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y (토이) 6집 - Thank You
토이 (Toy)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토이 6집이 나오기까지 목이 빠지도록, 눈이 튀어나오도록 기다렸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왠만큼은 기다렸다. 발매일이 되자마자 음반 매장으로 달려가 그의 음반을 집어든..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 상황도 아니지만, 한국에 있었다 해도 그의 음반을 발매와 동시에 구입했을지는 미지수다. 음반 구매에 있어 신중파라 자부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구매해온 음반들을 보면 이걸 살 땐 정말 미쳤었다- 싶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어쨌거나, 그래도 발매일이 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전곡을 들어보는 정도의 열의는 가지고 있었고, 듣자마자 정식 리뷰는 아니더라도 브레인스토밍 식의 러프 드래프트는 끄적였었다. 나의 태도는 그 정도.

처음에는 무조건 "고맙습니다, 유희열씨!" 이거였다. 김형중 보컬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너무 좋았고,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아준 것이 고마웠다. 사실 올해들어 지나치게 변해버린, 그로 실망스러운 가수들의 음반을 많이 접했고 그게 너무 실망스러워서 토이의 귀환에도 약간의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도 여전했고, 특유의 가사도 여전했고. 그러나 보컬 위주로 곡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 나였으므로 전체적인 감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한동안. 허술하기 그지없는 브레인스토밍 식의 러프를 들여다보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고민했으나 결국은 때려치웠다. 전체적인 감상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지금의 느낌과 처음의 대략적인 느낌이 퍽이나 상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음, 뭐라고 해야할까. 이건 어렵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음반에 대한 감상이라는 게 순수하게 그 음반에 실린 음악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가수의 전적 등 외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이라는 가수가, 무려 6년이라는 공백 후에, 6번째 음반을 들고 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솔직히 이번 음반이 기대만큼은 좋지만 기대보다 완벽에 가깝지는 않다는 데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지난 5집이 상당한 명반이었기 때문에, 그만큼만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 왠만하면 평가절하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음반이 평작이라는 평가까지 하더라.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 음반은 평작까진 아니고, 수작이다. 명작, 걸작까진 무리라도. 지난 5집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아주 살짝 떨어진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만들었다면 걸작으로 평가되었을 수도 있겠다. 쌓아둔 명성과 타이틀이라는 게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그 위치에 올라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달콤한 딜레마일 것이다.

그러저러해서 나는 결국, 이 음반에 별 5개를 주지는 못하겠다. 정확히 따지고 들자면 평점 3.8~3.9점 정도가 괜찮을 것 같다. 참고로, 지난 5집은 4.4~4.5점 정도.

음악에 있어서 (특히 대중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곡들에 있어서), 관건은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꽂히는가' 라고 생각한다. 물론 들을수록 좋은 곡들도 좋지만, 그건 사실 거의 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곡이 생각보다 별로라면 '들을수록 중독될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여러번 들어보는 노력을 하지만, 만약 내 관심 밖의 아티스트의 곡을 처음 들었을 경우, 그 곡이 그다지 귀에 확 박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취향도 아니라면 나는 그 곡을 굳이 여러번 들어가며 '그래도 들을수록 좋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생각하는 수고를 하진 않는다. 성급하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있어 나와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음반이 저번 음반보다 못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집을 처음 들었을 땐 단번에 꽂힌 곡이 무려 7~8곡에 이르렀던 것에 비해 이번 6집에선 겨우 2~3곡 정도뿐이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포스가 약해졌다는 건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인 듯 하다.

처음 들었을 때 제일 꽂혔던 곡은 김형중 보컬의 '크리스마스 카드'. 그냥, 들었을 때 너무 좋았다. '좋은 사람'하고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됐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가장 덜한 곡이라 편안해서였을지도. 어쨌거나, 좋았다. 그리고 조원선 보컬의 'Bon Voyage'도 좋았고. 일렉트로니카가 토이 풍으로 잘 해석됐고, 조원선 보컬도 나무랄 데 없이 잘 어울렸다. 토이 곡들의 묘미에, 적확한 보컬의 기용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제대로 된 보컬 선정이었던.

