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들의 삶의 태도를 길잡이 삼아 떠나는 인생 성찰기. 누구에겐 깊이가 없다고 생각될 수 있겠으나 철학자들을 이렇게나 친근하고 가깝게 풀어낸 책도 드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여정 끝에 얻은 결론들이 흔한 말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삶에 체화하는 건 또다른 문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4. 9. 18.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책의 마지막에 늙어감과 죽음을 배치하다니 전략적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읽는다. 보부아르와 몽테뉴에 대한 이야기들.



보부아르는 젊었을 때부터 노화에 집착했다. 죽음보다도 노년을 더 두려워했다. 보부아르는 죽음은 “절대적 무"이기에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년은? ”노년은 삶의 패러디"다.
보부아르의 오래된 파트너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노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만 절대로 온전히 내면화할 수 없는 상태, 오직 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늙어 보이고,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누가 봐도 늙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노화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기 나이와 충돌하고 12년이 지났을 무렵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순셋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사실이 낯설다."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 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카이로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키케로는 말한다.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왜일까? 노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나이가 들면 우리 목소리는 더 듣기 좋아지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더욱 즐거워진다. "지식과 배움에 시간을 쏟는 한가한 노년보다 인생에서 더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키케로는 결론 내린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개소리. 보부아르는 키케로의 쾌활한 평가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노년을 똑바로 바라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읽기 쉽지 않은 585페이지짜리 책, 《노년》 이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본질을 혼동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우텐테스authentes에서 나왔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무가치함 때문에 자신의 일에 스스로를 던지면 된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시시포스의 운명은 그 자신에 게 달려 있다. 그의 돌은 그 자신의 것이다. ····•돌 속의 작은 원자 하나하나, 어둠이 내린 산의 작은 광물 조각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의 꼭대기로 향하는 그 투쟁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보부아르는 카뮈의 부조리주의에 온전히 동의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열렬한 영웅주의"라 부른 것을 받아들이고 일 자체가 가진 마법을 즐거움으 로 삼았다. 보부아르는 괴물로 가득한 방 안에 서서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더 많은 괴물을 만들어냈다.



몽테뉴 읽기.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가장 생각 없는 사람도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궁금해한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죽음은 두려워할 일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지?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테스트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하고 겁나는 사건에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한다면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몽테뉴는 자기 철학이 아닌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인들은 "너 자신을 알라"고 간청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몽테뉴는 알려준다. 우리는 시도하고 실수하고 시시포스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함으로써 스스로를 알 수 있다.



프랑스어로 에세이assay는 '해보다'라는 뜻이다. 에세이는 실험이자 시도다. 몽테뉴가 쓴 에세이들도 하나의 거대한 시도다. 무엇에 대한 시도냐고?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한 시도다.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 잘 죽을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 삶을 잘 살아낼 수 없었다.



24. 9. 19.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완독. 몽테뉴 관련 장의 나머지 부분과 나가는 말을 읽었다. 몇 군데에 더 밑줄을 쳤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생각들. 뻔하다면 뻔한 내용일 수 있지만 삶에 체화시키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니까. 철학자들의 삶과 태도를 이토록 친근하게 풀어낸 것만 해도 성공적.






24. 9. 22.
















보난자커피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아무튼, SF게임』 읽기. 책에서 나온 게임들을 잠시 정리해본다. 보더랜드, 폴아웃 뉴베가스, 호라이즌 제로 던, 바이오쇼크, 투 더 문-파인딩 파라다이스-임포스터 팩토리, 디트로이트:비컴 휴먼, 스탠리 패러블, 디스코 엘리시움, 하데스, 스타듀 밸리, 스텔라리스, 스펙 옵스:더 라인, 엑스컴, 매스 이펙트.


성공한 덕후가 자신의 취향을 소개할 때의 들뜬 기분이 글의 저변에 흘러서 즐겁게 읽었다. 오랫동안 폴아웃 시리즈의 팬으로서 거의 모든 결말과 컨텐츠를 속속들이 알아내고자 수십 번 플레이를 했던 입장에서 더더욱. 마냥 가볍게 읽히는 것은 아니고 후반부로 가게 되면 오랜 플레이어로서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딜레마의 문제, 게임 내 다양성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4. 9. 4.














