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박유하 교수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삭제판을 무료배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수반한다. 짧게 인용된 표현의 앞뒤만 잘라내도 마음대로 이용당할 수 있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로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알고 싶었고,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위안부' 분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때에 삭제되기 전의 초판을 빌릴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인 듯 싶다.


이 책에 대해서 한줄평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이런 식으로 적을 듯하다. '문제의식은 좋았으나, 정작 '제국'이 없다.' 이 책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흔히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위안부'의 이미지이고, 그러한 이미지를 당사자에게 덮어씌운 정치세력(좁게 본다면 정대협)이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안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일한 형태가 아닌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이는 단순히 일본군의 직접적인 억압이 아니라 식민지로 표상되는 제국주의의 모순적인 구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일반 사람들의 통념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자극적이기도 하고,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앞부분에서 저자가 가장 즐겨 인용하는 것은 90년대에 정대협에서 펴낸 '위안부'들의 증언이다. 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데, 오히려 중간에 어줍잖게 소설이나 영화를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존재했던 위안부 문제가 아닌, 일본이라는 제국에 속해 있었던 '위안부'의 존재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위안부'와 정신대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정신대는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교육제도 안에 있던 사람들을 연행한 것이라고 나온다), '위안부'를 직접적으로 모집한 주체는 군인이 아니라 업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가 갖고 있던 총체적인 모습을 재현하고자 하며, 획일화된 기억이 아닌 총체적인 기억의 복원이 그 뒤에 숨겨진 '제국'의 모순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해줌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하긴, 같은 '위안부'였어도 이들이 처해있던 장소와 조건이 다르고 사람이 각각 달랐을 것인데, 어떻게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이미지로 정형화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식민통치 속에 억압받는 민족이면서 외부에는 '일본의 2등 시민'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이중성을 양산해낸 식민지 구조에 '위안부'의 비극이 존재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굉장히 풍부한 사료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문제점은 상당히 많아 보인다. 저자는 소위 정대협 등의 단체들에 의해 제공되어 굳어진 '위안부'의 이미지를 깨고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그랬는지, '위안부'의 동원이 대부분 '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지나치게 많이,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저자의 의도였던 '위안부'의 총체적인 모습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저자가 끊임없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이 식민지 사회에서 구축한 제국주의적 질서와 계급 차별, 그리고 가부장제인데, 이것이 어떤 모순을 생산해서 어떻게 작용해 '위안부'가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매우 적다. 기껏해야 이 책의 제4부 '제국과 냉전을 넘어서'의 한 꼭지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인 책임은 업자에게 있다'는 주장만 강조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고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주범인 정대협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정대협 비판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거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난 사례에 너무 집중한 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대한 저자의 신뢰가 확고하다 못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뭐 책이 쓰여진 시기와 달리 지금은 평화헌법이 위태위태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오늘날까지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위안부'의 이미지를 주입한 정대협과 진보세력이다(그래서 정대협이 더욱 발끈해서 소송까지 제기한 게 아닐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실들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공개하면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민족'과 '이념'의 도구가 되도록 조장했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보이는 과거 일본의 행적 역시 오해의 여지를 충분히 남겼다는 점에서 잘한 건 없고, 일본 내부도 서로 분열하는 와중에 '위안부' 문제를 현재의 전후일본에 대한 인식문제로 치부하면서 본질에서 멀어진 감이 있다. 지금은 일본 사회가 점점 더 우경화되는 듯한 상황에서, 저자가 기대하는 일본 정부의 새로운 조치가 가능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리뷰가 더 산으로 가기 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표현들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에는 표현이 문제다), '동지적 관계'라든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애국하는..'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 맥락은 일본이 구축한 제국적 질서 아래에서 조선인은 일본과 표면적으로 그런 관계를 성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맥락과 저자의 논조를 따라서 읽으면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대협이 '위안부' 당사자들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하는 저자가 정작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표현을 쓰는 아이러니라니.. 이런 표현이 결국 비판적 논의의 장을 흐리고 본격 명예훼손 소송의 장을 열었다. 국민참여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긴 할지, 아니, 무료배포된 판본을 제대로 읽고 오는 판사, 검사, 배심원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분명 수긍할 법하지만,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고, 좀더 알아봐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이 무엇보다 크게 실패한 것은 일본의 태도 변화에 대한 낙관적 전망, 그리고 제국주의의 모순적 구조를 파헤치지 못한 점이 제일 클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자료조사 범위는 상당히 넓어 여러모로 참고할 만한 인용자료들이 있었다. 출간 후 옹호 및 비판이 굉장히 활발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옹호 쪽에서는 정승원 연구원의 기고문(4회), 비판 쪽에서는 정승환 부교수의 논평(6회)이다. 인터넷에 따르면 저자가 정승환 부교수의 논평에 대한 반박도 기고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주장의 타당성이나 신뢰성을 따져가는 논의가 더더욱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언급한 논평들은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저걸 읽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반납하기 전에 체크해야 할 부분을 다시 찾아 타이핑하는 일이다...


+) 꼬투리 잡는 심정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의 문장부호 사용이 상당히 조잡했다. 열어놓고 안 닫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그리고 인용방식이 처음에 저자와 연도만 밝혀놓고 이후에는 쪽수만 괄호로 표기하는 식이어서, 이게 어디서 발췌한 건지를 찾기가 굉장히 난해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각주를 달아라... 제2판의 PDF 파일을 확인하진 않았는데, 이건 안 바뀌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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