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lind Hursthouse with Frank Jackson, 2002

 

 

지난 번에 이어 이번 작업에서도 저자의 철학함이 잘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어서 이 사진을 찾았다. 사진만으로는 그가 동료 교수와 대화 중인지 (설마) 논쟁 중인지는 잘 모르겠다.

 

 

본문 끝에 덧붙여 쓰는 것도 후기고 뒷날의 기록도 후기라고 하니, 두 번째 뜻풀이를 따른다고 치고 그냥 넘어갈까 했던 한 가지를 독백삼아 적고 가야겠다. 지난 번에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연상했다고 하면서 루 리드의 노래를 올렸는데, 다음 날 그 영화엔 루 리드의 노래가 실제로 흐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에구구 했었다.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것들은 서로 연상이 되고 나면 다음에도 마치 서로 실제의 관련이 있는 것처럼 떠오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에도 한 번 착각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인천 바다 근처를 배경으로 깔깔거리며 걷던 아이들이 느린 화면으로 떠올랐고 그 분위기가 트레인스포팅 트레일러에서 흐르던 루 리드의 perfect day 와 하나인 것처럼 연관이 되었다는 거..;;

 

작업량을 조금 늘려 봤다. 처음에 그리 정확하지 않게 대강 스물 다섯 번 쯤으로 해 두었는데 찬찬히 다시 보니 지금처럼 가면 스물 여덟 번 정도가 돼야 서문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가능하다면 한 문단 정도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 보다가 시간이 부족하거나 본업을 위해 써야 하는 공부시간을 뺏긴다 싶으면 횟수를 늘이는 것으로 하고, 그렇지 않다면 원래대로 스물 다섯 번을 채우고 마칠까 싶다.

 

아래는 옮기면서 들었던 노래. 한 이 년 전부터 이맘쯤이면 Fogelberg 의 노래 한 곡 정도 찾아 듣게 된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7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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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작업에서는 단어 하나의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그 의미가 (혹은 어감이) 달라지는 것 같은 경우 그것을 어떡해야 하는가, 즉 원문의 순서대로 풀어가는 것이 적절한가 아니면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어순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몇 번 고민을 했다. 그런 고민의 흔적이 비단 이번 작업 뿐 아니라 앞으로의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록으로 잘 남기고 싶은데 잘 될런지 모르겠다.

 

 

  1. I used to be much more combative and eager to argue that virtue ethics was not only a rival to the other two approaches but the best, and was able to solve or avoid problems that the other two were committed to finding intractable.  번역문을 올려 놓고도 이 부분 때문에 한참을 생각했다. 무엇이 헛갈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마 문법파악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싶은데) 문장 뒷부분의 밑줄 친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의 선행사 problems 가 있는데, 그래서 that the other two were committed to 까지로 하고 끝나는 문장이라면 될 것 같은데, finding intractable 이 붙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problems 와 동격을 이루는 절로 보고서 했고, 그러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whose finding is intractable 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고, 아니면 avoid +problems +(from) finding intractable 아닌가 해 보기도 했지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첫 문장에서부터 막혀서 좀 골치가 아팠다. 내일쯤 다시 보면 너무 쉽게 풀릴 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의문 부호만 자꾸 생긴다. 결론적으로는 그 부분의 번역을 빼고 올린 셈이 됐다 

3.       While (1)virtue ethics was not generally recognized and (2) was being dismissed, I think that was the right tactic, and one powerfully pursued in Slote’s From Morality to Virtue. 먼저 (1)의 경우, () 덕 윤리학은 전반적으로 혹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았다가 직역인 것은 알겠는데, 그 문장을 예를 들어 () ‘일반적으로 덕 윤리학은 인정받지 못했다로 바꾸면 얼핏 같은 말 같으면서도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서 헛갈렸다. 앞선 번역이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체 도덕 철학 분야에서 본다면 덕 윤리학의 그때 위치라는 것은 주목도 잘 못 받고 인정해 주는 세력도 별로 없는 처지였다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의 내 해석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가정할 경우 () () 모두 맞는 번역이 되는 것인지 좀 의문스러웠다. 이 점은 뒤에서 조금 더 분명하게 헛갈려졌다.(이런 말은 좀 이상하지만…)   

