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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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90년대 이후 미래를 꿈꾸는 일에 많이 게을렀습니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원래 진보가 많이 쓰던 것인데 지금은 자본가와 기업가들이 더 많이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일반화시켰지요. …… 미래학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발전시킨 것도 보수 진영의 학자들입니다. …… 보수는 이렇게 자신에 차서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 사회로 나갈 아젠다를 쉴 새 없이 퍼뜨리는데 진보는 현실 비판하기에만 급급했어요.”(134-135쪽)

 한국 사회의 진보 대안을 만들기 위한 순수 민간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www.cins.co.kr)이 선보인 첫 번째 책이다. 위 인용문에서도 보이듯이 그간 진보 진영이 미래에 대한 예견과 연구에 게을렀던 점을 반성하고 “생활인이 꿈꾸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진보 진영이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집권 시 운용할 프로그램(콘텐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진보 진영이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새사연은 일반 연구소들이 상아탑의 교수나 연구소 학자들 중심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생활 현장에 발 딛고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정책수립의 주체로 함께 참여하는 ‘싱크탱크’를 지향하고 있다. 비근한 실생활을 소재로 편안하게 대담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여느 사회과학 서적들과 달리 쉽게 읽히는 미덕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기구는 하다못해 4년, 5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거치면서 국민들의 심판도 받고 교체도 되고 하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독점자본은 그런 평가를 받을 의무도 견제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알아서 할 테니 맡겨두라는 것은,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불공정 게임을 전제하고 있다. 축구 룰이 있다고 해서 국가대표 선수단과 초등학교 축구부가 경기를 하는 게 공정한 경기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뛰어넘는 통일민족경제에 대한 지은이들의 상상력은 유쾌하다. 한반도에는 동해, 서해, 남해, 이렇게 세 바다만이 있는 게 아니라, ‘블루 오션’이라는 또 하나의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민족경제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또 하나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경제규모와 내수시장의 확대, 자립 경제를 위한 자원과 에너지의 확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우월성 복원, 군사비와 무력의 생산적 재배치, 남북 기술협력에 의한 경제도약 등 다양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새사연은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은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장점을 활용하고자 한다. 흔히 당 조직 내부의 연구조직이 당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자칫 관료성을 띠게 되기 쉬운데 비해, 민간독립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창의성, 역동성, 속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우리 사회에도 실현가능한 진보적 정책대안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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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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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강점시대와 해방공간을 거쳐 박정희 시대에 이르는, 실로 파란만장했던 격동의 20세기 한국현대사를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조감한 바 있다. ‘작가의 말’에서 조정래는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분단문학의 최고봉인 작가가 이 소설로써 분단 이야기를 끝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매듭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인공 ‘윤혁’은 남파 간첩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돼 30년 간 복역한 인물이다. 강제로 전향했지만 속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한 비전향자이다. 그의 동료인 장기수 ‘박동건’은 사상의 조국이었던 소련의 붕괴에 절망한 나머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윤혁은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치던 경희ㆍ기준 남매를 구해준 인연으로 이 아이들과 만나며 삶의 활기를 얻는다. 그는 감옥에서 만난 운동권 출신 ‘강민규’의 권유로 수기를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알게 된 보육원장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결국 그는 경희ㆍ기준 남매와 함께 아예 보육원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산다.

 윤혁이 추구한 사회주의는 조지 오웰이 설파한 사회주의와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 오웰에게 사회주의란 특정의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정강정책으로 표방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의 사회주의는 가족과 공동체에 의해 결속되고, 인도적․정서적 성격이 강조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소설 말미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사회주의자 윤혁의 삶은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의 과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정래와 조지 오웰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동일하다. ‘순수한 절대적 인간성’,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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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
남재일 지음 / 강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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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군사독재와 싸울 힘을 얻기 위해 결속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개인주의 감수성은 극도로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40대가 된 386세대가 막강한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하는 한국 사회는 정확하게 386세대의 정체성만큼만 민주화가 진행됐다. 정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사회 민주화는 이제 막 시작된 상태, 제도는 민주화됐지만 개인의 삶으로 스며들지는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일상의 민주화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집단적 구호와 동원이 아니라 개인적 주장과 실천이다.”(105쪽)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이 글이 저자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현주소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저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아이러브 황우석’ 회원들의 집회를 구경하면서 그들의 황우석에 대한 애정 표현이 가미가제 수준임을 느낀다. 집단 속에 파묻혀 있는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개탄하면서, 저자는 “자고로 용맹은 무지를 못 당한다”고 덧붙인다. ‘집단에 대한 불신과 개인에 대한 희망’, 그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영화 <트로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흥미롭다. <트로이>에는 그리스는 없고 미국만 있다는 것이다. <트로이>에서 그리스의 신들은 다 거세되고 두 명의 잘난 근대인, 헥토르와 아킬레스만이 등장한다. 헥토르는 이성주의, 가족주의, 국가주의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구현한다. 아킬레스는 살육을 통해 권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근대의 파시스트로 규정된다. 저자는 헥토르와 아킬레스라는 국가주의 영웅들이 파리스의 연애담에 동원된 ‘액션 엑스트라’일지도 모르겠다고 일침을 놓는다. 국가, 민족, 역사라고 소리치는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세계가 평화로울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천 편 이상의 영화를 관람했으나 내복 입은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정사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저자의 너스레를 읽다보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1950년대 할리우드 스타 클락 게이블이 영화 속에서 메리야스를 입지 않자 젊은이들이 ‘런닝구’를 입지 않아 미국 메리야스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설’도 재미있다. 추울 땐 내복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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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1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고보니 여배우가 화장 지우고 이불 속에 들어가는 장면도 거의 못 봤어요.
남재일 씨 글 가끔 무지 재밌습니다.^^
 
