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옮기면서 들었던 노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71895

 

 

작업하려고 책상 위를 치우고 사전이며 책 올려 둘 때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그 시절 어느 때 반장이었는데, 학교가 반 끼리의 경쟁을 나서서 부채질하고 그랬다. 잘 못하는 반은 대 놓고 구박하고, 잘 하는 반에다가는 유난한 티를 내 주고, 그러니 반의 전체 평균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는 아이들은 자기 공부 자기가 못하는 결과 말고도 맞고 욕먹고 무시당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내가 있던 반은 열 두 반 중에 꼴찌는 아니었어도, 아주 잘하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의 내가 왜, 나도 학생인 주제에 우리 반 반평균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그랬는지는 끝에 묶어 이야기를 해얄 것 같다.

 

어찌저찌해서, 나랑 잘 지내는데 성적이 좋지 못한 몇몇을 꼬셔서 잠시 같은 독서실에 다녔다. 그리고 난 거기서 독서실 총무 노릇도 하고, 모르는 것 가르쳐주는 새끼 선생 노릇도 하고, 물론 컵라면에 물 붓고 히히덕거리는 친구도 하고, 독서실 짤막한 형광등 아래로 부지런히 쪽지 같은 걸 주고받으며 인생상담을 받고주고 그러기도 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다 같이 공부해서 함 잘 해보자, 그런 거였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좀 가물거린다. 중요한 건, 게중에 성적이 오른 아이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랑 그만큼 분명히 내 그때의 월말고사인지 기말중간 뭔지는 몰라도, 그때 성적이 그 앞 보다 떨어졌다는 거, 그거였다.

 

여기까지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학창시절의 어느 기억 뿐일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억이 오늘 작업 하려고 막 준비중인 내게,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책상 위에 올려 놓고 간 늦가을의 소국 화분처럼 떠올랐던 건, 그때도 바로 오늘까지도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때의 나  에 대한 무의식적인 되새김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짧게 말하면,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까지 그 기억 속의 나에 대해 제법 관대해 온 것 같다. 그때의 내 좋은 마음, 친구들이 반별 경쟁 따위 때문에 애꿏게 선생에게 멸시당하고 그러는 것 정말 싫어서 어쩌구..비록 내 성적은 떨어졌지만 그건 실은 어쩌구...식으로.

 

그런데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일까’ ‘난 공부를 도대체 왜 하려고 그러나그런 질문에서부터, 어제 강유원님 사이트에서 읽은 정신나간 놈에 관한 몇 마디, ‘정신나감혹은 허위의 커멘트에서 따라 온 여러 생각들이 뒤섞여 그 시절의 나와 엊그제, 이 작업하면서 나 혼자, 사서, 조금 힘들어 했던 나 둘 다를 불러다 놓고 따끔했고, 쓰고, 신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엊그제쯤  내 머리 속에 어느 틈엔가 기어 들어와 있던 차림의 자세, 혹은 초대의 자세, 주제파악이 잘 되어있지 않고, 먼저의 요구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 마음 아름다울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절제의 부족, 무엇보다 공부라는 집중의 깨어짐따져보면 오래 밴 습성이고, 또한 따져보니 이건 나라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 부족과 지나침, 좋고 모자란 점 모두가 한데 있는 것 같다.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결론은 얼핏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내게 중용은 아직 그 뜻을 잘 체화시키지 못하는 부담이라서 대신 균형, 그리고 꾸준함, 무엇보다 평정이 깨어진 내가 느끼는 어떠함들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나 자신, 그런 것들.

 

그림은 생각하던 도중에 가지치며 생각나서 찾았고, 영화에 흐르던 루 리드의 목소리도 함께 찾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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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비례 관계가 여전하다. 이번에도 본문이 짧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걸린 시간은 짧은 길이에 비하면 그리 적게 든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번에는 특히, 본문에 쓴 저자의 같은 수식어를 따라서 똑같이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반복을 피해 재량껏 옮겨야 하는지 등을 연습하고 생각도 해 봤다. Distinctively 같은 특정한 단어도 그렇고, 부사+형용사구 라던가 명사+명사 구 같은 것들.  

 

2.       첫 문장부터 아래로 두 세개의 문장이 모두 사물주어고 수동형 문장들이었다. 그것이 수동태이고 사물주어이기 때문에 ( a deeper reason/ the suspicion )  문제를 삼은 것은 아니고, 이전까지 해 오면서 나름대로 어조의 흐름이 생겼다고 판단해서, 가급적 능동형으로, 가급적 사람주어 문장으로, 대신 단어를 빼거나 사전에 명시되지 않은 뜻을 쓰거나 하지 않으면서 번역을 해 봤다.

 

  1. 첫 문장은 지금의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고, 두 번째 문장. 의미는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두 가지, (1) 그 뜻을 분명히 하도록 적당히 말을 첨가할 수 있다 와 (2) 직역의 원칙을 그대로 지킨다 사이에서 한 번 더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뜻이 더 분명하게 전달되려면, 내 생각으로는 ‘—해 본 들, 결국 저쪽에서 꿀꺽 해 버릴 것이 아니냐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의 어조가 살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 would become clear 이 부분을 두드러지게 해서 저쪽의 의도가 이런 것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내 맘대로 말을 추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해지지 않겠는가 부분만 계속해서 만 확실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임이 확실해지게 된다 등등을 계속 바꾸어 보면서 게중 나은 걸로 골라서 옮겼다.  

