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ommon > 공감 2% 로망 98%
여행자의 로망 백서
박사.이명석 지음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유럽의 어느 한적한 시골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 눈가를 감싸자, 나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가다듬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숙소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어느 식당에서, 모닝커피와 가벼운 식사 그리고 꽤 굵직한 영어 원서 페이퍼북 책으로 아침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점심이 되어 근처의 인터넷 카페에서 고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여행담과 여행 사진도 물론 보내준다. 야, 니가 말한 그 곳 가봤는데, 8인용 보트와 바닷가재 요리가 일품이더라. 그리고는 또다른 여행지를 찾아 나선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잔잔한 재즈 피아노 곡이 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흥얼거리며 길을 나선다.  그리고 어느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 (유창한 억양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내가 가는 여행지에 살고 있었고, 조금 친해진 덕택에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도 된다는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점차 친밀해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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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정말 멋진 '로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기에 '로망'인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 그것도 이국의 어느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을 상상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대리만족과 여행에 대한 갈망을 북돋아준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이러한 여행을 상상하고 꿈꿀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짜증만 더해다주기도 한다. 여러 나라의 언어는 커녕 영어도 콩글리쉬 수준이고, 혼자만의 여행을 하기엔 용기와 자신감이 없고, 돈도 없고, 거기다가 공부에 전념해야하는 학생이고... 으으~ 여행에 대한 상상이 끝나고 나서 느껴지는 이런 공허함때문에 나는 일상으로의 탈출인 여행을 꿈꾸고, 공허감에 사로잡히는, 그런 반복에 찌들어 산다.

그렇기에 이 책에 더 호감이 간 것일까? <여행자의 로망백서>라는 제목과 소개를 본 순간, 이 책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하자고 부추기는 '위험한' 책이거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대리만족을 더해줄 '유쾌한' 책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둘 중 다 맞았다. 이 책은 위험하면서도, 꽤 유쾌한 책이었다.

왜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일까? 여행은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단면을 조금이나마 일깨워주는 진촉제, 작거나 큰 깨달음, 넓은 식견과 해낼 수 있다는 만족감등등 엄청난 요소를 가져다준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또는 지겨운 일상의 반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일주일 중 며칠만이라도 짬을 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다 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여행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여행자의 블로그에 방문자가 붐비는 것이다. 나도 떠나구 싶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의 로망'은 꿈꾸지만, 진정 '여행의 실재'는 느껴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여행자의 로망백서>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과 대리만족은 균형이 있다고 봐야겠다. 두 명의 자유분방한 여행자가 매력적인 문체로 꺼내놓은 '여행의 로망'에 잠식되기도 전에, '여행이라는 몸의 독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의 한조각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라는 뜨끔한 가르침을 내놓는다.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춰야할런지. 투덜대는 나에게는 벌써 마음 속에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해진다. 아, 미치겠네.

또한 이 책은 그래도 중국 패키지 여행 3박 4일도 여행이랍시고 갔다온 나에게, 조그만 공감 '2%'를 안겨줘 나도 여행을 떠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안겨준다. 이국의 땅에서 비벼져 흘러나오는 '이국 냄새'를 그들은 '풍경 위에 떠 있는 또다른 풍경'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렇다고 이상한 냄새도 아닌 어떤 것이 묘하게 내 코를 간지럽히던 순간이 생각난다. 햐, 내 말이 그 말이라고! 나는 조금이라도 공감되는 내용만 있으면 신기하다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들의 멋진 문체는 나의 공감대를 더 부풀려준다.

하지만 그보다 몇 십배는 큰 로망 '98%'는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로망'과도 어느정도 맞아떨어지는 게 있는 반면, 어떤 '로망'은 내가 직접 여행을 떠나봐야 할 수 있는 그런 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로망을 마음껏 떠벌리면서 나처럼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대리만족으로 이 책을 편 이들에게 고한다. '여행은 로망이 있기에 빛나지만, 그것도 떠나봐야 아는 것이다' 라고.

공감 2%, 로망 98%. 이 제품의 함유량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해야할 일을 알아냈다. 자 지금이라도 여행을 떠나자고, 그리고는 나중에 이 책을 펼치고 당당히 소리치는 거야. "흥,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전부다 '공감 100%'의 이야기인걸! 로망?그런건 또 뭐야!" 

