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should we say that those who have given up the original idea ‘reject the idea that ethics is codifiable’ (1) as, it is said, virtue ethicists do? Clearly, they share with virtue ethicists the view that ethics is not as codifiable as used to be commonly supposed, but there is still, I think, (2) a lingering view that it is, or ought to be, more codifiable than virtue ethics makes it out to be.  

(1) 은 as 이고, 나는 as 의 경우는 나올 때 마다 그냥 넘기지 못하게 된다. 크게 보면 많은 차이를 낳지는 않지만, 미묘한 뉘앙스가 많이 달라지니까. 이번 경우에서는 in the way of 의 의미라고 보았고, 그렇게 옮겼다. (2) 는 lingering view 를 the view is lingering 으로 풀어서 받았다.

 (3)Principles                                          (4)Corresponding Virtues

            Respect for autonomy                 Respectfulness

            Nonmaleficence                                     Nonmalevolence

            Beneficence                                           Benevolence

            Justice                                                  Justice or fairness

Rules   

            Veracity                                                 Truthfulness

            Etc.[1]

 (3) 여기서 일단 내 어휘력 닿는 대로 옮겨 놓고서, 올리기 직전에 혹시나 하고 확인검색을 해 봤다. 확인 검색은 찜찜하거나 어쩐지 싶은 것들의 경우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고, 맞기는 맞을 줄 아는데 싶은 것들은 시간이 되면 한다. 이 경우는 두 번째였는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저 네 원칙이 윤리학의 기본원칙이거나 그 정도로 당연시되는 네 개의 원칙이었던가 보다. 아래에 링크에서 위 내용 모두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에도 느끼지만, 온라인 검색이 잘 되지 못했을 때는 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싶다. 그래서 현재의 실수를 그때랑 똑같이 평가해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지금은 정말 많은 실수를 걸러낼 수 있다. 그래서 번역자에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도록 배려가 필요한 것 같고, 동시에 번역자가 독자들 무서운 줄도 알아야겠고 그런 것 같다.

링크 누름

  (4) 의 경우는 일치하는 덕으로 할까 상응하는 덕으로 할까 하다가, 후자로 했다.

Much invaluable action guidance comes from avoiding(5) courses of action that are irresponsible, feckless, lazy, inconsiderate, uncooperative, harsh, intolerant, indiscreet, incautious, unenterprising, pusillanimous, feeble, hypocritical, self-indulgent, materialistic, grasping, short-sighted, … and on and on.)[2]

이 부분의 형용사들을 잘 보고 있으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열거된 이런 행동을 피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은 좋은 행동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 항상, 한결같이 이런 행동들을 피할 수 있으려면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비단 어떤 성향만으로는 아니 되는 줄 알겠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까지는 규칙을 정해서 그에 따르게 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줄도 알겠다. 문제는 여기서 나는 다시,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기피를 확실히 가능케 하고 이런 행동들을 욕구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어떤 것, 아마도 즉 덕, 그게 무엇인가? 라는 기본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저자를 잘 따라 가다 보면 어딘가 어느 쯤에서 합쳐져서 묶이는 내 답이란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생각의 불은 켜 두되 우선은 잘 뒤따라 가 보기로 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저 위 형용사들을 모두 붙여서 확인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성격심리학 혹은 인성심리학에서 이러저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링크누름


 (5) 내가 알기로, a course of action 은 아주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된다. 그런데 우리 말로는 영어에서 받는 그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래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은 영문을 옮겼는데, 나는 말로써 전달해야 할 이 구절의 중요한 지점이, “누군가가 여러 대안 중에서 어떤 행동(들)을 “판단/선택/실행” 해 가는, 일종의 의사결정의 과정”, 이라고 생각한다. A means available to the decision maker by which the objectives may be attained. A systems analysis usually considers several possible courses of action, which are then referred to as alternatives or as the decision maker's OPTIONS. 우리말로 옮겨진 용례를 보면, 행동과정, 행동노선, 행동방침, 행동계획 등등인데 어떤 것으로도 그 느낌을 잘 못 받겠고, 나라고 해서 뾰죽한 대안도 없다. 행동결정의 과정? 그 정도면 될까..

