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16.1.2 - no.00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네 번째다. 정기구독은 하지 않았지만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매하고 있는 <Axt>는 어느덧 네 번째 책을 냈다. 그리고 신생 문학잡지의 수는 늘어나, 내 맘대로 정의하자면 2015년을 잡지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들 문예지의 앞날이 밝을 것인지는, 경제적인 여건만으로 따져도 장담할 수 없다. 이는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편집자들의 대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신간알리미 예약까지 해놓고 항상 구매하는 잡지이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70% 이상으로 만족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인상적인 서평이 적거나, 실려있는 단편들에 실망하거나 하는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이 잡지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미처 읽지도 못한 열댓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나는 내 리스트에 추가될 수 있는 책을 '소개'받기 위해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국내외 문학을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서평은 함성호 시인이 쓴 이제하의 『유자약전』에 대한 서평이었고(작품 전체를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자신의 비평적 읽기를 잘 보여준 것 같다는 느낌), 조재룡의 서평은 서평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한유주의 소설이 품은 주제의식이 내 관심의 영역이어서 구미가 당겼다(물론 나는 한유주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다). 말하자면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단어가 보내는 위험한 유혹 같은 것이다.


정영목 번역가가 한국소설의 서평을 써서 조금 놀랐고, 계간지 한 권에 대한 서평의 경우는 시도는 좋았으나, 계간지의 성격으로 인해 글이 약간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지금 이 글처럼). 북클럽의 대담은 여전히 나에겐 별로였고, 몇몇 서평은 줄거리 소개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해외문학 서평 중에 내가 관심이 갔던 것은 『붉은 밤의 도시들』 서평이었는데, 엄청나게 난해할 것 같은, 후장사실주의급으로 서사가 해체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풍기는 흑마술 같았다(서평 제목도 '후장 유토피아'다).


<원펀맨>이라는 만화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싱글 몰트 같은 술은 마셔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으므로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근데 확실히 주변에 물어보면, <원펀맨>은 확실히 크게 유행하는 게 맞는 듯하다.


<Axt>를 계속 읽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작가 인터뷰일 것이다. 이번 잡지의 커버를 보고 '아 이 사람들이 제때에 인터뷰할 작가를 고르는 게 탁월하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듀나'라는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그의 작품이나 글들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나는 호기심에라도 잡지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는 아무래도 듀나가 갖는 익명성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얘기를 백가흠, 배수아, 정용준 작가가 다 한 번씩 물어보니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듀나도 뒤에 실린 이메일에서 그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Axt>의 세 작가에게 말하는 듀나가 각각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백가흠 작가의 의문제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후반부에 나오는 듀나의 <Axt>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이상 보편적 교양이라는 것이 장점이 되지 못하고, 개인이 관심을 갖는 교양의 영역이 산발적으로 변한 시대에 대한 일침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교양'이나마 갖고자 발버둥치는 나로서는 이 정도의 인터뷰도 한때 SF에 가졌던 관심에 불씨를 던져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에게 SF는 항상 나가야 할 개척지 같은 영역인 데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벽돌 책들 중엔 항상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듄>이 있기 때문에..


윤고은은 과거 <무중력 증후군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을 때 처음 읽었고, 이후 잊고 지내다가 한 달 전에 단편 '월리를 찾아라'를 읽어야 할 일이 있어 다시 기억하게 된 작가다. 내가 읽은 이 두 개의 작품만으로 생각했을 때, 윤고은 소설의 매력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힘을 잃지 않는 가벼운 경쾌함에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통통 튀는' 느낌이 제일 가까운 것인데, '된장이 된'은 여전히 술술 읽히긴 했지만 통통 튀는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굉장히 묵직한 체념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빌려준 돈을 받아와야 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화자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흐릿해서 아쉬운 감이 있었다. 아마 괜히 된장을 고른 건 아닐 테다. 그 이유는 뭐... 된장이니까.


박솔뫼의 단편은 여전히 난해했다. 읽어나가면서 나 스스로가 박솔뫼의 소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열두 명의 여자를 죽인(사실 다섯 명이다) 김산희는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그 여자들에게 다시 죽고 죽고 죽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며 그걸 목격하고 기록하는 조한이는 실재하긴 하는 건지 화자는 왜 조한이를 찾는지 왜 조한이처럼 기록하기 시작하는 건지 도대체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죽이고 스스로 죽는 것을 보게 하는 건 무슨 의미인지 이건 결국 지적 유희를 위한 소설인가... 더 쓰면 머릿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인다.


황현진의 'diary fiction'의 화자를 보면서 <소각의 여왕>이 생각난 건 기분 탓인가. 쿨함을 너머 어떻게 되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의 방식을 문득 생각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도 사치인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장편연재의 경우, 이기호의 아이도스는 안 읽은지가 너무 오래된 느낌이라 앞부분을 기억하는 데 애를 먹었고(몇 번 휴재를 했었나?) 최정화의 도트는 그래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 금방 읽었다. 개인적으로 연재될 때 읽는 것보다 완성본을 읽는 것을 선호하는데, 아마 <Axt>에 연재되고 있는 이 세 소설이 내가 연재로 읽게 되는 최초의 작품이 될 듯하다.


끝에 가서 조금 급하게 읽은 것도 있고, 생각나는 대로 급하게 써서(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굉장히 긴 중구난방의 글이 된 것 같다. 이번 <Axt>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 역시 이 잡지의 가장 큰 힘은 작가 인터뷰에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도 알고 있겠지. 다음 작가를 누구로 할 지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번째는, 새로운 작품을 찾고 싶어서, 이라고 하고 싶다. 물론 소설리스트 같은,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지만, 활자의 매력이라는 것은 여전히 무시못할 일이기도 하며, 그 자체가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아마 난 정기구독 신청은 안 하겠지만, 그리고 이번 호 역시 70% 이상의 만족을 얻진 못했지만, 다음 호가 나왔다고 문자가 오면 또 구매를 할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증식하는 리스트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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