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 2014년 15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의숲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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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감이지만, 별 3개 중 2개는 황정은의 몫이고 나머지 하나는 윤성희의 몫이다. 심지어 윤성희의 작품은 수상작도 아닌, 기수상작가 자선작이었다... 내가 여태껏 읽은 문학상 단편집 중에 제일 많은 단편을 실었는데, 결과가 이렇다니...

 

김사과의 단편을 이번에 처음으로 읽었는데,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상하다. 읽는 내내 맥을 잡는 게 어려워서 힘들었다. 그래도 서사가 흐릿한 소설의 맥을 나름 잘 짚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의 혼잡한 현실이 이런 식으로 구현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박솔뫼의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은... 김사과의 작품보다 더 이상했다. 도대체, 왜 작가는 쉼표를 단 한 번도 안 쓴 걸까. 그의 요상한 문체가 일상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의 반영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래도 그의 문장은 여전히 나에게 낯설다. 이 두 작품을 읽으면서 예전에 이상의 '종생기'를 읽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그 난해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상은 '날개'에서 아스피린과 아달린의 비유를 잘 녹여냈는데, 이들의 작품에도 그런 상징이 숨어있는 걸까. 그걸 못 찾아내는 건, 나의 눈이 어두운 탓인가.

 

윤이형의 '러브 레플리카'는 소재와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나, 그것을 끝까지 끌고 가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 안에서의 그 일이 최경이 진짜 모습을 찾은 거라면, '나'는 왜 그 이후에 최경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최경의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보고 들었던 모든 텍스트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최경은 자신이 보았던 텍스트들을 남의 것인지도 모르게 자기화해 버리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비행기 안에서의 그 사건 이후의 그녀는, 자신의 고유한 텍스트를 찾았을까.

 

조해진의 '문래'가 끌리지 않았던 건, 내가 갖고 있는 자전소설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계,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빈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물론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쓴 좋은 소설들이 많이 있지만, 김원일의 '어둠의 혼'이 '도요새에 관한 명상'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듯, 나는 '문래'에 대해서도 그런 평가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천운영은 예전에 단편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가 인상적이어서 단편집 <바늘>과 <그녀의 눈물 사용법>, 장편 <잘 가라, 서커스>도 찾아서 읽었었는데, 실망도 그만큼 커서 한동안 찾아보지 않았었다. <생강>이 이근안을 다루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찾지는 않았었고... 그녀의 작품에는 어딘가에 집착하는 인물들이 자주 나온다. '바늘'도 그랬고,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도 그랬다. '다른 얼굴'에도 정원에 집착하는 한 여자가 나오는데, 여전히 그녀의 묘사는 섬세하고 치밀하다. 하지만 지갑 절도 사건 얘기는 왜 나온 걸까, 탈일상적인 그녀의 행동의 시발점 같은 거였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를 않는다.

 

최은미의 '백 일 동안'은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고, 전통적인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읽었는데, 마지막 결말 처리에서 실망을 했다. 너무 급작스럽기도 하고,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인과응보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뻔한 의미가 되어버리니 그건 아닐 테고...

 

최제훈의 '단지 살인마'에서 나는 단지가 부사 '단지'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단지(斷指)' 였다. 손가락을 자르는 연쇄살인이 엽기적이기도 했으나, 다 읽고 나서 어쩌면 연쇄살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편이 좀더 섬뜩하면서 의미있는 구조가 될 것 같다.

 

요즘은 모든 화제가 증폭되어 돌아다닌다. 이슈가 되는 검색어 하나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쳐 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기사들, 똑같은 사진들, 이를 퍼 나른 각종 웹 페이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SNS에서는 사람들의 한마디가, 그 한마디를 리트윗한 한마디가 미처 읽을 새도 없이 격류처럼 흘러간다. 정보의 망망대해로.

일말의 회의도 없이 계속되는 자기 복제. 정작 검색창에 쳐 넣은 단어는 한없이 가벼워져 휘발되는 느낌이다. 혹은 한없이 무거워져 제 무게에 압사되는 느낌. 자기가 자기 자신을 지우는 시스템이라...... 생각해 보면, 매우 윤리적인 소멸이다.

- 최제훈, 단지 살인마

 

윤성희의 단편은 읽을 때마다 항상 재미있다.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건 뭐지하며 생각할 필요 없이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도 그랬고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도 그랬고, '모서리'도 그렇다. 소설이 재미있기만 하면 다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렇다. 익살스러움을 즐기며 읽다보면 어느샌가 '찌질이'같은 인물들에게 눈길이 가게 되므로... 그녀의 단편에서는 항상 이야기 자체에 초점이 놓여지면서 흐르고, 등장인물들은 어딘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지만 힘든 현실을 견디고 있는 그런 사람일 것 같다. 여기에 황석영이 한국 명단편 101선에서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를 평한 내용을 잠시 인용한다. (한국 명단편 101선 10권에도 실려 있고 문학동네 네이버 까페에 가면 볼 수 있다.)

 

앞의 몇몇 작가들과 더불어 치열하고 날카로운 존재의 싸움터를 헤치고 나오려니 어느 동구 밖 나무 아래서 한가로이 쉬다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윤성희의 단편들을 몇 편 읽고는 이내 원기를 좀 차리게 된다. 이번에는 그의 단편소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를 읽어보자. 박민규의 파격적인 서사에 비해서 이번에는 소설의 격식을 좀더 갖추고 있으며,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힌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성희의 소설은 민담처럼 이야기가 그 주제이고 구성이며 형식이다. 한 페이지 속에서도 끊임없는 에피소드들이 발전하고 곁가지가 뻗어나가고 사건은 엉뚱하며 그 어떤 장면도―사실은 비약과 충격의 연속이지만―극적이지 않다. 그것은 민담에서처럼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윤성희의 이야기는 박민규의 ‘구라’와 목소리만 다를 뿐 비슷한 계통이다. 인물과 사건의 엉뚱함과 비약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는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래서 익살스럽다. 박민규의 웃음이 블랙 유머 계통이라면 윤성희는 따뜻한 익살이다. 그의 소설들이 현대 도시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도 어느 오래된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옛날이야기 같은 인상이며 아련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인 '염'의 엄마와 새아버지 이야기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어서 언급 안했겠거니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불안한 20대를 지칭하는 것 같은 염과 조의 모습은 전혀 불안하지 않고 코믹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가 그냥 아르바이트 말고 부모님의 전 가게를 물려받기로 했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쓸쓸함도 그때뿐, 작가는 그것도 익살스럽게 넘겨버린다. 가끔씩 읽을 때면, 익살스럽게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익살스럽게 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왜 제목이 '모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많이 해서 올해 작품집이 나와도 내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올해 작품집에는 황정은의 작품이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실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말은 결국, 올해 작품집도 보게 되리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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