그리고 처음엔 별로였으나 들을수록 좋아진 곡에는, 먼저 타이틀곡인 이지형 보컬의 '뜨거운 안녕'. 개인적으론 복고풍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곡을 들었을 때 '이거 뭐야, 너무 촌스럽.. 무슨 에어로빅 내지는 단체 체조 배경 음악같...' 이랬었는데, 그래도 난 토이의 팬이기 때문에 (정말?) 유희열씨가 타이틀로 선정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여러 번 들었다. 그랬더니 과연, 중독됐다. 소중했던 내 사랑아 이젠 안녕- 하는 부분이라던가,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뜨겁게 안녕- 하는 부분이라던가. 은근히 중독. 다만, 보컬을 이지형으로 기용한 것은 무난하긴 했으나 탁월함까지는 아니지 않았나 싶다. 만들어진 곡 자체에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고, 그냥 무난했다는 느낌.  

그리고 또, 김민규 보컬의 '안녕 스무살'도 들을수록 좋아진 곡 중 하나. 묘하게, 토이 노래인 듯 아닌 듯한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곡 자체가 좋다. 가사도 마음에 와닿고. 무엇보다 보컬 선택을 잘 했다. 정말 잘 소화해냈다는 느낌. 뒷부분 가성 처리도 좋았고. 김연우 보컬의 '인사'도 들을수록 괜찮다. 다만, 이 곡은 처음 들었을 때 실망이 매우 컸던 곡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듯. 사실 김연우 보컬 라인의 발라드들이 굉장히 좋았었기 때문에 이번 음반 중 기대가 가장 컸던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번 곡은 전작들에 비해 포스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포인트가 약해서 귀에 잘 익지가 않는다는 게 흠이고, 멜로디의 중독성이 약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나처럼 가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멜로디의 약세는.

 기대 이하였고, 여전히 그저 그런 곡들은.. 먼저 성시경 보컬의 '딸에게 보내는 노래'. 제목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 아니 딸은 고사하고 결혼도 안 한 사람한테 왜 저런 곡의 보컬을? 하는 생각. 성시경은 감정 이입이 잘 됐을지 몰라도, 듣는 내가 이상했다. 유희열 본인이 부르기엔 쑥스러웠다니 그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결혼을 해서 딸이 있는 사람으로) 보컬을 썼으면 낫지 않았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그리고 더욱이, 곡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사실 난 '소박했던, 행복했던' 같은 풍의 쓸쓸한 발라드를 기대했는데.. 그리고 루시드 폴 보컬의 '투명인간'. 이 또한.. 내 기대와 심히 어긋났던 곡.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 장르 자체는 좋다. 컨셉과 가사도 신선했다. 그러나.. 나는 루시드 폴과 토이가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을,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잔잔한 발라드를 기대했기에. 둘 다 서정성으로 유명하잖은가 말이다. 그런 둘이 함께 작업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대가 컸었는데..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이건 뭐야' 했었다. 물론 듣다보니 처음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이건 새로운 시도에의,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로는 쳐줄 수 있어도 명곡까진 아닌거다. 안타까워라.

뭐.. 여기까지, 감히 토이의 이번 6집을 논해보았다. 전반적으론, 어쨌거나 일단은 고맙습니다, 라고 할 만하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무한반복해서 들은, 푹 빠진 곡이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다른 왠만한 음반들에 비해선 좋은 음악들이 많은 음반이 바로 이번 토이 6집이니까. 그러니 사실 불평 불만도, 다 애정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어쨌거나, 이렇게 툴툴거려도 또 새 음반 나온다 하면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고 기다릴 팬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이젠 은근히가 아닌가? 윤하 사건을 보면...), 부담 팍팍 갖고 앞으로도 좋은 곡들 많이 만드셔야 합니다! (절대로 협박이라구요, 하하)  앞으로 또 7년이 걸릴지 8년이 걸릴지, 아니면 1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희열씨 당신은 언제나 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 당신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멋진 곡들을 들려줄거라는 믿음 하게,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튀어나오고, 목도 빠질 정도로 열렬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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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오,사랑 [+친필사인시디/+통에넣은포스터증정]
Kakao Entertainment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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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루시드 폴의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바짝 곤두서있던 내 정신이 스르르, 무장해제 됨을 느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편안했다. 마치 한없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가락을 붙인 것처럼, 나른했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치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것 같은 익숙함과 왠지 모를 아련한 향수마저 주었다.

