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어떤 집에서 살까 - 김인철, 김진애 외 지음, 김재경 사진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 오병욱 지음
사이시옷 -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아담을 기다리며 - 마사 베크 지음
얼굴 빨개지는 아이 -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고미숙 지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 오주석 지음
재미있는 사진 길라잡이 - 천명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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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오주석 선생님, 당신을 그리워하며...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선생이 1년 반의 백혈병 투병 끝에 지난 5일 오후 9시 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향년 49세의 일기로 소천(召天)하셨다는 기사를 읽을 때 제 마음은 쿵하고 저 밑으로 나가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매번 당신의 건강을 묻던 김명인, 이용식, 노대명, 장석남, 백원담, 김진방 편집위원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자문회의에 참가하시던 김동춘, 홍윤기, 한홍구 선생님들이 늘 당신의 안부를 물었는데, 번번이 제가 연락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가 건강이 많이 호전되셨다는  당신의 이야기가 있었노라, 조만간 한 번 나오시겠노라, 하시더란 말씀만 그렇게 전해드렸었는데 별안간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번도 병문안을 가보지 못하고 신문 기사로 그 소식을 접한 제 게으름에 부끄러움으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주석 선생과의 인연은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을 펴낸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주석 선생을 처음엔 저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고 누구인지 미술쪽, 우리 한국고미술 분야에 정말 괜찮은 감식안과 문재를 지닌 미술사학자가 등장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열화당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에 실린 "인왕제색도""고사관수도"의 이미지를 복사하여 액자로 만들기도 했는데, 오주석 선생과 저의 이승에서의 인연은 그런 관계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2001년 9월부터 당신이 제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편집자문위원이 되셔서 한달에 한 번씩이나마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올해가 2005년이니 햇수로는 4년이고, 만 3년 정도의 기간동안 뵈올 수 있었던 것이죠. 당신의 부음에 즈음하여 신문에 실린 고인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엄정한 감식안과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고증으로 회화사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써 왔다”고 사람들은 평하더군요. 오주석 선생의 그간 활동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런 평가는 지극히 당연하나 그럼에도 당신의 넓은 도량과 흐뭇하고 온유한 미소, 우리 미술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할 길은 없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집자들은 본의든 아니든 일반 독자들이라면 글이나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할 유명 필자들을 실제로 곁에서 보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미인으로 알려진 어떤 작가는 실제로 보면 사진만 못한 경우도 있고, 누구는 작품 활동, 혹은 사회 활동은 매우 건강한 듯 보이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풍문을 먼저 접하게 되거나 혹은 직접 목격하게 되는 일들도 종종 있지요. 거리와 시간이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좀 더 실제 모습에 가까운 맨얼굴을 보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업무적인 특성상 그런 분들을 가까이 뵙게 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하면 단련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글보다 인격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의 실망감은 일반 독자들이 느끼는 것 못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 오주석 선생님에게서 제가 받은 인상은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문장이 풍기는 고아(古雅)한 맛이 당신의 실제 행동이나 어투에서도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이 책에서도 밝히듯 "무릇 그림이란 마음 가는 바를 따르는 것이리라(夫畵者從于心者也)" 하였는데, 그 말씀대로 당신 역시 마음 가는 바대로 글을 썼고, 글 가는 대로 따르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기회 닿을 때마다 주역 공부의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셨고, 앞서간 선배이자 스승이셨던 강우방 선생님에 대해서도 늘 겸손하게 말씀하셨고, 거문고의 즐거움, 옛 선비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호해야 하는 순간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종 당신께서 말씀하는 세상사 이야기가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은 결국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정치란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다스리는 이가 바르게 하면 누가 감히 부정을 하리요.(政者正也, 子歸以正, 孰敢不正)"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병증을 자세히 알기 전에 저는 선생을 모시고, 함께 역사기행을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신께 좀 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것,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당신은 늘 음악과 술을 즐겨하였고, 조선시대의 도학자들이 지닌 높은 정신세계를 흠모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거문고를 익히고 연주하고, 옛그림을 보되 이를 해석하기 보다는 이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비록,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주장하는 바에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을 꾀하는 법이 없었고, 세사(世事)의 바르지 못함을 참지 아니했습니다. 특히 우리 옛 미술을 욕되게 하는 비평과 해석에 대해서는 더욱더 참지 아니하였습니다. 가끔 당신은 "고흐" "김홍도" 중 어느 그림이 더 귀한가를 묻곤 하셨습니다. 물론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고흐의 그림이 더욱 비싼 값에 팔릴 테지만, 그것은 단지 고흐가 복이 있어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이들, 후손이 부자여서 그럴 뿐 김홍도의 그림과 고흐의 그림의 귀하기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시곤 했습니다.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이 없으나 다만 어떻게 볼 수 있을까가 당신에게는 더욱 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가진 존재(人者天地之心也)"라는 당신의 말씀은 어쩌면 이 책 전체, 당신의 삶 전체를 관류하는 커다란 흐름이란 생각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들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날마다 바뀌는 표면을 어떻게 가꾸고, 숨길까를 생각하는 약삭빠른, 천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당신이 펴낸 글과 마음은 "좋은 것은 변하지 않고 더욱이 가장 좋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이 책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2"에 별도로 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 책에 수록된 6편의 글 가운데 "한 선비의 단아한 삶 : '이채 초상'"을 제외하고 나머지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雅正)한 세계,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 정선의 '금강전도',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뿌리뽑힌 조국의 비애 :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 조선과 이조"의 5편은 "황해문화" 2001년 가을호(통권32호)부터 2002년 가을호(통권36호)에 연재되었던 글들입니다. 당신께 원고와 그림을 받아 작업을 하는 동안 매호 당신의 원고를 미리 읽는 즐거움으로 작업의 고단함을 잊었더랬습니다. 잡지의 어쩔 수 없는 여건상 그림들을 컬러 도판으로 수록하지 못해 늘 안타까와했는데, 이렇게 컬러 도판의 좋은 화질로 작업되어 책으로 묶인 것을 보니 그때의 죄송한 마음이 더욱 도집니다.

