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일종의 후기인데 번역할 때 어려웠던 점들
-참고할만한 사실들-그밖의 단상 혹은 감상의 순으로 적어 나갈까 보다.

 

 

번역

 

  1. 처음은 무엇이나 어렵다고,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드는 우리말 문장이 나오지를 않아서, 사물 주어를 뜻이 통하게 길게 풀어서 적어 봤다가, 완전 직역으로 해 보았다가 이것저것 후보 문장들을 늘어 놓기만 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important 혹은 development 라는 말들을 받는 여러 우리 말들을 사전에서 찾아 보고 나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문장은 덕 윤리학은 의 가장 중요한 발전이었다. 의 어쩐지 호응이 어색해 보이던 부분을 큰 발전이었다.’ 로 바꾸었고, 다음 문장에 반복되는 development 는 진전을 보았다의 의미로 받아서 옮겼다. (Entry Word: important  Text: 1 having great meaning or lasting effect important event in the history of medicine> Synonyms big, consequential, eventful, major)

 

2.       분야마다 acting, action, activity 를 서로 다르게 또 다양한 말로 옮기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act(ing)은 행동으로 경우에 따라 행위로, action 은 행위로, activity 는 활동으로 옮긴다는 기준을 적용한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의 역자설명에서 나온 내용을 적용했다. 사전에서는 action ‘act 의 집합적 의미라고 제시하고 있다. approach 는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데, 단순히 접근() 이라고만 반복할 수는 없어서, 때때로 연구(), 탐구(), 견해나 이론 등을 내용에 따라 적용하기로 했다.

 

3.       비철학전공자이고 윤리학에 관해 문외한이라는 조건을 나를 위한 공부로 삼으려고 한다. 가급적 아는 단어라도 일일이 찾아 보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검색을 통해 철학 분야에서의 그 말의 고유한 쓰임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한다. 

 

 

참고

 

1.       두 달간 번역연습할 때, 특히 용어나 개념을 맞게 옮겼는지를 확인할 때, 참고로 삼을 책들(사실은 갖고 있는 관련서가 이 뿐이다) 을 적어 본다:  [덕의 부활], 마이클 슬롯 저, 장동익 역, 철학과 현실사,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 싱어 저, 정연교 역, 세종서적, [정신의 삶-사유], 한나 아렌트 저, 홍원표 역, 푸른 숲

 

2.       책을 옮기고 공부하는 것이지 사람 보는 것 아닌 줄 알지만 Rosalind Hursthouse 의 사진을 한 장 올려 본다. (그는 현재 뉴질랜드의 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 왼쪽 옆은 [동물해방] 을 쓴 피터 싱어다. 그 옆 사진 속 인물은 Elizabeth Anscombe , [덕의 부활] 에 따르면 덕 윤리학의 역사는소크레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그러나 근대에 들어 자취를 감췄다의무 윤리학의 득세는 당연히 덕 윤리학이 가치 철학의 영역에서 망각되게 자리를 감추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시금 덕 윤리학에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앤스콤(G.E.M. Anscombe) 의 논문 “Modern Moral Philosophy”(philosophy, 1958) 이다.” 라는 문장과 함께 올린다

 

3.       전에 읽고 염두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 “타이틀러Alexander F. Tytler는 그의 저서 『번역의 원칙에 대한 소고Essay on the Principle of Translation(Edinburgh, 1791)』에서 다음과 같은 번역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번역은 원문의 내용을 완전하게 옮긴 것이어야 한다(내용에의 충실). (2)번역의 문체와 글쓰기의 방식은 원문과 동일한 성격이어야 한다(형식의 충실). (3)번역은 원작의 용이함을 지녀야 한다(번역의 기술적인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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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Virtue Ethics

 

Virtue ethics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development within late twentieth-century moral philosophy. Rosalind Hursthouse, who has made notable contribution to this development, now presents a full exposition and defense of her neo-Aristotelian version of virtue ethics. She shows how virtue ethics can provide guidance for action, illuminate moral dilemmas, and bring out the moral significance of the emotions. Deliberately avoiding combative stance, she finds less disagreement between Kantian and neo-Aristotelian approaches than is usual, and she offers the first account from a virtue ethics perspective of action, from a sense of duty’. She considers the question which character traits are virtues, and explores how answers to this question can be justified by appeal to facts about human nature. Written in a clear, engaging style which makes it acceptable to non-specialists, On Virtue Ethics will appeal to anyone with an interest in moral philosophy.