 

4.       But trying to make out that virtue ethics does have a distinctively different approach by listing putatively distinctive and plausible claims it subscribes to, seems to me a needlessly combative task. 세 번째 문장에서는 덕분에 평소에 흐리멍텅하게 써 오던 말의 의미를 점검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경우 맨 처음 distinctively different 란 말을 봤을 때 확연히 다른’ ‘판이하게 다른류의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문장의 의미가 잘 살 것 같다는 확신도 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설명과 영어 사전들에 따르면, 판이함이나 확연함은 각각 surely/entirely different 의 의미로 distinctively different 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나는 지금 이런 연습을 해 보기 전에는, 어떤 문장을 보고서 직관적으로 파악한 뜻을 실제 저자가 사용한 언어 각각의 뜻 보다 우선시해 왔음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 있어서였다. 그 점에서 지금 이 책이 철학서적이라는 점이 참 다행스러웠다. 본문에 나온 말을 재인용한다면, 이 점은 보편타당한 원칙까지는 아니겠으나, 전형적으로, 혹은 내 선입견에, 철학전공자가 쓴 텍스트는 최소한의 요건으로 건조하게 작성된 글이라는 가정을 한다. 그래서, 저자의 말은 그 하나하나가 최소한으로 선택된 말들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그리고 빠짐없이 옮겨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창조력이 발휘되고 내가 마치 작가인 것처럼 몰입해서 하는 번역의 가능성이 있는 문학서적 보다는 현재의 나에게는 이런 철학책이 더 맞는 것 같다.

 

5.       As things are now, the approach is still new enough to be distinctive, and the aim of this book is to explore what insights can be gained into moral philosophy 이 문장에서 insights can be gained into moral philosophy 에서 시간을 좀 썼다. 직역을 하면 도덕 철학 안으로 통찰들이 획득되어질 수 있다  일텐데, 그렇게 옮겼더니 너무 투박해서, ‘도덕철학 내부에 어떤 통찰들이 생기게 있는지를이라고 옮겼다. 역시 직감적으로 약간 크게 변형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레걱정이 들고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그 다음에 나오는 detailed and comprehensive 를 나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두 개의 연결로 보고 and 하면서도 하는 으로 옮겼는데, 이 또한 불필요한 개입은 아니었을지 조금 불분명했다. 이 문장은 좀 자신이 없다.

 

6.       If utilitarians and deontologists disagree with what I say then of course I shall want to argue with them, and maybe some of our sticking points will be disagreements over particular theses that, typically, though by no means universally, they espouse and virtue ethicist reject, or vice versa. 이 부분에서는 sticking points 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좀 찾아 봤고, ‘교착에 빠진이라는 용례를 봤지만 튀는 것 같아서, ‘해결이 쉽게 보이지 않는 골치아픈 문제라고 길게 풀었다. 이런 걸 보면, 글을 옮기는 사람 자신의 언어역이 관건인 것 같다. 내 눈에 어색하거나 낯선 말이 정말 그 말이 어색한 말이라서 그런지 내가 그 언어의 쓰임을 볼 일이 적어서 그런지 

 

7.       여기서 오역 하나를 찾았다. But  maybe not. And if they were to agree, and their only protest was ‘But we can say that too-that’s a utilitarian (or a deontological) thesis’, 이 문장을 옮길 때 나는 무심코, theses 를 연구주제, 논제 등으로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사전을 펴 보니, the·sis[ sis] /논제(), 의제./2. (작문 등의) 제목.3. 학위 논문, 졸업 논문./4. 철학 (논증되어야 ) 명제(命題), 정립(), 테제./5. 음악 (지휘봉을 내리그으며 지시하는) 하박(下拍), 강박(强拍)(소절(小節)중의 센박/6. 운율 약음절 시각(詩脚); 장음 시각. 이라 되어 있다.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서는 어떤 이론의 명제를 설명할 때 proposition 이라는 말을 거의 통일되게 사용해서, thesis 의 명제라는 말 뜻은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내용을 놓고 보면 명제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이고, 따라서 그 앞선 본문에 아마도 한 번쯤 나왔던 그와 같은 말도 연구주제, 논제가 아니라 명제로 바꿔야 맞겠다.

 

  1.  I should not be inclined to argue at all; I should be delighted. 이 문장을 옮기다 말고는 갑자기 세미콜론의 쓰임이 헛갈려서 일찍 마칠 수도 있었던 일을 오래 끌게 됐다. 내용을 살리려면 어쩐지 세미콜론 자리에 오히려라는 말을 넣어야 좋을 것 같은데, 기존에 알고 있던 세미콜론의 의미는 독립된 두 문장의 연결이라서 실제 올릴 때는 뺐다. 과연 이 문장에서 따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가 적절할지 아니면 따지지 않을 것이고, 기뻐할 것이다로 해아 맞을지 아직 분명치가 않다.

 

  1. Let us by all means stop caring about how we distinguish ourselves and welcome our agreements. 마지막 문장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좋은 문장이 떠올랐으면 했다.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결국은 평범하게 옮겼다.
  2. 이번 본문은 저자의 철학함의 태도가 참 잘 드러나는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다.

 

* 이어지는 13, 14  번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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