당신이 이리도 허망하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역사기행 갔을 때, 당신의 쑥빛 나는 수건을 탐내하자 지금은 땀에 젖어 안되니 나중에 서울가서 잘 빨아서 그 때 주겠노라 하셨는데, 그 뒤로 당신이 몸져 누울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은 우리가 서양미술가들은 알고, 좋아하되, 단원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 여기는 자세를 질타하고, 우리가 우리 옛 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이를 마음으로부터 좋다 여기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와 했습니다. 이제 뉘 있어 우리의 이런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습니까. 조선의 그림이 초기에는 중국 그림에 묻히고, 구한말 강점기를 거치며 왜색에 침탈당한 사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여 이제라도 우리 옛그림의 당당한 아름다움에 대해 당신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당신의 그 마음과 해석을 즐겨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문적으로 더욱 많은 일들을 하여 주실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등지니 애석한 마음 누를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일주기를 맞아 나온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2"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곁에 두고 오래도록 당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2006. 2. 風簫軒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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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여기 만병통치약이 있다. 아픈 사람 이리오라.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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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선택이었다. 2005년의 12월, 인터넷 서점의 할인행사 물품 중 고를만한게 없을까 뒤지던 중에 <공중그네> <인터폴> 셋트를 발견. 아니 두 권을 한권 값에 준다네. 이런 할인행사 때는 왕창 많이 지를 염려도 있지만, 한 두개쯤은 질러주는 센스도 있어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보통 씨의 책을 다 찾아 읽다가, 연애소설로 나의 관심이 이동, 연애소설에서 이제 일본소설로 관심이 이동 중이다. 그리하여 최근 일본의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골라 맛보고 있는 중. <공중그네> 역시 그 와중에 나에게 발탁(?)된 놈이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기획자, 잡지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슷한 관련 분야의 다양한 직업 변천사 때문인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들에게 묻어나오는 정통 소설의 구도를 과감히 깨버린다.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배운 감독과 생판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로 영화를 배운 감독과의 차이라고 할까.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쾌한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코믹영화라고 해서 그냥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교훈.  

