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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ㅣ 알베르 카뮈 전집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카뮈의 글은 항상 읽기가 어렵다. 『이방인』도 그랬고, 『페스트』도 그랬으며 『시지프 신화』도 그랬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부조리의 문학이 잘 읽히길 바라는 게 사치인가, 라는 생각도 해 보고, 지시어가 너무 많아서 잘 안 읽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만두었다. 일종의 고행과 같은 독서가 끝나면, 부조리 안에 우뚝 서 있는 카뮈라는 한 인간을 만날 수 있으니.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곧 반항이다.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다. (...) 반항은 갈망이 아니다. 반항에는 희망이 없다. 반항은 짓눌러오는 운명의 확인이다. 그러나 그런 확인에 따르기 마련인 체념을 거부한 채의 확인인 것이다. (83-84쪽)
『시지프 신화』는 세 개의 장('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과 에필로그('시지프 신화'),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부조리의 추론'은 저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15쪽) 카뮈가 생각하는 세계와 삶의 관계는 '부조리' 그 자체다. '부조리'는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무대장치 사이의 절연"이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직면해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 속에서 관성에 젖어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은 '습관' 속에서 부조리를 인지하는 순간은 바위를 올리고 다시 산을 내려오는 순간, '의식'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먼저 카뮈는 합리적이지 않은 부조리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태도 중 자살과 희망에 초점을 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가지 태도는 모두 부조리함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행위다. 그는 부조리의 풍토를 발견한 철학자들,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야스퍼스, 체스토프, 후설이 부조리의 의식에서 어떤 귀결을 이끌어내는지 주목하고, 그들이 모두 그 귀결을 '희망'에 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철학적 자살'이라 지칭한다. 카뮈에게 희망이란 "삶에 어떤 의미를 주며 결국은 삶을 배반하게 되는 거창한 관념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22쪽)일 뿐이기 때문다. 자살 역시 마찬가지다. 자살은 부조리의 문제 자체를 폐기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조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죽더라도 화해하지 않고 죽는 것이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죽는 것은 아니다. 자살은 삶의 진가를 몰라서 저지르는 행위다. 부조리의 인간은 오직 남김없이 다 소진하고 자기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할 뿐이다. 부조리는 인간의 최극단의 긴장, 고독한 노력으로써 끊임없이 지탱하는 긴장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매일매일의 의식과 반항을 통해서 운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그의 유일한 진실을 증언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85쪽)
희망과 자살이라는 문제를 논한 뒤 카뮈가 제안하는 태도는 바로 '반항'이다. 부조리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의 단절이지만, 동시에 그 둘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듭이기도 하다. 부조리를 인식하는 인간의 정신과 세계는 "서로 힘 겨루듯이 밀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65쪽) 결국 카뮈가 제안하고 있는 반항은 부조리라는 매듭에 매달리는 것이 된다. 합리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의 세계에서, 인간에게 자명한 것은 부조리뿐이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를 끊임없이 인식하게 하는 명철한 의식이야말로 반항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모든 삶이 곧 반항이어야 한다는 것이 부조리의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조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은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므로, 이것은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물론 자유는 영원하지 않다.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자유에는 한계가 없다. 두 번째 귀결인 자유의 개념에서 카뮈는 '양(量)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이 논의는 '부조리한 인간'에서 돈 후안의 사례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한계 없는 자유를 책임 없는 방종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생의 모든 순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듯하다.
카뮈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단절을 '의식'하는 부조리를 논의하고 있지만, 그의 초점은 부조리한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한 시지프'로 표상되는 일련의 태도, 즉 반항, 자유, 열정으로 나타난다. 남은 두 개의 장, '부조리한 인간'과 '부조리한 창조'는 첫 번째 장인 '부조리의 추론'의 부연이다(..라고 마음대로 정의해본다). 부조리를 대하는 인간의 풍토와 부조리한 창조자와 작품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와 마주한 인간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조리에 대응하는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은 마치 초인과 같이 느껴지지만, 이를 열렬하게 외치는 카뮈의 글에는 넘치는 열정이 있다. '부조리'에서 출발한 그의 문학적 테마가 '반항'으로 나아가는 것, 즉 『이방인』에서 『페스트』로 나아가는 도정은 당연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줄거리가 가물가물한 『이방인』을 떠올리며 그 작품은 결국 '부조리의 감수성'의 소설적 재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왜 부조리한 세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부조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부조리의 감수성이 갖는 문제들(이러면 결국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이 있지만, 시지프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태도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카뮈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쉽게 술술 읽히는 문장은 아니었으며,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도 꽤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김화영 평론가의 해설은 『시지프 신화』가 나오게 된 배경과 내용을 잘 정리해주고 있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이 글을 쓰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보다 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면 김용규의 『철학까페에서 문학읽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페스트』를 다룬 장에서 『시지프 신화』를 언급하며 '부조리'와 '반항'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