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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 프로이트 전집 9
프로이트 지음, 김명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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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늑대 인간19102~7월까지 러시아 청년을 분석한 결과로 나온 유아의 성욕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지닌 융에 대한 프로이트의 비판을 지지하는 증거의 논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에 늑대 인간을 분석한 루스-맥 브룬스위크(Ruth Mack Brunswick)는 그를 정신병으로 진단했으며, 러셀 그리그(Russell Grigg) 역시 프로이트를 찾아간 늑대 인간과 브룬스위크에게 분석을 받은 늑대 인간은 동일인이 아닌 듯 보일만큼 서로 다른 증상을 나타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를 정신병으로 진단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는 가설을 지지한다. 프로이트와 브룬스위크 사이에서 늑대 인간을 도와주었던 뮤리엘 가디너(Muriel Gardiner)는 늑대 인간에게서 정신병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증상을 볼 수는 없었으며 그보다는 프로이트의 진단이 더 적절하다고 한다.

이런 논쟁들의 맹점은 늑대 인간으로 알려진 세르게이 판케예프의 삶에서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죽음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누나의 자살, 아내의 자살을 경험한 판케예프가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것을 프로이트가 강조한 유아기적 요소가 한편의 꿈으로 판케예프에게 나타나고, 이것이 성인기의 신경증, 공포증, 강박증으로 나타난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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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안의 불편함
자크 랑시에르 지음, 주형일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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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이 점점 다가온다. 읽을 책이 산더미이다. 이번 달은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강제 독서를 해야만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의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적용으로 파악하는 입장이 있다. 어빙 하우(Irving Howe), 레슬리 피들러(Leslie A Fiedler) 등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예술의 자기 목적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보이며 예술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들은 예술 그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을 가진 혼성모방(pasriche)을 긍정적으로 보고 소외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갖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각 분야에서 개별적 특징들이 상충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미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이 하위예술 형태와 상위예술 형태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충돌, 콜라주, 단편화를 통해 각 장르의 관계를 분열시키면서 모더니즘의 대서사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새롭게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과 예술은 다원성의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평등과 해방을 꿈꾸던 랑시에르는 착취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사회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감각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한다. 랑시에르는 미학을 권력이 강제하는 감각의 분할을 거부하는 아무나의 감각적 능력이 발현되는 영역으로 규정하면서 미학의 긍정적 힘을 재확인한다. 미학의 긍정적 힘을 가진 예술의 영역은 지배적 합의의 정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감각과 지각의 양식을 배포하는 이견의 장으로 기능한다. 권력은 감각되는 것, 생각되는 것, 지각되는 것, 명명되는 것을 정하는 분할의 체계를 강제한다. 미학 안에서 랑시에르는 이런 분할을 통한 경계선 만들기와 자리 부여에 대한 거부를 발견한다. 이것이 미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공하는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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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현대사상의 모험 28
에리히 아우어바흐 지음, 김우창.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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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2019년의 마지막을 멋있게 배신당하며, 다시는 누군가를 사람을 믿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떠올리며, 그래 역시 믿을 건 나밖에는 없어!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달이 지났다. 독서와 내 상활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2020은 나에게 새로 시작하는 중요한 변화의 해이다.  

아우에르바흐의 <미메시스>를 완독해도 그 안에 있는 작품을 꼼꼼하게 다시 읽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꼼꼼읽기를 하는 경향이라 독서하고 글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물론 나의 게으름도 포함이다. 작품을 읽고 관련된 이론서와 논문을 읽으면서 정독을 하다보면 숙제가 저절로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미메시스>는 학교에서 계속 다루는 작품이니, 끊임없이 계속 읽어야겠다. <미메시스>에 언급된 작품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이 작품의 텍스트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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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06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1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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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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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멘티에게 환경에세이 책 추천을 의뢰받고 추천해 준 책이다. 미국 대학교 1학년 필독서 목록에도 있고, 다시 읽으면서 많이 공감한 책이다.   

“봄이 와도 자연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처럼 즐겁게 날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봄은 왔는데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곳에는 진정으로 봄은 온 것인지 아니면 자연 그대로의 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봄이라 일컫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봄이 왔다. 하지만, 동물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아프다. 숲 속에 있어야 할 새들은 종적을 감추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

봄이 되어도 정적만이 감싸고 봄은 침묵하고 있다. 이 침묵의 봄은 나방을 잡기위해 뿌린 DDT(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침묵의 봄>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구의 역사는 DDT 이전과 DDT 이후로 구분된다. 봄이 왔지만 모든 생명이 죽어가는 침묵의 봄. DDT와 자연에 대한 무절제한 정복욕심으로 일어난 폐해에 대한 사례를 보여준다. 

나방때문에 농작물을 많이 수확하지 못하여, 살충제를 뿌렸고, 그 살충제는 천적인 새들까지 죽였다. 그 결과 벌레들은 살충제에 내성이 생겨 살충제 성분은 더욱 더 강력해지고, 결국 동물들이 죽거나 병들고 그러한 동물과 식물을 섭취한 인간 역시 어린아이는 죽어가고 어른들은 어딘지 모르게 아프게 되었다. 당연한 듯이 뿌려왔던 살충제는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악순환의 고리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침묵의 봄'으로 인해 4월 22일이 지구의 날로 제정되었고,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지구는 우리 인간만의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그 지구를 그동안 우리 인간은 잘 다듬고 잘 만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보다 역사가 짧은 인간이 자연을 만들고, 통제하고, 또한 보호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자연이라고 정의내린 이 거대한 visible/invisible substance가 과연 인간이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자연재해라는 것도 결국에는 인간이 만들어 낸, 편의를 위해 변화시켜 놓은 부작용의 결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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