자자, 집에 먼지쌓여있는 지구본을 돌리고 눈을 딱 감고 아무데나 찍자고.  핀란드의 헬싱키! 엥 거기는 어디야! 뭐 그래도 가긴 가야지! 북반구니까 나랑도 '가까운 편'인걸! 좀 추울테니까 코트 몇벌은 갖추고 갈까? 이렇게 소리 떵떵 치면서 정작 내일 부스스 일어나면 책가방을 먼저 챙기는 나에게, 이러한 호언장담은 또다른 '여행의 로망'을 재생산하는 현실에 대한 외침일지도. 흠, 너무 거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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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hika > 여행의 로망
여행자의 로망 백서
박사.이명석 지음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겨울, 이지만 봄이 오는 것처럼 따뜻한 비가 내린다. 밖으로 나가면 조금 쌀쌀한 느낌이 나려나? 어쨌든지간에 봄이 느껴지는 듯한 빗소리가 좋은 날이다.
이런 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 전자계산기를 두들기다 말고 잠시 졸다가 문득 깨어나 차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여행의 로망을 꿈꾼다. "난 지금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다 내리는 비에 잠시 카페에 들려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중이야"

골목길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은 참 재미있지.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내린 비를 즐기듯 여유롭게 처벅처벅 빗물을 튕기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카페에 들어 앉아 내친김에 책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

이제 나는 거리 구경을 멈추고 나의 여행일기장을 꺼내든다. 찍었던 사진을 뜯어보며 혼자 킬킬대다 결국은 사진에 얽힌 여러가지 추억들을 떠올리며 몇가지 기억에 남길 사건을 끄적거리며 적어놓고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잠깐, 카페를 나서면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여기서 내 한낮의 몽상은 깨어난다. 한참 일을 하던 내 책상위에는 어느새 이면지가 널부러져 있고, 그 위에 한가득 내가 가고싶은 곳,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 남기고 올 추억에 대한 가상소설들이 적혀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던거지?

아, 그래 여행에 대한 로망을 꿈꾸고 있는 중이었군.

 

나는 혼자서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결코 그랬던 적은 한번도 없다. 무계획적인데다가 소심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결코 혼자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외국으로의 여행은 언어조차 되지 않기때문에 더욱더 혼자 떠날수가 없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로망은 버릴 수 없다.
십여년 전 세계여행을 꿈꿨을 때의 상황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행에 대한 끝없는 낭만을 꿈꾸었기에 얼결에 가끔씩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결코 여행의 로망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가 꿈꾸었던 여행에 대한 로망을.
이 책은 여행이란 이런거야, 라는 걸 말해주지 않는다. 순 자기들 얘기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그런것 아닌가? 온전히 나 자신의 체험과 추억.
그 접점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추억을 존중하고 부러워하며 나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그렇게 추억을 나누기 위해 또다시 여행의 로망을 꿈꾸고....

빗소리가 토닥토닥 경쾌한 오후, 낮게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명음반명연주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여행의 로망을 꿈꾼다. 이것이 일년 삼백육십여일의 직장생활에 얽매인 나를 견뎌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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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무들 > 공선옥 작가님에게 보내는 편지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공선옥 작가님!



녹음이 짙어지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평안하신지요? 지금 춘천은 참 아름답겠네요. 아아! 곧 전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셨지요. 전주도 참 멋들어진 곳이지요. 비빔밥도 맛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형식에 대해 한마디 합니다. 서평을 이렇게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해 보는 게 처음입니다. 서평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겠죠? 객관성을 중시하며 각종 자료들이 동원되는 서평 글은 서평자의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균형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딱딱한 문체가 별로죠. 서평을 꼭 논문 쓰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전편에 흘러넘치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은 너무나 따사로웠습니다. 그 품에 안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카드 빛에 내몰리고, 재개발에 내몰리고, 가정파탄으로 내몰리고.... 우리네 고단한 서민들의 아픔에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당신의 착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 없다’고까지 하셨지요. 작가님은 “나도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 예술 한번 하고 싶었다. 예술. 그러나 나는 그렇게도 소원이던 예술을 이제와 포기하여 한다.”며 괴로워하셨지요. 또,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백죄 그러지 말아라.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입 좀 닥쳐라.” 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건 소외받은 이웃을 향해 따듯한 시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 외칠 수 없는 절규입니다.

<사는 게...> 중에서 제가 가장 숨죽이며 읽었던 부분은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였습니다. 가난한 열여덟 살의 청년이 택시기사의 사납금 10만원을 뺐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또 이혼한 장애 여성이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부분에서는 제 입술을 깨물어야 했습니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키워드는 빈곤과 소외, 그에 따른 고단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 이외에 사람들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더군요. 뭐 작가님 자신과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몇몇 분이 계시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는 게....>는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 속에서도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들도 꿈틀거린다고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서평이라고 할 수 없겠죠. 아무리 편지 형식이라 해도 서평은 서평이니까요.
책에 대한 냉엄한 평가는 오간대 없고, 칭찬 일색이니. 일반독자에 의한 주례사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 부분부터는 작가님을 위한 제 나름대로의 쓴소리를 적어보았습니다. 작가님과 제가 사회를 보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는 게...> 를 보도 형식으로 조금만 다듬으면 신문의 사회면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신문 사회면 중에서 ‘경악스러울’만한 팩트를 추리고 거기에 ‘좋은 생각’을 접목해 놓은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하는 식이지요.

