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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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일이 있었다. 아주 먼 곳이었다. 남한은 통째로 들어갈 수도 있고 북한까지 합하면 조금 모자랄지도 모른다는 큰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나는 가고 있었다. 계절답지 않게 아주 뜨거운, 한국에 비한다면 더더욱 뜨거운 태양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호수는, 호수라기보단 바다 같았다. 멀리 보이는 것은 건너편의 호숫가가 아닌 끝없는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었고, 살찐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거나 걸어다녔으며, 심지어 소금기를 동반한 짭짤한 바람까지 불었다. 다양한 이국의 언어들이 떠들어지고 있는 주변, 뜨거운 태양, 거대한 호수, 그리고 그 가운데의 나. 가만히 서있던 순간 그런데 왠지 모르게,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자 우습게도, 웃음이 났다.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다는 외침을 줄곧 드러내고 때론 숨기는, 한 때 날 매료했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생각났던 거다.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일까봐 손으로 입가를 지워내듯 문질렀다.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구나, 라는 감상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바삭거렸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물론, 소설책을 집어들어 읽은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므로, 그렇게 극적인 진행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짧았던 부재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바쁜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비로소 뭔가 여유를 부릴 틈이 났다. 책을 찾아 들고-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책상 옆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으니까-, 읽었다. 한동안 머릿속을 부유하던 소설의 편린들이 눈 앞에 문자화되어 놓이자 일단 마음이 편해졌달까. 기분 좋게 소설에 몰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이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은, 처음 세상에 나왔던 십여년 전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꽤나 도발적이고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물론, 매혹적이다. 지금 보면 다소 치기 어린 감이 없지 않지만, 그것 또한 흥미로운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내용은 간단하다. 자살 안내인인 '나'를 주축으로, '나'의 고객이었던 두 여자, '유디트'와 '미미'의 이야기를 각각 기술한 것이다. 물론 그 앞부분엔 일종의 프롤로그가, 중간에는 '나'의 일종의 여행담이, 마지막에는 일종의 에필로그가 있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장을 '죽음'이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 무게와 가치를 갖는 죽음의 방법은 자살 뿐이다. 자살 안내인인 '나'는 압축이라는 은유로 자살의 미학, 혹은 가치를 역설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과는 별개로 일각에선 혹독한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전부 우스운 것이다. 이 작품은 이론을 체계화시켜놓은 논문이 아니라 다만 한 소설가의 관점에 의한 픽션일진대, 왜 그에 굳이 시비를 가리려 드는가 싶다.

뭐 어쨌거나, 나는 이 리뷰에서 이 소설의 내용과 문장들을 낱낱이 파헤치지는 않겠다. 이것은 다만 리뷰일 뿐 서평이 아니며,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그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많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영화에나 책에나 스포일러가 가장 큰 적 아닌가. 게다가 작품을 두고 감히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혹시나 이 소설을 읽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아주 친절하게도 책에 꽤나 상세한 서평이 함께 실려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리뷰를 쓰는 것은,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다소 건방진 관점을 대놓고 표현함으로써 몇몇 사람들의 반감과 빈축을 샀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대담하거나 은밀하게, 그러나 생각보다 빈번하게. 그리고 우습게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살아 있는 자만이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살아있는 자만의 권리다. 누구보다도 생생히 살아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오만한 권리. 그러니 살아 있는 당신들은 그 살아있음을 감사하든 저주하든 간에, 권리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마음껏 떠들고 적당히 침묵하길 바란다. 물론 관건은 적당량을 유지하는 침묵이겠지. 매사 적당한 것 만큼 어려운 일도 드무니까.

그래서 내가 이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 역시, 읽든지 말든지 상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찍어낸 출판사 사장도 아니고 작가는 더더욱 아니므로 중대한 상관이 있을리가 없다. 게다가 예술이란 수용자에 의해 언제나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책에 별을 네개나 줬지만, 어떤 사람은 다섯개를 줄 수도 있고 혹은 그냥 그런 세개를 줄 수도 있으며, 어쩌면 별을 하나도 주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다. 바로, 당신에게.

늘 현명한 침묵을 지키고 싶지만 왜 나는 이렇게나 말이 많은지. 언젠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붙잡혀 숨막히게 좁은 방에 15년간 갇히게 되더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식단을 좀 다채롭게 해준다면 감사하겠다, 는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왜 나를 이렇게까지 수다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문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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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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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라. 독특하고, 뜬금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고 어찌보면 밋밋하지만 왠지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산뜻한 표지의 이 책. 그런데,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 왠지 마음이 가는 책 디자인이었다는 말(난 디자인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읽기는 읽었다. 결국은 디자인의 승리였던 걸까.
