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라. 독특하고, 뜬금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고 어찌보면 밋밋하지만 왠지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산뜻한 표지의 이 책. 그런데,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 왠지 마음이 가는 책 디자인이었다는 말(난 디자인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읽기는 읽었다. 결국은 디자인의 승리였던 걸까.
에세이집이다. 그것도 ''결혼''에 관한 에세이집, 그것도 일본 작가.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겠지만 일단 내겐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들이 아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낙하하는 저녁''은 좀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읽다 말았다. 작가 특유의 차갑고도 섬세하며 시린, 그 문체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담담한 연애(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 수도...)소설, 그 가벼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에세이집이 괜찮게 다가왔다.
결혼과 가정을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글처럼 진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도, 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좀 의외였다. 너무 쿨했다. 읽으면서, 도대체 이게 결혼 이야긴지, 아니면 동거 이야긴지가 헷갈릴 지경으로. 그러다가 그녀의 소설들을 생각했고, 그러자 그녀 소설의 전반적 정서가 확 정리되어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에세이집의 묘미가 그런 데 있기도 하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호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감정 같은 것들이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것, 그럴 때의 명쾌함.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함께.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들에서, 너무나 서슴없이 이혼 후의 상황을 가정해보기도 하고, 남편을 타인으로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 내가 결혼이란 걸 왜 했던가. 결혼은 정말 끔찍한 것이며, 도대체 내가 왜 이딴 것을 했는지 모르겠다.''이런 식의 탄식은 아니다. 정말로 그녀답게, 너무나 쿨하게 그저 생각해보는 것이다. 냉철하고도 철저한 개인주의적 정서가 어쩐지 친밀하기도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이 글을 과연 (그녀의) 남편도 봤을까(, 그러고도 계속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푹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같이 살지! 그게 서로 이해가 가능한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건 이번 책을 읽고,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 특유의 가벼움, 건조함, 냉철함 같은 것이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소설은 깊을수록 좋고, 에세이는 가벼운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늘어진 기분을 가볍고 산뜻하게 적시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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