여기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 고단한 이웃들의 삶 자체가 사색의 대상이 되는 만큼 그에 따른 합당한 대안 제시도 필요합니다. ‘그게 지식인의 책무’라는 말은 너무 흔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자는 작가님에게 빈곤을 이용해먹는다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전 작가님이 그 비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 못지않게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끈을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생생한 현장 기록들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또 전 결코 대안 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가님에게 합당한 대안 제시를 요구하는 건, 대안이 빠진 <사는 게...>의 내용은 자칫 신문 사회면의 동어반복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충만함에도 작가님의 기록들과 사색이 2% 부족 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은 빈곤에 대한 지식인의 알량한 연민으로 내비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그렇게 꺼리는 ‘예술’을 하고 있다고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 이야기만 더 할게요. 작가님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인정미가 넘치는 당신의 어린 시절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그 시절은 항상 아름답게 떠올리셨어요. 그러나 그런 유년시절의 시골풍경들이 2005년에 휘돌고 있는 수많은 복잡한 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복잡하고 골머리 썩이는 현실이 싫다고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시선들로 독자들의 시야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한 비판들이 작가님에게는 섭섭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저 한 독자의 애정 어린 비판으로 받아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건강조심하시고요.

건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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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사는 게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좀 읽었으면...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낮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공선옥의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장바구니와 함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만삭일 때도 딱 맞았던 단벌 청바지 허리가 꽉 끼어 눈을 부릅뜨고 심호흡을 하고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잠갔다. 공선옥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럴 때 나는 사는 게 딱 거짓말 같다.


마을버스 속에서  장애가 있는 내 또래 여성에게 신호를 보내어 내 자리까지 오게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렇게까지 하기는 드문 일이다. 그건 순전히 내 손에 들려 있던 책 때문이었으니 공선옥의 책을 읽으며 노인이나 아이, 임산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자기 자리를 사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전철을 갈아타고 나는 두 건의 선행(?)을 더 했는데 여기 일일이 적지는 않겠다. 그녀가 울며 읽었다는 김성칠 선생의 <역사 앞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 밖에 내거나 붓 끝에 올리지 말 일.


십몇 년 전 나도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밑줄을 쳤다. 그러니 어떻게 전철 안에서의 그 소소한 일을 선행이라고 차마 내 입으로 떠벌릴 수 있겠는가!


‘내 이웃의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밤이면 밤마다 휘황한 네온 십자가가 다 무엇이며 따뜻한 구들방에서의 선(禪)이 다 무엇이냐’(25쪽)고 작가는 묻는다.  또 서울 어느 대학 수학교수님이 정말 좋은 수학교수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어릴 때부터 나처럼 수학 노이로제가 있는 듯한 그녀는 생각한다. ‘저렇게 좋은 것은 지금도 좋은 저 아이들한테보다 지금 나쁜, 지금 아주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가게 했으면.’ (29쪽)


소설이고 산문이고 간에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 나는 너무 많이 가진 자이고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유한부인으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부자로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가난뱅이였던 적도 없는 것 같다. 3만 원이 넘는 호머 심슨 라디오 같은 장난감도 사고, 갖고 싶은 만화 전집도 큰맘먹고 사는 걸 보면 돈 쓰는 데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대신 10년째 청바지 하나로 사계절을 버티며 돈 아까워서 ‘빠마’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누리는 호사가 최소한의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강변하는데(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말이지) ‘내 배가 부르면 꼭 누군가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하는그녀 앞에서 나는 뭔지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글 읽기를 중단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좀 더 부지런해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의 소식을 먼 풍문처럼 듣지 말고 작가처럼 장례식장에 직접  조문도 가고,  좀 더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오래 전 아현동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독서교실인가 창작교실인가에 등록해 두어 달 드나든 적이 있다. 창작을 직접 해보겠다는 생각에서는 결코 아니었고 직장인이랍시고 회사엔 다니지만 그때 당시 하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 어딘가에 소속되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천승세, 김영현, 김남일 등 작가들의 리얼리즘 문학 강의는 무척 재밌었고 그 중 마음 맞는 사람끼리 ‘풀무’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꾸려 신촌의 주막을 전전하며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었다. 주로 월북 작가들의 소설을 구해 읽었으며 그 무렵 자주 있었던 시위 현장에도 꽤 열심히 참가했다. 1년쯤 지났을까?  우리 다음 기로 본격적인 창작반이 구성되었다는데 아이를 등에 업은 아줌마가 아주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고 들었다. 거기다 그녀는 공장 노동자라고 했다. 창작은 고사하고 독서는커녕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재미로 가끔 그곳을 드나들던 나는 내 또래의 그런 여인이 있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녀가 바로 소설가 공선옥이다.


