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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용산 참사를 연거푸 겪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인간의 법이란 언제나 약자들이 따라야 하는 강자들의 법이며 

이 법을 지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리라. 

국가라는 보편 제도로 환원시켜 생각해 보아도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이기적 민족주의와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흉포함과 자만심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가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적으로 빚어지고있는 인간 사냥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핏빛 개발 욕망들 앞에서 '휴머니즘'이란 말은 얼마나 치졸하고 조잡한 수사어에 불과한가.

생물학적 종의 기준에서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묶여야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없이 졸렬한 이 정권의 조잡한 술수는 대의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마저 들게 만든다. 

이명박 정권의 남은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정치적 시간 감각을 바꿔서라도 저들을 끌어내리고 싶다.   

오늘은 "3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가 한없이 지루하고 피곤했다"던 위대한 어청수가 더욱 위대한 후임 김석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켜세우고 떠난 날이다.  

또 바로 오늘 그나마 신망하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역시 정권의 외압에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동걸 그가 남긴 이임사는 이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염없이 밥벌이를 이어가야 하는 오늘의 내가 슬프고 아프다.   

이동걸 원장 이임사 전문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

저는 이제 한국금융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 만 9년, 원장의 직을 맡은 지 1년 반, 여러분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며 때로는 같이 즐거워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 하고 때로는 같이 분개하기도 했던 값진 추억을 갖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금융연구원이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정책 두뇌집단(Think Tank)으로, 또한 국내의 독보적인 금융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떠납니다.

1년 반 전, 제가 원장에 취임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금융연구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자고. 금융연구원의 발전은 국내 금융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원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원장의 몫은 여러분들이 소신껏 오직 여러분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해 싸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입이 되고, 때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반 원장으로서의 제 몫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임기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는 말입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겠지요.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하겠지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환경파괴의 영향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는 외부불경제성(external diseconomies)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사금고화도 금융체제 위험(systemic risk)을 높이는 외부불경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파괴된 환경은 사후 감독이나 제재로 쉽게 복구되지 않듯이 은행 사금고화의 폐해도 현 정부와 일부 보수 금융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후 감독이나 제제를 강화한다고 쉽게 방지되거나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합니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의 경제위기로 키우고 있는 정부의 거듭된 오판과 실정이 또 다른 사례가 되겠지요. 전국민이 합심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총력 대응해도 부족할 때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의지가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럴 때 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나는 제 심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double standard)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원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장의 직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제 후임으로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분이 원장으로 오시든 여러분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조용히 연구에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에도 연구원을 이끌어 왔던 것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 역할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금융연구원에 대한 외부의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래야만 우리 금융연구원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한동안 쉽지 않은 시절이 금융연구원에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이 세상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금융연구원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비록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는 하지만 동료 여러분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한 평생을 같이 하듯 저는 여러분과 평생을 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로서 또한 선배로서 저는 금융연구원을 떠나서도 금융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금융연구자들의 품으로 되찾을 때까지 .....

2009년 1월 29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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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3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4년이나 남았다는게 실감이 안 날 지경이에요. 이럴 땐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지...

나비80 2009-01-3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하고 300일입니다. 고달프고 피로한 가운데서도 무언가 새로운 전복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인듯 싶습니다.

2009-06-2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mories of Sponge 2008

2008/12/18~12/31(스폰지하우스 압구정, 광화문, 중앙)



 
상영작

1.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2007)

2. 엔젤 (Angel, 2007)

3. 빨간 풍선 (Flight Of The Red Balloon, 2007)

4. 아름답다 (Beautiful, 2007) 

5. 밤과 낮 (Night And Day, 2007) 

6. 새드 배케이션 (Sad Vacation, 2007) 

7.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8. 식코 (Sicko, 2007) 

9. 경축! 우리사랑 (Viva! Our love, 2008)

10.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11.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12. 로맨스 (Romance Of Astrea And Celadon, 2007)

13.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2007) 

14.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 (Welcome to the Quiet Room, 2007)

15. 텐텐 (Adrift In Tokyo, 2007)

16. 영화는 영화다 (Rough Cut, 2008)

17. 멋진 하루 (My Dear Enemy, 2008) 

18. 비몽 (Sad dream, 2008)

19. 도쿄! (Tokyo!, 2008)

20.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상영 시간표는 http://cafe.naver.com/spongehouse/19929

* 스폰지하우스에서도 못다본 영화를 볼 수 있네요. 이미 시작한 지 며칠 지났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가까운 스폰지하우스에서 꼭 들 챙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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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8-12-2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거 하는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나비80 2008-12-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거 많이 하면 좋죠.

