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후기가 짧다. 전에는 번역문 거의 모든 부분에 후기를 남겼는데, 서문 지나 1 장 지나고 계속 가면서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텍스트의 흐름은 탄 것 같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후기는 계속 이렇게 짧게 기록해 가되, 모르는 건 너무 혼자 머리 뜯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건 질문 헌팅을 다니는 게 어떨까 싶다. 영어의 경우, 꼬부랑 말 하는 사람 천지니 뭘 고민이냐 할지 모르지만, 그게 또 아니다. 번역하면서 헛갈리거나 까다롭다고 느끼게 되는 많은 부분은, 물론 우선은 영문 파악이 잘 안 되어서 문제겠지만, 우리말이 깊지 못해서 그리고 텍스트가 기본으로 전제하는 개념에 대한 내 개념이 없어서;; 생기니까. 아마 막상 멍석이 깔리면 답답함만 확인하게 될지 모른다. 위 사진은 그래서...(라고 하고 lost in translation 사진도 찾았는데 나중에 prima facie 로 이미지 검색하다 재밌는 카툰을 봐서 그걸로 올렸다. 겉으로, 말만 그랬다고 대처를 놀려 먹는 그림 같다)

 

 

And, given the availability of the v-rules (particularly the vice rules), the specification (1) still provides action guidance.

 

물론 Still 여전히지만, 여전히 라고 옮기는 것하고 이전과 다름없이라고 하는 것하고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사전을 찾아 보고서야 이게 낫겠다 하지 말고 자동적으로 떠오르면 좋을텐데, 전문가들은^^ 아마 그런 게 되겠지.  

 

Perhaps it would be more irresponsible to abandon A than to abandon B. Perhaps, when she finds out about it all, B, unlike A,(2) loses any desire to marry the swine; then it would be plain folly, and arrogant into the bargain, to try to force her into marriage rather than the still compliant and loving A. Then marrying A would be the morally right decision.

 

(2) 는 기계적으로 옮기면 결혼하겠다는 어떠한 욕망도 잃었다 이겠는데 보다시피 어색했다. any all 의 의미로 의역하느냐, 아니면 lose nothing left 로 의역하느냐 생각하다가 후자로 했다.

 

Given the sorts of cases considered so far, a resolvable dilemma which arises in circumstances in which (3) a virtuous agent might well find herself will be resolvable by a morally right decision, and what is done, such as ‘x, after much painful thought, feeling deep regret, and doing such-and-such by way of restitution’ will be assessed as morally right. (4) Resolvable dilemmas which no virtuous agent would ever be faced with will also be resolvable by a morally right decision, but what is done will not be assessed as morally right. (This will be explored further in the next chapter in relation to rather different sorts of cases.)

 

(3) 은 좀 헛갈렸다. 저기서 그가 뭘 깨닫는게 당연하다는 거냐? 가 정확히 잡히지 않아서. 분명히 저 말은 그 앞의 situation in which 에 걸릴 테고, 그렇다면 그가 깨닫는 건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졌다는 사실일텐데, 어쩐지 그렇게 하면 어정쩡한 것 같았다. 직관적으로 이게 맞지 않을까 했던 것은 그 상황에서 생기는 딜레마를 안다 (또는 따라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무얼 어떡해야 할지를 안다)” 였는데, 그쪽으로 밀어 부치기에는 말을 두 다리 건너야 하므로 문법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차후에 변명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내 수준에서의) 문법 대로 해 두었다.

 

(4) 의 경우는 내용이 이해가 살짝 안 가서 기록을 남긴다. , 왜 그 어느 유덕한 행위자도 직면해 본 적이 없는 해결할 수 있는 딜레마의 경우, 그들이 그 상황에 빠지게 됐을 때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에 따라 해결을 볼 수 있으나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평가 받지 못하게 될까?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잘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러나 한 번도 그 상황에 처해져 본 적 없다는 것 말고는, 해결이 가능한 딜레마라는 점에서는 위의 경우와 같지 않은가. 이 부분을 잘못 읽으면, 마치 딜레마는 경험한 딜레마인 경우에만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식으로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헛갈렸다. 뒤에 가서 더 자세히 다루어 준다니 다행인데, 나는 이미 지금부터 네 챕터나 더 읽었는데 아무리 그때의 독서가 지금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지만 어찌 이리 투명한지? 싶어서 스스로 참..싶다.

 

withh respect to resolvable dilemmas, the deontologists’ strategy is to argue that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rules which has generated (5)the dilemma is merely apparent or prima facie.  

 

(5) ‘일별하기에는’ ‘언뜻 보기에는혹시 다른 숨은 뜻이 있는지를 검색하다가 사진 블로거들이 이 말을 애용한다는 걸 알았다.