 

 

덕 윤리학에 관하여

 

덕 윤리학은 20 세기 후반 도덕철학 내부의 가장 큰 발전이었던 것 같다. 덕 윤리학의 진전에 주목할만한 기여를 해 온 Rosalind Hursthouse 가 그의 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덕 윤리학에 대한 완전한 해설과 변론을 내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덕 윤리학이 어떻게 인간 행위의 지침을 제시하고 도덕적 딜레마의 문제를 해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감정이 가진 도덕적 중요성의 의미를 분명히 해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호전적인 태도를 신중히 피해 가면서, 그는 칸트적 접근과 신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 사이의 불일치가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 적다는 점을 확인시키고,  의무감에서 벗어난  덕 윤리학적 행위관의 최초의 해석을 시도한다. 어느 성품들이 덕이 되는가에 관한 문제를 검토하고, 이에 대한 답변이 어떻게 인간 본성에 관한 사실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비전문가들에게도 만족스럽게 전달될 수 있게끔 분명하고 매력적인 문체로 씌여진 덕 윤리학에 관하여’ On Virtue Ethics 는 도덕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이 끌릴 책이다.    

 

 Introduction  

“Virtue ethics” is a term of art, initially introduced to distinguish an approach in normative ethics which emphasizes the virtues, or moral character, in contrast to an approach which emphasizes duties or rules (deontology) or one which emphasizes the consequences of actions (utilitarianism). Imagine a case in which it is obvious that I should, say, help, someone in need. A utilitarian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the consequences of doing so will maximize well-being, a deontologist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in doing so, I will be acting in accordance with a moral rule such as ‘Do un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 and a virtue ethicist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helping that person would be charitable or benevolent. Virtue ethics is both an old and a new approach to ethics, old in so far as it dates back to the writings of Plato and, more particularly, Aristotle, new in that, as a revival of this ancient approach, it is a fairly recent addition to contemporary moral theory.

 

서론

 

덕 윤리학은 하나의 기술 용어로, 처음에는 의무와 규칙(의무론)을 강조하거나 행위의 결과를 강조하는(공리주의) 윤리학의 접근과는 대조적으로 덕 또는 도덕적 성품을 강조하는 규범 윤리학 내부의 한 견해를 구별짓기 위해 소개되었다.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공리주의자는 그런 행위의 결과가 복리를 최대화 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고, 의무론자라면 남을 돕는 일에 있어서, 나의 행위는 도덕 규칙, 예컨대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와 같은 규칙을 따르게 될 것임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덕 윤리학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정 많고 친절한 행동이라고 강조할 것이다. 덕 윤리학은 윤리의 제 문제에 관한 오래되고도 새로운 접근이다. 플라톤의 저작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오래되었으며, 이런 고대 탐구법의 부활로서, 상당히 최근에 와서야 현대의 도덕 이론에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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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Virtue Ethics

 

Virtue ethics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development within late twentieth-century moral philosophy. Rosalind Hursthouse, who has made notable contribution to this development, now presents a full exposition and defense of her neo-Aristotelian version of virtue ethics. She shows how virtue ethics can provide guidance for action, illuminate moral dilemmas, and bring out the moral significance of the emotions. Deliberately avoiding combative stance, she finds less disagreement between Kantian and neo-Aristotelian approaches than is usual, and she offers the first account from a virtue ethics perspective of action, from a sense of duty’. She considers the question which character traits are virtues, and explores how answers to this question can be justified by appeal to facts about human nature. Written in a clear, engaging style which makes it acceptable to non-specialists, On Virtue Ethics will appeal to anyone with an interest in moral philosophy.