열림과 닫힘 - 인문학적 상상을 통한 종교문화 읽기
정진홍 지음 / 산처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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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라는 말은 백 년 전만 해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한 말로 도입되었다. ‘religion’은 서양의 중세 초기에 새롭게 출현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 ‘religion’을 낳은 서양에서 ‘종교란 그리스도교’이고, ‘종교인이란 그리스도교 교인’이었다. 서양에서의 ‘종교’라는 개념은 이렇게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종교란 오직 그리스도교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서양의 종교개념은 종교란 오직 그리스도교 밖에 없다는 주장의 확산을 낳았고, 우리 역시 그 확산의 수혜자로 종교라는 개념을 수용했다. 그 결과 종교는 닫힌 것이 되고 말았다.

원로 종교학자인 정진홍 교수가 독특한 사유로 종교문화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종교라는 개념이 곧 종교는 아니라고 말한다. 개념화된 사물은 이미 ‘경험적 실재’가 아니며, 단지 ‘개념적 실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약한 것은 이런 곡절을 거쳐 생성된 ‘개념’이 스스로 ‘경험’을 재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가 현실을 규정하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종교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개념’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종교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종교라는 현상이 존재하게 된 것은 경험주체의 ‘경험’이 있어 가능한 것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험주체들, 즉 다양한 종교인들의 자기주장을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의 막힌 장벽을 활짝 열고 평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제시한 ‘인문학적 상상을 통해 종교문화에 다가가기’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단, 몽매주의가 당당하게 종교계의 한 축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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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온 2014-09-1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수업 안 듣고 뭐 했었나 싶습니다. 들으셨다니 부럽네요ㅎㅎ 책 읽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의 지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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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원 철학박사 강유원이 자본주의 체제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고전강의이다. 상황과 배경이야 물론 다르지만 강유원도 마르크스처럼 대학 밖에서 학문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연이야 각각이겠지만, 두 사람 모두 학계 밖으로 밀려나 ‘현실’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31쪽 참조).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현장감이 약동한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웬만한 회사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출퇴근 시간을 체크한다. 이게 회사의 모습이다(155쪽).” 이런 이야기는 대학에 재직하는 창백한 철학교수의 글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노동자(회사원)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저자의 글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골적 현금계산’(사람이 침묵하고 돈이 발언하는) 관행에 대한 서술에는 마치 피가 도는 듯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마르크스를 우상화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할 것까지는 없다. 저자 자신이 직접 독자들을 타이른다. 무슨 ‘빠’처럼 마르크스의 견해와 주장을 몇 줄 읽었다고 그 사람 책이라면 다 믿는다는 식으로 나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131쪽). 무릇 교이불권(敎而不倦)은 모든 선생 된 자의 미덕이 아니던가. 젊은이들에게 읽힐 책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반복할 필요가 있다.

강유원은 ‘독립인문학자’의 독특한 길을 걷는 우리 사회의 귀중한 역할 모델(role model)이다. 한 학기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반듯한 인문학 대중서를 제꺽제꺽 펴내는 그의 뛰어난 저술역량은, 변변한 저서 한 권 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상당수 인문학 교수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패거리 놀음에 취해 학내 폴리티킹에 전념하거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을 솎아내고 강유원 같은 유능한 인문학자를 ‘초빙’해줄 눈 밝은 대학경영자는 언제나 나타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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