이 땅에 어느 정도 가진 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우고 누릴 만큼 혜택을 누린 인간들, 작가의 표현대로 하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은 오염된 공기가 어떻고 교육문제가 어떻고 닫힌 의식이 어쩌고 하며 못살겠다고 이 땅을 속속 떠나든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식들을 조기유학으로 빼돌린다. 그러면서 나라 걱정은 혼자 다 하지. 그런 이야기를 흥분하는 기색도 없이 이 작가는 조용히 읊조린다. 다 좋은데 떠나려면 조용히 떠나라고,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고 ......이 대목에서 나는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녀의 독서일기와 나의 독서일기가 100프로(!) 겹치는 걸 알게 된 것도 유쾌했고.


하도 많은 분들이 리뷰를 올려 과연 이 책을 읽고 나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공선옥은 공선옥이다.  이 신새벽에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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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쳇바퀴는 그만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우르르 산행을 한 뒤 뒷풀이를 하며 같은 혈액형끼리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노조원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별볼 일 없는 벤처요, 누구는 하청회사요, 누구는 계약직이요, 누구는 백수보다 별반 나을 것 없는 프리랜서. 힘없는 우리들은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잘 나가는 대기업의 노조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노조에 대한 비난이 새어나왔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임금인상을 내걸고 총파업이니, 범국민적 연대투쟁이니, 결사관철이니, 지난 겨울부터 강도높은 구호를 쏟아냈었지만, 결국은 임금인상 외의 요구사항은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 휘말린 소소한 하청기업들이 덩달아 라인을 놀리는 바람에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되어, 하청기업의 여러 노동자들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거나, 재계약을 못 하고 짤려 실업자가 되었다 한다.

**노조야말로 제 잇속만 차리는 귀족이라며 꽤나 거세게 성토하는 후배에게 반박하였다. 문제는 **기업 아닌가. 차라리 정규직의 2자리수 임금인상을 해주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고수하여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자본가의 속성이 아니던가. 설령 선량한 자본가가 있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수용하겠다고 결심한다 하더라도 이미 자본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지 않았던가. 만약 **기업이 비정규직/파견직에 대해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고 공표한다면 **기업의 외국인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하거나 서둘러 자금을 회수할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노조 지도부가 차별철폐를 외쳐봤자 초국적 자본 앞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의 싸움일 수 밖에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실리만이라도 챙기는 방향으로 귀결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구조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임금인상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전세계적 자본의 공모에 맞서  "전세계의 프롤레탈리아여, 단결하라"는 기치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선은 **노조가 경제투쟁부터 튼실히 해나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열심히 **노조를 두둔하는 나에게 후배는 치명타를 날렸다. "어쨌든 **노조의 노동자는 지갑이 좀 두꺼워졌지만, 덕분에 급여가 줄거나 실업자가 된 노동자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요?" 결국 내 논리는 클라인병에 빠진 개미와 다름없는 것이었을 뿐이다. 빠져나왔는가 싶으면 다시 병 속으로 추락하고, 밑바닥에 떨어졌어도 자유로이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개미.

우리들은 공선옥의 말처럼 "아름다운 노래 따위 부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그리고 왜 투쟁을 하는가. 쇠팔걸이가 박혀 똑바로 누울 수도 없는 공원벤치로 밀려나가지 않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하면서, 결국 나보다 약한 이를 노숙자로 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겨우내 지하도에 눌러앉아있던 노숙자들을 내쫒기 위해 봄맞이 물청소를 하면, 지하철 역사가 깨끗해졌다고 철없이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어차피 적자생존의 세상이라고 맥빠지게 있을 수는 없다. "한 교실 안에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누군가를 괴롭게 하는 아이와 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도 똑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란 늘 현장에서는 바라만 보던 사람들이며 그 목소리 높이는 시점이란 언제나 상황 끝이 된 상황"이라는 힐문을 듣고 있을 수만은 없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더 괴롭힘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나 역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지레 겁을 먹고,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순 없다. 상황 끝이 되기 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 거슬러 올라간 딴 소리 : O형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고 다른 혈액형들이 입을 모았다. O형 술자리가 제일 목소리도 크고 말도 많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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