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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내가 읽은 것은 정확히 말하면 세계문학전집 판본이 아니고, 그 전에 나온 판본(2007년)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모파상이나 오 헨리의 단편을 제외하면 외국작가의 단편집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한국문학에서 말하는 단편과 외국문학에서 말하는 단편은 장르가 아예 다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외국문학이 단편(short story)이라는 이름처럼 짧은 이야기를 통해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케치라면, 한국문학의 단편은 삶의 한 단면을 더 깊게 파고들고자 하는, 일종의 짧은 장편(novel)을 지향하는 소묘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카버의 <대성당>을 읽은 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대성당>에는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렸다. 각 단편들의 분량은 제각각이라 '이거 장편(掌篇)소설인가?'하고 생각했던 이야기도 있고, 길다는 생각이 들었던(물론 분량을 확인해보니 단편의 분량이었다) 이야기도 있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른 환경에서 살고, 다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읽고 나서 이 열두 편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하나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몸을 뒤로 기댄다. 그녀는 손을 내게 내맡겨둔다. "이렇게 말할 거예요. '꿈은 아시다시피 빨리 깨면 좋은 거지요.' 그렇게 말할 거예요." 그녀는 무릎까지 치마의 주름을 편다. "누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하지만 이젠 그렇게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다시 숨을 내쉰다.
- '굴레' (p310)
굳이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미국 중산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중산층'이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 얼마나 에둘러 하는 말인지를 생각하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가 잠시나마 보여주는 이들의 생활은, '중산층'이라는 말로 묶어버리기엔 너무나 개별적이기 때문에.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카버의 단편들은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기서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다. 그저 작가가 스케치하는 사람들의 모습, 삶의 모습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과 아련함, 찌르르한 떨림이 온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읽은 느낌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빵 한 조각을 내놓는 일밖엔 없는 것 같다.
"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p141)
가장 좋았던 단편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열'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세 단편의 공통점은 '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롤빵으로 나타나는 위로와 공감, '열'로 나타나는 이별의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웹스터 부인, 맹인과 함께 '대성당'을 그리며 얻게 되는 이해와 공감. 김연수 소설가의 말처럼 그간의 카버 작품과 달리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작품들에 끌렸다고 해야 할까. 치밀한 분석과 집착은 보이지 않았지만, 단순한 스케치만으로도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물론 '리얼리즘의 대가'로 불리는 카버의 치밀한 묘사력이 있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