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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ㅣ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하우스>의 주인공 하우스, 그리고 퀸시 사이의 공통분모는 바로 '마약'이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였던 월터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가족들에게 돈을 남겨주고 떠나기 위해 자신의 옛 제자 제시와 함께 마약 제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마약을 제조하는 일 자체에 중독되어 버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합리화 기제로 전락했고, 그는 마약 제조만이 자신의 실존을 확인시켜 주는 듯 마약 요리(cooking)에 집착했다.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하 <고백>)을 읽으면서 월터를 떠올린 이유는, 마약 제조에 자부심을 넘어 장인 정신까지 느끼는 월터의 모습이 퀸시와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Breaking Bad Season3 ep4. 'Green Light')
<고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는 제1부과 아편을 복용하게 된 시기를 다룬 제2부, 그리고 부록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아편 복용 이야기를 하기 전 자신이 아편을 복용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인데, 이 부분은 사실 잘 읽히지가 않았다. 퀸시의 어린 시절은 흥미로웠지만... 이 책의 본격적인 정수는 2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1804년 치통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으로 아편을 복용한 퀸시는 아편이 주는 놀라운 쾌감에 반하여 아편쟁이가 되었는데, 여기서 퀸시는 아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아편의 쾌락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그 중에서 내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음악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편은 정신 활동을 크게 증가시키기 때문에, 당연히 음악과 관련된 그 특별한 형태의 정신 활동-우리는 이 활동을 통해 기본적인 소리를 원료로 하여 정교한 지적 쾌락을 만들어낼 수 있다-도 대체로 등장시킨다. (...)
정교한 화음의 코러스가 아름다운 무늬를 넣은 벽걸이처럼 내 모든 과거를 내 앞에 펼쳐놓았다고 말하면 충분하다. 지나온 내 인생은 기억의 작용으로 상기된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떠오른 것처럼 내 앞에 펼쳐졌다. 과거를 곰곰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지만, 지난 사건들의 세부는 지워졌거나 몽롱한 추상으로 융합되었고, 과거의 열정은 고양되고 정화되고 승화되었다. 5실링만 내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98p)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지적 능력을 발휘했던 퀸시에게 아편은 자신의 지성을 더욱 자극시키고 그의 열정을 북돋아준 기폭제로 작용한 듯하다. 저 부분을 보면서 어린 시절 한 번뿐인 삶에서 한 번쯤은 마약의 느낌을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일이 다시 떠올랐지만, 이미 <브레이킹 배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기에 나는 얼른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고백>이 당시의 아편 중독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 아닐런지. <고백>을 읽고 감명받았다는 보들레르도 아편을 탐닉하는 퀸시의 모습에서 강렬하게 살았던 인생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리라. 이런 그의 아편 예찬은 뒤로 갈수록 더욱 강렬하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마음에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처에도, "정신을 반역으로 유도하는 고통"에도 위안을 가져다주는 아편이여. 강렬한 설득력을 가진 아편이여! 뛰어난 수사법으로 분노에 찬 결심을 슬며시 훔치는 아편이여. (105p)
찬사는 뒤 페이지까지 이어지지만 생략하기로 하고, 2부의 '아편의 쾌락'이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1813년 그를 덮친 위장염으로 인해 그는 아편 중독에 빠진다. 1804년부터 1812년까지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복용하며 그 쾌락을 즐기던 프로페셔널한 마약쟁이는, 궁핍한 어린 시절의 상흔에서 발생한 위장염의 고통으로 인해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아편의 고통'에서는 아편 중독이 그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아편 중독의 고통에 빠진 퀸시는, 이제 월터의 모습을 잃고 통증을 피하기 위해 바이코딘을 사탕처럼 먹는 괴짜의사 하우스가 되었다.(하우스를 본 사람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고통받는 퀸시의 모습에서 나는 모든 통증을 피하기 위해 바이코딘을 복용하는 하우스가 떠오른다)

(House Season6 ep1. 'Broken')
'아편의 고통' 장에서 퀸시는 아편 중독으로 인한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자신의 정신이 어떻게 빛을 잃었는지에 초점을 둔다.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복용하기 시작한 아편은 온갖 망상과 악몽을 낳았고, 그것은 그의 정신을 갉아먹으며 학문적 열정마저 잃게 했다. 악몽을 묘사하는 그의 묘사는 너무나도 생생해서, 지독히도 끔찍한 고통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2부의 마지막에서 그는 아편 중독을 극복한 듯 이야기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부록은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위통으로 인해 오는 고통이 너무나 극심했음을 말해준다. 그가 쓰다가 보내지 못했다는 편지에는 그 고통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다.
아편의 지배 아래에서 꼬박 1년 동안 나에게 유입된 생각보다 지금 한 시간 동안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생각이 훨씬 많다고 나는 단언합니다. 아편 때문에 10년 동안 동결되었던 생각들이 옛날이야기에도 나오듯 이제 단번에 녹아버린 것 같습니다. (...) 나는 육체적 고통과 수면부족으로 지쳐 있지만, 2분도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177p)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고백>은 읽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글의 전개가 정연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고 퀸시가 그때그때 떠올렸던 생각들이 즉흥적으로 개입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콜리지의 말을 빌리자면 '간절하면서도 지지부진하고, 너무나 정확성을 기한 나머지 혼란에 빠지고, 합리적인 동시에 미궁적'인 그의 문체는, 때때로 독자를 미궁 속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어울리는 것은 그의 문장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낭만파 문인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그의 낭만주의적인 색채와(특히 워즈워스에 대한 퀸시의 찬사는 그의 시를 수없이 인용한 것에도 알 수 있다) 표현들은 아편의 환희와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 책을 남아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