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esolvable Dilemmas

 

(1) 해결 가능한 딜레마 // 해결할 수 있는 딜레마 둘 중에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다음 장이 irresolvable dilemma 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해결 가능한 해결 불가능한 보다는 해결할 수 있는 해결할 수 없는 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그 짝으로 정했다.

 

이번 기회에 resolvable 이란 말의 뜻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지난 번에 나온 말, a course of action처럼 이 경우도 결단의 (정작 부족한 내 어휘력 때문에 잘 옮기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할 것인지를 확고하게 의사 결정하다의 의미로 나와 있었고, 그것이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이라서 도움이 되었다. Resolve: (1) settle or find a solution (2) decide firmly on a course of action she resolved to call Dana as soon as she got home. N: Firm determination to do something

 

 

Still considering the reason people have for finding virtue ethics’ account of right action unsatisfactory, that it somehow fails to provide us with action guidance, we come to the (2) ‘conflict problem’.

 

(2) 는 서문을 옮기던 당시 머리를 뜯게 만든 구절이었는데 그래도 그 때로부터 시간이 좀 흘렀다고 그만큼 골치 아프지는 않았다. 갈등 문제라고 옮겼다고 기억하는데,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어색하고 감이 잘 오지 않는 모자란 번역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상충하는 요구 라는 의미로 상반됨 아니면 상충함 이 정도가 맞겠다.     

 

So virtue ethics lets us down just at the point (3)where we need it most, (3) where we are faced with the really difficult moral quandaries and do not know what to do.’

 

(3) where 이지만 when 으로 받아도 무리가 없는 관계사라고 판단하고, 용례 확인 후 그렇게 받았다.

 

 

(4) In the mouth of a hard-line act utilitarian, this is a (5)comprehensible criticism, for, as is well known, almost the only conflict that classical utilitarianism’s one rule can generate is the (6) tiresome logical one between the two occurrences of ‘greatest’ in ‘the 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

 

(4) (5) 는 시간이 살려 준 경우겠다. 너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시간과 여유가 큰 변수다.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쫓긴다 싶게 되면 꼭 하나씩 그 말 하나하나는 틀리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번역문이 되기도 하니까.

 

저 문장의 경우 맨 처음엔 강경 노선의 행위 공리주의자의 말을 빌면 이것은 이해가 가는 비판이다라고 옮겼다. 틀린 번역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가 분명치가 않았다. 그래서 강경노선을 취하는 행위 공리주의자의 논거에 따르면 이는 납득할만한 비판이다로 바꾸어 봤다. 조금 나은 것 같아서 넘어 갔다. 그런데, 조금 전 올리려고 다시 보니 아무래도 어색한데다 뭉퉁했다. 그 아래의 문장들을 다시 보다가 저기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더러 그게 그게 아니라고 공리주의자가 걸고 넘어지면 내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의무론자들이 그러고 나선다면 참으로 황당하다이 소리잖아?! 혼자 중얼거려 보았고 그래서 그렇게 받았다. “그래서 이것이 강경 노선을 취하는 행위 공리주의자에게서 나온 비판이라면, 그것은 납득할만하다.” 정도로.  

 

마지막 것이 제일 낫다는 스스로의 평가에 근거해서, 이 경우를 통해 직역이나 의역이냐를 칼같이 가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봤다. 직역(역자가 자기 임의로 원문 텍스트를 건드리지 않고 따라가며 하는 번역-내가 쉽게 정의한 것) 도 필요하다면 펼쳐야 하고 의역(역자가 자기 임의로 원문 텍스트에 첨삭을 발휘하면서 하는 번역)도 필요하면 원문에 국한해서 옮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번역은 결국 내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그런 내 이해의 표현과 전달을 돕거나 방해할 수는 있겠으나, 내가 이해한 것과 동떨어진 번역은 없겠다는 생각도. 번역이 반역인지 거역인지는 나로서는 좀 큰 주제인 것 같고, 번역이 내 이해의 깊이와 범위를 비추는 거울, 값비싼 거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이 말은 쉬운 듯 하면서 끝에서 헛갈렸다. Tiresome 이야 boring 인데, 막상 저 자리에 흥미로울 것이 없는이렇게 옮겼더니 좀 튀고,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지루한으로 넣었더니 그게 왜 지루한 논리문제인지를 내가 알지 못해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전에 나온 뜻대로 옮기고 만 방어적인 번역이었다.  

 

But it is strange to find the very same criticism coming from deontologists, since they are, (7)notoriously, faced with the same problem.

 

(7) notoriously 는 늘 악명 높다 의 의미만 떠오르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앞으로는 동시에 둘 다 떠오르라고 외워 보려고 했다. “–이 주지의 사실이다.” (부정적 의미에서)

 

So is it being assumed that deontology can solve the conflict problem in a way that virtue ethics cannot? Or does the objection reveal (8) (rather early in the day!) that it is only utilitarianism that gives us adequate action guidance and that the other two should be abandoned forthwith?

 

(8) 은 반반이다. 처음엔 다소 이른 감이 있으나로 했는데 괄호 앞과 뒤가 무슨 점강법처럼 논조의 약강으로 느껴져서,  아예 초장부터이런 뜻이 아닌가 싶어서 그것으로 했다. 둘 중에 하나일 것 같기는 한데 맞았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9) Before tackling these questions I must spend some time discussing the topic of dilemmas itself, for this turns out to be surprisingly complicated. I (10) shall also find it necessary to say some more about the phrase ‘right action’.