 

4.       (2) 의 경우 dismiss 라는 말의 여러 의미 중에서 적절한 것을 고르느라 골치 아팠다. 그 말은 퇴출이라는 뜻도 되고, 무시당하다는 의미도 되고, 잊혀진다는 의미도 되는데 나는 처음에는 미미하게 취급되는 혹은 무시되는으로 말을 썼다가, 문맥상 인정받지 못해서 (그 결과로) 잊혀지고 있는, 혹은 퇴출 중인 쪽으로 말을 바꾸었다.

 

5.       I think that was the right tactic, and one powerfully pursued in Slote’s From Morality to Virtue. 이 문장도 밑줄 친 that 때문에 서너 번도 넘게 말을 바꾸었다. 나는 처음에 저 that 이 그 앞 문장에 나온 virtue ethics 를 받는다고 생각을 해서 덕 윤리학이 다른 두 이론 보다 더 올바른 전술이며, 그래서 슬롯이 자기 책에서 덕 윤리학을 강력하게 추구했다로 옮겼었다. 다시 읽어 본 결과 특히 앞 문장과의 연관만이 아닌 다음 문장하고의 논리의 흐름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닌 것 같아서, 이때의 that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런 자세로 덕 윤리학의 뛰어남을 역설했던 그런 것들이 적절한 전술이었고 슬롯의 책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전술은 더 필요하지 않게 된 것 같다의 의미를 받아야 맞겠다고 판단했다. 쉽게 파악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틀렸고, 헤맸고, 그러다 틀린 줄 알게 되어서 시간은 걸렸지만 잘 되었다 싶다. (결론적으로 맞았다는 전제 하에)

 

  1. But the reaction to virtue ethics’ emergence that I mentioned above has been so sudden and so fruitful that, only six years after that book’s publication, I find it reasonable to hope that the combative stance is no longer necessary. 앞은 fruitful 의 말을 무엇으로 받을 것인지, 그리고 sudden fruitful 를 묶은 and 를 어떤 말로 정할 것인지를 따지는데 좀 신경을 썼고, I find it- 이하를 말로 풀어지게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소리내서 읽어보기여기서 이렇게 작은 요령을 하나 제목으로 달았으면 한다. 지지난 번 정도부터 올리기 전에 한 두어 번쯤 소리를 내서 내가 옮긴 문장들을 읽어 보는데, 부족한 언어능력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직역의 특성상 뭐랄까 각각은 맞게 되었다고 쳐도 전체적으로 비뚤빼뚤한 말들의 높이를 조금 완만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입술과 목을 움직여 본문을 읽어 가다다 호흡이 걸리는 부분이 나오면 대체할 말을 생각해 보고 사전으로 확인한 뒤 옮기고 그랬다. 이번에는 reasonable 이 그 예였다. 처음엔 가 합리적인, 타당한 이렇게 했다가 가 무리(한 주장이) 가 아닌 정도로 했다 

7.       Hence, though I contrast virtue ethics with simple versions of deontology and utilitarianism in the early chapters, I do so only to aid initial comprehension rather than to deny the possibility of sophisticated developments, and references to them fade away as the book professes. 저자는 therefore 같은 말 대신 Hence 를 애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어쨌거나 hence 를 다 똑같이 따라서로만 받을 수는 없어서 몇 개로 바꾸었지만 어느 때는 아예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생각해 봤다. 조금 더 자신이 붙으면 그럴 수 있을런지도. 밑줄 친 sophisticated developments 도 마지막에 말을 바꾸었다. 실제로 이번 작업에서가 아니라도 나는 sophisticated 라는 말에 많이 약하다. 마땅히 그 말을 받을 (사람에 대해 세련된으로 쓸 때는 제외하고) 우리말이 없는 것 같아서. 이 경우 처음에는 한층 발전된 전개/sophisticated complex 라는 의미가 있다고 보고 이론들이 서로 섞여서 발전하게 되는, 다 함께 주의쪽으로 했다가/ 마지막엔 그 앞의 simple versions of deontology & utilitarianism 의 댓구가 아닌가 싶어서 잘 보니 그것이 맞는 것 같길래 그것으로 받았다. 안도했지만 동시에 잘 옮겨졌는지 약간 불안했다.