이렇게나 서정적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한 곡 한 곡이 마치 한 편의 시화처럼 서정적으로 흘러서, 이런 음악은 꼭 CD로 들어야 한다, 라는 욕망을 아주 강렬히 자극시켰고 결국 앨범의 전곡을 들어보지 않은 채로 음반을 구매했다. 보통 전곡을 들어보고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음반을 구매하곤 했던 내게는 충동구매 아닌 충동구매였다. 그래서 손에 들어오게 된, 바로 이 음반. 루시드 폴의 2집, ‘오, 사랑’.

당연히 이 음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CD에 걸어놓고 그야말로 무한 반복. 조악한 mp3의 음질에 댈 게 아닌, 아름답고도 따스하게 퍼지는 멜로디. 음반은 전체적으로 버릴 곡 하나 없이, 물 흐르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진다. 아니, 한곡씩 따로따로 들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곡이 다 너무 비슷해서 뭐가 어떤 노랜지 구분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하나하나의 특별한 매력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신기한 구성. 곡의 배열을 굉장히 잘 한 것 같다.

나는 평소 멜로디를 훨씬 중시하고 가사는 뒷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음반을 받고 가사집을 보면서 그게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루시드 폴의 음악은 멜로디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가사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사집을 열심히 보면서 그 서정적인 표현들에 새삼 놀랐다. 그러면서,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새삼스레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음악에 이런 가사를, 모국어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에. 행복감으로 충만해짐을 느꼈다.

모든 곡이 명곡이지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곡들은, ‘사람들은 즐겁다’와 ‘삼청동’. ‘사람들은 즐겁다’는 제목만 봤을 땐 굉장히 밝기만 한 곡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랑의 아픔, 쓸쓸함. 그 아릿한 감정들을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쓸쓸한 보컬에 담아낸 이 곡의 가사는 그야말로 압권. 사랑에 아픈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는 내용. 가사며 피아노 선율, 보컬까지 한 치의 어색함 없이 너무나도 잘 맞물려, 그 쓸쓸함을 너무나 잘 표현해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곡. 그리고 ‘삼청동’은 제목이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곡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렇다고 또 곡이 촌스럽다는 건 아니고, 굉장히 아련한 향수를 지닌 곡이라는 뜻이다. 따스하게 흐르는 기타 선율과, 잔잔한 보컬. 이 곡 역시 가사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고, 그런데 또 편안하고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서 귓가를 떠나지 않는 노래. 아니, 귓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싶은 노래, 라고 말한다면 설명이 될까. 루시드 폴의 음악은 늦게 접했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내 감성을 매료시켰다. 슬프도록 사랑스러운, 혹은 슬프지만 사랑스러운 음악이다.

겨울이 오는 쓸쓸한 길목에서, 바람결 같은 그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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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list 2007-11-2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시드 폴에 흠뻑 빠져있던 때 썼던 리뷰, 여기로 데려왔음. 수정을 볼까 했으나 손대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아 포기... 지금도 좋아하지만, 나 저 땐 루시드 폴 정말 사랑했었구나. TㅁT!
 
루시드 폴 - 3집 국경의 밤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루시드 폴의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차갑고 눈부신 가을과 겨울에 듣는 루시드 폴을, 정말 좋아한다. 하긴, 이름부터가 '찬란한 가을' 아닌가. 그 자신 가을을 좋아해서 저런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하니 그의 음악이 시린 계절에 잘 어울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그의 음악은 특별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외로움과 쓸쓸함, 숙명적으로 느껴지는 고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적인 느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따스하다. 마치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있어도 햇빛은 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처럼, 외로움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지만 희망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그의 모든 음악에서 반복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다.