  <공중그네> 는 총 5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사건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방식은 같다. 각각의 단편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 두 사람의 환자 처방법이 특이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맞을까 의심이 들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다퉈놓고 찜찜할 때, 여자친구로부터 시련당했을 때, 나를 보살펴준 부모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등등의 사소한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런 고민들, 누군가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 딴지걸지말고 그냥 그래 그래 네가 맞아 네가 옳다 라고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내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보다 대단한 고수를 만났다. 이 때 느끼는 좌절감. 나를 포함한 누구나 다 느껴봤을 법한 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짧게나마 정식으로 드럼을 배웠고, 이후 독학하며 이런저런 밴드들을 거치고, 프로젝트를 꾸려 공연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내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의 드러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학교 내 여러 밴드들이 공연할 때 보면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은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 이런 못말릴 거만함. 내가 거만하다는 걸 안다. 사람들도. 그러면서도 그들은 날 인정해줬다. 하지만 언젠가 나보다 나이 많은 다른 밴드의 드러머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헉! 이런, 이란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는 방송국의  세션드러머까지 했다고 하니. 아 이런. 그야물로 우울안의 개구리, 정저지와는 이럴 때 하는 말.  

  홍대 앞 라이브 클럽 재머스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때, 정식 인디밴드가 되었다는 자부심. 이제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웅큼의 흙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지만 또 클럽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단한 실력파의 밴드들. 이 이럴 때 같은 클럽 밴드지만 정말 우울. 이렇게 노력했는데 이거 밖에 안되나. 세상이 고수는 너무나 많다. 내가 학교에서 후배에게 드럼을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여기서 아무리 잘해봤자 나가면 고수는 엄청나다.   이럴 때 이라부 의사에게 간다면 딱 좋겠는데.

   소설 속 이라부 의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랜 공부기간에서 나오는 해박한 의학지식과 권위주의적인 거만하고 뻔뻔한 태도의 의사들이 절대 아니다. 아니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오자마다 반말 찍 하더니 처방은 안해주고 자꾸 딴소리만 해. 내가 야구선수라니깐 같이 캣치볼을 하자고 하질 않나. 서커스단이라니깐 자기도 공중그네 해보고 싶다고 정말 서커스장에 와서 매일같이 연습하지를 않나.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당신 의사 맞아? 돌팔이 아냐? 당연 의심이 갈 수 밖에. 요즘 또 흰 가운입은 돌팔이들이 한 둘이야? 게다가 의사는 그렇다 쳐. 가슴 곡선 다 보이게 노출하고, 핫팬츠 입고 다니는,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나 읽고 있는 저 여자는 뭐야. 간호사 맞아? 아니 무슨 일본 포르노 찍나. 하지만 이라부 의사를 찾아온 환자들은 다음 날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마련. 무슨 최면술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말야.  

  이라부의 환자 처방법은 특이하다. 그냥 대놓고 비타민 주사를 시도때도 없이 놓지를 않나. 아니 무슨 처방법이 그래. 비타민 제만 주사하면 다 낫는데? 하지만 다 낫는다. 정말 의학적으로 처방한 것은 비타민 주사가 전부인데도.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그들은 각 분야의 최고의 인물들이지만, 불안과 강박증세, 자신감 부족, 결단력 상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분명히 이분야에서 만큼은 날 따라올 자가 없는데 하찮은 기본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숨긴다.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상담해보고 싶지만 말 할 사람이 없고, 말할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밖에. 이라부는 바로 이 점을 고쳐준다. 일부러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환자와 함께 놀면서 환자는 저절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깨닫고 인정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나니. 마음을 열면 모든 병은 치유된다.