 

8.       It is not possible to write a book in moral philosophy without taking a fair amount of common ground for granted, and I am assuming that anyone who is interested enough in the area to read such a book shares my own ethical outlook to a fair extent. 이 부분도 좀 고민했는데 우선 common ground 를 공감대로 옮겨도 될런지 생각했고, 우리말인 그 말에는 끌렸지만 여기서는 감성의 영역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해서 공통된 의견으로 직역했다. 문제는, 그런 점들이 당연하게 전제되지 않고서 책을 쓴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는 거였다. 왜 그런 것 없이 책을 못 쓰나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어서 뒤적거리다가 사전에서 in 의 의미 중 종사하다의 의미가 있는 것을 보고선 전보다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그 의미를 살려서 옮겼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장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차피 소수 견해요, 신생이론인 줄 알고 있을 것인데 그런 외로운 처지에서 책을 쓸 생각을 하면 가능할 법한 소리가 안 되는 것인지..

 

  1. we are against murder, dishonesty, cruelty, and so on and in favour of benevolence, honesty, justice, and so on. 여기서는 다시보기라고 요령을 달았으면 한다. 지금부터 한 대여섯 시간 전 쯤 번역문을 다시 폈는데, 그 전에 조금 해 두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 보니까 교정과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눈에 밟히도록 많았다. 철렁했다기보다는 안도했고 그때, 쫓겨가면서 번역하는 경우 혹은 한 군데 틀어박혀서 내내 작업하는 경우에는 전문적인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꼭 번역자의 자질 문제가 아니더라도 오역과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의 cruelty 가 그 한 예가 되지 않을가 싶다. 이번에는 마음 속으로 나름의 마감을 정해 두었었다. 그 생각을 따랐다면 이 말은 원래 골랐던 잔혹함으로 옮겨졌을텐데 물론 그것이 절대적으로 오역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시간준수를 포기하고 난 뒤 점검 차원에서 ’cruelty 윤리라는 두 개의 열쇳말로 검색을 했을 때 (동물 등에 대한) 학대가 나오는 것을 보고서 느낀 바가 컸다 

10.    The general kind is 'neo'  for at least the reason I noted above, that its proponents allow themselves to regard Aristotle as just plain wrong on slaves and women, and also because we do not restrict ourselves to Aristotle's list of virtues. (Charity or benevolence, for example, is not an Aristotelian virtue, but all virtue ethicists assume it is on the list now.) It is 'Aristotelian'  in so far as it aims to stick pretty close to his ethical writings wherever else it can. Hence what I present here is only one version of virtue ethics amongst many possible ones.  여기서는 재량을 좀 발휘해서 인 것은 이기 때문이요, -인 것은 이기 때문이다 식의 댓구로 옮겼다. 그런 재량이 허용될만한 것인가는 변형의 과정에서 본문의 탈락이나 의미왜곡 등이 없다는 확인 하에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만하지 않는가 싶었다 

11.    번역의 문제와 좀 다른 차원에서 밑줄 친 benevolence 가 한 예가 되었던 의문 한 가지가 있었다. 웹 검색을 통해서만 본다면 지금 이 저자가 덕의 목록이라 한 그 덕의 이름들이 아직 통일된 우리말 번역어가 없어 보이더라는 것이다. Benevolence 의 경우 검색 결과는 仁 이라고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자애 자비 자선 인정많음 선의까지 엇비슷한 여러 말들로 옮겨져 있었고 엄밀하게 왜 그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Charity 도 마찬가지였던 것을 기억한다.)

 

* 조금 더 자세히, 석연찮았던 부분들을 더 쓰고 싶었는데 중간에 컴퓨터가 이유없이 나가 버려서 시간 상 이만 줄여야겠다. 아래는 이어지는 15, 16  번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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