에세이집이다. 그것도 ''결혼''에 관한 에세이집, 그것도 일본 작가.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겠지만 일단 내겐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들이 아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낙하하는 저녁''은 좀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읽다 말았다. 작가 특유의 차갑고도 섬세하며 시린, 그 문체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담담한 연애(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 수도...)소설, 그 가벼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에세이집이 괜찮게 다가왔다.
결혼과 가정을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글처럼 진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도, 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좀 의외였다. 너무 쿨했다. 읽으면서, 도대체 이게 결혼 이야긴지, 아니면 동거 이야긴지가 헷갈릴 지경으로. 그러다가 그녀의 소설들을 생각했고, 그러자 그녀 소설의 전반적 정서가 확 정리되어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에세이집의 묘미가 그런 데 있기도 하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호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감정 같은 것들이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것, 그럴 때의 명쾌함.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함께.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들에서, 너무나 서슴없이 이혼 후의 상황을 가정해보기도 하고, 남편을 타인으로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 내가 결혼이란 걸 왜 했던가. 결혼은 정말 끔찍한 것이며, 도대체 내가 왜 이딴 것을 했는지 모르겠다.''이런 식의 탄식은 아니다. 정말로 그녀답게, 너무나 쿨하게 그저 생각해보는 것이다. 냉철하고도 철저한 개인주의적 정서가 어쩐지 친밀하기도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이 글을 과연 (그녀의) 남편도 봤을까(, 그러고도 계속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푹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같이 살지! 그게 서로 이해가 가능한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건 이번 책을 읽고,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 특유의 가벼움, 건조함, 냉철함 같은 것이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소설은 깊을수록 좋고, 에세이는 가벼운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늘어진 기분을 가볍고 산뜻하게 적시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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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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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이었던가, 신문을 읽다가 동인문학상 수상후보 4명이, 하루 한 명씩 특집으로 다뤄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소설집 ''펭귄뉴스''의 작가 김중혁을 알게 된 것은 그 기사에서였다. 최종 후보 4명 중 유일한 남자였고, 또 그 중 내가 몰랐던 유일한 작가(작가님 미안;;;)였기 때문에 유독 관심이 갔다. 인터뷰 내용과 사진 등등을 보고 있자니 꽤 흥미로운 작가구나, 싶었고 기회가 닿으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일단 표지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펭귄뉴스''라는 장난스러운 글씨체와, 조금은 심술이 난 듯한 펭귄 일러스트(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소문이...), 그리고 알록달록한 원색과 단단한 하드커버. 아무래도 책을 빌려 읽을 때완 다르게, 소장할 때는 표지와 외형을 조금이라도 더 따져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오히려 디자인에 혹해서 사버렸다. 그래서 나중엔 혹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나, 는 생각도 좀 들었지만 그래도 최종후보작까지 되었던 소설집이니 허술하지는 않겠지라고 합리화하며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7개의 단편과, 맨 마지막에 표제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중편 ''펭귄뉴스''가 실려있다. 전반적으로 잘 읽혔고,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고루 ''수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집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것이다. 어느 하나 수준 떨어지는 작품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아주 매혹적인 작품을 꼽기가 모호하다는 것. 대부분의 소설집들을 읽어보면 ''역작''과 ''졸작''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소설들은 고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것이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라는 것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약점을 고르자면, 읽다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뭐 한 작가가 쓴 소설들이니만큼 그 주인공들의 성격이라든지 분위기 같은 것이 서로 비슷한 것은 당연하지만, 김중혁의 것은 그 농도가 좀 더 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무용지물 박물관''의 주인공이나,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주인공이나, ''바나나 주식회사''의 주인공이나... 이 주인공들은 남자라는 공통점 외에도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함을 느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직업과 처한 상황만 다르지,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김중혁의 소설들은 나를 매료시켰다. 중간 중간 여유를 잃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드는 유머러스한, 그러나 냉소적이지 않은 문장들, 대사들을 읽는 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최근 들어 냉소적이거나 지나치게 인위적인 유머(예를 들자면, 박 모 작가......)에 질려있었는데, 이렇게 유하고 기분 좋은 유머라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그의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매력은, ''동화''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전혀 억지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인.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내 신기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는 느낌인데, 생각해보면 거의 전혀 환상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것.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잠깐의 휴가를 보낸 뒤 다시 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캐나다에 사는 삼촌이 보내온 물건-나무 조각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삼촌과 통화를 한다.(''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내용) 상당히 일상적이고, 당연히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내 머릿속에선 그 모든 모습들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있다.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의 발명가 이눅씨는, 그 동화적 이미지의 절정이다. 자신이 설계한 발명실에 살며 뭐 망토까지 두르고 있는 이눅씨는 사실 좀, 다분히 동화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러저러 횡설수설해 놓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 작가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다, 라는 것이다. 이 작가에겐 일상을 동화처럼 포장해내는 능력이, 그리고 동화엔 현실감을 불어넣는 능력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좋은 작가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이번 소설집에선 아쉽게도 ''역작''이라 할만한 것은 찾지 못했지만 앞으로 충분히 굉장한 작품을 쓸 ''역량''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다.
