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하얀 책 서문을 번역할 때 이틀에 한 번씩 두 문단씩 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거나 사전에 가늠을 하고서 그런 게 아니라, 처음 그렇게 해 보고 난 뒤에 그냥 그렇게 굳어졌다. 나는 두더지가 아니지만 어느 땐 그 수준이다 싶어질 때는 있다. 잠깐 정신 놓았다, 싶어지면 또 어느 틈에 삽질을;; 하면서 꾸역꾸역 파 들어가고 앉아 있는 날 볼 때가 있으니까.

 

이번엔..해 봤지만 역시 미리보기는 어려웠다. 얼마 정도 분량을 어떻게 해야 무난하고 무리가 없을까.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다 아는 소리 같으면서도 실은 각 장이 압축된 내용인지라 전혀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서문을 옮길 때에 비해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고, 번역도 서문 하던 때의 머리 뜯던 때에 비하면 숨은 쉬어 가며 하니까 좋았고, 혼자 눈으로나마 읽어 둔 내용이라 그때와 지금의 이해의 차이, 그저 나란 차이를 느껴가는 것도 좋아서 어느 틈에 1 장이 끝나 버렸다.

 

그래서 어제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두더지 잡기 놀이기구 상상을 하면서. 어떤 두더지는 이렇게 외쳤다.

지난 번에 10 번에 끝냈으니까 이번에도 열 번에 맞춰서 끝내라- 그 녀석을 따꿍, 집어 넣었다. 다음 두더지는 또 이렇게 외쳤다. 지난 번에 보니까 한 번에 다섯 문단씩 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다섯 문단씩 해라- 또 따쿵, 들어가게 했다. 제법 세게 튀어 오른 두더지는 이렇게 외쳤다. 이틀에 한 번씩 한 지가 어언 얼마냐, 그것만큼은 지켜라- 따따쿵, 걔도 제압을 했다. 다 됐나 싶어지려던 찰나에 구석에서 정말로 강력한 두더지 하나가 이렇게 외쳤다. 이게 어떤 책이냐, 무지하게, 허벌나게 열심히 해라-

근데 나는 무슨 수를 썼길래^^ 그 두더지는 따쿵도 안 하고 지가 알아서 기어 들어가게 했다.

(왜 이런 말로 시작을 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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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ilure to mention remainder in debates in applied ethics is, I think, usually (1) a deplorable oversight, (2) the results of the writers’ having committed at least one of several fallacies.

 

(1) 개탄스러운 간과-> 개탄스러운 태만-> 개탄스러운 부주의. (2)는 사실 잘 모르겠다. failure 를 복수로 받은 것인지. 

           

Sometimes it results from simply committing (3) the fallacy of  the false dilemma. The writers (frequently unconsciously) (4)take the dilemma to be ‘either x is the morally right act to do here (without qualification) and y is the one that’s morally wrong or y is the morally right act (without qualification), etc.’ They simply overlook the third possibility of, for example, ‘Well, they are both pretty awful, but (supposing the dilemma is resolvable) x isn’t quite as bad as y.’ 

 

(3)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는 전에 논리학 책에서 본 말이었는데 그게 뭔지 그새 까먹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았다. 논증에서의 오류들은 맞춤법 띄어쓰기 규칙들처럼 보면 다 맞는 말이고, 보면 다음엔 이거 안 틀릴 수 있어, 싶다가도 막상 실전이 되면 다른 소리가 되어 버린다. 반복하고 지적당하고 그러는 게 내 경우엔 제일 효과 좋은 처방인 것 같다. (4) 저자가 독자들이랑 참 편한 상태;;로 이야기하듯 글을 쓰고 있다는 감이 순간 왔던 말. 가끔씩 이렇게 casual 아님 informal? 한 말들을 보면 저자의 사진이 떠오르고 나도 한숨 쉬어 가게 되고 그런다.  

           

The unconscious assumption that, in any case of (5) moral dilemma or conflict, one side must be unqualifiedly morally right and the other plain wrong runs very deep in everyday thought, extending even to the cases in which the moral conflict is between two different agents.

