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양장) 믿음의 글들 176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구판절판


현재 우리(악마들)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다. 오해는 말도록. 내가 말하는 교회는 우리가 보는 바 영원에 뿌리를 박고 모든 시공간에 걸쳐 뻗어나가는 교회, 기치를 높이 올린 군대처럼 두려운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21-22쪽

그(크리스천)가 어떤 노선을 취하든 너(악마의 졸개 웜우드)의 주된 임무는 한 가지다. 애국심이든 평화주의든, 그것을 자신이 믿는 종교의 일부로 생각하게 하거라. ……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 하는 인간은 우리(악마들)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 수록 더 그렇지.

-50-51쪽

초창기에 회심한 인간들은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부활)과 단 하나의 신학적 교리(구속)만으로 회심했다. …… 복음서는 나중에 생긴 것으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해 쓰여진 게야.
-135쪽

개인적으로 나(C. S. 루이스)는 박쥐보다 관료들을 더 싫어한다. 나는 경영의 시대이자 행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가장 큰 악은 찰스 디킨즈가 즐겨 그렸듯이 지저분한 ‘범죄 소굴’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입고 손톱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지옥에 대한 상징으로서 경찰국가의 관료 조직이나 아주 비열한 사업을 벌이는 사무실 비슷한 것을 택하게 되었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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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 고즈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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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콜레라의 한자음역은 호열자(虎列刺)로 되어 있다. 음역이라면 그 소리를 차용하여 비슷하게 만든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호열자’와 ‘콜레라’는 소리의 유사성이 너무 멀어 보인다. 클럽-俱樂部(구락부), 코카콜라-可口可樂(가구가락), 펩시콜라-百事可樂(백사가락) 등을 보면 소리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의문의 해답은 글자의 혼동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조 고종 연간에 이 병이 들어오자 중국 관행대로 ‘虎列剌(호열랄)’로 불렀는데, 중국발음으로는 ‘훌리에라’였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콜레라와 비슷하다. 그런데 ‘剌’(이그러질 랄)과 ‘刺’(칼로 찌를 자)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호열랄’을 ‘호열자’로 오독(誤讀)하면서 ‘호열랄’은 ‘호열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둘. 우리가 흔히 쓰는 금자탑(金子塔)은 뜻밖에도(!) 황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금자탑이란 말은 실은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金’의 글자 모양이 삼각형인 피라미드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금자탑은 ‘金이라는 글자 모양의 탑’ 정도의 뜻이 된다. (이럴 수가!) 카프카가 그래서 말했나보다.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통념을 산산조각 내면서 기분 좋게 한 방 먹이는 책이다.

 국어학자인 저자들은  인간의 애환과 시대 갈등과 사랑의 아픔이 담긴 우리 말 흔적을 살피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우리말의 역사성과 역사에 따른 우리말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롭게 분석,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에 대한 ‘상식’을 정리해놓은 셈이다.

 무릇 모든 단어에는 역사가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하며, 그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이걸 역사학에서는 개념사(槪念史)라고 한다. 그리고 수록된 모든 표제어에 대해 일일이 그 단어의 변화 과정과 역사를 설명해놓은 사전이 저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일명 OED)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사전이 아직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 같은 자랑스러운 우리말사전을 갖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젊은 국어학자들의 학문적 야망과 분발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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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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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90년대 이후 미래를 꿈꾸는 일에 많이 게을렀습니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원래 진보가 많이 쓰던 것인데 지금은 자본가와 기업가들이 더 많이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일반화시켰지요. …… 미래학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발전시킨 것도 보수 진영의 학자들입니다. …… 보수는 이렇게 자신에 차서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 사회로 나갈 아젠다를 쉴 새 없이 퍼뜨리는데 진보는 현실 비판하기에만 급급했어요.”(134-135쪽)