아무튼, 작가님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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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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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비슷한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마치 팝 아트 작품처럼 적과 흑의 조화가 단순하고도 묘하게 어우러진 표지를 봤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대머리 여가수가 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부조리극', 그 이름부터가 왠지모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이 장르에 감히 도전해보자 마음먹은 것은 다름이 아닌 남아도는 시간. 수능 끝난 고3은-물론 논술이라는 난제가 아직도 남아있긴 하지만-요즘 무한정 주어진 시간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이미 노는 것도 슬슬 지겨웠고, 늘 읽던 소설, 에세이류는 내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엔 역부족. 그래서 '이 참에 아예 연구를 해봐' 하는 심리로 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연구'는, 아무래도 수십년 전의 획기적 도서였던지라 21세기의 인간이 읽기에는 이미 뻔한 내용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래서 선택한 장르가 부조리극(왜 굳이 부조리극이었냐-를 묻는다면... 글쎄 사실 나도 잊은 지 오래랄까;;). 부조리극의 효시이자 고전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사서 읽었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이모저모로 더 수작으로 평가되는 듯 하지만 글쎄, 내겐 '대머리 여가수'가 훨씬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머리 여가수'는 스미스 부부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아주 전형적인 영국인들로 묘사되는데, 그 설명 방식이-외양 묘사에서 수식어를 전부 '영국식의-'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우스웠다. 그리고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부. 대머리 여가수의 주제의식은 극 전반에 걸쳐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소통 불가의 인간, 그리고 불완전한 소통의 매개인 언어. 부부간에도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설정은 상당히 파격적이면서 효과적이다(물론 인위적이고 억지스럽다.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의 묘미는 바로 '억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뒤에 등장하는 마틴 부부 역시, 소통의 불가라는 점에서 스미스 부부와 마찬가지다. 첫 등장에서 그들이 서로를 몰라보고 타인을 대하듯 하는 것은 지나친 억지로 보여지며 별로 우습지도 않다는 것이 단점이지만(물론 연극으로 볼 땐 배우에 따라 우스울 수도 있을 듯)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 극작품은 스미스 부부의 집에 마틴 부부와 소방대장이 방문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언쟁 같은 말장난인지, 말장난 같은 언쟁인지를 펼치고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으로 끝나버리는데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언쟁 같은 말장난이 나올 때다. 꽤 긴 그 부분에는 꽤 많은 각주가 달려 있는데(번역자의 노력이 실로 가상하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대사가 그야말로 '말장난'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문화적 배경지식도 부족하고 리듬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로 재미도 없고 썩 와닿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프랑스어를 더 공부하든지 해야지 원...

음, 어쨌든. 대충 위에 설명해 놓은 내용이라든지 등장인물을 보면 알겠지만 대머리 여가수에는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 한번 소방대장이 '그런데 대머리 여가수는?'이라고 하던가, 하는 물음에 '여전하죠. 여전히 그 머리 스타일이고요'(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는 대화가 전부다. 자신의 눈에 우스운 것은 인류 전체라고 이오네스코가 말했던가. 제목은 작품을 포괄하는 것이든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부정해버림으로써 이오네스코는 우스운 인류를 더욱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끝까지 대머리 여가수의 출연을 기다렸던 나 같은 인간들은 더더욱. 끝까지 읽고 나서야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에 남은 두 작품은 읽어보지도 못한 채(나중에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대머리 여가수만한 충격은 아니었다.) 책장을 덮었을 때 붉은 바탕에 검은 그림으로 서 있는 인물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그 그림을 보면서 문득 소름이 돋았다.

