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 고즈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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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나. 콜레라의 한자음역은 호열자(虎列刺)로 되어 있다. 음역이라면 그 소리를 차용하여 비슷하게 만든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호열자’와 ‘콜레라’는 소리의 유사성이 너무 멀어 보인다. 클럽-俱樂部(구락부), 코카콜라-可口可樂(가구가락), 펩시콜라-百事可樂(백사가락) 등을 보면 소리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의문의 해답은 글자의 혼동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조 고종 연간에 이 병이 들어오자 중국 관행대로 ‘虎列剌(호열랄)’로 불렀는데, 중국발음으로는 ‘훌리에라’였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콜레라와 비슷하다. 그런데 ‘剌’(이그러질 랄)과 ‘刺’(칼로 찌를 자)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호열랄’을 ‘호열자’로 오독(誤讀)하면서 ‘호열랄’은 ‘호열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둘. 우리가 흔히 쓰는 금자탑(金子塔)은 뜻밖에도(!) 황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금자탑이란 말은 실은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金’의 글자 모양이 삼각형인 피라미드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금자탑은 ‘金이라는 글자 모양의 탑’ 정도의 뜻이 된다. (이럴 수가!) 카프카가 그래서 말했나보다.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통념을 산산조각 내면서 기분 좋게 한 방 먹이는 책이다.

 국어학자인 저자들은  인간의 애환과 시대 갈등과 사랑의 아픔이 담긴 우리 말 흔적을 살피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우리말의 역사성과 역사에 따른 우리말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롭게 분석,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에 대한 ‘상식’을 정리해놓은 셈이다.

 무릇 모든 단어에는 역사가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하며, 그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이걸 역사학에서는 개념사(槪念史)라고 한다. 그리고 수록된 모든 표제어에 대해 일일이 그 단어의 변화 과정과 역사를 설명해놓은 사전이 저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일명 OED)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사전이 아직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 같은 자랑스러운 우리말사전을 갖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젊은 국어학자들의 학문적 야망과 분발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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