루시드 폴에 대한 전반적 견해 혹은 예찬은 이쯤으로 그만 하고, 이번 음반에 대해 말해보자면. 솔직히 기대보다는 별로다. 2집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3집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컸었고, 기대가 너무나 컸으므로 그만큼에는 못 미친다는 뜻이다. 사실 난 별 다섯개 만점에 여섯개로도 모자랄 만한 음반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마 그건 심각한 욕심이었겠지? 객관적으로 별 네개 쯤의 수준 높은 음반이 나왔으나 대만족! 이 안 되는 것은 이게 루시드 폴의 음반이기 때문.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노래는 '사람이었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루시드 폴 답다. '무지개'는 다소 밝은 톤의 곡인데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그런데 처음 들었을 때 왠지 성시경 생각이 났다. 미안하지만 왠지 성시경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성시경이 이런 분위기의 곡들을 많이 불렀어서 그런가, 어쨌든 나중에 리메이크 해도 좋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

'국경의 밤'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feat. 김정범'이란 말에 보컬 피쳐링인가 하고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아니었다. 보컬 피쳐링이었어도 잘 어울렸을 텐데. 그리고 이적이 부른 '가을 인사'는 생각보다 좋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만큼 부드럽고 잔잔한 보컬로 곡을 소화해낸 이적에 대한 놀라움도 컸고. 적군,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나이들어버렸구나... 이런 원숙함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와 '당신 얼굴, 당신 얼굴'은 이미 라이브 음반에서 들었던 곡들이라 감동이 반감된 측면이 없지 않다. 전자는 원체 곡이 좋아서 김연우 보컬 버전(이것도 굉장히 좋다)부터 좋아했었고, 후자는 라이브 버전이 미묘하게 더 좋다. 루시드 폴 곡 치고는 굉장히 가라앉은, 햇살의 농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곡이라서, 녹음 버전의 절제보다는 라이브 버전의 약간 고양된 감정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번 음반은 전작들보다 사랑 노래가 적다. 솔직히 그 점이 나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은 부분이 크다. 그의 시적인 사랑 노래 가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번 음반은 남녀간의 사랑보단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간의 정, 혹은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음반을 듣노라면 (사랑 노래가 적어서 드는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 사람, 정말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싶어진다. 왠지, 그럴 것만 같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사람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루시드 폴을 좋아했었는데, 이번 3집이 지금 가요부문 판매량 1위라니. 내가 다 감회가 새롭다. 역시 진실된 음악은 통하는 건가, 싶어진다. 그 동안의 조용한 노력들이 비로소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왠지 기쁜 마음도 든다.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루시드 폴을 한국의 Damien Rice라고 하는 게 싫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둘이 거의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다른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시드 폴이 위에서도 얘기했듯 외로움을 따스하게 감싸는 음악을 한다면, Damien Rice는 정말 처절한 고독과 우울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성향이 정말이지 너무나 다른데 왜 그런 수식어를 굳이 쓰는지 모르겠다. 둘 다 훌륭한 싱어송라이터고 둘 다 좋아하지만, 저런 식의 표현은 싫다. 무엇보다도 내가 본인이라면 더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 무슨 전설적 아티스트도 아니고 동시대에 활동하는 다른 나라 가수의 한국 버전이라니, 정말 별로다.