좋은 작품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방법이야 그 외에도 여럿 있지만 단순히 그 점만을 따져본다면 나는 대머리 여가수를 최상위권에 올려두고 싶다. 이 작품을 읽은 지 한 달 가량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오네스코가 던져준 화두를 명쾌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책 뒷면에 박힌, 기괴하게도 웃고 있는 이오네스코의 사진을 보며 생각해 본다. 당신이 던져준 화두를 내가 능란하게 다루게 되는 날, 나도 부조리극을 써보겠다고. 모든 인류에 대한 통쾌한 비웃음을 담은 너무나 매력적인 장르, 부조리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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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en Rice - O & B-side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노래 / 워너뮤직(WEA)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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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저의 ost, 'The blower's daughter'로 Damien Rice의 솔로 데뷔 음반인 이 음반이 크게 성공했고, 우리 나라에도 어느 정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한 지도 한참 오래, 음반이 발매된 지도 한참 오래 된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야 이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우스운 것은 난 클로저를 이미 옛날에-그러니까 개봉했을 무렵에-이미 봤었다는 것이고 그때는 이 노래에 전혀 끌리지 않았었다는 것. 내가 영화 클로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별로 재미 없었다는 것이고, 퍽 야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야했다는 것이고, 당시 엄청나게 열광했던 주드 로가 별로 멋있지 않게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상 Damien Rice가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도 아니고 또 찾아 듣지 않는 이상은 새로운 노래를 별로 들을 기회가 없는 생활 패턴을 가진 인간이라서, 얼마 전 아주 간만에 들른 이적의 홈페이지 ''몽상적''에 Damien Rice가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앞으로도 쭈욱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간만에 적군이 올린 글에서 그가 요즘 듣고 있는 음반들 소개에 덧붙인 Damien Rice, John Mayer, John Legend 이 셋이 새로운 세대의 3대 싱어송라이터로 여겨지는 것 같다나, 하는 말에 들을 노래 없어 허덕이던 나는 기꺼이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John Mayer, John Legend의 노래는 전부 내 취향이 아니었고 Damien Rice는 지독히 내 취향에 들어맞았던 것.

몇 개 유명한 노래를 들어보고, "이런 보컬이면 곡이 엉망이어도 들어줄 만 하겠다"고 판단, 음반을 구입했다. 일단 겉 모양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는데, 솔직히 겉모양은 영 아니라고 본다. 미색 바탕에 썰렁하게 이름자와 음반 타이틀만 적어놓고 컴퓨터 그림판으로 끄적거려 놓은 듯한 그림은, 그래, 넓은 아량으로 그렇다 치더라도 얇고 허섭한 디지팩 껍데기(이건 케이스가 아니라 진정 껍데기다)와 펼쳤을 때 나홀로 뚝 떨어지는 B-side 팩(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리고 가사집도 굉장하다. 나얼을 떠올리게 하는 상당히, 뭐랄까, 그로테스크(..까진 아닐 수도)하고 난해한 그림들과 그닥 잘 알아볼 수만은 없는 손 글씨. 그리고 평소 라이센스반을 잘 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상적인 가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 놓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라이센스로) 구매했는데, 해설집과 가사 해석 책자가 들어있지 않았다... 정말 급당황. 우. 그래도 다행히! 10개의 트랙은 정말이지 눈물 날 정도로 좋아서, 씨디를 컴퍼넌트에 밀어넣고 케이스들을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끔 해두자 곧 감동이 밀려들었다. 첫 곡 delicate는 비교적 무난하지만 두번째 곡 volcano는 오오, 감동적. what I am to you, 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고 여자 보컬과의 조화도 멋지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그 유명한 The blower's daughter가 흘러나오는 데에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volcano가 채 잦아들기도 전 and so it is,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주는... 트랙 간에 예비시간을 두지 않은 듯 한데, 그게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것 같은. 마지막 10번 트랙이 Eskimo인데, 10번 트랙에는 그의 선물이 숨겨져 있다. 곡이 다 끝나고 나서, 나는 음반이 다 끝났음에도 그 여운을 느끼려고 (사실은 귀찮아서) 굳이 정지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아주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음성은 그야말로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여자 보컬의 목소리로 silent night, holy night를, 개사한 버전으로 반주 없이 부르는 게 있는데 그것도 오묘한 매력이 있다. 캐롤을 그렇게나 허무하게 부를 수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참 묘한 분위기를 맛보았다는. 얼마 전 신보도 나온 것 같던데, 얼른 돈 모아서 사야겠다. 음, 이 음반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비록 겉 모양이 참 비호감스럽지만 그의 목소리와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아무래도 MP3파일론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고, 또 인터넷에선 쉽사리 구할 수 없는 히든 트랙(기대할 만 합니다! 그의 폭발적인 분위기!)을 들어보고 싶다면 과감하게 살 것을 추천! 그리고 적어도 싱글 앨범 하나 이상의 가치는 되는 B-side까지 주니까 절대 돈 아깝지는 않을 거라는,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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