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Wheat Field with Cypress 1889



Cypress Trees 1850-1990

  

 

누구나 한 주에서 특히 어떤 일이 잘 되는 날이 있을테고, 그것이 비단 자신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않을 때도 없지 않겠다. 그런 점에서 오늘 작업은 우선은 평소보다 한참 늦게 시작하게 되었고, 내 상태도 썩 좋지 못해서 아무래도 건너뛰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옮기다말고 했었다. 과장하지 않은 이유가 있으니 그리 하자 싶었는데, 그렇게 맘 먹고 난 뒤에 찾아온 여유에 '그런데 실은 괜한 내 선입견만 아니었다면 오늘 작업은 모든 것이 수월했고, 어쩌면 평소 바란대로 간소하게 마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반전이 나에게는 퍽 의미있어서 적어 본다. 

 

노래는 로이 뷰헤넌의 곡이고 그냥 생각났었다. 그의 the Messiah will come again 은 생각은 났어도 들어 본 곡이라 들어보지 않은 노래를 찾아서 하면서 듣고 올렸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79969

 

그림은 본문에 나온 cloud 에서 떠올렸는데, 그가 파이프 담배를 피운 것이야 알고 있었는데, 그 별밤 그림이 이런 일상의 모습에서 나온 줄은 몰랐다. Vincent van Gogh said "The best paintings are the ones you think about before bedtime, while smoking your pipe". He said this about his painting of the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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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몇몇과 논란이 되고 있는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진위 문제를 이야기 해 볼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깊이 논조와 어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우리에게 비언어적인 소통이 있듯이, 언어적 소통에서도 또한 어감과 어조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그 다른 의견을 풀어가는 논조, 골라쓰는 말과 동원되는 은유들이 훨씬 더 듣고 있기 거북하고 반감을 일으켰었다. 그때 지금 내가 해 보는 이 일 생각이 났다. 직역이건 의역이건, 정답이 없는 맞는 번역의 문제에서 겸손함과 신중함이 나에겐 이유고 미덕이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번 번역문은 (까다로워서) 시간도 정말 많이 들었고 세심하게 한다고 했는데 정작 번역문을 책의 배열에 따라 합쳐서 올렸더니 후기 쓰면서 다시 읽고 대조하는 데 불편했다. 나중에 묶거나 하게 되면 책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고, 지금 과정에서는 나 편하게 문단 나누고 기록을 남기고 할 생각이다.

 

 

역시 지난 번 일 관련해서, 우연히 웹의 글 하나를 읽다가 책임귀속의 문제라는 설명을 봤다. 논의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색함 없이 이 말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그렇다면 본문에서 푼 말을 (ascription of moral responsibility) 를 도덕적 책임귀속의 문제로 해도 되겠다 싶었다.

 

 

 

 

1.       (1)This brings me to a fourth thing I do not so much import from Aristotle as find him hospitable to, namely a (2) philosophical psychology which runs counter to the prevailing contemporary view. 밑줄친 부분은 영 어색해서 결국엔 좀 기술적으로 이것이 네 번째로, 로 끊어서 썼다. 몇 번째냐 보다는 그 이하의 내용이 중요할 것이고 그쪽으로 시선이 가게 하면 맞으리라는 생각에서 괜찮겠다 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Namely 의 경우 소위라고 했다가 즉, 다시말해로 옮겼는데 이 두 말은 자주 혼동한다. (2) 에 대해서는 이 말을 심리철학이라고 옮겼다가 혹시나 해서 웹문서 검색을 한 뒤 철학적 심리학이라고 바꾼 말인데, 그 개념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보니 두 말이 서로 교환가능한지 알 수 없다. 다음의 용례를 보면, (현대심리철학 세미나(Seminar in Modern Philosophical Psychology). 철학적 심리학(Philosophical Psychology) 3학점 ::  의식의 이론들, 심신관계의 문제, 지향성의 분석, 행위의 본질, 인격 동일성의 증명, 타인의 심리상태의 존재 심리의 문제를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관점에서 다룬다. 특히 심리상태와 행위의 경험 논리적 관계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며, 이러한 설명과정에서 합리성과 인과성의 개념이 분석된다. 신념과 욕구와 의도의 관계가 규명된다.) 대학의 교과목에서도 용어통일을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이는데