BRINY 2008-12-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말에 서울 가는 데 챙겨야겠어요~~

나비80 2008-12-2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외에도 곳곳에서 이런 기획이 많아지면 좋을텐데 말이죠.^^

치니 2008-12-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 본 영화들 : 빨간 풍선,밤과 낮, 아비정전, 경축!우리사랑,아임 낫 데어, 텐텐, 멋진하루, 비몽이 있습니다. 1등은 경축!우리사랑으로 할래요. 재미로 치면 최고였으니까.
안 봤는데 보고 싶은 영화들은, 식코랑 영화는영화다. 식코는 어쩐지 겁이 나서 미루고 영화는영화다는 생각보다 빨리 내려가서 못봤네요.

그나저나 소이부답님, 너무 오랜만이셔요! 반가워라. :)

나비80 2008-12-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보셨네요. 저는 몇 편 안됩니다. 더 야속한건 있는줄도 몰랐던 영화가 많다는 사실.
치니 님 저도 무지하게 많이 반갑습니다. 헤헤.
연말 잘 보내시고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2008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2008/12/24~2009/01/14(동숭동 하이퍼텍나다)




상영작

1.  갓파쿠와 여름방학을 (河童のクゥと夏休み: Summer Days With Coo, 2007)

2. 구구는 고양이다(グ-グ-だって猫である, 2008)

3. 굿'바이(おくりびと: Departures, 2008)

4. 너를 보내는 숲 (The Mourning Forest, 殯の森: The Forest Of Mogari, 2007)

5. 누들 (Noodle, 2007)

6. 라벤더의 연인들(Ladies In Lavender, 2004)

7. 레몬트리 (Lemon Tree, Etz Limon, 2008)

8. 매직아워 (ザ マジックアワ: The Magic Hour, 2008)

9. 멋진하루(My Dear Enemy, 2008)

10.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2008)

11. 밴드비지트 :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The Band's Visit, Bikur Ha-Tizmoret, 2007)

12. 비투스 (Vitus, 2006)

13. 사과 (Sa-Kwa, 2005)

14.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2007)

15. 소년, 소년을 만나다 (Boy meet boy, 2008)

16. 소리아이 (Lineage Of The Voice, 2008)

17.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18.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 2006)

19. 우린 액션 배우다 (2008)

20.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2007)

21. 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2007)

22. 젤리 피쉬 (Jellyfish, Meduzot, 2007)

23. 존 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2006)

24. 컨트롤 (Control, 2007)

25.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26. 피아노, 솔로 (Piano, Solo, 2007)

27. 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28. 할람 포 (Hallam Foe, 2007)

29.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Bliss, Emmas Gluck, 2006)

30. 4개월,3주... 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2007)

31. 이리 (2008)

32. 중경 (2007) 

상영 시간표는 cafe.naver.com/inada/1685 

* 매년 한해가 지날 무렵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영화들.

틈을 내 챙겨보지 못했지만 꼭 보고싶었던 영화.

이미 보았지만 한번쯤 더 보고 싶은 영화.

2008 하이퍼텍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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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보 감사해요! 집도 가까운데 몇 편은 꼭 봐야겠어요!

나비80 2008-12-2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하이퍼텍나다 가까운 곳에 있어 종종 보러 갈겁니다.
잘하면 마노아 님 뒤통수도 볼 수 있겠는걸요. ^^

치니 2008-12-2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서는 구구는 고양이다, 멋진 하루, 아임 낫 데어, 잠수종과 나비, 존레논 컨피덴셜을 보았는데요, 구구는 고양이다 완전 비추입니다. 이 감독의 최고점은 아무래도 지나버렸나봐요. 가장 재미나게 본 것은 멋진하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존레논 컨피덴셜이네요. 몰랐던 존레논의 진면목을 알아버려서 기분이 좋았어요.
예매해둔 영화는 샤인 어 라이트. 공연 보러가는 기분이에요 헷.

나비80 2008-12-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몇 편은 이미 예매해두었고 <구구는 고양이다>도 목록에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려해봐야겠군요. ㅋㅋ
올 한해 좋은 영화들 중에 음악을 소재로, 혹은 테마로 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
 

 

 

 

 

 

 

Seminar "Tractatus" 두 번째 모임

주최 : 새물결 출판사 ‘What's up 총서’ 기획위원


일시 : 2008년 11월6일 (목) 18:00~


장소 : <필름 포럼> 지하 1층 세미나실

(이대 후문 하늬솔 빌딩 A동, www.filmforum.co.kr)

 

󰡔독일 비애극의 원천󰡕 : 벤야민과 알레고리 이론

- 󰡔독일 비애극의 원천󰡕 출간 기념 세미나 -


- 발표 : 조만영 (역자)