 

(9) 번역문이 길고 어색하다는 걸 알면서도, 두 문장으로 쪼갠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그대로 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10) 은 미래가 아니라 할 생각이다의 의미로, 확인 뒤에, 받았다.

 

 

DILEMMAS AND (11) REMAINDER

 

(11) 잔여로 받았다. 나머지로 할까 하다가 residue가 또 나오므로 그냥 잔여로 했다.

 

(12) Embedded in this literature is the important idea of ‘remainder’ or ‘residue’. Suppose there are irresolvable dilemmas and someone is faced with one. Then, whatever they do, they violate a moral requirement, and we expect them (especially when we think in terms of real examples) to register this in some way—by feeling distress or (13)regret or remorse or guilt, or, in some cases, by recognizing that some apology or restitution or compensation is called for. This—the remorse or regret, or the new requirement to apologize or whatever—is called the (moral) ‘remainder’ or ‘residue’. Even when a dilemma is resolvable, one moral requirement  clearly overriding the other, many writers want to insist that it is resolvable only ‘with remainder’; (14)the overridden requirement retains its force in some way, so regret, or perhaps the recognition of a new requirement, are still appropriate.

 

(12) 전에 이 embedded 를 우리 말로 적절히 받아 놓은 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강유원님 사이트였지 싶은데) 어디서 봤는지는 알겠는데 정작 그게 어떤 말이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심화되어서 내재되어 있다로 생각했고, 막상 그렇게 옮기니 무겁다 싶어서 심화라고만 했다. ‘파묻혀 있다그대로 하자니 좀 튀고.

 

(13) 이 둘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 막 보고서 그런 의문이 들었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해 두자는 생각에서 이것저것 찾아 보았다. 영한사전을 보면 후회의 범주에 든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유감, 후회 그리고 후회와 죄책감. 영어사전을 보았더니:

 

[regret] feeling sad, repentant, [remorse] deep regret or guilt for a wrong committed. 이렇게 되어 있다. 이걸 놓고 보면, remorse regret 보다 강도가 더한 말이고, 잘못을 했음을 알고 그에 대해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후회와 책임감을 느낀다 이고 regret 은 그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안타까워 하는 감정 정도로 정리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느낌을 받고 싶어서 두 말을 열쇳말로 넣고 용례 검색을 했다. 맨 위에 올린 그림과 글은 거기서 본 것인데 키에르케고르가 저런 말을 했는 줄이야 전혀 몰랐으므로 덕분에 하나 건졌다고 좋아했다. 어디서 똑 따온 저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가가 문제이긴 하겠다. 아무튼 유감은 전향성을 죄책감과 자책은 성찰과 과거를..정도로 선을 그어 봤다.    

 

(14) 이 문장이 이번 분량에서 옮기기가 가장 골치 아팠다. 대략 나는 이 문장을 예컨대 정의와 연민이 상충할 때, 그러나 후자가 약하고 전자가 분명히 강력한 상황일 때, 나는 우선되는 정의에 따라 행동을 할 수는 있었으나,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바로 그 결정력이 나로 하여금 연민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후회하게 만든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새롭게 요구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연민을 따르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 등은 비록 우선되는 원칙에 따라 행동이 종결된 뒤라도 여전히 적절한 경우라 할 수 있다정도로 읽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한 것과 막상 번역해서 옮긴 문장 사이에 틈이 있어 보인다;;  

 

On the other hand, there is an even larger body of literature in applied ethics on ‘hard cases’ (which are also called ‘dilemmas’) such as (15)infanticide in the case of handicap, or abortion in the case of rape, or lying to the person in intensive care about the fact that she is the only member of her family to have survived the car accident, and so on. And a remarkable fact about this second body of literature is that it rarely, if ever, takes any notice of the first.

 

(15)는 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같은 예로 취급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문이 들었다. 

 

Those who contribute to it (a) rarely even entertain the possibility that the dilemma they are discussing is irresolvable; on the contrary, they assume that there must be one, correct, decision to be made about it which it is the business of their moral theory—usually utilitarianism or deontology—to reveal or discover. And (b),(16) concentrating exclusively on the question ‘Which is the right act in this case, x or y?’, they fail to say anything about ‘remainder’ or ‘residue’. Both (a) and (b) require discussion, and I shall begin with (b), leaving (a) until the next chapter.

 

(16) 도 늘 배타적의 의미만 떴는데 이번 기회에 오로지 만 한다도 하나 추가해서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 틈에 읽었다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이번과 다음 챕터는 생각할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주어진 같은 시간에서 무엇에 더 열심이어야 좋을지. 옮기는 일인지 아니면 그 생각할 것들인지. 어느 쪽이든 그건 같다. 나는 아마 지금 이 책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on virtue ethics란 제목의 책 하나를 의미하려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의 현재를 이렇게 할애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 위 그림에 담은 몇 구절을 보면서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나도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거스르지 않고 무리 없게 좀 더 해 가다 보면결론은 늘 이런 식이다. 모르니 조금 더 가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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