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 3집 국경의 밤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루시드 폴의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차갑고 눈부신 가을과 겨울에 듣는 루시드 폴을, 정말 좋아한다. 하긴, 이름부터가 '찬란한 가을' 아닌가. 그 자신 가을을 좋아해서 저런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하니 그의 음악이 시린 계절에 잘 어울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그의 음악은 특별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외로움과 쓸쓸함, 숙명적으로 느껴지는 고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적인 느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따스하다. 마치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있어도 햇빛은 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처럼, 외로움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지만 희망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그의 모든 음악에서 반복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다.

루시드 폴에 대한 전반적 견해 혹은 예찬은 이쯤으로 그만 하고, 이번 음반에 대해 말해보자면. 솔직히 기대보다는 별로다. 2집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3집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컸었고, 기대가 너무나 컸으므로 그만큼에는 못 미친다는 뜻이다. 사실 난 별 다섯개 만점에 여섯개로도 모자랄 만한 음반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마 그건 심각한 욕심이었겠지? 객관적으로 별 네개 쯤의 수준 높은 음반이 나왔으나 대만족! 이 안 되는 것은 이게 루시드 폴의 음반이기 때문.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노래는 '사람이었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루시드 폴 답다. '무지개'는 다소 밝은 톤의 곡인데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그런데 처음 들었을 때 왠지 성시경 생각이 났다. 미안하지만 왠지 성시경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성시경이 이런 분위기의 곡들을 많이 불렀어서 그런가, 어쨌든 나중에 리메이크 해도 좋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

'국경의 밤'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feat. 김정범'이란 말에 보컬 피쳐링인가 하고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아니었다. 보컬 피쳐링이었어도 잘 어울렸을 텐데. 그리고 이적이 부른 '가을 인사'는 생각보다 좋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만큼 부드럽고 잔잔한 보컬로 곡을 소화해낸 이적에 대한 놀라움도 컸고. 적군,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나이들어버렸구나... 이런 원숙함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와 '당신 얼굴, 당신 얼굴'은 이미 라이브 음반에서 들었던 곡들이라 감동이 반감된 측면이 없지 않다. 전자는 원체 곡이 좋아서 김연우 보컬 버전(이것도 굉장히 좋다)부터 좋아했었고, 후자는 라이브 버전이 미묘하게 더 좋다. 루시드 폴 곡 치고는 굉장히 가라앉은, 햇살의 농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곡이라서, 녹음 버전의 절제보다는 라이브 버전의 약간 고양된 감정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번 음반은 전작들보다 사랑 노래가 적다. 솔직히 그 점이 나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은 부분이 크다. 그의 시적인 사랑 노래 가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번 음반은 남녀간의 사랑보단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간의 정, 혹은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음반을 듣노라면 (사랑 노래가 적어서 드는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 사람, 정말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싶어진다. 왠지, 그럴 것만 같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사람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루시드 폴을 좋아했었는데, 이번 3집이 지금 가요부문 판매량 1위라니. 내가 다 감회가 새롭다. 역시 진실된 음악은 통하는 건가, 싶어진다. 그 동안의 조용한 노력들이 비로소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왠지 기쁜 마음도 든다.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루시드 폴을 한국의 Damien Rice라고 하는 게 싫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둘이 거의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다른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시드 폴이 위에서도 얘기했듯 외로움을 따스하게 감싸는 음악을 한다면, Damien Rice는 정말 처절한 고독과 우울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성향이 정말이지 너무나 다른데 왜 그런 수식어를 굳이 쓰는지 모르겠다. 둘 다 훌륭한 싱어송라이터고 둘 다 좋아하지만, 저런 식의 표현은 싫다. 무엇보다도 내가 본인이라면 더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 무슨 전설적 아티스트도 아니고 동시대에 활동하는 다른 나라 가수의 한국 버전이라니, 정말 별로다.

어쨌거나... 아주 멀리 기다릴 것도 없이 12월쯤 나와주신다는 토이 6집의 그의 목소리를 기대하면서. 이번 겨울은 그의 노래가 있어 계속 행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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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2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은 거의 루시드폴 아저씨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저도 오! 사랑 앨범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음반은 저에게 다른 의미로 '감동'이었어요

duelist 2007-11-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사랑' 앨범 사랑합니다... 어떤 다른 의미로 감동이실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사실 저에게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곡들이 많이 들어있는 음반입니다.. 특히 '오,사랑' 이랑 '삼청동'... 어쨌거나 저는 토이 6집의 '투명인간' 기대중이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