이제야 발터 벤야민이 진정으로 도래하는 듯하다. 1910-20년대 초의

언어론, 폭력론, 신화-운명론과 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말에 이르는

자본주의-도시론의 한 가운데에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라는 걸작이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전개된 벤야민의 알레고리론과 바로크 주권론을

참조하지 않고 벤야민이라는 희귀한 사상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 저작의 번역이라는 난해하고도

고통스러운 작업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벤야민의 사유의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신 조만영 선생님을 모시고 What's up 총서 기획위원들의

질의와 토의를 중심으로 벤야민에 대한 진정한 ‘다시’ 읽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사회 : 한보희


토론 : What's up 기획위원

 

* 지난 달 1차 세미나에서는 고려대의 김항 선생이 벤야민, 슈미트, 데리다, 아감벤을 잇는 주권국가의 법-폭력의 개념과 구성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이제 과연 근대국민국가를 넘어 주권국가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시기이다. 

* 최근 가장 강력한 번역서를 의욕적으로 출간하고 있는 <새물결 What's up 총서 기획위원들>이 마련한 세미나가 두번째로 열린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깊이 있는 철학과 사유를 접할 수 있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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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한 최근에 일련하여 발생한 <자살>사건과 관련해 가장 수준 높은 이해를 보여주는 글이다.

최진실 씨 자살사건은 또 하나의 ‘국가대표급’ 자살이다. 모든 세대와 계층이, 경력 20년의 ‘톱스타’인 그녀를, 또는 그녀의 인생을 알고 있다. 이는 안재환 씨 자살사건과 그 충격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이 자살은 그 파급효과에 있어서도 가장 넓고 강력하고 지속적일 것이다.

최진실 씨는 입지전적 인물의 하나다. 그녀는 ‘가난하고 못 배운’ 또순이이자 ‘소녀가장형’ 인물이었다. 몸뚱아리와 강한 의지(또는 욕망) 외에 가진 것이 없었던, 그리고 그것으로 세상과 상대해 온 인물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아니, 그것을 초과하는) 가장 통속적이고 드라마틱한 ‘여자의 일생’을 구현했다. 

행복을 평범ㆍ소박하고 조용한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간주할 때, 생의 화려함과 불행(험난함)은 서로 배치(背馳)되는 것이다. 화려한 생은 불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생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살할 확률도 높다. 미니멀한 삶이 훨씬 안전하다. ‘단순하게 살아라’... 모든 ‘뉴에이지’적인 것이 가르치는 바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ㆍ인기ㆍ권력 등으로 표상되는 생의 화려함(일상의 용어로는 ‘잘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 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ㆍ인기ㆍ권력이 없는 생이야말로 불행한 것 아닌가. (우울증론자들은 그것을 필요한 만큼 추구하지 않는 것도 ‘우울’의 징후라 생각한다. <우울증에 반대한다>를 보라.)

 

 

 

 

 

모험을 걸어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자아의 작용, 즉 자아의 ‘기술’은 개인에게 닥치는 이 거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작동(해야) 한다. 안분(安分)의 논리는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계발되어 왔다. 그러나 안분은 패배와 자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초월과 다르다.




최 씨가 세상을 뜬 날,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화려한 행사의 하나인 PIFF 개막제가 열렸다. 레드카펫 위에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저 여자 ‘스타’들을 보라. 그리고 그 생과 자아를 상상해보자. 10대에 벌써 전국적인 인물이  저런 소녀의 삶은 무엇일까? 하지만 모든 여배우들이 최진실처럼 살지는 않는다. 그들 모두가 ‘연예’라는 현대 대중문화의 기제를 통해 소비되지만, 그녀의 생과 육체의 전체를 갈취당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최진실은 ‘근대적 연예인’, ‘여배우’이다. 생득적 계급ㆍ계층의 문제가 여기에도 관련된다.

소위 ‘공인’, 그중에서도 특히 ‘연예인’의 자아는 매우 위태로운 것임을 최씨의 자살이 보여준다. 그들은 ‘늘 노출된 상태’에서 지낸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감시(cf. 파파라치)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연예인에 대한 세인의 평가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전국의 남녀노소가 언제나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육체의 세세한 모든 것과 연애ㆍ결혼경력과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소비’된다.

그러나 ‘소비’라는 말은 매우 무책임하고 둔탁하다. 평가하는 세인(수용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소비’는 그저 껌 한번 씹고 버리는 그런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여성과 청소년에게 있어) 자아와 욕망의 투사이자, 표상행위이다. 이는 심각한 ‘수행’이다. 