어쨌거나... 아주 멀리 기다릴 것도 없이 12월쯤 나와주신다는 토이 6집의 그의 목소리를 기대하면서. 이번 겨울은 그의 노래가 있어 계속 행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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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2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은 거의 루시드폴 아저씨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저도 오! 사랑 앨범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음반은 저에게 다른 의미로 '감동'이었어요

duelist 2007-11-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사랑' 앨범 사랑합니다... 어떤 다른 의미로 감동이실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사실 저에게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곡들이 많이 들어있는 음반입니다.. 특히 '오,사랑' 이랑 '삼청동'... 어쨌거나 저는 토이 6집의 '투명인간' 기대중이어요. :)
 
Damien Rice - O & B-side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노래 / 워너뮤직(WEA)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 클로저의 ost, 'The blower's daughter'로 Damien Rice의 솔로 데뷔 음반인 이 음반이 크게 성공했고, 우리 나라에도 어느 정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한 지도 한참 오래, 음반이 발매된 지도 한참 오래 된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야 이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우스운 것은 난 클로저를 이미 옛날에-그러니까 개봉했을 무렵에-이미 봤었다는 것이고 그때는 이 노래에 전혀 끌리지 않았었다는 것. 내가 영화 클로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별로 재미 없었다는 것이고, 퍽 야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야했다는 것이고, 당시 엄청나게 열광했던 주드 로가 별로 멋있지 않게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상 Damien Rice가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도 아니고 또 찾아 듣지 않는 이상은 새로운 노래를 별로 들을 기회가 없는 생활 패턴을 가진 인간이라서, 얼마 전 아주 간만에 들른 이적의 홈페이지 ''몽상적''에 Damien Rice가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앞으로도 쭈욱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간만에 적군이 올린 글에서 그가 요즘 듣고 있는 음반들 소개에 덧붙인 Damien Rice, John Mayer, John Legend 이 셋이 새로운 세대의 3대 싱어송라이터로 여겨지는 것 같다나, 하는 말에 들을 노래 없어 허덕이던 나는 기꺼이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John Mayer, John Legend의 노래는 전부 내 취향이 아니었고 Damien Rice는 지독히 내 취향에 들어맞았던 것.

몇 개 유명한 노래를 들어보고, "이런 보컬이면 곡이 엉망이어도 들어줄 만 하겠다"고 판단, 음반을 구입했다. 일단 겉 모양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는데, 솔직히 겉모양은 영 아니라고 본다. 미색 바탕에 썰렁하게 이름자와 음반 타이틀만 적어놓고 컴퓨터 그림판으로 끄적거려 놓은 듯한 그림은, 그래, 넓은 아량으로 그렇다 치더라도 얇고 허섭한 디지팩 껍데기(이건 케이스가 아니라 진정 껍데기다)와 펼쳤을 때 나홀로 뚝 떨어지는 B-side 팩(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리고 가사집도 굉장하다. 나얼을 떠올리게 하는 상당히, 뭐랄까, 그로테스크(..까진 아닐 수도)하고 난해한 그림들과 그닥 잘 알아볼 수만은 없는 손 글씨. 그리고 평소 라이센스반을 잘 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상적인 가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 놓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라이센스로) 구매했는데, 해설집과 가사 해석 책자가 들어있지 않았다... 정말 급당황. 우. 그래도 다행히! 10개의 트랙은 정말이지 눈물 날 정도로 좋아서, 씨디를 컴퍼넌트에 밀어넣고 케이스들을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끔 해두자 곧 감동이 밀려들었다. 첫 곡 delicate는 비교적 무난하지만 두번째 곡 volcano는 오오, 감동적. what I am to you, 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고 여자 보컬과의 조화도 멋지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그 유명한 The blower's daughter가 흘러나오는 데에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volcano가 채 잦아들기도 전 and so it is,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주는... 트랙 간에 예비시간을 두지 않은 듯 한데, 그게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것 같은. 마지막 10번 트랙이 Eskimo인데, 10번 트랙에는 그의 선물이 숨겨져 있다. 곡이 다 끝나고 나서, 나는 음반이 다 끝났음에도 그 여운을 느끼려고 (사실은 귀찮아서) 굳이 정지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아주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음성은 그야말로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여자 보컬의 목소리로 silent night, holy night를, 개사한 버전으로 반주 없이 부르는 게 있는데 그것도 오묘한 매력이 있다. 캐롤을 그렇게나 허무하게 부를 수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참 묘한 분위기를 맛보았다는. 얼마 전 신보도 나온 것 같던데, 얼른 돈 모아서 사야겠다. 음, 이 음반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비록 겉 모양이 참 비호감스럽지만 그의 목소리와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아무래도 MP3파일론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고, 또 인터넷에선 쉽사리 구할 수 없는 히든 트랙(기대할 만 합니다! 그의 폭발적인 분위기!)을 들어보고 싶다면 과감하게 살 것을 추천! 그리고 적어도 싱글 앨범 하나 이상의 가치는 되는 B-side까지 주니까 절대 돈 아깝지는 않을 거라는,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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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4집 - Panic 04
패닉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패닉’의 4집. 난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패닉’의 이름을 걸고는 매우 오랜만에 나온 음반이긴 하지만, 사실 1,2,3집을 냈을 때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땐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그래서 이번 4집이 나왔을 때, 그리고 판매량 순위가 꽤 높게 기록될 때 그저 ‘골수팬들이 오랜만에 나온 음반이 반가워서 엄청나게 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TV를 보다가, 우연히 독특한 멜로디를 듣게 되었다. 경쾌하긴 한데 뻔하지는 않은, 뭔가 독특한 느낌. 그리고, 계속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음악이 중간에 끊어졌기 때문에 간신히 기억해낸 한두줄의 가사로 인터넷을 뒤적인 결과, 제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이번 음반의 타이틀, ‘로시난테’였다.

