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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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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총체적으로 리뷰한 글을 원하신다면, 가볍게 패스해주시길*)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엔 이상하게도 손이 가질 않았다. 아니, 사실 '이상하게도'라는 수식어는 가증스럽다. 이상문학상이라면 일단 나오자마자 읽고야 마는 내가, 연초에 나온 작품집을 올해의 중간이나 가도록 읽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었던 것은 바로 대상 수상자가 권여선 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권여선 작가는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어서. 게다가 우수상 수상자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천운영 작가 하나 뿐이었고,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던 하성란 작가와 또한 영 내 취향이 아니었던 윤성희 작가, 기대를 지나치게 했다가 실망했던 전적이 있는 박형서 작가, 몇몇 단편을 제외하면 도무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던 박민규 작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몰랐던 정영문 작가와 김종광 작가. 이런 식의 구성이었기 때문에 선뜻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읽은 것만도 기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아무튼 읽고 난 지금,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 작가의 '사랑을 믿다'는 생각만큼 끔찍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게 왜 대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다는 의아함이고, 윤성희 작가의 '어쩌면'은 생각보단 재밌었지만 대상을 받지 못한 게 의문스러울 정도는 아닌 정도였고, 천운영 작가의 '내가 데려다줄게'는 작가의 비범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 수작이었다, 는 정도의 소감이다. 나머지 작가들의 소설은 별로 끌리지가 않아서 아직 안 읽어봤다. 그리고 제목에서 밝혔듯 이 리뷰의 메인이 될 박민규 작가의 '낮잠', 이 소설은 박민규 작가에 대한 나의 견해를 통째로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막강했다. 읽으면서 내내, 이걸 정말 박민규가 썼다고?! 정말?!?!?! 이런 놀람과 감탄과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자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꽤 오랜만에.
 
이쯤에서 말해둬야 할 것은 단연, 박민규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 (물론 '낮잠'을 읽기 전에 한한) 일 것이다.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였던가. 당시 꽤 신선한 소설이었다. 재미도 있고, 독특하고, 내용도 있는.  그 다음으로 읽은 것은 '갑을고시원 체류기'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서 한국 소설판에 제대로 된 구원투수가 하나 나타난건가, 했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단편집 카스테라를 읽고서는 그런데 좀,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었다. 앞선 두 단편에서 적당히 표출되었던 독특함은 단편집 전반에 걸쳐 주체할 수 없이 만연되어 있어, 읽는 내내 이거 분명 유머러스한 부분인데 왜 나 웃을수가 없지, 이런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리송해진 기분으로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같은 장편들을 읽고 나자 의아함이 거의 한계치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이후 핑퐁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박민규는 외계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다, 실제 그 외모도 다소 외계인스러웠다는 점도 한몫 한 결론이었다. 
그  이후 읽은 '비치 보이스'또한 여전히 그 다웠지만 그래도 지구인인 내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유머감각이어서 재밌게 읽었다. 결말은 역시나 당황스러웠지만. 아무튼 그래서, 참 유니크한 작가로군 (비록 나와는 잘 안 맞지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리뷰들을 보니 박민규 작가에 대한 칭찬이 더러 눈에 띄는 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낮잠'이 대상을 수상했어야 한다는 의견까지도. 기존의 박민규와 다르다는 소리에 도대체 어떻기에, 궁금해졌다. 일단 노년을 다뤘다는 것부터가 조금 의외였기도 하고.  