그런데 이 평가와 소비는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공간 덕분에 새롭게, 더욱 신경증적으로 제도화되어있다. 평가받는 쪽은 어떨까? 이건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타인의 평가, 세인의 평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로 여기에서 자살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기(인정받기)’가 행복의 경계와 맺는 함수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그 상대적 작용을 거의 조정하지 못한다.

 


[출처] 최진실 씨의 경우 (1) |작성자 마포매냐

최진실 씨의 자살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에 대처하는 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대응은 한마디로 졸렬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살률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않는) 정부ㆍ여당이 저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최진실 씨의 자살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즐기고 있다. 그 목적은 단 하나다. 인터넷을 통제하여 언로(言路)를 막고 우민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보수 언론은 최씨의 자살 원인을 ‘악플’이라 단정하고 있다. 안재환 씨와 결부된 최씨에 대한 소문이 만들어진 곳은 온라인이 아니라, 평소에도 온갖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만드는 증권가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 

자살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의 하나는 자살(기도)자의 심리적 동기를 객관적인 사회적 언어로 재구성(프로파일링)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복합적인 인격을 가진 현대의 인간은 단 한 개의 명쾌한 동기나 원인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모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복잡한 이유가 중첩되고 또 그 이유가 반복적으로 자아를 파괴시켜 온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어떤 경우 자살은 충동적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가진 상식에 비추어 어떤 행위의 동기를 사후적으로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으로는 급ㆍ만성 우울증과 조울증과 자살행동의 관계에 대한 생화학적ㆍ통계적 상관성이 밝혀져 있을 뿐이다. 

사회(학)적으로는, 통계적 필요와 ‘예방’을 위한 활동 때문에 자살자의 동기를 분류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타인의 자살(기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이고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쉽게 그 원인과 동기를 단정하는 것은 자살(기도)이라는 실존적 행위에 대한 모욕이며, 자살(기도)자에 대한 예의 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관련된 정황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견지에서 그들은 최진실 씨의 죽음을 모독하고 있다.

물론 타인에 의한 모욕과 자살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동서고금에서 자살은 견디기 어려운 모욕을 씻는 방법으로 널리 선택되어 왔다. 또한 모욕은 공격당하는 자아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아존중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자아존중감의 약화는 자살의 근저적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신공격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전여옥이라는 국회의원이 최진실 씨가 죽고 난 뒤에 악성댓글이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하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며 "각박한 세상에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그리고 즐거움을 주었던 이들이 이렇게 바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만든 것은 말입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한다. 싸움닭처럼 남을 공격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이 국회의원 자신이 네티즌들한테 항상 심한 공격을 받아왔다. 밖에 보이는 것과 통상의 감각으로 그녀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듯’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쏟아지는 욕들 앞에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악플 받는 어려움을 진정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의'를 운운하지말고 이번 기회에 그녀가 그동안 자신이 타인들에게 해왔던 공격들을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최진실법>은 전혀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법리적으로도 전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진심으로 악의를 가진 ‘안티팬’으로부터 연예인들을 보호하고, 스토커나 페니스 파시스트들에게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한나라당은 어떤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좌빨’ ‘친북’ ‘좌파’ ‘좀비’ ‘절라도’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문화도 함께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까? 

한나라당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고, ‘조선’에 ㅅ받침을 첨가하여 부르는 식의 인터넷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테다. 그런 문화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인터넷 문화는 우리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한편, 그런 인터넷정치 문화와 연예인 누군가의 용모, 행동, 언행을 인신공격하는 사적인 ‘배설’이 같은 차원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이런 것들을 구분할 능력과 의사가 없다고 보인다. 누가 악플러이며, 어떤 것이 악플인지? ‘모욕’의 상대성ㆍ주관성의 문제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 기초적인 법리조차 처음부터 토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10대에서 70대 노인까지 전세대에 걸쳐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소위 ‘민주정부’ 약 10년 간 달성된 것이라는 점. 이 사이에 한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IMF가 있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한마디로 개인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졌다. 한국에서 어린이건 노인이건, 누구나 살기 어렵다. 누구나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 그리고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에 여리고 약한 희생양을 찾아낸다. 만약 자살률이 해당 사회 성원의 행복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지난 10년 간의 소위 민주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자살률이 무려 2배로 높아졌다. 그들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복속된 개인들의 행복을 전혀 증진시켜 주지 못했다. 과연 이명박 정권은 어떨까? 입만 아플 것 같다.


[출처] 최진실 씨의 경우(2) - '최진실법'|작성자 마포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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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6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0-0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공감입니다!

나비80 2008-10-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우울한 소식일 수밖에 없지요. 역시 죽음은 인간에 대한 좀 더 심오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도 상황을 기가막히게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며 놀랄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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