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용산 참사를 연거푸 겪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인간의 법이란 언제나 약자들이 따라야 하는 강자들의 법이며
이 법을 지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리라.
국가라는 보편 제도로 환원시켜 생각해 보아도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이기적 민족주의와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흉포함과 자만심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가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적으로 빚어지고있는 인간 사냥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핏빛 개발 욕망들 앞에서 '휴머니즘'이란 말은 얼마나 치졸하고 조잡한 수사어에 불과한가.
생물학적 종의 기준에서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묶여야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없이 졸렬한 이 정권의 조잡한 술수는 대의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마저 들게 만든다.
이명박 정권의 남은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정치적 시간 감각을 바꿔서라도 저들을 끌어내리고 싶다.
오늘은 "3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가 한없이 지루하고 피곤했다"던 위대한 어청수가 더욱 위대한 후임 김석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켜세우고 떠난 날이다.
또 바로 오늘 그나마 신망하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역시 정권의 외압에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동걸 그가 남긴 이임사는 이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염없이 밥벌이를 이어가야 하는 오늘의 내가 슬프고 아프다.
이동걸 원장 이임사 전문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
저는 이제 한국금융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 만 9년, 원장의 직을 맡은 지 1년 반, 여러분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며 때로는 같이 즐거워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 하고 때로는 같이 분개하기도 했던 값진 추억을 갖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금융연구원이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정책 두뇌집단(Think Tank)으로, 또한 국내의 독보적인 금융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떠납니다.
1년 반 전, 제가 원장에 취임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금융연구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자고. 금융연구원의 발전은 국내 금융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원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원장의 몫은 여러분들이 소신껏 오직 여러분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해 싸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입이 되고, 때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반 원장으로서의 제 몫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임기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는 말입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겠지요.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하겠지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환경파괴의 영향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는 외부불경제성(external diseconomies)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사금고화도 금융체제 위험(systemic risk)을 높이는 외부불경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파괴된 환경은 사후 감독이나 제재로 쉽게 복구되지 않듯이 은행 사금고화의 폐해도 현 정부와 일부 보수 금융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후 감독이나 제제를 강화한다고 쉽게 방지되거나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합니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의 경제위기로 키우고 있는 정부의 거듭된 오판과 실정이 또 다른 사례가 되겠지요. 전국민이 합심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총력 대응해도 부족할 때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의지가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럴 때 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나는 제 심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double standard)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원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장의 직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제 후임으로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분이 원장으로 오시든 여러분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조용히 연구에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에도 연구원을 이끌어 왔던 것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 역할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금융연구원에 대한 외부의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래야만 우리 금융연구원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한동안 쉽지 않은 시절이 금융연구원에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이 세상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금융연구원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비록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는 하지만 동료 여러분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한 평생을 같이 하듯 저는 여러분과 평생을 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로서 또한 선배로서 저는 금융연구원을 떠나서도 금융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금융연구자들의 품으로 되찾을 때까지 .....
2009년 1월 29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동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