그리고 읽고 난 지금, 나는 박민규라는 작가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백만배쯤은 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난 솔직히 박민규 작가가 장난질밖에 칠 줄 모르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장난질이 꽤나 수준있는 것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난질이기 때문에 뭔가 깊이있는 울림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낮잠'에서의 그는, 정말이지 바뀌었다. 예전같은 황당무계함은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워지기만 했는가,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박민규만의 통통 튀는 위트는 살아있고, 독특한 수사도 볼 수 있다. 다만 그가 이렇게나 능란한 작가였던가, 하는 생각. 문득문득 느껴지는 삶의 무게감과 깊이, 웃음지으며 읽다가도 문득 짠해지는 것. 그리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그가 인생을 이렇게나 제대로 다뤄내다니, 하는 감탄어린 감상이 절로 들었다. 실로 놀라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낮잠'에 별점을 매기자면 네 개에서 네 개 반 정도다. 이렇게 극찬을 해놓고 다섯 개를 주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섯 개 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의외성에서 비롯된 호들갑도 한몫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권여선 작가의 '사랑을 믿다'는 별점 두 개 반에서 세 개 정도라고 생각하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높은거다. 나 또한 그가 대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어쨌든 제대로 업그레이드된 박민규 작가, 그라면 곧 별 다섯 개로도 모자랄 정도의 수작을 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머지않아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에서 대상 수상자로 커다랗게 박혀있을 그의 이름을 보게되길 기대하면서.

+)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러니까, '낮잠'을 제외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편은 못 되었다.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약해지고 있다는 전반적 의견에도 나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는데, 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절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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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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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2005년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었던 '몽고반점'을 읽은 이후로 2007년 11월 현재까지, 근 3년이 되어가는 시간동안 나는 무던히도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요란한 광고 따윈 없이 (내가 보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조용히 나와버린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맹세코 단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집어들었다. 이렇게나 반갑게 책을 집어든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이상 문학상과의 만남, 그것은 내 인생의 문학적 측면에 있어서 실로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한 부분이었다. 한국 현대 문학은 고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내가, 그 선입견에서 탈피하여 한국 문학의 매력에 흠뻑 젖어버리게 한 계기가 되었으니. 내가 처음으로 접한 것은 권지예 작가의 '뱀장어 스튜'가 대상으로 수록되었던 2002년의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었다. 마치 고등학교 문학 참고 서적과도 같이 투박한,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표지를 보고 내가 어떻게 그 책을 읽을 결심을 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어쨌거나 별 기대도 없이 읽었던 그 소설은, 그러나 별 기대가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이유도 없이 갖고 있었던 선입견을 무참히 깨버린 신선함, 도발, 충격, 그리고 아름다움. 그때의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그 이후 나는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중심으로 한국 문학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작품집을 읽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작가를 골라 그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는 방식으로. 그 후 해마다 출간되는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챙겨보았다. 작품집에 실린 소설 중 반쯤은 좋았고, 반쯤은 별로였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2005년, 나는 한강의 '몽고반점'을 만나게 된다.

'몽고반점'을 읽고 느꼈던 전율, 그것은 굉장했다. 굉장했다, 라는 표현이 심심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했다. 마치 폭풍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뱀장어 스튜를 접했을 때보다도 더욱 강렬한. 나는 매료되었다. 그 생경하고 아름다운 카리스마에. 소설을 읽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자선 대표작으로 실린 '아기 부처'를 읽는 것을 미뤘던 것도 기억난다. 몽고반점을 읽으면서 이미 진이 빠진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이 작가의 작품을 아껴서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우스운 비유를 들자면, 맛있는 음식을 아껴 두었다 먹고 싶어하는 심리와 동일한 것이었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이 하나의 단편이 아닌 3편으로 구성된 연작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으며 목말랐겠는가 말이다. 1편 격인 '채식주의자'는 아직 책으로 발간되지 않았었고 (아마 잡지에 실렸었을 테지만 찾지 못했다) 3편 격인 '나무 불꽃'은 아직 씌어지지도 않았었으므로 당연히 읽을 수 없었기에, 그 때부터 나는 언젠가 이 연작이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여 나오길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대는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3개의 단편은 각기 다른 서술자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그 한가운데 놓여있는 주인공은 단연 '영혜', 그녀이다. 세 단편의 제목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은 전부 영혜라는 인물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녀는 (소소한 몇 가지 특징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여자였으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기원한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고기를 먹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그녀의 육식에 대한 거부는 거의 병적으로 악화되어 결국 정신적 이상을 수반하고, 심지어 자살 기도까지 하게 된다. 그 이후 남편에게 이혼당한 그녀는 여전히 채식을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하고 조용한 생활을 이어간다 (물론 다소 이상한 징후들이 눈에 띄지만). 그러나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가 그녀에게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연작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형부는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어 몽고반점과 관련된 비디오 아트를 작업해가며, 처제(그녀)에 대한 욕망이 커져나가는 것에 고뇌한다. 온 몸에 꽃을 그린 채로 어두운 욕망은 결국 현실이 되지만, 결국 그 절정을 목격한 아내(그녀의 언니)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후, 그녀의 채식은 식물에의 열망으로 발전하고, 그녀는 나무가 되길 갈망하며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그녀의 언니는 이혼 후, 가족에게서마저 외면당한 그녀를 돌보며 끔찍한 인내로 생을 견뎌나간다. 여기까지가 연작의 주요 내용이다.

