 그러했던 상태를 가시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들이 비어져 나와 표면화된 것이다.
이때 고병원성 AI의 영향으로 살처분 당하는 가금류의 처지는 두려운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감염된 즉 발병한 생명을 모조리 죽이는 국가의 강력한 통치력과 인간 광우병 환자들의 미래를 연관시켜 떠올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법적 근거와 의사와 과학자, 기술관료의 판단에 의해 살해되는 생명들의 처지는 현재 광우병 논란의 중심에서 의사와 과학자와 기술관료의 언설들에 의지하는 국민들의 모습과 지나치게 닮아있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오래전부터 우리들이 살고 죽을 운명을 관리하고 있었다. 결국 이 같은 모든 예외상태들이 점차 상례화되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벌거벗은 삶들의 모습들을 다중들은 도축장의 살풍경에서 발견한 게 아닐까.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명박 정부를 비꼬는 청소년들과 네티즌의 언설 양상이 여러가지 면에서 징후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mb를 표현하는 말중 가장 대표적인 '2MB'는 사이버세대의 용적 분류방식에 따라 집권권력의 정치력을 폄훼하는 용어로 쓰이는 듯 싶다. 그리고 '쥐박이'라는 말은 생명정치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반인반수의 트랜스 괴물과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땅박이'는 가장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흥미로운데 국가를 영토로 등재하려는 제국주의적 근대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권 권력을 풍자하는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위험요소를 실체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국면들이 우리는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잠재적’이라는 말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 뿐만 아니라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