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 Good Will Hunt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윌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다.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적 외모라고도 할 수 있을, 아무튼 제법 수려한 외모에 평범한 키와 몸매를 가진 청년. 대학에서 청소부를 하고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뛰며 한심해 보이는 친구 녀석들과 어울려 놀지만 윌의 눈빛에는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반짝이는 천재성. 그는 청소부로 일하는 MIT공대에서 학생들을 위해 걸어놓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루만에 풀어내는, 그래서 결국 교수의 눈에 띄고야 마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천재'다. 그러나 그는 삐딱하기 그지없는 성격의 소유자에다, 이따금씩 폭력을 행사해 법원에 드나드는 문제아이기도 하다. 결국 구속되기에 이른 윌을 찾아온 것은 MIT의  램보 교수. 그는 윌에게 함께 수학을 할 것과 또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구치소에서 나올 것을 권한다. 윌은 비웃으며 말한다. I'll do math, but I'm not gonna do any fucking theraphy. 그러나 결국 윌은 그 두 조건을 받아들이고 나오기로 한다. 그리고 몇 번이나 테라피스트들을 욕보인 윌은 마침내 심리학 교수 션을 만나게 된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줄거리는 대략 저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차마 문장 몇 줄로 요약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건 꼭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 글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는 그런 영화, 굿 윌 헌팅.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사실 맷 데이먼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걸 볼 겨를이 없었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었고, 그 자체도 너무나 매력적이었기에 그의 열렬한 팬인 내겐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비단 맷의 매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윌이라는 캐릭터의 천재성과 그 삐딱함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의 판타지 때문이었다. 진정한 인간 관계와 그로 인한 상처의 치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고 감싸줄 수 있고 내가 그 어떤 부족한 짓을 하더라도 그 아래 숨은 진심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 로빈 윌리암스가 연기한 션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윌은 그런 션을 처음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삐딱하게만 대하지만, 점점 그의 진심에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그렇게까지 진부하지는 않게 풀어내면서도 제법 짙은 감동을 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판타지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션같은 사람이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영화의 결말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의 끝은 억지스러운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보통 영화 같으면 윌이 결국 성공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혹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 정도는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텐데, 이 영화의 끝은 물론 (열린 형식의) 해피엔딩이긴 하나 그런 식의 구태의연한 해피엔딩과는 좀 궤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이것 또한 영화를 봐야만 느낄 수 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 또한 이 영화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동안 Miss Misery를 많이도 들었었지. 명장면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션이 "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윌에게 말해주는 장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아주 감정 이입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저 장면에서만큼은 정말 내가 위로를 받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게도 저런 사람이 있다면, 싶은 판타지의 절정. 동시에, 타인에게서 나의 치유를 구하고 싶다는 판타지이기도.
 

아무튼 그래서 내겐 소중한 영화 중 하나다. 별이 다섯개 씩이나, 싶기도 하지만 역시 네 개만 줄 수는 없는 영화이므로, 과감히 다섯개. 때로 위로를 받고 싶어질 때,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어서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러이러하니 위로해줘, 라고 할 구실이 없을 때, 꺼내 보게 되는 영화.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지금보다 좀 더 견고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위로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내가 그만큼 더 성숙했다는 뜻이 될 텐데,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왠지 쓸쓸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최대한 천천히 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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