『아가미』를 읽다가 우리가 점점 쓰지 않아 잊혀져가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한다. 구병모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사전을 검색할 일이 많은데, ‘도스르다’, ‘해토머리’와 같은 단어들을 보고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잦다. 오래 전 김연수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감각. 오늘날 이런 단어들을 탐색하는 작가는 내 좁은 독서 범위에선 더 이상 없는 듯하다. 사라지는 것들을 눈으로 마주했을 때의 쓸쓸함.















서리북 ‘고전의 강’ 코너를 인상 깊게 읽었다. 진화심리학 분야 대중과학서의 고전을 뜯어보며 진화심리학이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서평. 『센스 앤 넌센스』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서평이었다. 서평 도서는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24. 9. 5.















크레마를 꺼내 놓았다가 그대로 두고 퇴근하는 바람에 카페에 왔지만 읽을 책이 없다. 알라딘 이북앱으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공자의 테마를 친절로 설정한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24. 9. 9.

『아가미』 완독. '이게 이렇게 끝난다고?'라는 생각에 당황. 축축하고 때로는 동화적인, 때로는 섬세한 상황 묘사를 특유의 만연체로 건조하게 서술해 순식간에 읽게 되지만, 정작 곤의 심리를 깊게 탐구할 기회는 적다. 아가미를 가지게 된 곤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게 더 시선을 주는 이야기.


24. 9. 10.














더 늦기 전에 스캔론의 계약주의를 정리하자.


하버드대학교에서 스캔론의 제자로 수학한 히에로니미는 계약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료 중 한 명이 또 다른 동료와 울창한 숲속에서 뒤엉켜 싸우는데 서로 30미터 정도 떨어진 참호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쏘며 몇 년째 전쟁 중이라고 해보자. 심각한 교착 상태다. 둘 중 어느 한쪽에게도 유리한 상황이 아니며 앞으로도 희망은 없다. 결국 지친 나머지 휴전 협정을 맺고 둘 다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로 한다. 양쪽의 관점이 얼마나 다르든(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을 보면 그 관점이 얼마나 심하게 달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여기서 스캔론은 이렇게 제안한다. 양쪽 모두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규칙을 거부할 권한을 준 다음 규칙을 새로 만들게 한다. 모두가 규칙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라 가정하되 (둘 다 합리적이라는 전제) 한번 통과한 규칙은 다시 거부할 수 없다. 이 경우 상대를 위한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규칙으로 통과할 수 없으므로 결국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람에게 정당한 규칙을 설계한다. 모두를 하나로 묶는 사회적 기본 끈끈이를 찾는 간단하고도 우아한 방법이다. (123~124쪽)



그런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라는’ 커다란 전제가 있다. 이는 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으로 철학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여기서 확실히 정의하고 넘어가야 한다. 스캔론은 '합리적'이라는 부분을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지 않는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은 이러하다. 나와 누군가가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억누르거나 조절하는 만큼 내가 내 이익 추구를 억누르거나 조절하려 한다면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규칙을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서로의 필요를 충족해주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며, 무언가를 놓고 모두의 생각이 같지 않을 때도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는 걸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스캔론은 "사람들이 상대방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정당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바꿀 의지를 공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의 의지가 같아야 하는데 스캔론은 이 계약서에 모두가 서명하기를 바랐다. (124쪽)



그렇다고 갈등이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캔론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 역시 갈등을 마주했을 때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상황이 정당하도록 자신의 이익을 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이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팽팽함이 조성되며 모든 사람이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한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고 똑같이 중요한 상태가 된다. 이제 히에로니미가 내게 스캔론 사상을 설명하며 왜 비참하게 끝없이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예로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쪽 모두 지쳐서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욕망이 생길 때라야 모든 사람이 진퇴양난의 수렁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갖고 다른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24~125쪽)