 

 

3.       In contemporary philosophy of action, there is a fervid debate about whether any intentional action must be prompted in part by a desire, or whether it is possible to be moved to action by a belief-such as the belief that doing so-and so is morally required-alone. 이번 작업에서는 ‘so’ 였다. 아래에서 많이 헤맸고, 여기서의 so 도 처음 생각대로 그도 그렇다  로 하기는 했지만 사전의 so 를 여러 번 펴 읽었어야 했다. 철학과의 심리철학 혹은 철학적 심리학 교과목 소개에서 action 을 대개 행동이라고 해 둔 것을 보고 앞으로는 행동으로 통일할까 싶다.

 

4.       The debate all takes place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assumption that belief and desires are as different (1) as gold and oxygen, and usually also the assumption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rational and the non-rational is equally hard and fast. But Aristotle is happy to describe ‘choice’ (prohairesis) as either desiderative(2) intellect or intellectual desire; it belongs to both the (3)cognitive and the conative faculties and is not to be broken down into two bits, a belief and a desire. 좀 우스운 기록이 될 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저 문장의 금과 산소가 왜 한 쌍이 되었어야 했을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숨어 있는가 싶어서 검색도 해 봤지만 발견하지 못해서 옮기고 말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택의 경우, 웹에서는 대체로rational choice prohairesis 를 받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고 이렇게, 달리 해석하고 설명하는 듯해서 번역하게 된 덕분에 특별한 기분이다 싶었다.

 

5.       밑줄 친 cognitive 의 경우 인지적인의 의미가 가장 앞서 있는 줄 알았지만 여기서는 의욕적인의 conative 과 쌍을 이루는 편이 좋을 것 같았고, 그러나 여기서 이성적인 이라는 말을 쓰기엔 cognitive 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길래 정신적인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조금 전 영영 사전을 확인했더니the act or process of knowing including both awareness and judgment; also : a product of this act 로 되어 있어서, 대구도 좋지만 그냥 인지활동의로 제 말로 옮길 것을 그랬나 싶다. (2) 의 경우, 나는 지적인 지성적인 이라는 말 대신 이성적인 이라는 말을 썼는데 아래의 글을 보았더니 그대로 지적인이라고 해도 괜찮았는가 싶다. 하지만 그 용어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rational 의 의미는 지적인 보다는 정신적인 혹은 이성적인 쪽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6.       6 ) 덕론(德論): 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을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의 수행으로서 또한 극단간의 중용으로서 대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개념을 인식할 있는 다른 방법은, 각각의 덕목을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성적 통제의 산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결합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인 측면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식물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도 포함된다. 덕은 이러한 본성상의 여러 능력들에 대한 거부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인간은 자신의 모든 능력들,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모두를 사용한다. 하나는지적(知的)”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도덕적기능으로서 각각은 나름대로의 덕을 가진다. 따라서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7.       Moreover, when he describes the soul as ‘part rational, part irrational’, he does not think it matters to which part we assign the desiderative. The ‘vegetative’ part (the cause of nutrition and growth in living things) is definitely irrational; and the theoretical is definitely rational. But the desiderative can be regarded as irrational, because it can run counter to reason, or as rational, because it is receptive to reason. There is no answer to the question ‘Is it rational or irrational tout court?’; all there is to be said is that it is irrational in this way and rational in that. 여기서부터의 내용은 사실 영문 번역에 초점을 두면 슬슬 옮기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난 공부중이기도 하지..하는 생각에 노트도 좀 펴 보고, 웹으로 그림도 찾아 보고 했다. 그 점에서 밑줄 친 부분은 옮기는 문제는 없었으나 그 의미에 대해 의문이, 이 말이 무슨 뜻일까를 잘 알고 싶다는 아쉬움이 좀 남았다.