   분명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나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한번 이곳을 찾은 환자들은 다시 방문하게 마련. 그것은 어쩌면 병원에 대해,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깨지면서,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들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안놀아주면 울어버리는, 또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지만, 그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환자를 완치로 이끈다. 우리가 못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도 같이 못된 놈이 되듯이, 착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 마냥 투명한 유리거울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라부의 마음이 환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치유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아직까지 이런 비슷한 의사도 결코 보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차원에서 다른 병원과 경쟁해 이기려는 자들의 컨셉이 아닐까 생각. 

  이 소설 후딱 읽으며 정말 속으로 혼자서 큭큭 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고 난 느낌. 이라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벌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닫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이라부를 찾아가는 길만 남아있도다. 어서 가자 이라부에게.

 

 

* 알라디너들만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이 재밌고 유쾌한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의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다가 마태우스님이 생각났다. 아하 마태우스님이라면 이런 의사가 되기 충분해. 아니 왜 기생충학을 전공하신 거지? 기생충들은 웃기지도 못하는데. 정신과 의사가 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태우스님은 충분히 재밌고 웃기고 때로는 살짝 괴짜같고 순수 그 자체인 인물.  

또 하나. 이라부 의사와 호흡을 착착 맞추는 마유미 간호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니 갑자기 하이드님이 머리에 번뜩. 마유미 간호사 처럼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를 보는 이미지는 결코 아니지만, 호피 무늬를 좋아라하시는 하이드님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유미 간호사는 서커스장에 호피무늬옷을 입고 따라가서 이라부가 공중그네 연습하는 내내 호랑이와 텔레파시 놀이를 한다. 마유미 간호사의 다른 면들은 다 제쳐두고 호피 무늬를 사랑한다는 면에서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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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icaru >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오병욱 지음 / 뜨인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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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처음부터~ 227페이지까지(책의 사분의 삼)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꽃을 보지만 어떤 점에서 아무도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은 아주 작고, 우리는 아주 바쁘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이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 왔지만 여전히 제대로 하지도 못한 일들만 잔뜩 쌓여 있다는 걸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다. 아니 너무 바빠서 그런 걸 깨달으며 살 수나 있으신지....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일에 치여 내가 그렇게 하며 살기 벅차다면,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도 나직히 귀기울여 듣고 싶었고....

비바람에 후둑후둑 감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소나기가 그친 뒤 뒤뜰에 나가 젖은 이끼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하얀 감꽃을 본다.

가을 겨울에 걸쳐서 이따금씩 딱따구리가 찾아와 감나무 둥치를 쪼아댄다. ....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언제나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무게 있게 딱딱 소리가 나면 멀쩡한 둥치이고, 통통통 울림이 있으면 속이 빈 둥치, 퍽퍽 뿌직뿌직 나무 뜯는 소리가 나면 썩은 둥치다. 나무 종류에 따라서 딱따구리 소리도 조금씩은 바뀌겠지만 그 차이를 알아들은 만큼 내 귀는 섬세하지 못하다. 나무마다 바람소리가 다르고 그 소리 또한 계절마다 다를 것이다.
딱따구리는 머리에 충격 완충 장치 같은 게 있어서 나무를 쫄 때 생기는 지속적인 충격으로부터 자신의 머리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새가 함부로 딱따구리 흉내내다가는 그야말로 골치가 아프게 된다.


딱따구리 소리의 차이를 알아들을 만큼 자신의 귀가 섬세하지 못함을 실토하는 저 단백함. 다른 새가 딱따구리 흉내내다가는 골치 아플 거라고 에둘러 말하는 묘미.

그리고 그는 1998년 8월 그해 물난리 때, 폐교 된 초등 분교에 잡았던 작업실이 통째로 떠내려가는 물난리를 맞는다. 비가 온 다음날 작업실을 찾으니, 그 안에 있던 그림들이며, 물감이며, 이런 재료들이 모두 떠내려간 작업실. 교실 바닥이 패이고 커다란 웅덩이만 남아 그 안에 물이 고여 있었다니. 게다가 몇년만의 전시를 그 해 가을 앞두고 있던 터라 전시회 일정을 취소를 해야 했었을 텐데. 그 상실감이란...참... 내가 옮기기엔 송구하다....

