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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에서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에는 '뱅크'라 불리는 얕은 해역이 있다. 이 해역은 북아메리카 대륙붕 끝에 있는 거대한 여울목이다. 이곳에는 상반되는 해류로 인해 뒤섞인 질산염에서 태어난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어치운다. 그리고 이 동물성 플랑크톤을 크릴이라고 하는 마치 새우처럼 생긴 아주 작은 부유 생물들이 잡아먹는다. 청어와 바다 중간층에 사는 다른 물고기들은 수면 가까이 떠올라 크릴을 잡아먹고, 흑고래도 크릴을 먹는다.
뱅크의 이런 풍부한 환경 때문에 이 해역에는 대구가 수백만 마리로 늘어난다. 북해에서도 역시 뱅크에서 대구 어장이 발견되긴 하지만, 멕시코 만류가 북극의 그린란드 해류와 만나는 북아메리카 뱅크에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많은 대구가 서식하고 있다.
바스크(Basque)인은 유럽의 피레네 산맥을 끼고 에스파냐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독특한 언어인 에우스케라어로 문학 활동을 한다. 에우스케라어는 에스토니아어, 핀란드어, 헝가리어와 함께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지 않은 네 개뿐인 유럽어 가운데 하나이다.
바스크인은 오랜 억압과 전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독립을 유지했는데, 그것은 수백년에 걸쳐 그들이 강력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을 기를 뿐 아니라, 해양민족으로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세의 유럽인들이 많은 양의 고래 고기를 먹어치우던 시절, 바스크인은 먼 바다로 나아가 고래를 잡아왔다. 그들이 먼 바다로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대구떼를 발견하고 그것은 잡아 소금에 절여, 오랜 항해에도 상하지 않고 영양분도 풍부한 풍부한 식량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 가공법을 처음 개발한 것은 바스크인이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세기 전에 이미 바이킹족이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캐나다로 항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항로가 대서양산 대구의 서식 해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985년에서 1011년까지 아메리카를 다섯번이나 탐험했다. 그러면 이 장거리 항해 동안 그들은 무엇을 먹었는가?
그들은 대구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멀고 먼 황량한 해안까지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구의 무게를 5분의 1로 줄이고 나무 토막처럼 만들어, 오랫동안 상하지 않도록 얼어붙을 듯한 겨울 공기 속에 매달아 두었다. 그들은 대구를 마치 건빵 먹듯이 찢어서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이미 9세기경에 바이킹족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 대구를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세우고, 남는 물량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었다. 식량의 안정된 공급, 바로 그것이 바이킹족으로 하여금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도록 만든 요인이었던 것이다.
대구라는 생선을 주제로 이렇게 흥미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니 저자의 역량이 정말 놀랍다. 하지만 번역이 별로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다. 역주마저 전혀 없어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독자들을 생각해서 북유럽, 대서양, 북아메리카 등의 지도를 곁들였으면 좋았으련만 쓸만한 지도 한장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 편집자의 무성의가 돋보이는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책도 하나의 작품이라 할 때, 완성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출판 현실에서 다시 번역을 할 수는 없을테니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독자를 너무 무시하는 번역과 편집이라는 느낌에 뒷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