계약주의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최소 기준을 정하기 위해 적극적일 거라는 전제 아래 모두가 동의하고 따르기로 한 기준을 설정한다. 스캔론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둘러보고는 모두가 따를만한 행동 기본값을 설정하려 한다. 스캔론 이론은 사람들이 확실히 싫어하고 동의하기 어려울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예를 들면 쇼핑 카트를 훔치거나 망가뜨려 다른 사람이 쓸 수 없게 만들거나, 결혼식에서 술에 취해 길가에 버려진 카트에 올라탄 뒤 친구 닉에게 카트를 밀어달라고 해서 인도를 엄청 빠르게 달리다 카트 밖으로 떨어져(닉도 많이 취해 제대로 미는 게 불가능한 탓에) 길바닥에 나뒹구는 행동이 있다. 따라서 쇼핑 카트 사용을 위해 제안한 저 규칙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거부될 것이다. (130~131쪽)



남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 개념 정리하기.


우분투는 스캔론의 계약주의와 같지만 한층 강화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분투는 단지 타인에게 의무를 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타인이 건강한 것이 내가 건강한 것이고 타인의 행복이 내 행복이며 타인의 관심사가 곧 내 관심사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상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학자 마이클 오니예부치 에제 Michael Onyebuchi Eze가 우분투의 특징으로 인용한 덕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대함, 나눔, 친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분투에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강조한다. 2006년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우분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어렸던 그 옛날,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한 사람이 내가 사는 마을에 당도했다. 그 사람은 음식이나 물을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다주고 보살폈다. 이것은 한 단면일뿐 우분투는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 우분투는 스스로 부유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주위 공동체도 함께 성장하도록 하고 있는가?" (137)




이것은 수백 년간 남아프리카 철학의 중심 사상이었다. 하지만 서양 철학에서는 인간의 도덕적 삶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 관계에 달려있다는 계약주의 개념을 어느 정도 아웃사이더로 취급한다. 이 책에서는 르네 데카르트를 따로 다루지 않지만 서양 사상에서 가장 기본 사상 중 하나인 그 유명한 데카르트 철학의 제1명제, '코기토, 에르고 줌 Cogito, ergo sum'(앞서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원문)을 잠시 생각해보자. 이를 우분투 사상, 즉 '우리가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와 비교하면 세상에나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든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단일 의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우분투를 실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정의할 때 다른 사람의 존재를 조건으로 한다. (139쪽)


24. 9. 11.















출근길 지하철에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출퇴근길에 짬짬이 읽는 습관을 좀 들여보자. 버스-지하철-버스의 반복이지만.. 세이 쇼나곤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불확실성,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


















50년 대여는 무엇을 위한 상품일까? 50년 뒤면 나는 80대가 되는데... 그 전까지는 갖고 있으면 읽을 수 있지 않겠냐는 유혹일까? 흥미로운 책들이 보일 때마다 주머니 사정은 생각 않고 결제해버리는 나를 보며 잠시 들었던 생각.


24. 9. 12.














『교수처럼 문학 읽기』를 읽기 시작. 여행은 하나의 원정이라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 같은 것에서 시작. 하지만 그 예시로 핀천의 작품을 든 것이 흥미롭다. 원정의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 탐구자/탐구 장소/그곳에 가야 하는 표면적 이유/탐구 중 겪는 도전과 시련/그곳이 가야 하는 진짜 이유.


원정의 진정한 목적은 언제나 ‘자각’이다. (29쪽)


식사는 언제나 친교 행위communion이다. 성찬식(communion)의 의미만이 아님.




24. 9. 13.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니체 부분을 읽는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에픽테토스 읽기. 아우렐리우스에 이어서 스토아 철학, 스토아 캠프 이야기가 나온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 이해는 되지만 와닿지 않는 건 나의 나이 때문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4. 8. 19.
















파쇄읽기. 파과의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까지만 기대하고 읽으면 좋을 작품으로 읽혔다. 건조하면서 긴박한 전개와 만연체의 조화는 파과에서 맛보았던 그대로.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이어서 읽는다. 일요일에 스캔론의 계약주의를 읽었고 일기에 요약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올려버렸다. 오늘 읽었던 부분은 1부에서 배운 윤리 이론(덕 이론, 공리주의, 의무론, 계약주의)을 토대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초점을 둔다.