나는 갑자기 거대한 폐허 앞에 홀로 서 있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쪽 아래에 뭔가 있다. 동네 앞에 있는 자갈밭 모퉁이에 사람들이 하얗게 앉아 있었다.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8월 중순 뙤약볕 아래 새카맣게 그을린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제 막 배급받은 마른 빵을 뜯고 있다. 물도 우유도 없다. .... 노인들의 흰 옷과 하얀 모래밭이 너무나 눈부셨다.


이 책은 227페이지까지만 참 좋다.

227페이지가 넘어가면, 맑고 담담하게 느낌이 조금씩 퇴색된다. 은근히 자기 자랑이 뭍어 나고(학교 다닐 때,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불러 어딜가나 힘 안들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 그에 딸려 나는 인연들 성공회대 교수이자 노찾사 창립 멤버인 김창남은 그에게 전도되어 음악 노래패에 가입했다고, 김창남이 그날 밤 기숙사에서 그의 기타 소리에 홀리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메아리(서울대 노래동아리)’가 노찾사가 되었을까? 하고....홀로 묻고 있다. 서울대 음대 친구들과 음악을 같이 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질펀히 듣고 난 터라 그 이후의 페이지도 그 수수하고 담백했던 느낌이 조금 변색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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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볼게요"
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한 업주들이 구속되었습니다.
특히 이들 업주들 중 일부는 불법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내국인 직원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06년 회사에서 신상품 개발 실험 도중 이상한 약을 마시고 홍 대리는 2106년의 세계로 날아간다.
그런데 이 100년 뒤의 세상이 요지경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 업주가 구속되고, 그것이 큰 뉴스거리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다.
미혼의 직장여성에 대한 적당한 언어폭력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이유는
그렇게라도 눈치를 주지 않으면 결혼할 생각을 않고, 그것은 곧 저출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날씨가 화창한 날의 외출도 자제한다.  왜냐?
피부색 측정기가 있어 16등급 이하로 피부색이 짙어지면 취업, 사회보장 등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

홍윤표의 만화  주인공 천하무적 홍 대리는 탄식한다.

"미쳤구나,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  내 비록 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건 아니야!"

그런데 그를 감시하고 지도하는 국가차별위원회에서 파견된  요원은 홍 대리의 말에 콧방귀를 뀐다.

"이 차별들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홍 선생이 살던 시대에 존재했던 차별들을
모두 법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요!"

작년에 읽은 <십시일반>에 이어 8인의 만화가가 다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시옷>을 읽었다.
그런데 여덟 편의 만화 중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맨 앞 손문상의 작업과, 홍윤표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홍 대리'가 제일 시선을 끌었다.
한밤중에 자고 일어나, 부의 세습이며 등급제 사회를 말하는 텔레비전 앞에서 작업복도 벗지 않고 앉아
한숨 쉬고 있는 부모에게,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볼게요."라고 말하는
어린 아들의 대사라니!(손문상의 한 컷 만화)

<사이시옷>은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비혼모 들이 받는 차별뿐만 아니라,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라는 정훈이의 작품을 통해 인생의 한 시기를 아주 당연하게
간섭받고 억압받는 입시생들의 애환까지 비틀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최규석의 '용서 받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는 '창'은 군대 내의 한 으슥한 막사 풍경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 당분간 합숙하러 떠난다고 집에 거짓말을 하고 한 시설에 틀어박혀야 했던
열여덟 살 소녀의 실화 '축복'은  가슴 먹먹한 이야기지만, 유승하의 독특한 펜선이 살아 있는
그림 때문인지  조금도 칙칙하지 않다.
소녀들과, 소녀가 사는 집과, 분식집이 있는 골목과, 동네 목욕탕 속 쭈그렁 할머니까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같은 게 느껴진다.
이애림의, 형식적인 면에서 아주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만화도 인상 깊었고.

두 낱말이 어울려 한 낱말을 이룰 때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사이시옷, 그리고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와 연결시킨 '사이시옷'이라는 제목은,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과 참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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