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겨스케이팅을 88년인가 92년인가부터 보았다. 국내 공중파를 통해서 보다보니 일부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등만 보았는데, 가장 처음 본 피겨 경기는 올림픽에서 소련의 남자선수 금메달 경기였다. 목에 여왕님같은 긴 카라 덧 달린 옷 입고 당시 은반위 프린스라 불렸던 기억이 난다. 그 동안 보았던 피겨 스케이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선수나 경기를 꼽아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베스트로 뽑는 야구딘. 피겨는 기술점수와 예술 점수로 점수를 매긴다. 선수들의 경기 보고 있으면 '잘하네, 점프도 대단하네, 우아해'라고 느끼는 경우는 있지만 뭔가 빨려들어갈 정도로 몰입해서 보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특히, 점프를 중점적으로 잘 뛰는 사람도 있고 예술쪽에 초점을 맞춘 사람도 있는데 이 두가지를 모두 갖추면서 보는 재미까지 주는 경기는 거의 없었지 싶다. 그런데 야구딘은 달랐다. 컨셉, 의상, 안무, 연기, 기술, 예술성, 보는 재미까지 모두 갖춘 경기를 했다. 나는 요즘도 가끔씩 그의 경기를 한번씩 찾아본다. 야구딘의 경기 마력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의 '윈터'와 '아이언마스크'와 '레이싱'. 특히 아이언 마스크는 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이언 마스크 개봉이랑 시기가 비슷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 번쩍이는 옷과 함께 칼싸움하는 듯한 그 느낌..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면 동영상을 찾아보는데 정말 멋지다. 눈뿌리는 윈터도 멋지고. 레이싱는 와..피겨에 저런 프로그램도 가능하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음악도 신나고 선수도 신나고 보는 나도 신나고 매우 좋았다. 부상때문에 너무 어린나이에 은퇴해서 아쉬울 뿐이다. 선수생활 몇년만 더 했으면 더 멋진 경기 보여줬을텐데. 멋진 프로그램과 그것을 실연한 멋진 선수의 궁합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지 싶다. 기억이 맞다면 그 후 룰등이 바뀌어서 레이싱같은 재기발랄하고 재밌는 무대는 안 나왔던 것 같다. 그 후 예술성을 많이 강조하는 분위기로 갔었고...그래서 솔직히 그 후 보는 피겨는 좀 재미없어졌었다. 쳇.. 

  또 플루셴코, 이 선수는 경기 모습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의 특이한 코와 섹시밤이 기억난다. 어느 올림픽인지 기억 안나는데 갈라쇼에서 섹시밤 노래에 맞춰서 스케이팅을 탔는데 정말 재기넘치고 재밌었다.

  여자선수로 가서 가장 인상깊었던 선수는 수리아 보날리이다. 피겨에서 드문 여자 흑인 선수로, 은반위의 흑진주라 불렸던 선수이다. 흑인 특유의 탄력을 살리는 경기를 했는데, 얼음위에서 서커스를 하는 느낌으로 그녀의 경기는 정말 화려하고 재밌었다. 단, 그런 그녀의 스케이팅은 예술성을 중시하는 피겨로 인해 항상 상위권이지만 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김연아. 피겨에서 예술성은 중요하다는 것은 아는데, 너무 우아함에 예술성만을 강조하면 재미가 없다. 뭐랄까, 고전발레보는 느낌이랄까? 고전발레가 아무리 아름답고 우아하고 멋져도 재미가 없고 그게 그거란 느낌이라 계속 보는 것은 지겨운데 김연아 선수의 경기는 우아한느낌만 강조하는 경기가 아니어서 재밌었다.(개인적으로 김연아선수가 존경한다고 했던 미셸 콴의 경기도 재미없어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나한테 지루했었음. 항상 2인자였다가 라이벌 은퇴하고 전성기가 왔던 것만 기억남.)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007곡과 섹시함이 느껴졌던 이름이 기억안나는 프로그램. 007은 재밌었고, 섹시함이 느껴졌던 프로그램은 멋지다+컨셉이 좋다 인상깊었다 였다.

  마지막으로 옥사나 바이울. 금메달 따고 바로 은퇴 후 프로로 전향했던 선수였는데 올림픽에서 백조의 호수 곡에 발레복같은 옷을 입고나와 그녀만의 기술을 처음 선보였었다. 경기장면이 발레하듯이 정말 우아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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