What else might still be at issue? A prevailing criticism of virtue ethics, related to the idea that it gives up on codifiability too soon, that it does not codify enough, is that it fails to provide action guidance when we come to (6) hard cases or dilemmas. So it is to a consideration of virtue ethics in relation to hard cases—a surprisingly (7) large topic—that we now turn.

(6) 단순히 난제라고 해 버리기 전에 윤리학 분야에서 통용되는 어떤 말이 있지 않나 확인을 해 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그냥 썼고 (7) 은 dense 하다의 의미 deep 의 의미 extensive  또는 broad의 의미가 다 잇을텐데 그 중에 뭘로 할 지, 문장의 정보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 큰으로 두루뭉수리하게 받았다.

(8)[1] Some virtue ethicists might want to insist on a strong correspondence between the virtues and the vices; not only that to each virtue there corresponds at least one particular vice but also that every vice is opposed to some particular virtue. Of course one can, formally, insist that to laziness there corresponds the virtue of being the opposite of lazy, which happens to lack a word in English (‘industriousness’ doesn’t really work); more plausibly one could claim that describing someone as ‘responsible’ in a (8)character reference describes them as having a particular virtue for which we have the adjective but not the noun. But I do not myself believe that things are that tidy.

(8) 이 각주 내용은 흥미로웠다. Character reference 를 나는 어떤 공식적인 (예를 들면 reference letter 가 필요한 맥락의 reference of character 로 보고서 취직하는데 왜 성격평가추천서 그런게 필요하나 의문이 들었다. 다시 읽어 보니, 그냥 일반적인 의미에서 in everyday talk,  누군가의 성품을 놓고 말한다 그때 누구를 어떻다고 묘사하면..이런 의미인 것 같아서 그렇게 옮겼다. 

 * * * * * *

이렇게 해서 1 장이 끝났다. 다음으로는 “해결이 가능한 딜레마” 가 이어진다. 서론을 옮겨 가던 때에 비하면 속도도 붙고 걱정이나 어려움도 덜한 걸 느낀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혼자 느낌일 뿐이고 혼잣말이라서, 그냥, 앞으로도 계속 해 보겠다는 말 말고는 딱히 적을 말이 없는 것 같다.

전에, 격려차, 로쟈님께서 번역서 나오냐고 물어 주셨다. 그때 ‘곧’ 은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는데, 나한테는 아무런 다른 생각이 없다. 딱 한 가지 말고는.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게 언제가 되건, 책을 쓴 저자와 대화를 한 번 해 봤음 하는 생각이 있다. 전에 발견한 (내가 생각할 때 분명한) 타이프 오류 같은 것들을 모아서 보내는 알림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저 책 잘 읽었습니다 정도의 감상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나는 내심, 그 보다는 어떤, 뭐랄까 당신의 책을 읽고 난 나의 생각은..이러고저러고 후기를 하나 써서 보내 봤으면 하는 상상이고 바람인, 그런 게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옮기기도 하되, 더불어 생각이란 걸 하고, 따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만의 의문이란 것이 들어 차야 하고, 책을 읽어 갈수록 다듬고 그래얄텐데…를 생각하면 다 관 둬. 고개를 숙여..그런 생각만 난다.

사진은 저자의 이름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서 찾은 것인데, 2005년도에 철학자들이 학회를 (Curio Bay 라는 곳에서) 했는가 보다.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신 듯, 모두들 한 사진 하는데 거기서 가져 왔다. 펭귄 사진은 소제목이 Bay 의 철학자들 이라고 되어 있길래 재밌어서 가져 왔고 저자는 예전 사진에 비하면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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