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ien Rice - O & B-side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노래 / 워너뮤직(WEA)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 클로저의 ost, 'The blower's daughter'로 Damien Rice의 솔로 데뷔 음반인 이 음반이 크게 성공했고, 우리 나라에도 어느 정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한 지도 한참 오래, 음반이 발매된 지도 한참 오래 된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야 이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우스운 것은 난 클로저를 이미 옛날에-그러니까 개봉했을 무렵에-이미 봤었다는 것이고 그때는 이 노래에 전혀 끌리지 않았었다는 것. 내가 영화 클로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별로 재미 없었다는 것이고, 퍽 야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야했다는 것이고, 당시 엄청나게 열광했던 주드 로가 별로 멋있지 않게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상 Damien Rice가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도 아니고 또 찾아 듣지 않는 이상은 새로운 노래를 별로 들을 기회가 없는 생활 패턴을 가진 인간이라서, 얼마 전 아주 간만에 들른 이적의 홈페이지 ''몽상적''에 Damien Rice가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앞으로도 쭈욱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간만에 적군이 올린 글에서 그가 요즘 듣고 있는 음반들 소개에 덧붙인 Damien Rice, John Mayer, John Legend 이 셋이 새로운 세대의 3대 싱어송라이터로 여겨지는 것 같다나, 하는 말에 들을 노래 없어 허덕이던 나는 기꺼이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John Mayer, John Legend의 노래는 전부 내 취향이 아니었고 Damien Rice는 지독히 내 취향에 들어맞았던 것.

몇 개 유명한 노래를 들어보고, "이런 보컬이면 곡이 엉망이어도 들어줄 만 하겠다"고 판단, 음반을 구입했다. 일단 겉 모양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는데, 솔직히 겉모양은 영 아니라고 본다. 미색 바탕에 썰렁하게 이름자와 음반 타이틀만 적어놓고 컴퓨터 그림판으로 끄적거려 놓은 듯한 그림은, 그래, 넓은 아량으로 그렇다 치더라도 얇고 허섭한 디지팩 껍데기(이건 케이스가 아니라 진정 껍데기다)와 펼쳤을 때 나홀로 뚝 떨어지는 B-side 팩(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리고 가사집도 굉장하다. 나얼을 떠올리게 하는 상당히, 뭐랄까, 그로테스크(..까진 아닐 수도)하고 난해한 그림들과 그닥 잘 알아볼 수만은 없는 손 글씨. 그리고 평소 라이센스반을 잘 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상적인 가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 놓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라이센스로) 구매했는데, 해설집과 가사 해석 책자가 들어있지 않았다... 정말 급당황. 우. 그래도 다행히! 10개의 트랙은 정말이지 눈물 날 정도로 좋아서, 씨디를 컴퍼넌트에 밀어넣고 케이스들을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끔 해두자 곧 감동이 밀려들었다. 첫 곡 delicate는 비교적 무난하지만 두번째 곡 volcano는 오오, 감동적. what I am to you, 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고 여자 보컬과의 조화도 멋지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그 유명한 The blower's daughter가 흘러나오는 데에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volcano가 채 잦아들기도 전 and so it is,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주는... 트랙 간에 예비시간을 두지 않은 듯 한데, 그게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것 같은. 마지막 10번 트랙이 Eskimo인데, 10번 트랙에는 그의 선물이 숨겨져 있다. 곡이 다 끝나고 나서, 나는 음반이 다 끝났음에도 그 여운을 느끼려고 (사실은 귀찮아서) 굳이 정지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아주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음성은 그야말로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여자 보컬의 목소리로 silent night, holy night를, 개사한 버전으로 반주 없이 부르는 게 있는데 그것도 오묘한 매력이 있다. 캐롤을 그렇게나 허무하게 부를 수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참 묘한 분위기를 맛보았다는. 얼마 전 신보도 나온 것 같던데, 얼른 돈 모아서 사야겠다. 음, 이 음반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비록 겉 모양이 참 비호감스럽지만 그의 목소리와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아무래도 MP3파일론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고, 또 인터넷에선 쉽사리 구할 수 없는 히든 트랙(기대할 만 합니다! 그의 폭발적인 분위기!)을 들어보고 싶다면 과감하게 살 것을 추천! 그리고 적어도 싱글 앨범 하나 이상의 가치는 되는 B-side까지 주니까 절대 돈 아깝지는 않을 거라는,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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