작가 한강은 3편의 연작 단편을 통해 너무도 분명하게 '식물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도 밝혔듯 전작 '내 여자의 열매'에서 보여준 식물 지향을 변주한 것이다. 그러나 '내 여자의 열매'에서 보이는 모호함과 비현실적 느낌, 인과 관계의 결여, 그로 인한 다소의 그로테스크함과는 달리 '채식주의자' 연작은 지독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푸르게 변하며 식물이 된다는 설정(내 여자의 열매)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묵직하고 구체적이며 강렬하다. 동물의 폭력성에 대한 환멸, 그로 인한 식물에의 지향. 그러한 전반적인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세 개의 시선. 그리고 이 시대의, 혹은 동물의 근원적 폭력성에 반대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낮은 목소리. 그것들은 나에게 끊임없는 물음표의 연속으로 다가왔다. 명확한 부분에서부터,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까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휘몰아치듯 읽고 나자 한동안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몽고반점을 읽었을 때 보다도 더욱 길고 깊은 정지상태였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나를 공격해왔기 때문에. 그러나 기분 좋은 공격이었다. 요 근래 나를 이렇게나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난 적이 있던가?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드는건지도 모르겠다.

작가 한강의 이 작품집은 그야말로 폭풍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지루한 일상 속에 안일하게 머물러 있는 당신을 깊이 생각하게, 그로 인하여 살아 있다고 자각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모든 것이 가볍게만 흘러가는 추세에 타협하지 않고 일관된 진지함으로 작품을 써나가시는 작가님에게, 힘내시라며,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다는 허울 좋은 포장을 씌운, 그러나 본질은 명백히 부담인 응원을 아낌없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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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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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일이 있었다. 아주 먼 곳이었다. 남한은 통째로 들어갈 수도 있고 북한까지 합하면 조금 모자랄지도 모른다는 큰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나는 가고 있었다. 계절답지 않게 아주 뜨거운, 한국에 비한다면 더더욱 뜨거운 태양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호수는, 호수라기보단 바다 같았다. 멀리 보이는 것은 건너편의 호숫가가 아닌 끝없는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었고, 살찐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거나 걸어다녔으며, 심지어 소금기를 동반한 짭짤한 바람까지 불었다. 다양한 이국의 언어들이 떠들어지고 있는 주변, 뜨거운 태양, 거대한 호수, 그리고 그 가운데의 나. 가만히 서있던 순간 그런데 왠지 모르게,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자 우습게도, 웃음이 났다.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다는 외침을 줄곧 드러내고 때론 숨기는, 한 때 날 매료했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생각났던 거다.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일까봐 손으로 입가를 지워내듯 문질렀다. 멀리 왔는데도 변한 게 없구나, 라는 감상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바삭거렸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물론, 소설책을 집어들어 읽은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므로, 그렇게 극적인 진행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짧았던 부재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바쁜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비로소 뭔가 여유를 부릴 틈이 났다. 책을 찾아 들고-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책상 옆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으니까-, 읽었다. 한동안 머릿속을 부유하던 소설의 편린들이 눈 앞에 문자화되어 놓이자 일단 마음이 편해졌달까. 기분 좋게 소설에 몰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이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은, 처음 세상에 나왔던 십여년 전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꽤나 도발적이고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물론, 매혹적이다. 지금 보면 다소 치기 어린 감이 없지 않지만, 그것 또한 흥미로운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내용은 간단하다. 자살 안내인인 '나'를 주축으로, '나'의 고객이었던 두 여자, '유디트'와 '미미'의 이야기를 각각 기술한 것이다. 물론 그 앞부분엔 일종의 프롤로그가, 중간에는 '나'의 일종의 여행담이, 마지막에는 일종의 에필로그가 있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장을 '죽음'이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 무게와 가치를 갖는 죽음의 방법은 자살 뿐이다. 자살 안내인인 '나'는 압축이라는 은유로 자살의 미학, 혹은 가치를 역설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과는 별개로 일각에선 혹독한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전부 우스운 것이다. 이 작품은 이론을 체계화시켜놓은 논문이 아니라 다만 한 소설가의 관점에 의한 픽션일진대, 왜 그에 굳이 시비를 가리려 드는가 싶다.

