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작품은 <광장>과 <회색인> 외에는 읽은 기억이 없다. <광장>이야 워낙 유명하고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딱히 할 얘기는 없지만, 요즘 들어 <광장>이 걸작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시기를 잘 타고나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전후 문학이 시대 외적인 분위기로 인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을 때, 최인훈이 밀실과 광장이라는 상징을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 관념소설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아마 거기에 (다른 작품에 비해) 상징이나 관념이 쉽다는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연작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제대로 이해한 걸까 하는 의심과 어떻게 느낌을 정리해서 써야 할까라는 복잡한 심경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하 '캐럴') 연작은 총 다섯 편으로 되어 있는데, 따로따로 보아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한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234 / 5 로 나눌 수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매우 어려웠다는 데 있다.

 

이 연작을 어렵게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와 '나' 사이의 종잡을 수 없는 대화에 있다. 언어유희를 활용하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관념적으로 피력하기도 하는 이 대화는 이따금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고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나 싶기도 하다. 아직도 이 대화가 갖는 의미를 다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자신이 없어서...

 

'캐럴 1'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외박을 하려는 옥이와 이를 막으려는 아버지, 그리고 그 뜻에 동조하는 '나'(철이)의 해프닝이 주된 내용이며, '캐럴 2'는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에 어머니와 옥이가 교회에 가려는 이야기를 다룬다. '캐럴 3'은 칫솔이 없어지고 행운의 편지가 오는, 뜻밖의 해프닝이 연출되고 있으며, '캐럴 4'는 'R-'로 유학 온 철이가(여기서는 '그'로 나온다) 한 노파를 만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네 편의 연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캐럴 4'를 유심히 봐야 한다. 철이는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서양의 문화가 우월한 것이 아닌, 하나의 풍속임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매일 벤치에 성경을 품고 앉아 있는, 수호 성녀라고 불리던 할머니를 외경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귀국한 뒤 할머니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와중에 옥이가 친구들을 불러모아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질펀한 파티를 벌이는 것을 보고 토기(吐氣)를 느끼는데, 이는 서양 문화에 짓눌려 있었음을 자각한 지식인의 부끄러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R─로. 사람도 죽어서 가죽쯤은 남기는, 그 짐승다운 냄새에 절어 있는 도시의 저 우중충한 신학교 기숙사로 가서 거기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높은 벽에 달린 동그란 층으로 비집고 들어온 여린 햇빛이 조금 묻어 있는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이 메스꺼움을 입 안에 토해내자. 그리고 그 토사물─나의 핵(核)을 천천히 씹어보자. 크리스마스가 페스트처럼 난만하게 번지고 있는 이 서울의 밤이 샐 때까지.

- '크리스마스 캐럴 4' (103-104쪽)

 

여기서 옥이와 그의 친구들은 서양인들에게는 하나의 풍속인 크리스마스를 '하느님을 구실로 암숫이 재미보'는 날 정도로 여기는, 자신만의 문화를 전유하지 못하는 대중으로 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잔치에 춤을 추느라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캐럴' 1~3에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벌어지는 해프닝은 서양 문화의 범람 속에서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확립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한국 사회의 풍속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에서 서양 문화의 비정함을 비꼬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통해 부자지간에 벌어질 수 없는 해학적인 관계를 연출하며 '부자유친'으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를 비꼬기도 한다.

 

"부자유친, 엄격한 옛 사람들이 하필이면 부자지간을 말하는데 유친이라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야."

(...)

"내 생각으로서는 아마 이렇다. 부자지간은 서로 도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서, 말하자면 도우(道友)라 할까, 그런 점으로 본 것 같단 말이야. 옛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러 관계 가운데서 철학적인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를 으뜸으로 친 모양이야. 말하자면 부자지간을 길동무로 보았단 말이지."

"옳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마 섹스의 관계를 으뜸으로 본 것이죠. 부자지간은 그런 까닭에 서로 경쟁할 처지에 있는 수컷과 수컷으로 본 것입니다. 박력 있는 견햅죠?"

- '크리스마스 캐럴 3' (64쪽)

 

"너는 뜻이 없느냐?"

"네?"

"왜 그리 경풍들린 아해처럼 놀라느냐? 경풍들린 십삼 인의 아해들처럼."

"네?"

"또. 지엽말단을 꼬집어 뜯지 말고 큰 줄기를 대답하란 말이다. 어떠냐 넌 뜻이 없니?"

"글쎄올습니다. 뜻이란 말씀의 뜻이 무슨 뜻이온지 뜻을 몰라서 어떤 뜻의 답변을 올려야 할지 뜻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뜻이라 말씀하신 뜻을 자세히 뜻풀이를 해주시는 게 미상불 뜻을 물으신 뜻에 합당할 줄 압니다."

- '크리스마스 캐럴 3' (75쪽)

 

여기서 지식인을 대표하는 철이는 뚜렷한 입장에 서 있지 못하다. 아버지가 '넌 양식의 편이냐 숙이의 편이냐'라고 물어도 '괴롭습니다'하며 대답을 회피하고('캐럴 3'), 옥이의 외박을 막으려는 아버지와 옥이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대답하지도 않는다.('캐럴 1') 말하자면 주체를 확립하지 못한 지식인인 것이다. 이런 그의 인식은 '캐럴 5'에서 그의 겨드랑이에 파마늘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전환되는데, 통금을 어기고 야간 산책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겨드랑이에서 돋는 날개, 날개의 통증을 없애고자 감행하는 산책은 이상의 '날개'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산책을 하면서 4.19 혁명이나 5.16 군사 쿠데타와 같은 역사의 현장에 직면하게 되고, 외국인을 만나기도 하면서 서울 곳곳을 누비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런 철이의 일탈과 '날개는 사람을 가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마 날개가 사람을 가렸다는 것은 날개가 적대적이지 않았던 이들을 통해 근대로 나아가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전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느 순간 날개의 재촉이 없어도 산책을 즐기게 된 철이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근대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것에 대한 애정이 우선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연작에는 분단에 대한 작가의 소신과 같이('캐럴 2') 다양한 요소가 삽입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표현되는 방식이 난해해 이해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는 확언도 못하겠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여전히 근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남의 잔치에 춤을 추느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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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2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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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2 2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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