(5) 아이쿠, 했던 부분. 지난 번에는 또 좋아하면서 “conflict problem” 을 상충됨의 문제, 상반됨의 문제로 하겠다고 했는데, 그 앞에 도덕적이란 말을 하나 붙이고 나니 도덕적 갈등이란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지난 번의 갈등을 지우는 게 아녔다는 뒤늦은 후회도 든다. 도덕적 갈등, 딜레마 상황의 갈등,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지난 번에는 그렇게도 말이 이상하게 다가 왔는지 모르겠다.

 

 I find it noteworthy (and deplorable) that, in some theatres where (6)David Mamet’s Oleanna was performed[1], a notice board in the foyer invited those who had seen the play to answer the question, ‘Who is right? Her or Him?’, and thousands of people signed up saying ‘Her’ or ‘Him’.

 

(6) 나는 이 연극을 연극으로 못 보았고 영화로 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글 검색을 해서 대강의 정보를 얻었다. 위의 그림은 여러 포스터나 사진 중에서 제일 의미가 다가오던 것이라서 올려 봤다.

http://www.drama21c.net/writers/mamet/ryuoleanna.htm

 

(7) 얼마 전에 리드미파일 님 사이트에서 her 를 번역할 때의 의견에 관해 읽은 기억이 난다. 소나기에서의 her 를 소녀가 아니라 그녀로 했다면 어땠겠느냐는. 그러고보니 으악스럽다. 그런데, 그와 함께 전에도 이미 적었던 소리지만, 나는 그네 그녀네 남학생 여학생이네 남자아이여자아니 그 자체의 구분이 (저자의 표현대로) will be blurred, 흐려지면 좋겠다. 한때는 일부러라도 그녀라는 말에 의미를 두고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한 일 이년 전쯤 친구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다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의문하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부득불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녀를 앞세워 표현할 이유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어떤 글에서도 그는 그냥 그, 사람을 칭하는 말로 쓰면 되는 것 같다.  

 

 

How could they have failed to see that the alternatives presented—she is right/(8)morally justified or he is right/morally justified—(9)so signally fail to exhaust the possibilities? Rejecting the forced choice offered by the notice boards, I wanted to say that neither was right, nor morally justified; I thought that they both behaved badly (though, (10)marginally, he as even worse than her).

 

(8)은 도덕적으로 정당한으로 하고 싶었는데, 정당화 되는의 의미가 강해서 내가 임의로 정당한 just 한 으로 바꾸어도 되는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사전에 나온 의미대로 했다. (9) 이번 번역에서 까다로웠던 부분. 우선은 exhaust possibilities 야 있는 가능성을 다 제시한다의 의미인 줄은 알았지만 관람객들은 왜 그걸 못했을까? 의 맥락에서 가능성의 규명 제시 이런 말이 좀 튀어서 어떡할까를 고르느라 좀 그랬고, so signally 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랬다. Signally notably 인데 그게 사실 surprisingly 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눈이 튀어 나오게 이렇게 할 수도 없고..내 어휘력이 좀 부족해서 옮겨 두고도 마음에 썩 들지 않은 구절이었다. (10) 도 같은 말이다. 근소하게라고 옮겼는데 미미하게로 할까 하다가, 그런데 미미하게는 정확히 말하면 insignificantly 이므로 서로 같다고 볼 수는 없었다.

 

Now it may be easier to see the fallacy in the Oleanna case because the forced choice (Which is morally right one?) is between two people, not two courses of action. My bet is that, if the noticeboards had asked ‘Who would you like as a friend, Her or Him?’, many more people would have (1) slipped between the horns of the dilemma and roundly said ‘neither’. (Moreover, my guess, borne out by conversations I have had with people about my rejection of the forced choice, is that those who signed up implicitly took themselves to be answering a question about a course of action: ‘If you had to back one of them, whom would you back, Her or Him?)

 

생각이 멈추게 되던 문단이었다. 맞다 맞어. 내가 꼭 그런데 하고 공감도 되고, 그러네, 질문을 살짝 틀기만 하면 많이 달랐었겠네 하게 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볼 줄 아는 사람하고 연극도 보고 대화도 하고 그럼 배우기도 하고 색다른 자극도 되고 참 재미있겠네그런 상상도 들고. (11) be in a dilemma=be on the horns of a dilemma=be put in[into] a dilemma 딜레마[진퇴유곡] 빠지다. Slip 이 굳이 사용된 것을 보아서 그 의미를 살려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딜레마의 문제로 슬그머니->슬쩍->무심결에 로 골라서 옮겼다. 