 

 

Calculative -- Intellectual Virtue

Rational

 

 

Appetitive -- Moral Virtue

Irrational

 

 

Vegetative -- Nutritional Virtue

 

 

 

8.       To anyone sympathetic to the writings of the later Wittgenstein, such rejections of clear-cut distinctions in philosophical psychology are as natural and necessary as breathing. Such philosophers are in a minority at the moment, and it is no part of my brief in this book to try to convert the philosophical world to the minority view, much as I would like to do so. 어제 타이핑을 하다 여기,비트겐슈타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 그리고 아래의 한 문단이 그 말로 은유되는 것을 다시 보고서 그만 우뚝해 버렸다. 아마도 내겐 아리스토텔레스도 간신히 그게 어떤 사상인가보다..정도인데 전혀 아는 바 없는 비트겐슈타인-어디선가에서 주워 듣듯 아는 정도 뿐이므로- 이라니!’ 하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일단 그렇게 눈에 무엇인가 씌워지고 났더니 사람 마음이 얄팍해져서, 오늘 밤늦게 조용한 시간이 마련되기까지 이리저리 핑계를 대듯 책을 안 펴게 됐었다. 보면 뭐하나 알지도 못할 걸..식으로.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그래가지고 뭘 알겠다고(공부란 알고 싶은 마음의 자연스러움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말하면 뭘 공부를 하겟다고 그러나..) 식의 마음이 들어 안 좋았다.  

 

9.       But it is still worth coming clean about it at the outset, to remove one further stumbling block. I have found when teaching virtue ethics to graduate students, or discussing papers by, in particular, Anscombe, Foot, and McDowell with fellow philosophers, that what often blocks understanding is the unconscious assumption that everyone shares the view that, for example, beliefs and desires are natural kinds, or that a reason is a belief/desire pair that causes an action, or that all mental states are brain states-or, more generally, that philosophy is supposed to uncover or construct the foundations of our thought. Natural kind 를 나는 그저 자연적인 것이라고 옮겼는데 그 전에 얼핏, 이 말을 타고난의 의미인 천부적인 것으로 봐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확인을 거치지 못했다.

 

10.    Struggling to square these assumptions with what is said, the audience finds what is said deliberately obscure or willfully incomplete, or inconsistent, or open to such blindingly obvious objections that they think they cannot have understood. Sometimes-not always, of course-(2) the cloud lifts if one says, ‘But you don’t believe that so-and-so if you’re Wittgensteinian.’ What follows then is not necessarily agreement, but at least an understanding of just where the disagreement lies. (1) 에 대한 내 의문은 문장 내의 what is said 의 주체가 누구인가? 였다. 위에서 이어지는 문장이므로 구조상 미루어 짐작해서 당연할 거라고 전제한 것들과 달리 실제 철학자들은 등등등의 주장을 하고 있고 따라서 독자들이 헤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로 봤고 그렇게 옮겼다. , 나는 그 소수에 해당하는 철학자들이 이성/욕구 사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던가 등을 말하는 것당연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의 가정으로 봤다. (2) 는 완전히 다른 번역을 냈다가 고쳤다. 처음 ‘cloud lifts’ 를 내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lift 란 말 뜻에 매여 ‘(그렇게하면) 더더욱 뜬구름이 된다로 봤고, 그 이하의 문장은 나름대로는 so if 를 동사가 생략된 so do I 로 봤고, à 고로, 넌 다른 생각이로구나,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이라도 그랬을거야. 이런 식으로 자기들만 알게 말해주고 말면 뜬구름만 더 높이 떠올라간다 (이제는 쓰자니 좀 우습다) 로 했다. 거의 마지막까지 자연스러운 번역은 아니지만 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쩐지 서문의 말미로 가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누군가의 눈에는 감정적으로 읽힐 수 있는 저런 말을 과연 했을까? 싶어서 다시 들여다 보다가 lift 의 말에3 <구름 안개 > 개다, 걷히다 The darkness ~ed. 밝아졌다 가 있는 걸을 보고선 고쳤다;;;

 

11.    at least 도 다른 몇몇 말들처럼 어느 하나의 의미에 고착되어 있는데, 이번에 저 문장에서는 최소한의 뜻이 아닌 것 같아서 사전을 펴서 아래를 읽고, ‘여하튼, 그렇게 아니라의 의미를 확실히 하고서 옮겼다. at (the) least; at the very least 적어도, 최소한. ¶ You might at ~ apologize. 적어도 사과 정도는 만하지. 여하튼, 아무튼; 아마도. 그런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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