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숲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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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에커만은 젊은 날 괴테의 인격과 사상과 문학을 흠모하여, 자신의 직업을 가질 기회마저 포기하고 젊은 날을 오로지 괴테와의 대화에서 얻는 배움에 희열을 느끼면서 지냈다.

괴테도 위대하지만 에커만의 열정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커만은 "인간이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는 끊임없는 열망에 따라 교양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른바 "밥벌이가 되는 학문"을 외면하고 내면의 음성을 따랐다. "밥벌이가 되는 학문"은 그가 "천성적으로 지향하는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열정을 영어로는 enthusiasm이라고 한다. 르네 듀보는 그 말의 어원(en + theos)을 풀어 "내재(內在)하는 신(a God within)"이라고 설명한다. 내 안에 "신"이 임한 것이 열정이라는 뜻이다. 르네 듀보의 해석대로 한다면 열정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삶이란 이유 모를 열정에 이끌리어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버리는 삶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충만한 삶이 아닐까? 그런 열정 없이 오로지 밥벌이를 기준으로 생애 사업(life work)을 결정짓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이 갑자기 불쌍해지려 한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18세가 아니라는 것이 기쁘네. 내가 18세였을 때는 독일이란 나라도 겨우 18세밖에 안되어서, 아직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지... 나는 이렇게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 시대에 사는 젊은이가 아니어서 행복하네."

요즘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외국으로 이민 가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온통 난리다. 하지만 어디 교육뿐인가?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왜곡된 현대사를 겪으면서 정치, 사회, 경제 등 구석구석이 엉망진창이고, 어떤 면에서는 국가 장래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낄 만큼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괴테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점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방송인 이한우 씨(얼마 전에 보니 이름이 '이참'으로 바뀌었다)가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회자가 "왜 독일을 떠나 한국에 왔느냐"고 묻자, 이참 씨는 "독일은 사회 구조가 이미 확립되어서 한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한국에서는 해볼 여지가 아주 많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괴테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참 씨에게 독일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 사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그 정반대 경우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미비한 점이 많을수록 젊은이들에게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이니, 우리는 오히려 행복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어떤 의미에서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한 개인이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극도로 제한되다보니, 그 결과 오로지 먹고 사는 경제 문제에만 매달리는 소시민적 삶을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약, 동성애, 총기난사 등 각양각색의 퇴폐적이고 일탈된 행위에서 돌파구를 구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 삶이란 열매나 결과보다는, 가치와 보람을 향해 목표의식을 갖고 투쟁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래서였을까? 괴테는 "과정"의 중요성에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은 늘 작업을 끝내기만 바라며 작업 자체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는 제작 과정에서 최상의 기쁨을 발견하지... 재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예술 그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그것을 끝내고 얻게 될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법이지. 하지만 그러한 세속적인 목적과 경향만으로는 위대한 것을 결코 이룰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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