 

According to her, too, many of the putative quandaries are merely apparent, resulting not from a conflict of deontological rules but from(6) too clumsy an application of the virtue or vice terms. Does kindness require not telling hurtful truths? Sometimes, (6-1)but in this case, what has to be understood is that one does people no kindness by concealing this sort of truth from them, hurtful as it may be. (An example might be a teacher’s telling a dedicated, mature student that, contrary to his hopes and dreams, (7)he was not capable of postgraduate work in philosophy.)

 

(6) 혼동하는 바람에 애먹은 부분. It is a “too clumsy application”  으로 봤었으면 풀렸을 텐데, too…to…로 착각한 바람에 꼬였다. 또 저 문장이 덕이나 악덕의 개념을 써서 문제를 풀기에는 난처한의 의미로 읽어버린 바람에 감함식으로만 자꾸 읽혀서 헛갈렸다. 나중에 그 아래 문장들을 읽다가 저게 저 말이었구나..하게 되었다. , “제대로 가르쳐 준 덕의 개념들을 잘못, 부적절하게 적용해서 딜레마인 것처럼 된 것이 문제그런 말씀이신 듯했다.

 

(6-1) 빼먹을 뻔했는데 이 말도 옮기기가 조금 까다로웠다. But in this case 를 뭐라고 옮기나. 이 경우만 빼고 는 아닐 것이고, 이 경우에 특히 도 아니고, 그렇다면 however in this case 일텐데, 내 의문은 굳이 왜 이 말을 썼을까, 이걸 사족이라고 봐야 하는지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법도 익혀 놓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지금까지 본문의 문장을 빼지 않고 (틀리는 한이 있더라도)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직역 중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뭘 추가하거나 반대로 빼거나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역이 아니고) 연습을 하나는 차원에서는 직역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조금 헛갈리거나 어려우면 제치게 되는 가능성 자체를 없애니까.

 

(7) not capable of 를 적나라하게 대학원 갈 실력이 못 된다, 능력이 모자란다 로 해야 하나(그래야 어떤 불가피한 외적 이유로 안 된다는 가능성을 지울 수 있겠다) 아니면 그냥 갈 수 없다는 으로 (이렇게 되면 내가 볼 때 더 부드럽고 자연스레 읽히지만 오해의 여지가 있겠다) 생각 하다가 전자로 했다.

 

Or, in a different case, the nature or importance of the truth in question puts the consideration of hurt feelings (8) out of court, and it is not unkind, or callous, to speak out.

 

(8) 자주 나오는데 좀체 안 외어지는 문구. 이번에는 되겠지.

 

Does charity require that I kill the person who would be better off dead but who wants to say alive, thereby conflicting with justice? (9)  Not if, in Foot’s words, ‘a man does not lack charity because he refrains from an act of injustice which would have been for some one’s good.It is important to note here that none of these judgments amounts the comparative importance of the virtues in question

 

(9)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그게 우리 말로 잘 안 풀어지던 부분. 저기서 which would have been for some one’s good 을 나는 act 에 걸리는 것을 보았고, 그런데 그 act injustice 한 것이고, 그러므로 행위자가 판단 내리기를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판단하고 그에 따랐고, 그런데 그런 사람을 그 이유에서 자비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런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고 읽었다. 이걸 말로 잘 풀기가 좀 어려웠다.

 

It is important to note here that none of these judgments amounts the comparative importance of the virtues in question; it is not being said that, for example, the virtue of honesty is more important than, or outranks, the virtue of kindness, nor that justice outranks charity. (I shall say more about this later)

 

위 문단은 번역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던져 주었다. 그게 가능한가? 만일 내가 어떤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런 내가 덕들은 결코 우열의 상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제하고 그걸 지속해 갈 수 있겠는가, 그런 전제 없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나, 문제의 해결,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 우선순위를 중요도로 정렬해서 좍 뽑고, 그 다음에 하나씩 지워 나가고 등등..이 너무 익숙한데..싶어서. 흥미롭고 매우 기대되고 그러나 벌써부터 좀 회의가 들기도 하는, 그런 생각들. 이 또한 뒤에서 더 가르쳐 준다고 하니 우선 넘어가자 하기는 했지만.

 

이 부분을 읽어 가던 때 수첩에 고정희의 시가 한 편 옮겨져 있다. 다시 보는데, 막 번역을 마친 뒤라 그런지, 그 맥락에서 그 시가 이렇게 읽힌다.

 

 

“(전략) 번이고 천천히 음미하노라면 (중략) 막막궁산 같은 어둠 어디쯤서
뿌린 씨앗들이 꽃피게 될런지요. 기우는 달님이 앞까지 따라와 안심하라, 안심하라, 쓰다듬는
열쇠를 끄르며 나는 웃고 맙니다고정희, 아름다운 사람 하나, 1990, 54―55



[1] P.Foot, ‘Euthanasia’ (1977; repr.1978),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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