24. 8. 20.














백온유 작가의 경우 없는 세계를 읽다. 유원을 읽을 때부터 관심 있게 보았던 작가였고 이어서 읽었던 페퍼민트도 감탄하면서 읽었기에 이번 작품은 어떨지 호기심이 있었다. 가출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대한 묘사는 생생했고 캐릭터의 개성도 살아있는 느낌(성연은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다만 읽던 중 아이들의 악착같고 너덜너덜하고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하루하루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24. 8. 21.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2부까지 마침. 윤리적 피로감, 오버톤 윈도, 무임승차자 사고실험,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아가기.















『교수처럼 문학 읽기』의 머리말과 서문까지 읽음. 개정판을 사서 (읽지 않은) 구판을 처분할까 생각했는데 머리말을 읽다가 구판도 남겨두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떤 것이든 쟁여놓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24. 8. 23.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읽기. 피터 싱어로 시작한 윤리 딜레마와 너무 복잡해진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기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


이러한 윤리 딜레마는 우리 세대에게 특히 두드러진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어떤 정보든 구할 수 있는 시대라서 의도치 않게 나쁜 결정을 내리면 죄책감을(아니면 망신을) 피할 길이 없다. 기원전 340년에는 개인의 선택이 야생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설사 모르는 게 있어도 어딘가에서 잘 아는(최소한 아는척하는)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 아주 친절하고도 철저하게 우리의 죄를 일깨워준다. 윤리 딜레마의 2단계 공격이라 할 수 있겠다. 윤리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행동이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윤리 딜레마를 불러오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거야말로 엄청나게 배배 꼬인 프레첼 같은 상황이다. 거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접근법을 들고 와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 할 수 있는 모든 덕을 끌어모아 행동했어요. 그러고도 여전히 배를 걷어차일 가능성에 대체 얼마나 신경 써야 하나요? (262쪽)

24. 8. 27.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읽기. 뒤로 갈수록 무거운 이야기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실존주의를 지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야기. 출발선이 동등하지 않기에 모두가 이런 윤리적 질문을 오랫동안 고민해볼 여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운의 가능성을 인정할 것. 그리고 롤스의 무지의 베일. 마지막 챕터만 남겨두었고 제목은 '사과하기'이다.


'능력주의'를 적극 찬양하는 현대 서구의 사회정치 사상에는 계통이 있다. 이들은 모든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여야 하며 어떤 이유로든 한쪽 집단의 이익에 치우친 법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학에서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법은 사라져야 하고 성평등 인력 특별법도 발의해서는 안 된다. 뛰어난 사람은 알아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이들(보통 이성애자이고 부자에다 백인 남성이며 책장은 아인 랜드 소설로 가득하다)은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가 노동과 개인 의 성공을 제대로 평가하고 축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회 속 사람들이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잊는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나다고 그냥 눈에 띄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정상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먼저 정상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능력주의 개념은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가짜 능력주의다. 가짜 능력주의 사회는 아버지에게 10억 달러를 물려받은 메이플라워 가 남성이 이뤄낸 업적과 가혹한 인종차별법을 시행 하는 주에서 레드라인 지역(미국에서 인종에 따라 주거지를 나누고 표시해 그 지역 주민에게는 대출이나 모기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차별 관행-옮긴이)의 가난한 집에 태어난 흑인 여성이 이룬 업적 사이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다(오래된 속담처럼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선수는 결승선 10미터 앞에서 출발하고 또 다른 선수는 위원회의 구조적 편견 탓에 경주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능력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326-327쪽)