뭐 어쨌거나, 나는 이 리뷰에서 이 소설의 내용과 문장들을 낱낱이 파헤치지는 않겠다. 이것은 다만 리뷰일 뿐 서평이 아니며,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그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많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영화에나 책에나 스포일러가 가장 큰 적 아닌가. 게다가 작품을 두고 감히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혹시나 이 소설을 읽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아주 친절하게도 책에 꽤나 상세한 서평이 함께 실려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리뷰를 쓰는 것은,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다소 건방진 관점을 대놓고 표현함으로써 몇몇 사람들의 반감과 빈축을 샀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대담하거나 은밀하게, 그러나 생각보다 빈번하게. 그리고 우습게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살아 있는 자만이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살아있는 자만의 권리다. 누구보다도 생생히 살아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오만한 권리. 그러니 살아 있는 당신들은 그 살아있음을 감사하든 저주하든 간에, 권리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마음껏 떠들고 적당히 침묵하길 바란다. 물론 관건은 적당량을 유지하는 침묵이겠지. 매사 적당한 것 만큼 어려운 일도 드무니까.

그래서 내가 이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 역시, 읽든지 말든지 상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찍어낸 출판사 사장도 아니고 작가는 더더욱 아니므로 중대한 상관이 있을리가 없다. 게다가 예술이란 수용자에 의해 언제나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책에 별을 네개나 줬지만, 어떤 사람은 다섯개를 줄 수도 있고 혹은 그냥 그런 세개를 줄 수도 있으며, 어쩌면 별을 하나도 주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다. 바로, 당신에게.