 

Why is the fallacy harder to see when the choice is between two courses of action? (12) At least in part because it is very easy to confound two different senses of the phrases ‘morally right decision’, or ‘right moral decision’.  Suppose we have a moral dilemma which is resolvable—x is worse than y. Then the decision to do y rather than x is, in the circumstances, the right decision. Moreover (supposing the decision to have been made on the moral grounds that x is worse than y), it is a moral decision, or one that has been made morally. So it is the ‘morally right decision’ or the ‘right moral decision’, and this is one way in which we use those phrases.

 

(12) 는 이번 분량의 punch line 인 줄을 알겠는데 약간 어려워서 몇 번이나 읽어 두었다. 나중에 반복해서 그 의미 혼동의 문제가 설명되기 때문에라도. 문제는 내가 그 첫 번째 방식의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에 대해서 조금 헛갈리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인데: x y 냐 를 따지고 더 나은 것을 고르면 그게 옳은 결정이요, 그런데 그 결정이 도덕적인 근거 하에 내려진 것이라면 도덕적인 결정, 고로 도덕적인+옳은 결정이라는 것이 첫 번째의 경우라고 (저자의 설명을) 이해했는데, 그 도덕적인 기준이란 것이 뭐냐? 에서 헛갈렸다. 뒤의 두 번째 방식을 보면 아주 막연하게나마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요한 건 행위의 결과가 성공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의 결정과정, 행위의 내용, 행위의 지향이 과연 도덕적으로 (덕으로) 근거 있는 것이냐, 그 점이 첫 번째 방식과 두 번째 방식의 차이가 될 수 있다는 소리 같기도 하고..;;;

 

 

 Now suppose we have a morally right act—a good deed. As such, it is an act that merits praise (13) rather than blame, and act that an agent can take pride in doing rather feeling unhappy about, the sort of act that decent, virtuous agents do and seek out occasions for doing (given the truism that ‘the virtuous agent does what is right’). They are the sorts of decision that decent virtuous agents make—and are praised for thus deciding, whether or not the act comes off. Suppose it does not (14)come off, well, that is a pity but still, we say, they made the ‘morally right decision’, the ‘right moral decision’; good for them. And here, we use those phrases in a second, different ways.

 

(13) not A but B 를 써도 무리가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왜 rather than 이라는 (약해 보이는) 구를 사용했는지 조금 헛갈렸다. 칭찬과 비난 자긍심과 수치심은 서로 거리가 멀다기 보다는 상반되는 극점들인 것 같은데 보다는 이런 식으로 번역하려니 어색했다. 그렇다고 그 어감을 무시하고서 가 아니라 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절충했다. – 하느니 를 한다. (사전에서 찾아 확인해 보고) (14) 이번에 외워 두기로 하고 용례를 찾아 본 숙어.

 

2. 거짓딜레마

 

공적인 논쟁에 사용될 때, 매우 효과를 얻는 오류가 거짓딜레마이다. 이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실제로 그 논증에서 제시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논증이다.

 

오류는 흔히 ~ 이거나 ~ 이다. 라고 표현되며, 해결 가능한 여러 종류의 답안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답안의 수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나는 유리컵을 깨뜨렸다.

나는 엄마에게 혼나거나 아빠에게 혼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꾸중을 듣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 채 결론을 내린 것이므로 거짓딜레마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흔히 '무지 논증'(Argument from Ignorance)이라고 하지만 무지(無知)
다는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부지(不知) 나은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여
논증 오류라고 적었습니다. 세상 모르는 것이 많은데서 비롯된 논증
오류라고도 있으나 사실 여부를 알지 못하는데 기인한 논증 오류라
생각한 것입니다.

1.
그릇된 딜레마

부지 논증 오류 그릇된 딜레마(False Dilemma)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합니다. 진정으로 A 아니면 B 경우를 딜레마라고 합니다. 경우
경우인지 논증을 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데 A
또는 B 여야만 하고, A 아니라면 B라고 하는 경우를 그릇된 딜레마라고
합니다.

요사이 선거로 시끄럽습니다. 어떤 입후보자가 "당신은 나의 선거 운동에
열심이 아니다. 반대편임에 틀림없다"라고 경우에 이는 그릇된 딜레마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내편 아니면 반대편이라고 사고를 해서 이런 오류
범한 것입니다. 귀찮게 여기는 선택도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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