정말이지 의외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몇 개의 곡들도 찾아 들어보았다. 그런데 더더욱 의외로, 하나같이 괜찮은 것이었다. 들을수록 빠져드는 묘미에서 헤어나지 못해, 음반을 잘 사지 않는 나지만 과감히 주문하고야 말았다. 관심 외의 음반이었던 그 ‘패닉 4집’을.


일단 ‘눈 녹 듯’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멜로디도 정말 좋지만, 특히 후렴구에서 흘러나오는 이적의 매력적인 가성이 정말 최고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그리고 끝부분을 마무리 짓는 김진표의 쓸쓸한 나레이션 같은 랩도 정말 좋다. 가사도 정말 좋고... 과장이 아니라, 이런 곡은 패닉이 아니고서야 소화해낼 수가 없지 싶은 느낌이랄까.

‘종이 나비’는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의 멜로디와, 특이하고 예쁜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워낙에 부드럽고 매력적인 이적의 목소리가, ''아스라한''이라는 대목에서 완전히 녹아내렸다. 겨울날 창가에 앉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리고 종이 나비같은 눈발이 흩날리는 걸 본다면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환상적인 느낌이 들 것 같다.

''정류장'', 얼마 전 TV에서 무대 위에 정류장을 세팅해놓고 라이브하는 걸 봤는데,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여기서도 이적의 가성은 정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다. 후렴구의 ''있다면-'' 부분, 그 가성. 그건 거의 감동적이다.

타이틀곡 ‘로시난테’는, 처음 듣자마자 끌렸던 대로 밝고 경쾌하면서도 결코 흔해빠진 느낌이 아닌, 특별한 느낌의 곡이었다. 가사도 특이하고. 쉽게 질리지도 않고, 이적이 후렴구에서 경쾌하게 ‘라라라-’하는 것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곡, ''추방''... 앨범의 끝을 마무리짓는 이 곡의 여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느 아웃트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엄청난 여운의 마무리. 낮고 조용하지만 애달픈 느낌을 주는, 그러나 결코 늘어져버리거나 쳐지지는 않는. 가요를 듣고 이렇게나 감동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던... 그런 곡이었다.


패닉 4집은 내게 정말 의외였던, 그러나 정말이지 최고의 감동을 안겨준 음반이다. 사실 몇 곡만 들어보고 충동구매했던 음반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정말 이건 최고다. 이적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목소리와 김진표의 깊이있는 래핑. 요즘 안좋은 사정으로 활동을 중단한 그들이 안타깝기만 해서, 내 CD 플레이어 속 그들의 음반은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타이틀곡이 ''괜찮다'' 정도로만 느꼈어도, 사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왜? 타이틀곡보다 훨씬 좋은 곡들이 넘치는 음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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