늘 현명한 침묵을 지키고 싶지만 왜 나는 이렇게나 말이 많은지. 언젠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붙잡혀 숨막히게 좁은 방에 15년간 갇히게 되더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식단을 좀 다채롭게 해준다면 감사하겠다, 는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왜 나를 이렇게까지 수다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문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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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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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라. 독특하고, 뜬금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고 어찌보면 밋밋하지만 왠지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산뜻한 표지의 이 책. 그런데,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 왠지 마음이 가는 책 디자인이었다는 말(난 디자인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읽기는 읽었다. 결국은 디자인의 승리였던 걸까.
에세이집이다. 그것도 ''결혼''에 관한 에세이집, 그것도 일본 작가.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겠지만 일단 내겐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들이 아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낙하하는 저녁''은 좀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읽다 말았다. 작가 특유의 차갑고도 섬세하며 시린, 그 문체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담담한 연애(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 수도...)소설, 그 가벼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에세이집이 괜찮게 다가왔다.
결혼과 가정을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글처럼 진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도, 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좀 의외였다. 너무 쿨했다. 읽으면서, 도대체 이게 결혼 이야긴지, 아니면 동거 이야긴지가 헷갈릴 지경으로. 그러다가 그녀의 소설들을 생각했고, 그러자 그녀 소설의 전반적 정서가 확 정리되어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에세이집의 묘미가 그런 데 있기도 하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호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감정 같은 것들이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것, 그럴 때의 명쾌함.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함께.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들에서, 너무나 서슴없이 이혼 후의 상황을 가정해보기도 하고, 남편을 타인으로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 내가 결혼이란 걸 왜 했던가. 결혼은 정말 끔찍한 것이며, 도대체 내가 왜 이딴 것을 했는지 모르겠다.''이런 식의 탄식은 아니다. 정말로 그녀답게, 너무나 쿨하게 그저 생각해보는 것이다. 냉철하고도 철저한 개인주의적 정서가 어쩐지 친밀하기도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이 글을 과연 (그녀의) 남편도 봤을까(, 그러고도 계속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푹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같이 살지! 그게 서로 이해가 가능한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건 이번 책을 읽고,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 특유의 가벼움, 건조함, 냉철함 같은 것이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소설은 깊을수록 좋고, 에세이는 가벼운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늘어진 기분을 가볍고 산뜻하게 적시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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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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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이었던가, 신문을 읽다가 동인문학상 수상후보 4명이, 하루 한 명씩 특집으로 다뤄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소설집 ''펭귄뉴스''의 작가 김중혁을 알게 된 것은 그 기사에서였다. 최종 후보 4명 중 유일한 남자였고, 또 그 중 내가 몰랐던 유일한 작가(작가님 미안;;;)였기 때문에 유독 관심이 갔다. 인터뷰 내용과 사진 등등을 보고 있자니 꽤 흥미로운 작가구나, 싶었고 기회가 닿으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일단 표지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펭귄뉴스''라는 장난스러운 글씨체와, 조금은 심술이 난 듯한 펭귄 일러스트(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소문이...), 그리고 알록달록한 원색과 단단한 하드커버. 아무래도 책을 빌려 읽을 때완 다르게, 소장할 때는 표지와 외형을 조금이라도 더 따져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오히려 디자인에 혹해서 사버렸다. 그래서 나중엔 혹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나, 는 생각도 좀 들었지만 그래도 최종후보작까지 되었던 소설집이니 허술하지는 않겠지라고 합리화하며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7개의 단편과, 맨 마지막에 표제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중편 ''펭귄뉴스''가 실려있다. 전반적으로 잘 읽혔고,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고루 ''수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집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것이다. 어느 하나 수준 떨어지는 작품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아주 매혹적인 작품을 꼽기가 모호하다는 것. 대부분의 소설집들을 읽어보면 ''역작''과 ''졸작''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소설들은 고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것이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라는 것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약점을 고르자면, 읽다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뭐 한 작가가 쓴 소설들이니만큼 그 주인공들의 성격이라든지 분위기 같은 것이 서로 비슷한 것은 당연하지만, 김중혁의 것은 그 농도가 좀 더 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무용지물 박물관''의 주인공이나,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주인공이나, ''바나나 주식회사''의 주인공이나... 이 주인공들은 남자라는 공통점 외에도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함을 느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직업과 처한 상황만 다르지,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김중혁의 소설들은 나를 매료시켰다. 중간 중간 여유를 잃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드는 유머러스한, 그러나 냉소적이지 않은 문장들, 대사들을 읽는 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최근 들어 냉소적이거나 지나치게 인위적인 유머(예를 들자면, 박 모 작가......)에 질려있었는데, 이렇게 유하고 기분 좋은 유머라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그의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매력은, ''동화''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전혀 억지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인.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내 신기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는 느낌인데, 생각해보면 거의 전혀 환상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것.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잠깐의 휴가를 보낸 뒤 다시 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캐나다에 사는 삼촌이 보내온 물건-나무 조각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삼촌과 통화를 한다.(''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내용) 상당히 일상적이고, 당연히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내 머릿속에선 그 모든 모습들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있다.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의 발명가 이눅씨는, 그 동화적 이미지의 절정이다. 자신이 설계한 발명실에 살며 뭐 망토까지 두르고 있는 이눅씨는 사실 좀, 다분히 동화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러저러 횡설수설해 놓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 작가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다, 라는 것이다. 이 작가에겐 일상을 동화처럼 포장해내는 능력이, 그리고 동화엔 현실감을 불어넣는 능력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좋은 작가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이번 소설집에선 아쉽게도 ''역작''이라 할만한 것은 찾지 못했지만 앞으로 충분히 굉장한 작품을 쓸 ''역량''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다.
아무튼, 작가님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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