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대와 달리, 두 문단 옮기는 데 지난 두 번 보다 긴 시간이 들었다. 막상 판단을 내리고 옮긴 뒤에 다시 읽어 보았더니 왜 아까는 말이 잘 안 풀렸나 싶은데, 그래서 약간 허탈하기도 한데 아마 뜻이 단박에 다가 오지 않았던 한 두 문장에서 막혀서 그랬던 것 같다. 번역 해 보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는 자리이므로 다음 정도를 남겨 두자: (1) 이번에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의미가 담긴 구문인데 그동안 어느 하나의 뜻으로만 당연하게 써 왔던 표현들 (예를 들면 let alone ‘–는 말할 것도 없고의 뜻으로 당장에 생각하고 나니까 let alone a whole movement of them 에서의 them 이 지칭하는 대상이 무엇인지가 헛갈렸다) (2) 맨 마지막 문장의 yield 의 말뜻은 낳다, 얻다, 생기다 쪽의 뜻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 뒤의 moral truth 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서 확신있게 옮기지를 못했었다. 철학 분야의 웹 문서 검색도 해 보고 내게 있는 책도 들춰 보고 하면서 지금의 문장으로 옮겼다.

 

2.       양가감정일텐데, 선택할 수 있는 말의 선택역이 너무나도 좁디 좁은 걸 절감해서 사서 괴로움을 느꼈고, 아프다가 어느새 가렵고 또 그러다말고 시원하더라고, 그런 기분도 살짜쿵 들었다. (제대로 옮겼다는 전제하에…)

 

3.       이제 겨우 세 번째, 하지만 저자의 글쓰기 취향 내지는 책을 써 가는 글쓰기 태도에 관해 글눈치를 받았다. 글은 덕 윤리학이라는 덜 알려진 분야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던 의도를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까’’어쨌든등의 한 마디 표현을 문장 안에 여러 번 끼워 넣어서 딱딱한 형식을 덜하게 한다던가, 거창한 비유나 상징 대신 반어형 문장으로 가볍게 강조의 효과를 낸다던가, 화려하고 단정적인 수사법을 써서 독자의 눈을 빠르고 쉽게 끌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강력한 의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서문의 구성이라던가. 그래서인지 글을 따라가다 말고 나도 모르게, 젊은 철학도의 여러 시선이 모인 자리에서 차근차근 진행되는 강의실 하나가 연상됐었다.      

 

4.       맨 위의 그림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제자들이 무엇인가를 관찰 중이고, 아래의 그림 두 장은 Introducing Aristotle 에서 윤리학 부분에 해당하는 열 여덟 페이지를 스캔한 것이다. 앞으로 후기 쓸 때 두 장씩 끼워 넣을 생각인데, 확인차 검색을 했더니, Icon Books 에서 기획물로 낸 [Introducing…] 시리즈 중 여러 권이 번역본으로 나와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 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기획도서 중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데카르트 이렇게 세 권을 갖고 있다. 세 권을 다 읽었고 아주 가끔 요즘도 펴 보기는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 세 권 모두 개론 정도의 수업을 듣고 난 뒤거나, 아니면 각 철학자의 책 한 권쯤을 읽고 난 뒤가 아니면 요리재료가 어떤 것들인지는 알되 그것으로 어떻게 요리를 하고, 마치면 어떤 요리가 되는지, 거기서 어떤 향과 맛이 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기본은 뗀 사람이 보면 요약 정리 잘 되어 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전히 차이가 없는, 조금 더 정확히 내 생각을 표현한다면 그래서 이 사람의 철학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 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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