 

Introduction  

“Virtue ethics” is a term of art, initially introduced to distinguish an approach in normative ethics which emphasizes the virtues, or moral character, in contrast to an approach which emphasizes duties or rules (deontology) or one which emphasizes the consequences of actions (utilitarianism). Imagine a case in which it is obvious that I should, say, help, someone in need. A utilitarian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the consequences of doing so will maximize well-being, a deontologist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in doing so, I will be acting in accordance with a moral rule such as ‘Do un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 and a virtue ethicist will emphasize the fact that helping that person would be charitable or benevolent. Virtue ethics is both an old and a new approach to ethics, old in so far as it dates back to the writings of Plato and, more particularly, Aristotle, new in that, as a revival of this ancient approach, it is a fairly recent addition to contemporary mor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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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방에 딸린 북박이장 한쪽 구석에 봉해놨던 박스 두 개를 뜯었다. 무엇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 같기는 한데 그 왜에 대한 기억은 벌써 흐릿하다.   

 

지난 것들을 뒤적이는 일에는 별다른 시간이 드는 것 같다. 먼지나 구김만큼 내려 앉은  기억이 시간을 엉겨 붙잡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그날도 그래서, 나는 박스에서 꺼낸 몇 권의 책, 디스켓 통, 낙서 뭉치 같은 것들 사이에 낑겨져 있던 몇 개의 물건들 때문에 거진 하루를 맥놓고 보내야 했다. 책 위에 쪼그려 앉아 보는 누구도 없는데 보란 듯이, 낡은 엽서카드 한 장, 예전 연구실 프린터로 뽑았다가 죄 태웠다고 생각하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진 두 장, 그리고 책 한 권을 펼쳐 놨었다. 그리고 문득 어릴 때 살던 집 건너방에 있었던 다락 생각을 했다.  

 

그때 난 다락이라도 절대 두 말 안했다. 나 따로 있고 싶었으니까 군말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 테니스 시합 때 타오신 트로피, 각종 함들과 긴 돗자리 같은 걸 한 쪽으로 떠밀어 놓고 쳐박힐 수 있다는 사실에 기왕이면 삼각 모양 창문이라던가, 기왕이면 저 멀리 별이 보인다던가 하곤 거리가 먼 후미진 구석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서 나는 좋았다쿰쿰한 냄새까지 고스란히 떠올랐던 기억 속에서 나는 이제 처음으로, 다락에서 방까지 나 있던 좁은 층층이 아래에서 본 엄마의 경첩달린 길다란 옷 함과 그 안에서 내가 본 어떤 사연들을 기억해 낸다. 커가는 동안 날 떠나지 않던 것들이 별 것도 아니요 유독한 것도 아니라는 알아가는 밋밋한 어른된 삶에서 올록볼록한 비밀’ 의 열쇳말이 필요한 동굴이나 정원, 아니면 물레같은 그 시절의 기억에 새로 살이 붙었던 걸 보면 그날 내가 늘어 놓았던 몇 개의 물건에 꽤 큰 추억의 힘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저 하얀 책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두 해 하고 몇 달 전인데 2003 5 28일이라고 적어 둔 내 손글씨가 낯설게 느껴진다 싶게. 삼년 전에 인터넷으로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하얀 책이란 별명이 바로 생각났었다. 화면에서 봤을 때 보다 조금 길다 싶던 책을 받아 보았던 날 뿌듯했던 마음은 기억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어디다 쓸지를 몰랐다. 딱히 알고픈 것이 있어서 찾아낸 책도 아니고, 누가 이 책 좋다고 크게 권해서 사 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우연으로 스쳤다 할 글에서 철학을 권하던 어떤 이의 가슴에 감동을 준 책이었다는 감상평을 읽고귀에 고둥을 대고 바다를 들었다고 치는 식으로 구했던 책, 그 밖에는 마땅한 동기도 목적도 없었고, 그래서 표지만큼이나 멀겋게 곁에 둔 책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학교 다닐 때 안 친했던 철학공부를 건드렸다.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고 철학 수업만, 진득하니 앉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청강의 숫자만 늘려 가면서. 언제쯤 나한테도 번쩍하는 그 경이가 오나, 뭘 어떻게 하면 나도 그 탁월한 식견이 감지되려나, 뭘 만나면 나에게도 지혜를 연모하는 그 가심이 찾아 오려나, 나름대로 큰 꿍꿍이를 갖고서. 