 한국 사회의 진보 대안을 만들기 위한 순수 민간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www.cins.co.kr)이 선보인 첫 번째 책이다. 위 인용문에서도 보이듯이 그간 진보 진영이 미래에 대한 예견과 연구에 게을렀던 점을 반성하고 “생활인이 꿈꾸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진보 진영이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집권 시 운용할 프로그램(콘텐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진보 진영이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새사연은 일반 연구소들이 상아탑의 교수나 연구소 학자들 중심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생활 현장에 발 딛고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정책수립의 주체로 함께 참여하는 ‘싱크탱크’를 지향하고 있다. 비근한 실생활을 소재로 편안하게 대담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여느 사회과학 서적들과 달리 쉽게 읽히는 미덕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기구는 하다못해 4년, 5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거치면서 국민들의 심판도 받고 교체도 되고 하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독점자본은 그런 평가를 받을 의무도 견제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알아서 할 테니 맡겨두라는 것은,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불공정 게임을 전제하고 있다. 축구 룰이 있다고 해서 국가대표 선수단과 초등학교 축구부가 경기를 하는 게 공정한 경기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뛰어넘는 통일민족경제에 대한 지은이들의 상상력은 유쾌하다. 한반도에는 동해, 서해, 남해, 이렇게 세 바다만이 있는 게 아니라, ‘블루 오션’이라는 또 하나의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민족경제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또 하나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경제규모와 내수시장의 확대, 자립 경제를 위한 자원과 에너지의 확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우월성 복원, 군사비와 무력의 생산적 재배치, 남북 기술협력에 의한 경제도약 등 다양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새사연은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은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장점을 활용하고자 한다. 흔히 당 조직 내부의 연구조직이 당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자칫 관료성을 띠게 되기 쉬운데 비해, 민간독립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창의성, 역동성, 속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우리 사회에도 실현가능한 진보적 정책대안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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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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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강점시대와 해방공간을 거쳐 박정희 시대에 이르는, 실로 파란만장했던 격동의 20세기 한국현대사를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조감한 바 있다. ‘작가의 말’에서 조정래는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분단문학의 최고봉인 작가가 이 소설로써 분단 이야기를 끝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매듭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인공 ‘윤혁’은 남파 간첩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돼 30년 간 복역한 인물이다. 강제로 전향했지만 속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한 비전향자이다. 그의 동료인 장기수 ‘박동건’은 사상의 조국이었던 소련의 붕괴에 절망한 나머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윤혁은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치던 경희ㆍ기준 남매를 구해준 인연으로 이 아이들과 만나며 삶의 활기를 얻는다. 그는 감옥에서 만난 운동권 출신 ‘강민규’의 권유로 수기를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알게 된 보육원장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결국 그는 경희ㆍ기준 남매와 함께 아예 보육원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산다.

 윤혁이 추구한 사회주의는 조지 오웰이 설파한 사회주의와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 오웰에게 사회주의란 특정의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정강정책으로 표방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의 사회주의는 가족과 공동체에 의해 결속되고, 인도적․정서적 성격이 강조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소설 말미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사회주의자 윤혁의 삶은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의 과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정래와 조지 오웰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동일하다. ‘순수한 절대적 인간성’,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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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마지막 성장
부위훈 지음, 전병술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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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내 나이가 되면 고령화가 바로 긴 병의 일종임을 몸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45쪽

종교를 지닌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정신상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하다. 우리가 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은 아마도 우리가 아직 종교를 지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 가운데 내면적으로 깊은 신앙을 갖춘 참된 종교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대다수의 환자는 어느 정도까지 신앙을 지니고 있지만 심리적 충돌이나 두려움을 벗어나는데 그 신앙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91쪽

삶과 죽음의 문제가 영원히 존재하는 한 우리의 종교적 추구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영적인 종교의 운명이다. 반(反)종교론자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러셀, 사르트르 등은 자신들의 사유의 제한 때문에 세속적인 생명의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서, 근본적으로 궁극적 관심이나 궁극적 진리에 관여하는 종교적 구도의 정신적 의의를 체험할 수 없다. -136쪽

우리는 ... 삶과 죽음이라는 궁극적 의의의 성찰을 본질로 삼는 종교의 참뜻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개별 실존의 <진실한 본연성 종교>(true and authentic religion)와 <제도화된 비본래성 종교>(institutionalized and inauthentic religion)를 구분해야 한다. -222쪽

건전한 생사관을 확립하려고 하지도 않고 인생을 일종의 임무나 사명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다만 사후의 아름다운 세계로 도피하려고만 하는 무책임한 태도로는 생명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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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0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세를 믿지 않고 종교 없는 자의 생사관이란 어때야 할까.. 생각케 한 계기였습니다. 저자의 지적대로, 삶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 는 말은 많지만 죽음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 는 말은 적죠. 독서가 반성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많은 반성이 되었고, 사람의 글에서 흔히 보이는 위선과 무의미함은 그 반대였던 책이었습니다.

안티고네 2006-07-0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퇴전문 님의 소개로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후반부에서 번역이 다소 버벅거리고 편집자의 교열에 좀 문제가 보인 것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낳다고(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220쪽), "삶에 의의(삶의 의의)에 대해 말하면"(235쪽) 등에서는 확 깨는 느낌이더군요. (요즘 편집자들 전문성이 예전 같지 않더군요.)

하지만 내용이 좋으니 그것으로 용서하기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