아이들이 무언가를 나누려고 할 때(케이크든 M&M 초콜릿이든 무엇이든) 부모는 한 아이에게 그것을 나눈 다음 다른 아이에게 먼저 고르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무지의 베일은 더 철저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와 같은 개념이다. 롤스는 사회 규칙을 정할 때 '원초적 상태original postion'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자가 사회에서 맡을 역할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봉이나 그 밖의 사회자원을 분배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주장이다. 규칙을 정할 때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채 무지의 베일 뒤에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모두가 배아 상태일 때로 돌아가 앞으로 성인이 될 사람들을 위해 규칙을 정하는 셈이다. 롤스는 이렇게 함으로써 상당히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그 사회에서는 모두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한다. (342쪽)


롤스의 주장은 스캔론과 사촌지간 정도인 것 같다. 스캔론은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거부하지 않을 규칙을 제안한다. 그리고 롤스는 우리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고 무언가를 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시작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규칙을 정한다면 분명 모두가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는 누구도 상황을 미리 알고 통제할 수 없다. 이 문을 통과해 어떻게 될지는 똑같이 아무도 모른다. 스캔론의 개념은(파멜라 히에로니미가 알려주었다) 롤스와 거의 대칭을 이루지만 그 과정의 후반부에서 살짝 달라진다. '합리적인 사람' 공식 역시 비슷한 상황을 논하긴 하지만 문을 이미 통과해(비유다) 삶이 어떻게 흐를지 알고 난 후라는 점이 다르다. 어떻게 될지 안 이후에도 자신의 삶과 필요, 욕구를 타인의 것과 동등하게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점에서 스캔론이 좀 더 낙관적이다. 행운을 더 누린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리라는 전제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장에서 논의한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롤스의 주장이 더 효과적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의 공으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그 삶에 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무시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현실 말이다. (344쪽)


24. 8. 28.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완독. 마지막 챕터는 맺음말처럼 읽힌다. 사과하기의 중요성은 결국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매 순간 실패를 겪지만, 이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위한 과정에 사과가 있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진짜 맺음말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당부로 끝난다.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사과라는 행동을 하는 순간 겪는 것, 즉 다른 사람 앞에서 잘못을 인정할 때의 민망함과 굴욕감 때문이다. 치유와 성장, 문제 해결이라는 장점은 보기 어렵다. 사과가 그 자체로 '윤리적' 행동은 아닐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거의 비슷하다. 윤리적 행동의 핵심이 타인을 향한 배려와 지속적인 노력이고 실패는 피할 수 없는 결과라면 사과는 그 실패의 퇴직자 면접exit interview(퇴직 예정자와 면접을 진행해 퇴직 원인을 밝히고 조직 내 기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옮긴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지? 왜 그렇게 했지?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지? 사과할 때의 그 불쾌한 감정,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한 상대에게 잘못을 시인할 때 얼굴이 붉어지며 수치심이 몰려오는 건 좋은 것이다. 잘못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이자 잘못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 아닌가(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명예를 모르는 것이란다). 이 느낌은 감기 증상과 같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치유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351쪽)




24. 8. 29.
















『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 뒤늦게 읽기. 뉴스레터에서 곧 15호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읽기 시작. 이번 특집은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다. 시작부터 王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당에 대한 민족지 서술을 다룬 서평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전통적 주술 문화가 여성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제주도의 굿이 4.3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소환되는 장으로서도 기능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 특집 리뷰까지 읽기를 마쳤다.



24. 9. 1.

에버노트에서 업노트(UpNote)로 갈아타며 에버노트의 기록들을 옮겨보는 중. 2주치 일기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일을 시작했음이 실감난다. 독서량은 현저히 줄었고, 메모량은 훨씬 더 줄었다. 점점 단어 위주의 글쓰기가 늘어가고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도 자주 눈에 띄어 오랫동안 손을 봐야 했다. 읽으면서 바로바로 기록을 하기 때문에 주로 폰으로 메모를 하는 것도 이러한 글쓰기 방식과 관련이 있을까? 시간을 좀더 잘 쓰고 싶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무언가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도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2주 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미지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편집증적 망상이 아닐까. 다양한 프레임으로 읽어낼 수 있지만, 오랫동안 남는 것은 어둠의 갑갑함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묘사와 그것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로의 서술. 어둠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빛도 없이 헤매다 빠져나온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