 

 

어떤 것에 뜻을 두고 나면 세상은 그쪽으로 갈래가 잡히는 것이 아닐까. 철학학습에 뜻을 두고 난 뒤, 나는 나랑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들로 난 길목에서 어정거리는 느낌이곤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잘 하고 있다고 낙관하다가 털썩 무안해지기도 했다. 길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샛길에서 뻘짓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은 반복해서 날 창피하게 하지만, 그래도 가지 않은 길로 두고 끝날 수 있었던 내 미래를 상상해 보면 꿀꺽하고 삼키게 되는 안도와 다행스러움이 큰 것 같다. 한 십 년을 채울 때까지는 형편 닿는 대로 철학공부, 최소한 읽기를 계속해보자는 마음이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다.    

 

 

내 조건에 따라 철학수업 청강은 다음 학기를 끝으로 더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바람에 묘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학기엔 여태 들어 본 적 없던 과목 중에서 고르고 싶었고, 윤리학 수업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 하얀 책이 떠올랐다. - 하고 떠올랐던 것도 맞고 조금 마음도 짠하게. 뭐에 쓰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어디 뒀는지도 잊고 지냈던 책인데, 두 해쯤 지나 이젠 내 필요로 내가 원해서 전과 다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 

 

 

  지금까지의 청강 경험을 보면, 나는 절대로 읽어가야 수업의 기본이 된다. 문외한이고, 객관적인 환경이 낯설고, 그렇다고 재빠른 소통을 어디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수업을 듣지 말던가 아니면 절대로 미리 읽거나 준비해야 한다. 누가 쓴 무슨 책을 학습 중이냐, 누가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 따위는 내가 읽고 생각해갔느냐, 내가 사전에 좀 생각한 바가 있느냐의 조건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안팎으로 짠한 하얀 책을 학기가 새로 돌아올 때까지 예습하기로 결심했다남을 것은 이제 한 가지, ‘그렇다면 어떻게  

  

 

반대 쪽에서 세상을 살지 않아놓고서 그것을 말할 능력도 자격도 내게 없지만, 그래도 난 이 서재와 그것이 상징하는 어떤 것 또한 내가 철학함의 길목에서 얼쩡거리지 않았다면 관련 없었어도 좋았을 것, 그러나 이젠 관련 없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 것 중 하나라고 느낀다. 그리고 나에겐 지난 7월에 글 두어 개 끄적이다 관 둔 이 서재에 그렇게 내버려 둔 마음 하나가 있었다. 때가 오면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 그런데 나 혼자서 하고 싶었던 마음. 이제 그 마음을 여기까지 쓴 생각들과 하나로 묶어 본다

 

 

얄팍하게 남은 두 장의 달력이 비어가는 동안 스물 네 쪽 짜리 책 서론을 우리말로 옮겨 볼 생각이다. 어림을 해 보니 내일부터 이틀이나 삼일에 두어 문단씩 번역을 하면 크리스마스 즈음에 마칠 것 같다. 전혀 아는 바가 없기도 하고 번역을 목적으로 하려는 공부도 아니니까 책의 본론은 미리 생각 없음을 주지하고서, 번역연습 삼고, 예습 삼고연말연시 준비 삼아 시작해 본다. 남 앞에서까지 이렇게 써 놓고 하다 못하게 되는 날이면 무척 창피하겠지만, 창피할 줄 알면서도 하고 싶어서 그냥 할란다.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 몇 가지

 

 

-번역은 직역으로 한다. 그 이유는 첫째, 나는 비전공자이며 문외한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 일이 내 일상에 크나큰 부분이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세째 내가 옮겨 보려는 텍스트는 문학적 번역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나의 번역 실력이 너무나도 일천하기 때문에 첫 습관을 솜씨 부리기로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은 가급적 단어 대 단어로 옮길 것이다. 

 

-서툰 번역에 원문의 향취가 손상될 것 같다는 미리짐작은 원문을 함께 올리는 것으로 줄이려고 한다. 글을 올려도 많아야 두 세 분의 방문객 뿐인 후미진 서재라 그 점에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번역한 내용을 옮기는 날 이외의 날엔 검색이라던가 밑줄긋기 같은 방식을 써서, 현재로서는 막연할 따름인 윤리학의 제 내용들에 대해 다만 눈이라도 익혀 볼 생각이다. 하지만 내 현재 할 일들에 따라서 안 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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